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 이미 우리 나이로 쉰, 만 나이으로는 아직은 40대인데, 어린이날에 쉰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느끼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모자란 인간이 소파 방정환 선생 덕분에 어린이날에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다.

어제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늘 출근과 휴식이 오락가락했다. 어제 좀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매일 세 곳의 매장 배송을 맡았었는데, 어제부터 매장 한 곳이 줄어서 이제 두 곳의 매장을 맡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매장이 매번 배송 건수가 가장 많은 매장이었고, 그 배송 범위가 가장 넓어서 늘 제일 힘든 매장이었다. 그 매장을 맡았던 딱 한 달 동안 좀 많이 힘들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자주 생겼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라 이렇게 힘들었던 매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이제 편한 매장 두 곳만 남은 상황이 별로 편하지 않다. 어제는 두 매장 모두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찍 일을 마쳤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그 매장이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뻐하거나 즐거워했을 수도 있을텐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일이 많으면 이 불편한 느낌이 안 생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배송 건수가 유난히 많았던 그 매장을 맡았던 지난 한 달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일 뿐.

어제 갔던 두 곳 매장에서 모두 나에게 내일, 그러니까 어린이날인 오늘 배송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맨처음 노동 계약을 맺었던 당시에 공휴일은 쉰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송 안 한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금 불안한 생각이 자리잡았다. 어쩌면 휴일이지만 출근하라고 요구 받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미 휴일이라고 낮부터 아이들을 만날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정말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을 일찍 마치고 차를 반납하러 사무국에 갔는데 상무님과 팀장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이 일을 맡기 전에는 배송 기사님들이 주말이 아닌 공휴일에는 일을 했었다고, 갑자기 매장 배송을 안 한다고 공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출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들이 정말 미안해하면서 말하는 것이 느껴져서 아무 생각없이 알겠다고, 내일 출근하겠다고 답을 했다. 역시 나는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급여를 받는 일터를 나와서 급여를 받지 않는 일터로 다시 출근하면서 아이들에게 톡을 남겼다. 낮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에 일 마치고 만나야겠다고. 그리고 저쪽 일터에 도착해서 간단한 일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러니까 내일 출근하겠다고 말하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인이 매장 점장님들과 통화를 해보니 배송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그냥 출근하지 말고 편히 쉬시라고 했다. 약 한 시간 사이에 휴일 출근이 갑자기 생겼다가 없어졌다.

다시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또 갑자기 일이 없어져서 낮에 만나자고 했다. 문득 작은 아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톡을 남겼다. 사실 평소에 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산에 살았던 시절에는 늘 바다 가까이 살았고, 꽤 오래 살았던 장산 기슭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는 해운대 앞 바다가 보였었다. 그 풍경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그 한 마디가 나에게도 트리거가 되어 갑자기 엄청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은 아이 집 근처에서 쏘카를 예약했다. 아이들과 바다를 보러 갈 생각에 설레였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배를 타지 않고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는 석모도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예전에 가끔 차를 빌려 사용했던 친구였다. 조심스럽게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너무 흔쾌히 빌려가라고 답이 돌아왔다. 고맙다고 전하고 예약했던 쏘카를 취소했다. 위약금이 있었지만, 사용료를 전부 내는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출근해야 할 상황이었다가 갑자기 쉬게 된 상황이라 이 휴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남은 오전 시간을 잘 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지. 달리기 대회 기념품으로 받았던 레디백과 키링을 안겨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그 표정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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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지금쯤은 바다로 가셨을까요? 충분히 잘 바다를 즐기시고 오시길 바랍니다!!

잉크냄새 2026-05-0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들에게 바다 풍경을 선물하셨군요.

cyrus 2026-05-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년 후에 40살인데, 어린이날이 좋아요. 딱 하루 쉬는 날에 글 한 편 쓸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날에 지난달 독서 모임 후기를 쓰는 데 시간을 보냈어요. 이게 쉬는 게 맞는지 혼란스럽네요.. ㅎㅎㅎ

chika 2026-05-0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날, 아이들과의 행복한 시간 선물은 최고였을 듯 하군요.
일없는 어른이는 어머니 식사 챙김만 빼고 종일 누워지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