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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책 - 일상이 허기질 때 ㅣ 밥보다
김은령 지음 / 책밥상 / 2019년 9월
평점 :
밥보다 책이라고 쓰고 밥과 책이라고 읽는다.
저자는 먹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맛없는 것을 먹기엔 인생은 짧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 나이(40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화두를 던진 책이다. "신체의 노화가 하나씩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마흔, 늘어나는 옆구리 살 걱정만큼이나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이루어 놓은 것 없음에 대한 불안으로 제 2의 사춘기를 지내야 하는 40대야 말로, 책읽기의 적기"라고 김은령은 이야기한다.
화두라고 하니까 참 거창도 한데, 사실은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써야겠다.
"멀리 혹은 천천히 가려는 사람에게 자꾸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우리에게 낭비할 것이라고는 자기 인생밖에 없으니 이거 하나쯤 내 맘대로 낭비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말해 주는 책이니까.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많이 공감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볼 때 대답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처음 나오지는 않는데, 정말 그렇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는 대부분 읽었고, 심지어 하루키에 관해 언급한 책( 우치다 다츠루가 쓴 책)까지도 읽는데 말이다. 저자는 이런 감정을 다음에 빗대어 표현했다. '첫눈에 반해 온 인생을 걸고 덤벼드는 사랑도 있고 아주 애매하게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터덜대며 따라가는,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무언가도 있는 법이니까. 라고.
그건 그렇고 하루키 씨가 세상에 한국에 독자가 엄청 많음에도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단다. 너무하네...
애(자녀인 나), 일, 밥, 술, 돈, 잠 그리고 책, 책, 책
저자는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주신 어머니 덕에 책의 세계에 들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 세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큰애는 내가 에너지가 있어서 끼고서 밤마다 무수한 동화책을 낭독으로 공급해 주었는데,
둘째는 그러지 못해서
나중에 둘째가 어머니, 그때 왜 제가 게임하는 걸 강력히 제지하지 않으셨나요? 하려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인데, 역시 책에는 자신의 이야기 들어가야 한다. 특히나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면 그런 듯하다. 읽은 책 이야기와 나의 삶의 범벅이 우려낸 글 조합에서 공감과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스콧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1930년대 남부 앨라배마 주 작은 마을 메이컴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50대 남성이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흑인 요리사 캘퍼니아의 도움을 받아 똑똑하고 생각많은 아들잼과 거침없고 활달하며 아무때나 나서는 딸 스컷을 키우고 있다. 백인여성을 강간했다고 기소당한 흑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게 되고, 이는 자신과 가족에게 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었다. 주"우리가 이위의 협박과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변호사로, 책임있는 사회인이자 지성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는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하는 변호사다. "우리가 이길까요?" 아이들이 걱정하며 묻자 핀치는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은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다시 질문한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은 나이 많은 아버지를 든든하게 받쳐준 것은 바로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이 일에 대해 결코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리라는 확신이었다. 주민들과 갈등이 커지던 순간 걱정이 되어 찾아와 몰래 지켜보고 있던 딸 스컷이 아빠에게 뛰어간다. 그들 사이에서 친구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예의 바른 사람은 자신의 관심거리보다 상대방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려 친구의 안부를 묻고 아버지가 도와줬던 일을 상기시켜 충돌을 막는다. 잘 보고 배운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와 아버지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지킨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물으면 무시하거나 대충 얼버무리는 대신 대답을 해주고 아이들 이야기에 끝까지 귀기울이며, 말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패디먼의 말처럼 좀 나은사람이 되는 데에 책이 나름의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길고 지루한 고전을 묵묵히 읽어내는 것만이 애서가의 미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쉽게 친해지지 않는 고전을 핵심 요약 정리해 주고 그 김에 책까지 펴들게 만드는 지적이고 힘 있는 가이드다.
책을 좋아하는사람 중에는 책에 담긴 내용 그 자체만큼이나 책이라는 물성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 많다. 독서의 의미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글을 쓰는 알베르토 망겔은 어려서 서점에서 일하다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이 점점 떨어져가는 그를 위해 4년간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보르헤스만큼이나 열혈 독서가가 된 그는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 <책 읽는 사람들> 등을 발표했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직업이 독자인 사람, 그것도 계관 독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가 넓은 서재가 딸린 프랑스의 집을 정리하고 맨해튼의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로 이주하게 되어서 3만 5000권 장서를 저일하게 되었다. 가져갈 책, 버릴 책, 보관할 책을 분류하며 얼마나 복잡다단한 심정이 되었을까. <서재를 떠나보내며>에는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라는 심각한 부제가 달려 있는데 책과 독서에 대한 애틋한 숭배가다.
"나는 언어의 구체적 물질성, 책의 단단한 현존, 그 형체, 크기, 질감을 원한다. 나는 전자책의 간편함과 그게 21세기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한다. 그러나 전자책은 플라토닉한 관계의 특성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나는 내 양손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종이책의 상실을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믿으려면 먼저 만져봐야 한다는 도마 같은 사람이다." 서재를 떠나보내며_ 알베르토 망겔
"예기치 못한 만남과 연상이 우리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237쪽
<음식과 요리>를 쓴 해롤드 맥기는 천문학을 공부하려고 캘리포니아 공대에 입학했다가 전공을 문학으로 바꿔서 예일 대학교에서 존 키츠의 낭만주의 시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상에는 참 독특한 사람도 많다. 우연한 기회에 음식과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과학과 요리를 접목하는 일을 해왔는데 이 첫 번째 책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요리책은 많아도 요리와 식품을 이렇게 과학적 원리와 가치에서 접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42쪽
누구나 인생은 처음 살아보는 것이라 낯설고 익혀야 할 것 투성이다. 기본적이고 단순한 가치인데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잘못했으면 바로 미안하다고 마음을 표혆해야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고 바쁜 가운데 어떻게든 틈을 내어 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