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한주


우리말 갈래사전을 사고

선생인 네 이모네 반 출석부를 몰래 훔쳐보며

특별한 이름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이름

떵떵거리며 출세하는 이름보다는

메아리처럼

나즈막히 들리는 이름 어디 없을까

네가 평생 간직할 나의 첫 선물

네 얼굴만큼 선한

어디 그런 이름 없을까

벌써 며칠째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책방을 둘러보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평생 멍에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것만큼 부당한 것이 있을까?' 시인은 시를 소개한 바로 다음 페이지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그래.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워 가끔 좀 더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젠 가수라기 보다는 코메디언에 가까운 <호랑나비>의 가수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한때 내 별명이었던 '나비'는 그 <호랑나비>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내막을 모르는 친구들은 그 '나비'가 흔히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이라 생각하고, 내 외모가 고양이를 닮은 것도 아닌데 왜 나비라고 불리는 지 묻기도 했다.


내 이름은 '나라에서 으뜸'이 되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큰 아이가 태어날 때 나도 아이에게 멋진 뜻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명법을 공부하고, 한자를 찾아 익히기도 했다. 사실 나와 아내는 서로 합의해 놓은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양쪽 집안 어른들의 반대도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 쪽 집안에서는 불교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싫다고 하셨고, 다른 쪽에서는 발음이 이상하다고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작명법에 따라 다른 이름들을 몇 개 더 지어봤다.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기도 했고, 국어사전을 뒤져서 순 우리말 이름을 찾아보기도 했다. 몇 개의 새 이름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솔직히 우리 부부에겐 미리 정해놓은 이름 외에는 그닥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나는 우리가 정한 이름을 어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뜻을 그 이름에 붙여서 최대한 설득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결국 출생신고를 마감 시점인 한 달까지도 이름을 정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도중에 어른들께서 제안한 이름도 몇 개 있었으나, 너무 흔한 이름이거나, 촌스러운 이름이어서 다 거부했다. 마지막 날 나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냥 우리 생각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른들은 마지못해 승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아이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끔 아이가 자라서 나를 원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좀 더 예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냐고, 친구들이 놀린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엄마와 아빠가 이 이름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이야기 해줘야지 생각하곤 했다.


나중에 작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도 쉽지 않았다. 큰 아이의 이름이 워낙 특별한 느낌이라 그에 맞는 적절한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5년 만에 다시 작명법을 새로 공부하면서 한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기도 하고, 내 폰에 저장된 온갖 이름들을 다 써보고 불러보고 했다.


의외로 작은 아이의 이름은 예상치 못하게 쉽게 지었다. 맨 처음 큰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를 생각했다. 아이의 이름은 독립운동가의 호에서 따왔다. 사회주의 계열이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다. 아니 이 사람은 스스로 바꾼 이름이라고 봐야 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호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이 엄마와 나도 모두 지금까지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작은 아이의 이름은 그 독립운동가의 친구이자 동료인 독립운동가의 호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 사람은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이지만, 호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처음에 그 제안은 내가 했지만, 나는 제안을 하고서도 왠지 익숙치 않은 느낌이라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아내는 마음에 든다고 적극적으로 그 이름으로 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적극적인 태도가 정말 다행이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아이들 이름을 물어본 후 예쁜 이름이라고 누가 지었냐고 묻는다. 둘 다 내가 짓긴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가 있었다. 지금 그 두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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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10-3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편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 이름을 한글 외자로 지었어요. 여태 그 이름을 쓸 기회(?)를 만들지 못 했지만 ㅋ

감은빛 2016-11-02 00:13   좋아요 0 | URL
이미 이름을 지어놓으셨군요.
˝쓸 기회를 만드셔야겠네요.˝
라고 답하면 너무 참견하는 것에 되겠죠?
외자라면 성과 연관되어 발음과 뜻에 영향을 미치겠네요.

2016-11-02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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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0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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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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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4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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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5 1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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