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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난 참 기가 막히게 게으른 인간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느낀 것을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모두들 많은 것들을 느끼고 살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는 사실 독자인 내가 살고 있는 나뉘어진 두 개의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끝’은 안으로 고여 있는 세계, 머릿속의 의식 세계를 상징하며,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바깥으로의 혼란스런 세계를 말한다.
“내가 이 말을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엔 직감이었어.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그것은 확신이 되었지. 이 마을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너 자신이었지. 벽에서부터 강, 숲, 도서관, 문 겨울 하나에서부터 열까지....내게는 나의 책임이란 게 있어. 나는 내가 내멋대로 만들어 낸 사람들과 이 세계를 내팽개치고 가버릴 순 없어.”
이 부분은 이 책의 2권 마지막 부분 세계의 끝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이 작품의 기발함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세계를 오락가락하다가 돌연 마지막에 선택된 하나의 세계, 즉 주인공은 이 소외된 세계를 택하고야 마는 것은 작가뿐만이 아니다. 나 독자도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 우주의 끄트머리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여기는 세계의 끝이고, 세계의 끝은 어디와도 통하지 않는다. 세계는 그 끝을 고하며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