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글쓴이가 교통 사고를 당한 직후 . 평소 그를 지탱해주던 평범한 생활을 하나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절망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휠체어에 종일 앉아 지내는 사람에게 흔히 생기는 욕창 때문에 침대에서 한 달 동안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는다. 한달이 걸린다고 말한 것은, 피부에 난 상처는 잘 치료하면 보통 하루에 일 밀리미터씩 아물기 때문.

그러니까 그의 엉덩이에 난 상처는 삼센티미터 짜리였던 것이다. 의사는 그에게 상처에 붙이라며 갈색 반창고를 준다. 상처에는 반창고를 붙이면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상처가 아물려면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처 부위를 공기에 노출시켜야 맞으니까.

의사는 동의하면서도 덧붙여 설명한다.

상처가 아무는 데 산소가 필요한 건 맞지만, 혈액 속의 산소가 필요하지 공기 중의 산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다 있는 것이다. 필요한 영양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스스로 알아서 상처를 치료하는.

몸의 상처가 그러하다면 마음의 상처는?

아기들이 태어날 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옛말이 있다고 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의 시련을 주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고, 또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숙한다는...자명한 결론이 ...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 애쓰다 보면, 비관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곧잘 하는 행동이 뭔지 생각해 보니, 비교질이다. 쟤는 똘똘하게 잘만 하는데, 그러서 더욱 발전하는데 나는 어리버리하고, 늘 그 자리다 못해 입지마저 좁아지고 있는 것만 같고...

그런데, ' 내가 누구인가, 어떤 깜냥의 인간인가' 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무엇을 돌보느냐.. 다.

하느님이 내게 돌보라고 맡긴 것.

그걸 더 크게, 더 좋게 만들려 하지도 않고, 바꾸려 하지도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면서..그렇게 관리해 주는 거다.

언젠가는 누군가..아니, 아주 가까운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나를 평가할 날이 오겠지. 우리 엄마는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 위인이었던가. 뭘 해줬나. 그 때 평가를 박하게 받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닐거다. 같이 동화책을 읽고, 인생의 평화로운 순간 밤하늘의 달을 보거나, 해가 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던 그 순간들을 함께 했던 그런 엄마로만 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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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03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많이들 읽으시네요. ^^

icaru 2007-10-04 09:3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서평 신청 도서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전, 아는 분의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지만요.

잉크냄새 2007-10-0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랑 서재 이미지 사진이랑 느낌이 비슷하네요.

icaru 2007-10-04 09:37   좋아요 0 | URL
음, 진짜 ^^ 그러네요.

이 책은,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할아버지가 정신 지체의 장애를 가진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이에요.

홍수맘 2007-10-0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홍/수에게 전 어떤 엄마일까요? 아직까지 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맘대로 엄마"인데......
저도 님의 바램같은 엄마이고픈데 잘 안되네요. ㅠ.ㅠ

icaru 2007-10-05 09:18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 전 제가 홍수맘님 정도만 해도, 성공한 거라고.. 여기고 있는데.
 

추석날 오후 1시 기차로 친정에 갔다가, 금요일 오후 3시 20분 도착 기차로 집으로 올라왔다.

원래는 토요일까지 띵가당거릴 계획이었으나, 마침 가지고 내려간 책도 다 읽어서 똑 떨어지고, 비오고 흐린 날이 하루이틀 이어지니, 외출도 어려워서, 이제는 제법 뻗대고 드센 아들녀석과 씨름을 하거나,  해주시는 밥먹고, 침대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게임이나 하는 것에 멀미가 난 거다. 예약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환불받고, 다시 예약하고...

서울 집에 도착, 현관문을 열었는데, 사나흘 비워 두었던 집안 공기가 심상치 않은거다.  매캐하면서도 좀 이상 야릇한....(3박 4일 동안 이 빈 집에서 뭔일이 있었던 걸까???) 

신발을 벗고, 들어선 거실 바닥에  갈색 젤리 같기도 하고, 묽은 피????처럼도 보이는 뭔가가 고여 있었다. 뭐야..!끔찍하군.

아이가 그 위로 철푸덕 앉아서 첨벙첨벙 하기 전에 냉큼 걸레를 집어들고 , 정체불명의 액체를 닦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이미 굳어서 지워지지 않는거다. 걸레를 집어던지고, 갈색 물줄기의 진원지를 쭈욱 따라가 보았다. 냉동실 문짝이 약간 열려 있었고, 사각의 생크림 케익 포장박스가 비죽이 튀어 나왔다.

아.씨.

3박 4일 동안 냉동실 문짝이 열려진 상태로 있었던 거고...

거실 바닥까지 주욱 흐른 것은 얼려둔 마늘과 생크림 케잌에서 녹은 초콜렛과 냉동칸에 들어 있던  고기들이 삼박사일을 천천히 녹고 녹아 만들어낸 혼합즙이었던 것...!

나는 누가(누구긴 나 아니면, 남편이지.) 냉장고 문짝이 열려진 걸 확인도 안 하고 나왔는가를 추궁했다. (나는 아니니까.) 

사건 당일,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찬이 아빠는 아들과 점심 대신으로 생크림케잌(23일이 내 생일이었다.) 조각을 먹고, 냉동실에 상자째 넣었다고 한다. 물론 한번에 꽉 닫히지가 않아서 다시 한번 밀어넣고 밀패된 걸 확인했다고 한다. (근데 다시 열릴 수 있는건가???) 평소 침착하고 살림에도 소질이 약간 있는 남편이라 믿었는데...

우리집 냉동실에 잔뜩 쟁여져 있던 고기는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그렇다. 나는 집에서 하는 고기 요리를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다. 고기 상태가 아주 좋지 않고서야, 내가 요리를 하면 맛과 향취를 살리기가 어렵다 보니, 우리 가족은 정 고기가 먹고 싶으면, 밖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후부터는 쇠고기를 정기적으로 사둔다. 이유식할 만한 약간의 분량만!

 이유식 관련 육아 책마다 어찌나 쇠고기 안심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들 하시는지, 안 멕이면, 아이 발육에 큰 지장이 생길 것 같은 경각심이 불끈 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밖에 데리고 나가면, 개월 수에 비해 아이가 작네, 팔다기가 짧네.. 뭘 먹이네?? 어쩌네저쩌네... 말 많은 입들도 신경 쓰이고.

추석 바로 전주(금요일) 저녁에 모처럼 큰맘먹고 동네의 재래시장에 가서 아이 이유식으로 먹일 쇠고기 안심을 샀다. 매번 두 세번 먹을 정도로 손바닥의 반 만큼만 샀었는데, 그날은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명절 전날 기분 내려고 그랬는지,(명절 때면 선물 챙기고, 선물 받고 하는 문화를 보면서...유독 명절에만 먹고 죽자 하는 근성들이 있는거 같다고 쯧쯧대던 난데....) 두 손바닥 펼친 두께만큼 사서 다져달라고 했다.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한번 해 먹일 분량만큼 등분을 해서 따로따로 얼려두었다. 

그런데 그 날 늦은 저녁 남동생이 회사에서 고기 선물 세트를 받았는데, 집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야 겠지, 무겁겠지...하는 전화를 받노라니, 아차다 싶었다. 거기엔 양질의 안심과 갈비가 있다는 거다. 그 안심으로 찬이 먹거리를 해결하면 충분할텐데 생각이 들면서...

어차피 차례 지낼 떄 쓸 고기는 부모님 집에도 많다고 하고(그 와중에 전화로 고기 있냐고 여쭈는 나의 집요함) 있는데 또 가져 가는 거 보다는 무거울테니, 우리 집에 두고 내려 가라고 해서, 그 날 늦은 밤에 동생은 그 고기 세트를 들고 우리집으로 왔었다.  

속으로 좀 그런 생각도 했었다. (갈비는 몰라도 안심은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아니 안심은 찬이 먹이고, 갈비는 요리도 자신없으니, 그거야 말로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고기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뭔 욕심을 이리부리나 몰라......)

동생이 가져온 고기는 이 막눈이 보기에도 훈늉했다. 나는 어쩐지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갈비는 비닐로 진공포장이 되어 있었고, 안심은 그렇지 않은 비닐포장이었다. 냉동실에 두지 않고, 바로 구워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갈비는 냉동실로 직행하였고, 안심은 냉장실에 두었다. 그런데 어찌저찌하다보니, 못해먹고, 명절 전날과 당일날은 시댁에 있었고, 하여 안심은 다시 냉동실로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냉동실에 둘껄 했지만, ,,,,  음냐...이래서 길에서 주운 돈과 쇠고기 안심은 그날 바로 처치하라는 옛말이 있나보다. (??)

내것은 아니었지만 내것이 된 추석 선물 고기를 두고, 그렇게 갖은 실랑이를 벌인 끝이었는데...

이미, 이유식으로 쓰려고 다진 고기를 넣어둔 팩은 검붉게 고기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절반이었다.... 저 지경이면 익혀서 지나가는 똥개에게 주어도 안 먹을 듯..

안심의 상태는 육안으로는 잘 모르겠다. 나는 냉동실 문단속 안 한 .. 남편에게 말없는 시위를 하면서...댓발나온 입을 해가지고, 그 고기를 몽땅 간장참기름마늘설탕양파로 양념을 만들어서, 재 가지고  팬 위에 올려 놓고, 구웠다.

갈비는 진공포장이니까. 일단 괜찮을거라 생각해두고.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니, 일단 먹음직스러운 향이 났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과일칸을 뒤져  배도 깎아 넣었다.

고기는 거의 익었는데 한 점 맛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와서 한 점 집어먹는다.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한마디를 더 하는데, "찬이에겐 주지 말자!" 

뭐시야- 애도 못 먹을 정도면 나도 못먹지...

냉큼 나도 한점을 입에 넣었다. 처음 씹을 땐 육질도 쫀쫀하고, 게다가 들치근한 양념 때문에 고기맛을 잘 모르겠다가...뒤에 느껴지는 맛이 참 이상했다. 또 한 점을 집어 먹는다. 그런데 이건 확실히 맛이 구렸다. 웩...

어떤 조각은 먹어줄만했고, 어떤 조각은 심각한 상태였고,

겉보기로는 모른다. 뭐가 멀쩡한 고기 조각인지...

남편은 먹어도 괜찮은 고기라고 한다. 물간 생선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지만, 고기는 다르다나... 썩은 걸 먹지 않는 한 인체에 해가 없다나...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먹어치우겠다고 한다.

자기가 어릴 적에 이런 경우가 많아서 잘 안다나.

냉장고가 작아서 고기 선물 들어오면 냉장고에 못 들어가는 고기는 베란다에 두었는데,,,

어떨땐 이런 맛을 내는 상태에 까지 이르기도 했다고.

흠... 실눈을 뜨고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니, 어딘지 남편은 신나 하는 거 같다.

잡동사니를 버리고 물건들을 정리(정리가 아니라 처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향이 있는 남편은 어느새 노란 음식물 종량 봉투를 들고와 냉동실에 있던, 남은 생크림 생일 케잌, 둔 떡들(받은 떡* 돌잔치할때 돌상위에 있던 거 챙겨온 것),얼렸다가 해동되면서 이제는 물렁물렁해져 썩을 일만 남은 인삼뿌리들과 얼려둔 콩비지,각종 먹거리들을 싹 주워 담아 넣어버린다. 마치 이런 날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뭐냐...

복잡한 심사를 눅일만큼 도수 높고 달치근한 술생각이 간절했다.

수유다 뭐다 해서 맥주도 500cc 두어잔 정도까지만, 소주도 2잔 이하 뭐 그랬는데,,, 이렇게 땡겨 보긴 정말 간만이었다.

마침 부모님댁에 선물로 들어온 6년근 홍삼주 한 병과 전봇대도 뚫어버린다는 복분자주 한병을 우리집으로 가져왔더랬다. (아버지는 술을 한 방울도 못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선물한 사람 센스도 없네. 술 못하는 아빠한테.. 이게 가당키나 하면서.." 포장 종이백채로 싸들고 왔다.

아이를 재우고, 고기와 그밖에 것들로 주안상을 폈다. 그리고 소주잔에 색깔도 고운 복분자주를 똘똘똘 소리나게 따랐다. 고기를 먹기 전에 한잔 원샷!

어머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술이 쎄진거냐. 달착치근하고, 알코올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거다.

병을 다시한번 살펴보다. 복분자....주가 아니라, 복분자 진액... (뒷병에는 마시기 전에 흔들어주시고, 1일 2~3회 1회 1~2잔을 드십시오. ) 약이었던 것이다.

다 먹겠다던 남편의 젓가락이 고기 접시에 가닿지 않는다. 나또한 어느것이 멀쩡한 고기일지 불확실함을 달게 감수하면서 고기를 먹을 용기가 쉽게 나질 않고...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거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속으로 직행하도록....개네들의 운명의 화살을 바꿔보고저,,,간장참기름마늘설탕양파 그리고 배.... 가스불...설거지만 만들어놓은 팬..

 

고향으로 내려갈 고기를 중간에서 삥 뜯었다가 이런 화를 당하고...

아버지 앞으로 온 약 선물을 술 선물로 착각하고 중간에서 착복했는데...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국, 복분자 진액에 보드카(몽골 울란바토르에 다녀온 지인이 준)를 섞어 마시다, 안되겠어서...남편에게 편의점에서 매취순 두 병과 포 안주를 사오라고 시켜 병을 비웠다.

기분이 그래선지... 술도 금방 확 깼다. 지금은 너무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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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7-10-02 09:04   좋아요 0 | URL
소설가 선생님께 소설 한 단락 운운은 굉장한 칭찬인거예요~ 그죠??
축하 고마심다~ 가족에게마저도...은근 챙김받기 애매한 날짜에 태어났지 뭐랍니까.
제가 주부가 맞나봐요. 이런 살림 손해 막심에 마음이 한없이 쓰이니까는 ^^

마냐 2007-09-2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란만장한 추석후일담. 왜 이렇게 남일 같지 않고 생생한지. 그리고 일이 터질라믄 꼭 평소 안하던 짓까지 더해 대박으로 터지는 건지..모쪼록 보드카에 매취순이 님의 마음을 달래주고,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깨달음이나 더해줬길 바람다. 뭐, 냉동고 청소 오랜만에 제대로 한 것에 위안 삼으시길.

icaru 2007-10-02 09:08   좋아요 0 | URL
마냐 님의 따끈따끈한 근황 글도 읽고 왔어요^^ 에고 독한 것-보드카,넘 쓰더라고요. 마냐 님의 이 길이 내 길인가, 라는 주제 의식의 글을 읽으면서 저또한 생각한답니다. 집어치우자! 하는 마음 다독다독 --

2007-09-30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umpty 2007-10-0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캬, 파란만장 연휴였구만요.
근데 난 저 상황이 눈에 그려지니 왜이리 웃기냐? ㅋㅋ

icaru 2007-10-02 13:40   좋아요 0 | URL
그지? 우리 신랑이 은근 신나 하는 모습이 보이지??
정말 탈많은 추석이었어. -- 찬이가 감기 때문에 열이 펄펄 끓어서-- 한바탕 정신 없었고-- 에긍~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미스테리를 가장한 에세이 아닌가.

주인공이 만나는 여섯 명의 특이한 아이(20~30대 사이의 여성들)의 공통점은 식사 예절이 기품 있어서 특출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는 점

그 밖에 그녀들은 이렇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성, 기혼자로 자신을 소개한 여성,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전직 대학 조교수 등.

이들과의 만남에서 주인공은 대화 아닌 대화 속에서 자신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조곤조곤 늘어놓는 셈이다.

‘사회성’이랄지, ‘일’이랄지 하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교육자로서, 연구자로서, 40대 이후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으로서의 사유를 엿보게 되는데, 아니 뭐, 굳이 “중년, 남성”으로 한계를 지을 것까진 없을 듯도 하다.

작가의 분신 쯤으로 보이는 주인공.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면, 모든 것이 에프가 된다 로 상을 받은 작가는 잇달아 내놓은 추리 소설이 크게 성공하며 평생 다 쓰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인세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2006년도에 색다른 작품(바로 이 책이다.)을 내놓았는데, 작자 본인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중에서 가장 문학성이 있다고 느낀다고.

“이제까지 어쨌든 무턱대고 일을 해온 듯하다. 아니 당시에는 무턱대고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달릴 때는 기분도 좋고 정신도 없었다. 갑자기 달릴 수 없게 되고 멈추어보니 숨쉬기가 괴로웠다. 그리고 무리해서 달리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호흡하기 위해 과거의 자신에게 산소를 제공해주려는 부드러운 배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할 뿐이다. ” 


"과거를 되돌아보고 나는 무엇을 했나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떠오르는 건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가 그 대가로 잃어버린 것 투성이라는 사실이다."

작중 나가 하는 말이면서 어쩐지 작가가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듯 한 문구다.  그 대가로 잃어버린 것 투성이라,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건가. 

어차피 우리는 살아 있는 한 과정 중에 있다는 거다. 살아 있는 동안은 멈출 수가 없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언제나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  

이 책은 중간 부분에서 그의 작가 경력에 마침표 문장 부호의 역할을 할 것 같다.

이 소설에 깊이 감응하면서도 조금은 비꼬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그 이유는 사람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는 말. 그러므로 이렇게 조신하고 고상하게 먹으면 이미 그것만으로 이 사람이 마음에 든다니.

흠.... 게걸스럽게 먹는 편인(좋은 말로는 복스럽다고들 합네다~) ‘나’와 작중 나가 같이 식사를 했다면, 주인공은 “천박해, 천박해. 먹는 모습이 어찌 저럴꼬.” 할 거 같다.

이 책이 왜 고독,을 키워드로 내놓을까를 생각해봤다.

정말 이 책은 책을 읽는 동안은 일상에서 말수를 줄게 하는 효력이 있다.

누군가와 (아는 사람이 되었든 아니든 간에) 정갈한 음식을 천천히 먹는 것 해 보고 싶다.  마치 다도와 통하는 감각처럼, 쓸데없는 의사 소통을 배제하고 시간과 공간을 좀더 본질적인 것으로 메우려는 수법의 식사를 하는 거다.

대화로 틈을 어색 혹은 밋밋한 틈을 메우려 하지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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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9-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icaru 2007-09-29 01:19   좋아요 0 | URL
그죠, 뭔진 정확히 ...하지만...그게 어려운 건 같죠?^^

잉크냄새 2007-09-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와 식사를 같이하면 "꾸질꾸질해,,,," 라고 할것 같네요.

icaru 2007-09-29 01:20   좋아요 0 | URL
추석은 자알??~~~
ㅎㅎㅎ...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라는 말만큼 무서운 말이 없는듯 싶어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p.26

"칠면조란 놈들도 사람하고 닮은 데가 있어. 이것 봐라. 뭐든지 다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자기 주위에 뭐가 있는지 내려다보려고는 하지 않아. 항상 머리를 너무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배우는 거지."



p.101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p.321

"내가 죽으면 저기 있는 소나무 옆에 묻어주게. 저 소나무는 많은 씨앗들을 퍼뜨려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나를 감싸주었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걸세. 내 몸이면 이년치 거름 정도는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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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7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7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8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8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9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30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이거나 내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역시,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것이다. 가족의 삶의  양태를 분석해 이거다 하고 보여 주는 것, 역시 사회학에서나 가능한 일...  

p.60

대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데는 가부장적 온정주의도 작용했다. 임금 인상의 내용과 동기의 중심에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생계부양자', '가장'으로서의 남성의 지위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즉, 남성 한 사람의 벌이로 가족 모두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가족임금' 모델은 남성을 '가족 부양자'로 위치 지우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다양한 노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p.98~99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결혼이란 누구나 언젠가는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될 것으로 기대되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비주류나 아웃사이더로 여겨진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들은 흔히 '주인 없는 여자, '뭔가 문제가 있는 여자', '일부일처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제도와 맞물려 체계화되어 있는 준강제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p.149

'진보'를 표방하는 노동운동의 가부장성은 여러 면에서 계속 지적되어 왔는데, 앞의 두 사례는 노동운동의 가부장성이 운동 노선이나 내용, 단체 활동 차원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운동의 구성원인 개인들도 가부장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자본의 착취에 대항한 노동운동을 하는 남성들 역시, 여성이 가정에서 만들어가는 '스위트 홈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가정에서 또 다른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p.165

사람들이 하는 노동은 그의 의식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루 종일 단순 반복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자기중심적이고 단순한 사고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p.317~318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만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으려 할수록 오히려 남성 권위와 권력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정 내에서 남성가장의 권력이 커지고 성별분업이 강화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정의 남성권력은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와 연결되어 여성에 대한 가정 차별을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낳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형적인 핵가족 자체가 그 가족 안에 포함된 여성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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