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나날이 감사하면서도 지루하다. 

'매일 다른 책을 읽는 한, 같은 책이라도 매일 다른 페이지를 읽고 있는 한 일상이 지루할순 없어.'

이렇게 생각했던 지난 날의 나를 건방지다거나 경솔하다고 탓하지 않겠다. 겪어보지 않고 하는 생각이 가지고 있는 오차였다고 이해해주자.

그냥 지루하다거나, 감사하다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는 것이 마치 내 자신이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같아 불편하게 하니 이게 더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가지고 말이야. 


이러던 중, 

"인생 자체가 그리 드라마틱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야."

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패터슨>





제목은 들어서 익숙하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영화였는데 2022년 마지막 날 보게 되었다.

얼마전 올린 한 그림책 리뷰에 서재 친구께서 영화 패터슨이 생각난다고 하신 댓글 때문이었다.


우선, 제목 패터슨 (Patterson) 은 

1. 영화 주인공 남자의 이름이고

2. 영화 주인공 남자가 사는 동네 이름이기도 하며

3.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1883-1963) 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감독 짐 자무쉬가 좋아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그의 고향 패터슨을 여행하다가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 

























영화는 미국 뉴저지 주 패터슨이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페터슨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 친구 (아내인지 여자친구인지), 그리고 불독 한마리와 한집에 살며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철제 도시락 통을 들고 출근하여 버스 운전을 하고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자유로운 자기만의 소소한 예술 활동을 하며 자기 삶을 즐기는 여자 친구의 수다를 들으며 저녁을 먹는다. 

개를 산책시키고 가끔 동네 바에 들러 바텐더의 얘기를 듣기도 하고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일상의 반복 반복 반복.

별 만족도 없지만 큰 불만도 없어보인다. 

그에게 자기만의 은밀한 즐거움이 있는데 틈틈이 시를 ㅆ는 일이다. 시간 장소를 정하지 않고 무언가 마음이 움직일때마다 그노트를 꺼내어 시를 적어내려간다.

그는 생각했을까?

매일 다른 시를 생각해내고 쓸 수 있는 한 나의 하루는 결코 똑같지 않다고. 결코 지루하거나 평범할 수 없다고.


패터슨 역의 남자 배우 아담 드리아버를 스칼렛 요한슨과 부부로 나온 <결혼 이야기>에서 본 적이 있다. 

아무것도 추측해낼수 없는 표정의 얼굴. 아무것도 드러내지 그것이 곧 그의 표정이랄까.



영화감독 짐 자무쉬는 말한다. 이 영화에서 심각한 어떤 메시지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냥 평온한 일상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항상 드라마틱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 인생의 대부분은 이렇게 평범하고 특별한 일 없이 채워진다. 그것이 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는 덧붙여 자기 영화에서 너무 상징이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퍽! 영화 속 한줄 대사, 한 장면 에서 조차 의미를 찾으려하던 나의 영화 보기 버릇을 떠올리고 한방 맞는 느낌.

모든 영화를 그런 식으로 보는게 아니었구나.


평범하고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모든 사람 각자의 몫이다. 그것이 패터슨에게는 시를 쓰는 일이었고 패터슨의 여자 친구에게는 자기만의 창작 활동을 하는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같은 패턴의 커튼을 만들고 옷을 만들고 컵케잌을 만들고. 그렇게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을 다르게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매일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고, 다음날이면 굴러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일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면서도 그에게는 매일이 같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은 이렇게 해보고 다음날은 이렇게 해보고, 이런 길로 올려보고 저런 길로 올려보고. 도구를 써볼 생각도 해보고.

내가 나의 일상을 지루하게 생각하여 이후 인생 전반이 불만인 수준까지 가게 내버려 두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있겠다.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

의미 찾지 말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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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04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덤 드라이버 나오는
<패터슨> 보고 싶네요.

감독이 제가 좋아하는
짐 자무쉬였네요.

hnine 2023-01-04 12:07   좋아요 2 | URL
짐 자무쉬 감독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이 영화가 아마도 첫 영화. 다른 영화도 추천 좀 해주세요.
애덤 드라이버는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봤는데 이런 무표정의 표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속 캐릭터 소화를 잘 해낸 것 같아요. 감독은 그냥 평범하게 봐 달라고 했지만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 영화랄까요. 저는 오히려 더 자세히 보게 되는 걸 어쩔 수가 없더군요. 아마추어 화가 여자 친구가 온 집안의 무늬를 흑백 동그라미로 만들어놓는데 나중엔 컵케이크 무늬까지 같은 모양으로...ㅋㅋ 은근 웃음 나오는 대목도 많아요. 짐 자무쉬 감독이 실제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라는 시인을 좋아했다는 것, 그 시인의 시집 제목이 패터슨이라는 것 등, 저는 아무래도 이 영화 그냥 스윽 보고 스쳐가게 될 영화 같지 않네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