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어디 있나요
하명희 지음 / 북치는소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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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편의 짧고 또 긴 소설 모음집이다.

소설 한 편당 길이는 짧으나 동시에 긴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여운이 그만큼 오래 갈 것 같기 때문이다. 

하명희 작가는 2009년에 등단해서 <나무에게서 온 편지>, <불편한 온도>등을 출간한바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이다.


어느 동네에나 한 사람 있을 것 같은 바보 역할 영주 언니를 어린 아이의 눈으로 그린 <겨울 강>,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쪽방촌 청년들의 얘기 <삼월의 눈>, 세월호 이야기 <배가 들어오는 날>, 둥지를 지키려다 둥지를 떨어뜨린 새에 비유될 수 있는 아버지란 존재,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 그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요해져가는 엄마의 기억을 그린 <보리차를 끓이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에서의 일상을 그린 <우체국 가는 길>, 헤퍼보이는 웃음의 이유가 한없이 외롭고 처량한 사람이 있고 그런 이들을 알아보고 외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 <청자의 노래>의 두 여자가 그렇다. 두 사람이 가까워져 가는 관계를 마지막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했더라.

차지도 않은 공이 우리 둘 사이에서 출렁였다. (166쪽)

모든 뒷모습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파란 발자국을 남긴다는 <파란 발자국>은 어느 편집 교정자의 일상을 그린 단편이다. 불꽃놀이의 불꽃 터지는 소리이면서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 <펑>은 추석에 얽힌 작가 개인의 얘기인듯 읽혔고, 수녀가 된 친구와 그 친구의 초대로 가서 보게 된 소년들의 치유연극 이야기 <십일월의 연극>에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른 소년이 나온다.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가족이 있는 슬픔을 안고 있는 엄마와 딸이 함께 제주도 종달리로 여행을 하는 <종달리>. 낯선 곳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그곳이 익숙해져갈 무렵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때로 친구 사이 같은 모녀의 대화로부터 가족을 잃은 가족끼리 서로 힘이 되어주고 위안을 주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집밖으로 떠도는 청소년, 시멘트 벽속으로 숨어들어간 소녀의 이야기 <시멘트 소녀>, 마지막 단편 <달빛을 만진 날>은 치킨 배달 도중 사고로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배달소년과 개가 땅바닥에 누운 채로 받는 달빛의 어루만짐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겨울 강>, <보리차를 끓이며>, <청자의 노래>, <종달리>를 들겠지만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는 근소할 뿐이다. 

사실주의 소설의 느낌으로 보면 공선옥 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이 들때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일뿐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읽어보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한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동안엔 하나의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고, 내가 아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가는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그 세상이 늘 더 아름다운 세상은 아닐지라도 기꺼이 계속 넓혀가고 싶다. 

작가는 인간을 보는 눈이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는 발견이었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는 마침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마무리하는 것은 작가의 내공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할 것 같은 물건, 사람, 일상 등을 주워올려 의미와 가치를 읽어내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주는 마음과 눈은 모든 작가의, 신이 주신 능력일까. 다른 사람들이 눈길 주지 않는 것을 혼자, 오래 볼수 있는 사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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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1-10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무에게서 온 편지 읽고 참 좋았는데 이 책도 보관함에 넣어두고 챙겨 읽어야겠네요.

hnine 2020-11-11 13:4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부터 읽었으니 작가의 다른 소설 읽어보려고요. <나무에게서 온 편지>부터 읽어야겠네요.
요즘 좋은 소설을 다시 많이 읽게 되어 신나요.
이 책도 추천드립니다. 더구나 한편 한편의 길이가 길지 않다보니 금방 읽어요.

서니데이 2020-11-1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의 고래가 위에 있어서 깊은 바다속 같은 느낌이 들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hnine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hnine 2020-11-14 22:05   좋아요 1 | URL
잘 보셨어요. 고래, 등대, 검은 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두개의 눈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진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지요. 작가의 따님이 그려주었대요.
이번주에 제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즐거운 주말 보내고 있는 중이어요. 서니데이님도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0-11-2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단편집을 오디오북으로 반복해 듣곤 해요. 좋거든요.
이 책은 어떨지 기대가 되네요. ^^

hnine 2020-11-25 12:13   좋아요 1 | URL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책이기에 반복해서 들으실까 저도 관심이 갑니다.
하명희님은 여기 알라딘에서 활동하시던 분이기도 해요.
 
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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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할때 그들은 파격적 인물들일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책 속 네 여자는 파격적 성격도 아니고 파격적 행동을 저지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범주에서 살아왔고 평범에서 지나치지 않는 미래를 계획했을 인물들이다. 네 여자는 각기 다른 인물들임에도 읽다보면 마치 한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정신과를 다닌다는 것과 울고 있는 누군가에게 휴지를 건네거나 건네받는 행위로써 작가가 이 여자들을 연결시켜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환」근주는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추가 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는다. 살던 곳을 떠나 지방 신도시로 이사온 후 적응하느라 불안과 초조, 스트레스로 인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갑자기 무섭게 살이 쪄버린 그녀는 정신과를 찾아가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자궁경부암 가능성은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가운데 마침내 자궁경부암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 길, 잠시 들른 카페에서 카페 직원이 실수로 엎지른 커피 세례를 받은 어떤 중년 여성에게 자기가 가진 티슈 뭉치를 건넨다. 이 중년 여성이 다음에 오는 작품「기만한 날들을 위해」의 선혜이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선혜는 일찍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중년의 여자이다. 연년생 두 아이 키우는 일에 집중하며 보낸 세월이 어느 덧 23년째이다. 남편의 습관적 비정상적 생활을 알고서 속으로 분노가 쌓여가지만 이 분노를 남편을 향해 터뜨리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을 향해 터뜨릴 때가 많아 딸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아들이 입대하고 딸도 대학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후로 선혜는 우울증이 심해지고 감정 기복과 폭식의 문제 등으로 정신과를 찾아가게 되는데 마침내 선혜가 선택한 방법은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이 다가 아니었다. 훨씬 더 직격탄을 떠뜨리는 방법을 선택한 그녀가 정신과 진료 차례를 기다리던 어느 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옆자리 여자에게 티슈를 내민다. 그 티슈에는 어느 브런치 카페 로고가 찍혀있다 (앞의 작품「우환」에서 근주가 티슈를 건네주었던 사람이 이 작품의 선혜). 진료를 받고 한여름 뜨거운 햇빛 아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리속에는 오늘 또 어떻게 남편과 지치지 않고 싸워야할지 막막한 심정이다.

「미아」소영은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이 있는 중부지방 신도시로 이사해왔지만 낯선 도시에서 고립감과 소외감은 웬만해서 해소되질 않는다.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깜빡깜빡 잊는 일이 잦아지고 어떤 일에도 의욕이 없으며 남편과 공감대를 찾지도 못한다. 몇달 동안 온종일 집에서 한 일이라곤 과자만 먹으며 4백편의 영화를 본 일. 남편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기로 하는데, 의사의 처방은 어느 한편으론 효과가 있는 듯 하지만 증상이 재발되기도 하며 근원적인 소외감은 여전하다. 

남편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터져버린 눈물이 멈추지 않자 곧바로 다시 정신과를 향한 소영, 새로운 약을 처방받고 진료실을 나와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데 그것을 본 진료실의 중년 여성이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 건네준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의 선혜가 티슈를 건네준 사람이 이 작품의 소영). 그리고 다 알겠다는 눈빛을 건넨다. 이후로 소영은 그 중년 여인이 건네준 카페 티슈를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해본다. 그리고 성실하게 약을 먹고 하루 세끼를 챙겨먹고 집안 일을 밀리지 않고 하며 집 안에 식물을 들여 키우기 시작하는 변화를 만들어간다. 

「경년」의 ''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은 둔, 소위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의 여자이다. 중학교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다가 자기의 중학생 아들이 사귀지도 않는 여자애들과 섹스를 일삼는다는 말을 전해들은 나는 기겁을 한다. 하지만 정작 중학생 아들은 그것이 왜 문제가 되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하는 다른 행위들과 무엇이 다르냐, 오히려 숨기고 하는 짓보다 더 떳떳하지 않느냐며 당당하고, 남편 마저 그게 뭐 그리 호들갑 떨 일이냐, 정상적인 남자로 크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라고 아내를 핀잔한다. 암담한 나. 마침 초경을 겪게 된 딸 아이는 초경이 뭔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배워서 다 알고 있지만 막상 닥치니 두렵다면서 엄마를 찾고, 그런 딸을 안고 나는 눈물을 흘린다. 


네 여자의 나이를 이미 지났거나 비슷한 나이인 입장에서, 그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진 않았어도 전혀 남의 이야기라는 느낌 없이 읽었다.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수기를 읽는 느낌이랄까. 이 네 여자는 어쩌면 한 여자일 수도 있다. 또한 나일수도, 작가일수도.

깊은 숨을 쉬게 하는 이야기들. 잃었다는 자각을 했으면 거기가 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깊은 숨 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겨우겨우 생각한다. 우환의 근주는 꿋꿋하게 치료를 받으며 다음을 위한 토대를 다져야 하며, 기만한 날들을 위하여의 선혜는 빈둥지 증후군 대신 이 시기야말로 주부로서의 꿀보직 기간이라 여기며 새로운 생활에 눈돌려보길 바라고 미아의 소영은 남편과의 소통 따위로 연연하기 보다 남편 외의 다른 것에 눈길을 돌려보며 보람을 찾는게 더 먼저라는 얘길 해주고 싶고, 경년의 나에게는 이제 시작하는 딸의 앞날을 위해 엄마인 내가 무너지면 안된다는 각오를 다졌으면 좋겠다. 

잃었다는 그 지점이 곧 자각의 지점이 되어 더 큰 발걸음, 아니 작은 발걸음이라도 계속할 수 있으려고 우리는 책도 읽고 생각도 하며 살아온 것이니까.

마시지도 못하는 술잔을 들고 누군가와 건배라도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님들? 아니면 작가님?

우리 모두 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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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0-11-0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에 이어 이 책도 사게 될 것 같습니다.
저랑 건배해요! 아직 안 읽었지만.. ㅎㅎㅎ

hnine 2020-11-05 05:5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실린 네 작품 주인공들의 공통적 문제점 하나가 ‘소외감‘이 아닐까 싶어요. 소통의 상대로 가장 먼저 기대하는 남편이 일단 소통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고, 나의 고유 영역 없이 가정과 자식들 중심으로 살면서 점차 나의 이름은 쓸모 없어져가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 없을거예요. 그래도 작가는 다시 출발하는 여지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맺더라고요. 작가에게 고마웠어요. 잃어버린 내 이름, 내 자아를 찾기 위해 작은 움직임이라도 해보는 주인공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마음은 바로 저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겠지요?
함께 건배해줄 상대가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요. 저랑 건배하자고 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마음 따뜻해지고 용기가 생기는 새벽입니다.

2020-11-06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7 0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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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작은 책이 본책과 함께 왔다. 필사를 해보라고 권하는 작은 노트인가보다.)

 

 

김이설 작가의 모든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주인공은 적어도 내가 읽은 이전 작품 속 어느 주인공과도 다르다. 나 자신 일수 있고 작가 같기도 하고 그 어느 누구일 수 있을만큼 튀지 않고 도드라지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주인공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다.

처음의 몇장은 주인공이 남자와 오랜만에 해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야기의 감을 잡느라 긴장하며 읽는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나가는 모습, 계절이 바뀌는 모습, 즉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묘사한 문장들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그리고 처연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눈길을 자꾸 붙잡았다. 작가는 여자가 남자와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헤어지고 혼자 보낸 시간의 흐름을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었나보다.

 

계절이 변하는 걸 절감할 때마다 나는 그사람을 떠올렸다. 기어이 시멘트 틈으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를 보았을 때, 후텁한 공기에서 물기가 맡아지거나, 인도에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기 위해 까치발로 걷다가, 창틀을 뒤흔드는 혹한의 바람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문득 그 사람과 내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넉넉하지 않은 집의 맏딸로서 하고 싶은게 뭔지 자신도 몰랐고,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고, 알아야할 필요도 없었던 시기를 보내며 자라 어른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뒤늦게 시쓰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뒤늦게 자기의 꿈을 알게 되었다는 언니를 위해 주인공의 여동생은 언니에게 용기를 주며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고 시창작 실습을 배우러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니와 다르게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야무지고 공부를 잘해서 집안의 기대를 안았던 여동생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획에 없던 이른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남자의 폭력으로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동생이 직업 전선에서 친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신에 여동생의 아이 둘은 주인공인 언니의 몫이 된다. 자기가 힘들던 시절 자기 손을 잡고 용기를 준 동생의 따스한 체온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은 뒤늦게 가진 시에 대한 꿈을 미루고, 남자하고 연애도 접고, 집안 일과 여동생의 아이 둘을 건사하기 위해 지치고 소모되는 시간을 보낸다. 자기를 위해서 유일하게 해오던 일이었던, 좋아하는 시 한편 필사하는 시간 조차 짬을 내기 힘든, 암담하고 희망없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자기 꿈을 접고, 슬픔을 한쪽으로 밀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볼 뿐이다.

 

오늘은 쓸 수 있을까. 저 창문에 흔들리는 목련 가지에 대해서, 멀리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해서, 늦은 밤 귀가하는 이의 가난한 발걸음 소리에 대해서, 갓 시작한 봄의 서늘한 그늘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23쪽)

 

아이들의 엄마인 여동생이 집을 비운 동안 주인공이 아이를 건사하는 모습이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면 너무나 공감할수 있게 묘사되어 있다. 아침부터 잠재우기까지 해줘야 하는 일의 순서, 아이들과 어느 대목에서 부딪히는가 하는 것 까지.

주인공이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환하게 불밝히고 있는 동네 작은 서점에 들려 시집을 읽는 것을 낙으로 삼는 대목, 그러다가 서점을 지키고 있는 젊은 남자와 말을 트게 되고 친해져 가는 대목에선 책에서 온기가 전달되는 듯,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양 체온이 따뜻해져가는 경험에 행복했다.

 

여자는 시인의 꿈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저 지지부진한 상황에 붙들려 계속 그렇게 존재의 투명성만 유지한채 살아갈까.

나는 작가가 이 소설의 결말로 선택한 방식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삶이라는게 그렇지 않은가.

 

여섯개의 작은 제목중 두개를 골라 책의 제목을 삼았다. 첫번째 「우리의 정류장」과 세번째 「필사의 밤」. 둘이 만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이라는 독특하고 의미있는 제목이 만들어졌다. 제목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건 책을 다 읽고 나서였다. '정류장'이 잠시 멈춰가는 곳, 쉬어가는 곳, 바꿔타는 곳, 멈춘 시간의 의미라면 '필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느리지만 계속해감이다. 꾸준히, 혼자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간다는 뉘앙스. 삶의 긴 여정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일 수 있다.

 

작은 노트 첫장에 작가의 손글씨체로 써있는 글이 있다.

당신이 서있는 그길이 바로 당신의 길.

기어이 피어오르게 될 당신의 언어는 더없이 찬란하기를.

 

당신이 서있는 그길이 혹시 당신이 가고 싶던 목적지로 데려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길을 걸어온 당신의 시간은 충분히 찬란했다고, 그것까지 알게 되는 시간이 곧 온다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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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30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나인 님의 리뷰 너무 좋네요.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지점에 눈길이 머문다는 것도 너무 좋고요.
저는 얼마전에 이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거든요. 친구가 책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상황이라서요. 제 경우엔 아버지의 말이 무책임하고 싫었는데, 친구는 읽고서 아버지의 말이 위로가 되어 눈물이 핑 돌았대요.
오늘 나인님의 글에서는 제가 딱히 생각하지 못했던 정류장과 필사를 연결시킨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짚고 넘어가지 못했었는데 말예요. 이래서 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나인님. 너무 좋아요!

hnine 2020-10-30 13:04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읽는 작가 소설이라서, 다른데 한눈 팔지 않고 단숨에 읽었어요.
확실히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느끼며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되새겨보게 되었답니다. 저도 다락방님도,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깎이고 다듬어지고 없던 부분이 생기기도 했겠지요. 그러니 작가의 변화는 새삼스런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주문한 <잃어버린 이름에게> 바로 읽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이 두권의 책이 며칠 사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간되었는지.
정류장과 필사에 대한 의견은 그저 제 개인적인 해석인데 혹시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짚었다면 어떡하나 소심한 걱정도 해봤답니다.
이 책에 대한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은 날 바로 주문했어요. 이미 읽으신 책이라서 아마 제 리뷰를 더 좋게 더 넓은 마음으로 봐주셨겠지요. 감사드려요.
또 금요일이네요! ^^

난티나무 2020-10-3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야 겠어요...ㅎㅎㅎ 버티고 있었는데 hnine 님 글 보고 ko 입니다.

hnine 2020-10-31 05:29   좋아요 0 | URL
저는 다락방님과 자목련님 글 보고 ko당했어요 ^^
같은 책을 읽고 모두 같은 소감을 갖는게 아니라서 저는 난티나무님의 독후소감도 매우 궁금하네요.
저는 참 좋았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170여쪽 되는 분량이라서 금방 읽으실거예요.
지금 다음 책 <잃어버린 이름에게> 읽고 있는데, 어제 마침 읽은 난티나무님의 서재글이 다시 떠오르네요.

kimji 2020-11-0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이 감사를 어떻게 전해야하는지-
그저 부족한 마음만, 감사하다는 마음과 hnine님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만 보냅니다. 감사해요!

hnine 2020-11-07 04:44   좋아요 0 | URL
우리 소설 읽는 재미를 오랜만에 다시 일깨워주신 작가님께 제가 더 감사드려요.
저 이 책 읽는 동안 마음 속으로 울고 웃고 했습니다.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사계절 1318 문고 123
김민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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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이 내 손안에 들어와 오랜만에 청소년소설을 읽는다.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제 내 아이도 청소년기를 지났건만 그런 것 상관없이 내가 청소년기일때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더 많이 읽은 듯 하다. 작가의 이름이 생소하고 이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책이 손에 들어오자 마자 읽은 것도 여전한 그 애정때문이다. 청소년소설은 아주 좋음 아니면 보통, 이 둘중 하나인것 같은데 이 책은 과연 어떨까 기대를 하면서.

 

두명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등학교 1학년 새봄이 (여)와 지석이 (남). 둘은 같은 고등학교 클라스메이트인데 4년동안 학교를 쉬다나온 새봄이는 지석이보다 한살이 많다.

그런 새봄이가 지석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을 지석이가 망설이면서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책은 다름아닌 허먼 멜빌의 <모비딕>. 새봄이는 왜 모비딕을 읽어보라고 했고 이것은 둘 각자의 인생에, 그리고 둘 사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실 새봄이의 경우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게 해주는 리더 역할을 이 책이 해준다.

좋아하는 새봄이가 권해주긴 했지만 두껍고 재미없어보이는 책을 앞에 두고 지석이는 처음에 망설이지만 몇장 읽어나가며 이 책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3월초 새봄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이후 내용은 1인칭 서술 형식으로 지석이가 모비딕을 읽으며 이해해가는 과정이 나오고 중간 중간 새봄이의 지난 일기가 삽입됨으로써 새봄이의 지난 4년에 대해 설명이 된다.

새봄이의 엄마는 4년전 새봄이가 열네살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엄마의 발인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로 학교도 휴학할 정도로 마음을 잡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지내던 새봄이, 그렇게 4년을 보내고 마침내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전히 적응이 힘들고 집중이 안되어 뛰쳐나가고만 싶다.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때 새봄이는 우연히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혼자 스스로 버티려고 애쓰던 어느 날 누군가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새봄이는 지석이와 친해지게 된다. 이러면서 모비딕이라는 책의 역할이 시작되는데, 모비딕이라는 고전 한권이 소설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인용되며 줄기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특이하다. 간혹, 모비딕이 이 소설을 위해 이용되었나, 이 소설이 모비딕을 위해서 쓰여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새봄이가 모비딕에 심취하게 된 경위가 그렇게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교실을 뛰쳐나와 찾아간 도서실 문 앞에 다른 아이들이 책 읽고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보게 되고 그 중 하나가 모비딕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긴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새봄은 '삶이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라는 문구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고 무시무시한 고래 눈이 표지에 크게 그려져있는 모비딕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로 한다. 또하나의 계기가 있다면 세월호 추모식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고래이다. 그 포스터에서 고래의 모습은 모비딕이라는 책 속에서의 고래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고래가 바다에 떠있고 주위에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 고래가 아이들을 태우고 날아오르는 그림이었다. 고래를 보고 한가지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수 있는가 새봄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모비딕을 다 읽은 후 새봄은 이 책은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살고 싶어졌어.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어. 나는......이미 모든 걸 다 겪었다고 생각했거든." (146쪽)

열여덟살에 이미 모든 걸 다 겪었다고 생각했던 새봄은 책을 읽으며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여덟살이 아닌 내 나이에도 다시 새겨보게 되는 말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

이 책 제목이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은 지석이와 새봄이의 다른 대화에서 나온다. 역시 모비딕에 관해 둘이 나누는 대화이다.

"맞아.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많은 종들과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 인간의 시선에 대해서 말이야." (166쪽)

 

책 전체에 걸쳐 모비딕 구절이 자주 인용되고 그 구절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나오는 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작품 전체를 한정된 틀에 갖히게 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어떻게 인용되었든 본 작품의 서사가 뚜렷하고 강렬하면 주와 부가 혼동될 염려가 없겠으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정도의 뚜렷하고 독창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청소년기 주인공들답게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동기와 방법으로 자기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전형적이고 교과서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 그래서 새롭게 보였다. 이 세상 청소년이 모두 새봄이와 지석이처럼 맑고 순수하고 긍정적인 영혼을 지켜나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책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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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0-2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참 예뻐요.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느낌도 좋네요.
그렇지만 내용은 밝고 가볍지만은 않은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0-10-30 04:43   좋아요 1 | URL
그래도 해피엔딩이랍니다.
다만 너무 교과서적이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제 개인적인 소감이네요.
EBS에서 이책이 느닷없이 집으로 배송이 되어 와서 읽게 되었어요. 제가 신청한 적은 없는데 무슨 선물로 온 모양이어요.

2020-10-29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30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30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  이승희 시집, 창비 2006

 

 

 

이승희 시인이 등단 7년만에 펴낸 첫 시집.

 

 

읽다보면 그냥

눈물이 차오를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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