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를 권하는 사람의 항목 중에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그게 나다. 

경제 성장, 민주주의 , 평화, 지속가능한 문명, 환경오염, 미국의 패권주의 등등...... 지난 수십년간 고도 경제 성장을 경험해온 사회들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절박한 관심하가 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이 문제들은 저자가 처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제기되어 온 논쟁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논의들을 어느 책보다도  비교적 잘 지적하고 있고, 대안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끔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경제 성장에 대한 검토되지 않은 맹목적 신앙에서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부의 분배 방식은 이것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풍부해진 파이를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 그 자체가 커지면 작은 조각도 그 나름대로 커질 테니 모두 만족할 수 있게 끔 될 것이라는 경쟁 성장 논리이다. 이 논리를 통해 경제적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물질적인 측면은 제외한 인간적으로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경로들은 없어져 버렸고, 갈수록 빈부의 차이는 극심해져 가며, 민중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방법들은 점차로 약화되어 간다. 그 뿐인가. 자연환경은? 지금의 인간 사회의 소비 행태와 사회 구조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자원을 낭비하고, 수많은 쓰레기를 폐기하는 등의 생태계 파괴를 일삼고 있다. 이것이 상식적인 사회의 모습은 분명 아닐 터. 그러나 경제정치 세계론이 패권을 잡고, 그것이 상식이 된 사회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비극인거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두 가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을 배워 왔다고. 하나는 ‘일 중독’이고 하나는 ‘소비 중독’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대의 사회는 경쟁 사회이다. 경쟁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암묵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이다. 열심히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가난뱅이가 될지 모른다, 집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공포. 병에라도 걸리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공포. 결국에는 어떻든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개인적인 선택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런 공포가 있다는 것은 사회의 안전구조가 약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란 기본적로 그런 구조이다. 즐겁기 때문에 일을 한다 혹은 계속 한다기보다는 공포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사회이다.


저자는 파이의 크기를 늘려 가난한 나라와 국민들에게 돌아갈 몫도 키우자는 눈감고 아웅하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대항발전'을 하자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사회 속에서 경제라는 요소를 줄여 나가도 사람들은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별 탈없이 살 수 있다고. 산업혁명 이후 줄곧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으면서도 여전히 과로와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그는 서비스와 상품 구입 대신 자신이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미의식과 감성을 기르라고 한다.


이것은 딴소리 같지만, 나는 배우 임현식이 좋다. 경직되지 않은 털털한 아저씨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달까. 나는 인물 비평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 그럴싸한 표현으로 그가 왜 좋은지를 말할 재간이 없지만, 요는 이거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서 보이는 넉넉함이 있는 것 같다. 교외에 있는 집에서 자기 소유의 텃밭과 농장을 아내와 함께 일구는 모습을 모 아침 토크쇼에서 보았다. 악기가 몹시 배우고 싶어서 바이얼린을 배웠다고. 


실천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데에 있다. 세상이 앞으로 점점 경제의 교환 가치 이외의 본래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감성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가 부활한다면, 시장 경제가 우리들의 생활에서 갖는 지배력은 많이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믿음에서 희망이 솟아나며, 전정으로 일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언어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경험이라든가 마음이라든가 역사라든가 미의식이라든가 사고방식이라든가 세계관이 들어 있다. 그것은 의미의 창고이자, 감각의 창고이고, 기억의 창고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한 언어는 인류 문화와 문명의 일부이자 인간의 한 가지 가능성이 거기에 실현되어 있다. 두 세대라는 짧은 시간에 5000개 이상의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아마도 역사상 예가 없는 문화적 재난일 것이다."


"오늘날 산업 노동자의 생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부자유스러운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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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10-06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사회이다,,,으음. 정말이지 파이는 커졌지만 빈곤과 숨가쁨은 증폭되는군요.예전에는 구멍가게라도 한다손 쳐도 요새는 대형마트가 그런 구멍마저 막아버리니.착잡합니다. 욕망을 강매하는 사회에서 느긋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막연하게 느끼기만 할 뿐 실천할 줄 모르는 인간이 바로 접니다.ㅜ.ㅜ

icaru 2004-10-0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님도 그러셨더래요....하하...

요즘 ..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제 속에 노예 근성이 삐질삐질 솟아나서 화날라그래요...전, 겉보기엔 아니 그러는거 같음서도...끊임없이 오너의 눈치를 보면서 그가 요구하는 대로 일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속을 끓여대는 스타일이라죠..

적어도 양심이 따르는 한에서 내지는 마음이 시키는 한에서...살아얄게 아닌가라는...생각도 들고요...

제가 이 지경이 될 때는... 또... 이런 책이 단약방인거 같드라고요...


아무리 세계화라지만...미국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면 을매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통일은 빨리되어야 하겠다는 생각도요...요 아래서도 말했지만... 미국이 우리 나라를 자기네 꼬붕정도로 쉽게 생각할 수 없을라믄...통일이 앞당겨져야 할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설령 우리의 물질적인 생활이라는 것이 하향평준화가 될망정... 제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릴라나요....^^ 그렇더라도요...^^

설박사 2004-10-0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봉일과 텃밭 가꾸기라... 땅이 비싸서 서울에 텃밭이 있으려면 꽤 부자여야 할 것 같은데요.ㅋㅋㅋ 아마 저자가 꽤 부자인듯....
일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그만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짤리기 쉽겠지요.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저도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회사에서 가만놔두지를 않아서요. ^^

내가없는 이 안 2004-10-0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복순이언니님처럼 성실한 사람을 노예근성이 있다고 하면 쓰겠어요. ^^
그런데 요 위의 설박사님의 의견에 저도 좀 동의를 하는데요, 어쩌면 제가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과도 상통되는 부분이지요. 글쓴이는 사회구조의 취약점을 말하고 있고 그 대안으로서 작은 실천을 먼저 얘기하고 있지만, 그걸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내 속한 곳에서 떨어져나와 개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 박민규 같은 이까지는 가능하겠지만 그에 못 미치는 사람은 어디 따라나 가겠어요?
하지만 아무튼 복순이언니님 마지막 미국 운운하신 건 절대적으로 동감이에요. 주식이나 땅값만 해도 앞으로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움찔거린다는 게 정말 화나는 일 아닌가요... 결국 잡탕 같은 코멘트가 되었군요. 헤헤.

icaru 2004-10-07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박사 님....아흐 그리고..울..이안님....

음..서울에서 텃밭과 재봉일을 상상하지...흐...그렇긴 하네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라는 것이...요지겠지요...

허긴...우린 누구보다도...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이웃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고, 내밭도 일구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모두다...직장을 때려치우고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그러기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고요...그런데 값비싼 대가라는 거...말이지요... 사회가 조금 바뀌고 사람들의 상식이 조금씩만 바뀐다면, 그다지 힘들 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그런 사회가 아직은 요원하지만요...음... 돈이 없어서 무서운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일련의 공포가 사회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생하는 사회...서로 도와 주고... 그 어떤 이도 빠짐없이 서로 뒤를 돌보아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지욤.... ! 물론 아직 먼 길 같지만...영 글러먹은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거 있지요...


이건...필자의 생각이고...또...저의 작은 생각입니다....

실천의 국면에 들어서면....음...정말정말...쉬운일은 아닙니다...
님들 말도 마자요...!

하루살이 2004-10-0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정말 간단한 일부터 시작하면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항생제를 잔뜩 먹인 고기를 먹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몸에 나쁜지도 압니다. 그래도 끊지 않습니다. 아니 끊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고기를 생산하는 방법을 바꿔야 하겠지요. 유기농 채소 좋은 것도 다 압니다. 하지만 장바구니에는 싸디 싼 농약 듬뿍 무친 채소가 들어가 있죠. 싸다 맛있다 라는 논리가 환경 건강보다 앞서 있습니다. 소비자가 변하면 공급하는 사람도 변할 수밖에 없음에도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살아갑니다. 채소가 모두 유기농이 된다면 가축이 모두 방목된다면 그 공급의 양은 적어지더라도 오히려 가격은 지금처럼 비싸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 한다는 것. 해결의 출발점은 바로 그곳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 어제 환경스페셜을 봤는데 역시 환경의 문제는 개인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겠더군요. 아무리 유기농재배를 하더라도 축농업체가 항생제를 쓰는 이상 물과 땅의 오염으로 유기농채소도 내성균을 갖게 되더군요. 개인 개인 스스로가 함께 변해야만 합니다. 국가나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때는)

icaru 2004-10-07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비로그인 2004-10-0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끄덕끄덕..

요하니 2005-02-0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래서 .... 작은 실천을 강조하는 아래글도*^^* 좀 깁니다. 심 호흡하고 읽어야 합니다.
http://blog.empas.com/johan27/4318272

icaru 2005-02-1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하니 님~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