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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물 -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ㅣ 아무튼 시리즈 19
임이랑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저자는 자기를 위한 추천서를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면 그걸 위의 사진에서 검색한 몬스테라에게 하겠다고 한다. 2년전에 손바닥만한 모종으로 집에 들여와서 자기 키만하게 키웠다는 몬스테라. 작가의 성실함과 식물생명에 대한 존중을 잘 보여주는 대상이 바로 몬스텔라인 것!
작가 임이랑은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노래를 만들고 베이스기타를 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예술은 모두 한계통으로 흐르는 것인지도...
55쪽
단언컨대 플랜테리어라는 단어는 식물세계에서 인간 세계에 던진 미끼 같은 것이다. 해충이나 통풍, 비료나 배수성 같은 단어들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플랜테리어는 이 말들을 슬쩍 뒤로 숨긴 채, 식물과의 생활을 아주 가볍고 즐겁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멋진 단어다. 그 믿음 덕분에 내가 식물의 세계에 들어왔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제 발로 식물의 세계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59~60쪽
이제 나는 이 세상에 내가 키울 수 있는 것과 키울 수 없는 것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라날 가능성도 없이 공들여 키워왔던 것들 중에는 뜨겁고 건조한 땅이 고향인 식물도 있었고, 사람의 마음도 있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내 커리어의 어떤 부분도 그렇다.
매일 같이 공을 들이고 최선을 다해 키워도 결코 자라나지 않는 것, 슬프지만 그런 것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키워봐야 자라지 않는 것을 놓지 못하는 마음은 빠르게 늘어가는 화분의 개수를 더 이상 세지 않음으로써 계속 식물을 들이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다. 어렴풋이 모르는 척 계속 해나가고 싶은 마음. 결국 벽에 부딪혀 멈추게 되더라도 계속 키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
다행히 삶에는 대단히 공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자라나는 것들도 있다. 나의 기질과 내가 가진 환경에 맞는 식물들은 태양과 바람만으로도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아주 가끔 운이 좋은 날엔 어떤 노래들이 쉽게 자라났다.
쉽게 자라는 것들과 아무리 공을 들여도 자라지 않는 것들이 뒤섞인 매일을 살아간다. 이 두 가지는 아무래도 삶이 쥐여 주는 사탕과 가루약 같다.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나의 결정들이 모여서 내 삶의 모양이 갖춰질 테다. 그러니 자라나지 않는 것들도 계속해서 키울 것이다. 거대하게 자라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존재하면 된다. 물론 달콤한 사탕도 포기하지 않는다. 입속에서 사탕을 열심히 굴리면서 가루약을 조금씩 뿌려먹는 삶을 살아가야지.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고단하고 행복한 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