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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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난 참 기가 막히게 게으른 인간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느낀 것을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모두들 많은 것들을 느끼고 살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는 사실 독자인 내가 살고 있는 나뉘어진 두 개의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끝’은 안으로 고여 있는 세계, 머릿속의 의식 세계를 상징하며,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바깥으로의 혼란스런 세계를 말한다.

“내가 이 말을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엔 직감이었어.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그것은 확신이 되었지. 이 마을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너 자신이었지. 벽에서부터 강, 숲, 도서관, 문 겨울 하나에서부터 열까지....내게는 나의 책임이란 게 있어. 나는 내가 내멋대로 만들어 낸 사람들과 이 세계를 내팽개치고 가버릴 순 없어.”

이 부분은 이 책의 2권 마지막 부분 세계의 끝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이 작품의 기발함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세계를 오락가락하다가 돌연 마지막에 선택된 하나의 세계, 즉 주인공은 이 소외된 세계를 택하고야 마는 것은 작가뿐만이 아니다. 나 독자도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 우주의 끄트머리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여기는 세계의 끝이고, 세계의 끝은 어디와도 통하지 않는다. 세계는 그 끝을 고하며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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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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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하며'를 보면, 베르나르는 그런 말을 한다. 세상살이가 너무 어려운 것으로 보일 때마다 짤막한 이야기를 짓곤 했다고. 자신이 겪는 문제의 요소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짓고 나면 이내 마음이 평안해진단다. 아마도 <개미>나, <뇌>와 같은 장편을 쓰면서, 두꺼운 소설 짓기가 주는 부담감이나 긴장감을 풀려했나 보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소재를 꿈이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나, 산책을 하면서 보고 떠오른 것들에서 찾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듯하다.

우리는 작가도 예술가도 뭣도 아니지만, 때때로 이런 공상을 해보지 않나?
'투명한 피부껍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 어떻게 소화되어 배설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거고, 몸의 어딘가가 절단나고, 이상한 종양 같은 게 마구마구 자라더라도 투명한 피부껍질의 소유자라면, MRI같은 비싼 의료기기를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병의 원인을 금방 알 수 있을거고 대책도 빨리 되겠지.
'17세기나 18세기의 조선으로 타임머신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기록되어진 역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체험들을 할 수 있을테고.....
그렇지만 이는 어쩌다 하릴없어 심심할 때 한번쯤 해보는 공상이고, 이에서 더도덜도 생각을 진전시키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똑똑한 작가는 이걸 기발한 소설로 써먹었다. 하나하나의 일련의 '가정'을 두고, 이 '가정'에 '세태의 만상'과 조금은 황당한 '과학적 지식'과 사람들의 '허영과 모순'을 양념처럼 버무려서 극단까지 몰고 갔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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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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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이 박완서의 자전소설 1부라면, 이 책은 2부다. 책 뒤의 '작품 해설'을 보면 박완서가 이 책에 이어 3부, 그러니까 결혼후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시기의 체험을 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3부는 나오지 않고 있으니,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기록된,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보여 주는 3부작을 기대하는 건 어렵게 되었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무섭다고 세상이 변해하는 것보다 더 정도가 심하게 과거의 살아낸 세월들을 잊기가 쉽다. 작가 박완서 자신도 '그 시절이 정말 있었던가' 싶게 아련한 6.25직후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작가가 살아 내고 작품 속에서 그려낸 세월들은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펼쳐보면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 독자는 박완서의 작품을 통해서, 6.25 당시의 절박하고 어려운 시절들을 공유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올케와 인민군의 강요에 의해 강의 북쪽으로 피난가서 겪은 일화였다. 이들은 북으로 향하는 국도를 벗어나 파주 쪽으로 갔다가 한 마을에 묵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주인 마님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인민군에게도 국군에게도 절대 기죽지 않는 위풍당당한 어른은, 당시 피난민들에게도 마을 주민들에게도 큰 위안이었겠지만, 독자들에게도 위안을 준다. 저렇게 어려운 당시에도 저토록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잃지 않는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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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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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의 어느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서 버지니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버지니아는 펜을 잡고, 델러웨이 부인에 대한 글을 시작한다.

1949년의 남편 생일날 아침, 로라는 읽던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의 책을 접어두면서 침대 맡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의 생일 준비나 하는 평범한 일상이 그녀를 기다린다.

1999년의 클라리사는 소설 속의 델러웨이 부인처럼, 직접 꽃을 사겠다고 말한 다음, 한아름의 꽃을 안고 거리를 나선다. 클라리사는 세 인물 중, 가장 현실적으로 강하고(생활력이 있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일견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다.

이렇게 소설 속, 세 인물은 서로서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23년의 49년의, 20세기말의 각각 어느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세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이제 막 집약하여 보여 주려 한다.

1923년의 '버지니아'는 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지극한 간병을 받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이고,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이해한다는 편집자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그 간병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일견 버지니아의 자유롭고 활기찬 도시 생활에의 갈망을 저지하고 있는 무엇처럼 보인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들은 그녀를 까탈스럽게만 여기며, 그녀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많이 의지하고 자랐던 버지니아의 언니마저도 버지니아를 심정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껴한다. 고로, 위대한 예술 작품을 쓰는 버지니아는, 사실 현실 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완벽히 구하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이었다.

1949년의 '로라'는 놓쳐버린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험되지 못한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도, 미련을 접고, 아들에게, 남편에게, 자신의 가정과 의무들에 헌신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기가 너무 힘들다.(그래서 그녀의 시선은 시종일관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하였다.)

1999년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클래리사. 그녀는 지금 옛 애인인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한다. 그녀는 버지니아 쓴 소설 속의 델러웨이 부인처럼 '도시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하려 한다.

처음에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로 보고, 다시 마이클 커닝헴의 소설을 찾아 읽고, 다시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 머릿속에는 남아 있는 조각조각의 몽롱한 여운들이, 영화의 그것인지 책 속의 그것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이 감상의 근원지가 둘 중 어느 것인지 출처를 밝히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같은 작품을 두고 영화 쪽이 전달하려는 이미지가 좀더 강렬하고 선명했다면, 원작인 소설 쪽은 독자마다 다양한 해석과 느낌을 담을 자리를 넉넉히 마련해 두고 있었다는 차이일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해 한번 이상 읽을 줄을 모르는, 인내심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내가......왜 보고 또 읽고 또 보기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것이 하루하루 반복되어 일상이 되고 세월이 된다. 그런데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전혀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 왔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안겨 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 (물론 그 앞뒤에는 항상 더 암울하고 어려운 시간이 따르기도 하지만)

'세월'이라는 서사시를 통째로 읽는다는 건, 그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처럼'인생무상'한 행위가 아니라, '내일의 아침'을, '희망'을 품게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자살을 생각했던 로라는 결국엔 죽지 않고, 집을 나와 자기가 희망하던 도서관 사서로서의 삶을 살았고, 클라리사는 옛애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다른 내일을 희망하며 잠자리에 든다.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 스티브 달드리가 만든 동명의 영화. 삽입된 피아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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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8-0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님 서재에서 추천하는 글 보고 찾아 읽었는데 정말 멋진 리뷰군요. 잘 익은 듯한 맛있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전 영화만 봤는데 정말 소설도 같이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마구 드는군요. ^^

icaru 2004-08-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후...넘치는 칭찬에 몸둘바를 몰라하고 있어요.... 님의 코멘트는 하니 케어 님...서재서도...많이 뵈었었는뎅...조만간 인사 올리러 가야겠네요~~!!!
요즘에...통...삶이..팍팍해서리...짬을 좀 못내구있네요...여유 생기면 후딱 가야짐!!!!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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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취향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처한 때때로의 현실을 십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당시 당시의 상황에 따라 열광하며 좋아라 하게 되는 것도 쉭쉭 바뀌어 가고 말이다. 나의 경우, 최근 1~2년 동안 소심함(직장 생활의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그 두께가 늘어가더니....)의 극치라는 게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보여 주면서 살아서?? 해서인지...폴 오스터의 이런 소설, 그러니까 자뭇 대범해 보이는 주인공이 자기가 타고난 운명과 우연에 연루되어, 사람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는 이야기는 그 결말이 파멸로 끝날지언정 읽는 재미가 아주 많이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한 판의 통쾌한 인생역전 드라마에 대한 평을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 이 소설의 정체는 안타깝고 위태로우며 또한 숙연해지는 무엇일 것이다. 주인공의 아내가 주인공과 둘도없는 우애를 나눈 후배와 바람이 나는 이야기가 그렇고, 주인공이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도 생겨나는데, 어찌 무조건 재밌다고만 말할 수 있나. 위대한 소설의 일관된 줄거리가 그러하듯 이 소설도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여행길이 점점 나아갈수록 맨 처음 찾으려했던 본질과는 차차 멀어지고, 주인공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야 하는 절망적인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영혼의 고뇌는 더욱 깊어진다.......... '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고 소설이기 땜시....이렇게 흘러가는 것....그러니까, 주인공의 운명이 주인공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 착찹함에 빠지진 말기로 한다. 우리 삶을 지속시키며 이끌게 하는 방향키가 확고한 자기 의지나 명확한 논리적인 법칙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 사소한 사건일지라도 우리의 주인공은 저렇게 고군분투하며, 고된 길을 가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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