친절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본능일까? 안 그런 사람들도 가끔 있겠지? 그 사람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친절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나 역시도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면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오늘 퇴근하면서 사무국에 차키를 반납하러 갔는데, 평소에는 인사 정도만 나누었던 사무국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조금 의외였다. 젊은 여성이 일부러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과 지금껏 그저 인사만 나누었는데, 어쩐 일로 다른 말을 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말은 아니었고 평소보다 좀 늦으셨네요. 라고 아마도 혼자 있는데, 내가 들어와서 인사 외에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따라 유난히 차가 많이 막혀서요. 라고 내가 답하자 눈을 크게 뜨고 그랬군요. 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사무실을 나서며,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하고 늘 하던 인사를 건넸는데, 그도 평소처럼 수고 하셨습니다. 하고는 조금 후에 한 마디를 더 건넨다. 주말 잘 보내세요. 라고. 이 말은 내가 사무실을 나선 이후에 들렸고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나도 주말 잘 보내시라 한 마디를 더 했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열렸다. 그냥 다음에 또 이렇게 대화할 일이 생기면 그땐 답을 좀 더 잘 해보자. 암튼 걸어가면서 왜 갑자기 그가 좀 더 친절해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오늘따라 혼자 일하고 있는데 내가 와서 약간 어색해서 그랬을까? 계속 혼자였는데, 내가 와서 말을 걸고 싶었을까? 아님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는데 내가 들어왔던걸까? 어쩌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친해질 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무국에는 오래전부터 꽤 친하게 지냈던 형이 있고, 또 알고 지낸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번에 일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 친해지는 팀장님이 계시다. 이 팀장님도 나름 나랑 친해지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좀 재미있는 건, 나에게 커피를 자주 물어본다는 것. 일을 시작한 첫날 나에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라고 묻길래,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었다. 사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또 커피를 권하시길래, 커피를 안 마시는 건 아니지만 즐겨 마시는 것도 아니며 특히 운전하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봐 안 마시려 한다고 답을 했었다. 매장과 배송지들을 돌면서 운전을 하다보면 길에서 화장실을 가기 어렵다. 매장에 딸린 화장실이 이용하기 불편한 경우도 있고, 시간에 쫓겨 얼른 짐을 싣고 가기 바빠서 화장실을 못 들리고 출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하는 중에는 목이 말라도 물도 자주 마시지 않는 편이다. 암튼 그러다 지난 달에 한참 일이 많을 때, 새벽까지 다른 일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운전을 하다 편의점에서 용량이 큰 커피, 에스프레소 라고 적힌 제품을 하나 사 먹었었다. 단 맛이 전혀 없어서 먹기에 좋았고, 이상하게 이건 커피 맛이 괜찮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맛을 모르는 내가 이런 느낌이 들다니 의외다 싶었다. 그날 이후로 종종 그 커피를 사 마시며 일을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매장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런데 아까 그 팀장님이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나에게 커피를 마시는지 물었었다. 내가 일 시작하기 전에 정수기에서 텀블러에 물을 담고 있을 때, 옆에서 그 팀장이 커피를 따르다가 아, 커피 안 드신다고 했었던가요? 이렇게 묻고는 다시 며칠 후에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거다. 그게 여러차례 계속 반복되었다. 대체 몇 번을 물으시는 건가요? 라고 웃으며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이것도 일종의 친절이겠지. 그 팀장님은 본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나에게 대접하고 싶은 친절한 마음이 있기에 계속 물으시는 거겠지. 아마도.
매일 마지막에 들러야 하는 매장 점장님은 유난히 나에게 잘 해주신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 이 점장님도 일을 시작하셨다는 공통점이 있고, 본인 집으로 배송을 부탁해도 되냐고 조심스레 물으셨을 때 흔쾌히 그러시라고 답을 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점장님 집을 사실 내가 배송하는 구역이 아닌데, 내가 맡은 마지막 매장이 본인이 일하는 매장이라 일 마치고 사무국에 반납하기 전에 사무국 가까운 본인 집에 배송을 부탁한 것이었다. 나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고, 이후로 여러차례 배송을 해드렸다. 두어번 정도는 배송 건이 유난히 많아서 일이 늦게 끝난 날에 그 점장님 배송 건도 포함된 경우가 있었다. 그 사정을 알고 계셨던 점장님은 그날 이후로 나를 볼 때마다 유난히 잘 해주려 애쓰시며 음료나 빵 등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일이 늦어지는 날에는 약간 허기가 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마지막 매장에서 이 점장님이 챙겨주시는 음료와 간식이 정말 고마웠었다.
달리기와 케틀벨
지난 일요일 비 맞고 달린 대회 후로 한동안 잊고 있던 내 맘 속의 달리기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간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긴 했지만, 주로 짧은 거리만 달렸기 때문에 한창 열심히 달리던 시절에 느꼈던 즐거움과 뿌듯함 등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 시절에 달리기를 통한 기쁨에 푹 빠져 있었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수요일에 예상보다 일찍 배송 일이 끝났다. 차를 반납하고 나서 뭘할까 생각하자마자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단어는 달리기였다. 일요일 대회 후에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는데, 그럼 회복 달리기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썬글라스도 챙겼다. 다만, 런닝화는 귀찮다고 아직 빨지 않았기에 그냥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한 5킬로미터 정도 짧은 거리는 그냥 운동화로도 충분한데, 10킬로 이상 거리는 쿠션이 거의 없어서 발에 좀 무리가 갔다.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집을 나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살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왼쪽 무릎은 사실 좋은 날이 드물 정도로 계속 이런 상태다. 그렇지만 달리기를 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오른쪽 발목은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는데,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역시 달리기를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회복 달리기라 가능한 한 천천히, 가능한 한 멀리 가볼 생각이었다. 목표는 일단 12킬로미터. 더 갈 수 있으면 15정도까지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아직 해가 지기 전에 달릴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시작부터 아주 천천히 6분대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달렸다. 자꾸 발이 막 빨라지려는 것을 머리 속으로 천천히, 이건 회복 달리기야. 막 달리면 안돼! 라고 반복해야 했다. 천변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사람들을 피해 한강 방향으로 달렸다. 매번 처음 2킬미터까지는 일종의 워밍업이라 생각하며 달려야 했다. 그 정도 달려야 몸에 열이 오르며 근육들과 인대들과 관절들이 비로소 준비를 마치는 느낌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듣지 않고 달리고 있다. 내 발소리와 호흡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되었다. 몸이 좀 풀리고 본격 달리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페이스가 올라갔다. 어느 순간 보니 5분 50초대 페이스가 되어있었다. 다시 속력을 늦춰 6분대 페이스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확실히 본인 페이스보다 일부러 늦게 달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5킬로미터를 찍은 시점부터 조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기분은 정말 좋았고, 체력도 아직은 괜찮은데 관절이 계속 신경이 쓰였고, 또 발바닥이 불편한 느낌이 시작되었다. 지금 돌아서면 10킬로 달리기가 되는데, 가능하면 목표 12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6킬로까지만 가보자.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다. 6을 찍고 나서는 조금만 더 욕심을 냈다. 적당히 조금만 더 갔다 돌아가면 13킬로미터가 되겠지. 페이스 알림은 매 1킬로미터마다 들린다. 500미터 알림은 없다. 순전히 감으로 반환점을 정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 점점 더 심해지는 관절 통증과 발바닥 통증 때문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부러 천천히 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속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몸이 힘들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시 속력이 올라갔다. 에잇 이젠 나도 모르겠다. 회복이고 뭐고 일단은 얼른 돌아가서 이 고통을 멈추자. 그리고 뭔가 맛있는 걸 먹자.
10킬로미터를 넘기고부터 체력이 확 떨어졌다. 그리고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관절은 이제 오히려 괜찮아졌다. 귀찮다고 런닝화를 빨아놓지 않은 과거의 내 자신을 원망했다. 비싼 런닝화는 아니더라도 쿠션이 조금 있는 런닝화 하나를 더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렸다. 12킬로를 찍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속력을 올렸다. 이미 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라 속력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달렸다. 출발지점에 도착해 드디어 발을 멈출수 있었다. 13.29킬로미터가 나왔다. 최종 페이스는 5분 53초. 달릴 때에는 어떻게든 달렸지만, 이제 걸으려니 양쪽 발바닥 물집이 너무 신경 쓰였다. 정상적으로 걷기가 어려웠다. 어쩔수없이 절뚝거리며 걸었다.
수요일에 생긴 양 발의 물집은 금요일인 오늘 어느정도 아물었다. 주말에 또 달리러 나가야 할텐데, 내일쯤 완전히 아물어 주면 안 되려나? 아, 바쁘다고 아직도 런닝화를 안 빨았네. 내일 낮에 꼭 빨아야겠다.
이번주부터 달리기에 다시 재미를 붙였는데, 바벨과 케틀벨에 다시 재미를 붙인 것은 4월 초부터였다. 그무렵 조금 무리해서 바벨과 케틀벨을 갖고 놀았는데, 며칠간 근육통이 이어졌었다. 그런데 이 기분 좋은 근육통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이래서 운동을 좋아했었지! 하고 새삼 깨달았다. 이 기분 좋은 근육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다시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주에는 조금 무리한 달리기와 조금 무리한 바벨, 덤벨, 케틀벨 운동까지 해서 정말 기분이 좋은 한 주를 보냈다. 그래. 사는 것이 어떤 때에는 정말 괴롭고 힘들지만, 또 어떤 때에는 이렇게 즐겁기도 한 일이지. 운동이란 것이 사람을 이렇게 기분좋게 만드니 어찌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글을 쓰다보니 12시가 넘어버렸네. 글을 시작할때는 어버이날 이라 제목을 그렇게 넣었는데, 이젠 어제가 되어버렸네. 제목을 고치는 건 귀찮은 일이니 그냥 올려야지.
어버이날이라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침에 동생이 전화해서 오늘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줬다. 꼭 전화하라는 뜻이었겠지. 큰 아이는 나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해왔다. 작은 아이는 따로 연락은 없었다. 아주 약간 서운했지만,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이제 다시 예전처럼 매일 달리기 생각을 하고 있다. 다음주 정도면 한창 잘 달리던 때처럼 20킬로 언저리를 달릴 수 있으리라. 다음주나 다다음주 정도에 날 잡아서 하프를 뛰어야지. 이제 마음만 먹으면 15킬로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