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0
오 헨리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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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가 본명이 아니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 헨리가 필명이 되었을까 이유가궁금해졌다. (난 책을 읽으면 작품 그 이상으로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 편이다. 작품을 읽는 건지, 작가를 읽는 건지 모를 정도)

오 헨리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던 사람. 한때 은행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횡령 혐의로 고소당해 수감 생활을 한적이 있다고 한다. 감옥에서도 글을 쓰던 그는 자기의 수감 상태를 숨길 겸 본명과 매우 다른 필명을 지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데, 오 헨리라는 이름은 그가 읽던 약학 잡지에서 (약제사로 일한 적도 있다.) 본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프랑스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프랑스 느낌이 나는 이름 (오 앙리)으로 선택했다는 설도 있다. 

많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배경이라도 되는 듯, 오 헨리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의사인 아버지를 두었으나 어머니가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때부터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는 불안한 생활을 했고 오 헨리는 고모와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십대때부터 견습 약제사를 시작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데, 어릴 때부터 그림과 글에 재능이 있었나보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는 동안에도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도 죽고, 할머니, 아들, 아내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두번째 부인과의 결혼도 원만치 못해 별거 생활을 하다가 오 헨리 자신도 말기 간경화와 당뇨합병증으로 호텔 방에서 쓰러져 결국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에는 그의 스물 여덟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이십 년 후, 경찰과 찬송가 와 같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도 있는데 많이 알려진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었나보다. 이렇게 네 편이 읽은 중 가장 수작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단편이고, 반전의 플롯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중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도시의 서민 여성으로 여자 점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남자로는 노숙자나 경찰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등이 있다.

뉴욕은 그가 생의 마지막 8년을 보낸 곳이다. 작품마다 등장하는 거리, 술집, 백화점, 하숙방, 경찰서 등은 실제 장소들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뉴욕은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자 현대 도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주인공으로 삼은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힘없는 소시민들이 대부분이다. 

누가 등장하든 오 헨리의 작품의 특징은 반전이 있는 플롯 구성에 있다. 감옥을 피난처로 삼으려는 노숙자와 그를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의 코믹한 역전을 소재로 한 <경찰과 찬송가>, 의무와 인간적 정이 충돌하는 경찰의 딜레마를 보여준 <20년 후>, 도둑이 사랑을 계기로 새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인 <완벽한 개심>,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허름한 하숙방을 전전하던 남자가 결국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데 그 방은 알고 보니 여인이 죽었던 그방이었다는 <가구 딸린 셋방>은 도시의 고독과 절망을 나타냈다. <잘 손질된 등불>에서는 각각 세탁소와 백화점에서 일하는 두 아가씨가 나온다. 좋은 남자를 만나 나은 생활을 꿈꾸는 둘의 희망은 같지만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하여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작품속에서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느낌도 났다. 

유머와 반전은 현대인의 아이러니, 즉 도시에서 생존하며 겪는 욕망과 윤리의 대립이라는 고통 속에서 완충 장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오 헨리가 그의 문학에서 사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헨리는 문학성을 문제로 들어 비평가들로 부터 저평가 되기도 하는게 사실이다. 지나친 감상주의로 인해 감정의 깊이나 현실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다는 것, 반전 결말의 묘미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목적이 되는 듯 인물의 심리를 깊이있게 분석하고 다루지 못했다는 점, 문체가 가볍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모든 작가들이 같은 방법으로 문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심금을 울리진 않아도 가슴을 치고 가는 메시지를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전달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 아닐까?

여행길에 들고 가서 짬짬이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젊은 시절의 슬픔과 노년의 슬픔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젊은 시절의 짐은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만큼 가벼워진다. 그런데 노년에는 나눠 주고 또 나눠 줘도 슬픔이 항상 그대로 남아 있다. (156쪽, '백작과 결혼식 손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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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0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헨리 단편집은 중딩시절 읽었던 세계 단편문학 전집에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hnine 2025-11-02 13:41   좋아요 0 | URL
짧고 위트와 반전을 갖추고 있어서 접근성이 높지 않은 작품들이 많지요.<마지막 잎새> 같은 것은 교과서에서 처음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오래 전이라 기억이 확실하진 않아요.
오헨리의 다양한 인생편력으로 보건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많은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을 것 같지요.

잉크냄새 2025-11-0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헨리의 작품 중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에 버찌나무가 나오는데 학교 정원에도 버찌나무가 있어 수업 시간에 한동안 바라보던 기억이 나네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던 햇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hnine 2025-11-02 13:45   좋아요 0 | URL
버찌나무란 벚나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아직도 생생한 기억을 남긴 그 작품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5-11-0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갖고 있는데 다 재밌어요. 역시 오 헨리입니다. 특히 경찰과 찬송가, 는 어찌나 웃기던지 막 웃었고 친구에게 그 줄거리를 얘기할 정도였어요. 제목이 안 떠오르는데 호텔에서 만난 두 남녀가 꽤 부자로 행세하다가 서로 가난한 것이 밝혀지는 단편이 들어 있어요. 이 단편에서 좋은 문장이 어찌나 많던지 감탄하며 여러 번 읽었던 게 기억납니다.^^

hnine 2025-11-09 14:37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단편은 아마 <아르카디아의 두 나그네> (번역한 제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일거예요. 저는 좋은 문장까진 신경 못쓰고 읽었는데 페크님 말씀 들으니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일단 웃지만 웃음끝엔 쓸쓸함을 남기기도 해서, 단순히 기발한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보고 싶지 않은 이유같아요.

차트랑 2025-11-1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할 일이 많은데....

hnine 2025-11-12 19:54   좋아요 0 | URL
할 일 많을 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28편이 초단편이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시간 날때마다 읽기 좋아요.
 
엄마 생물학 -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이은희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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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전 '하리하라의 과학 카페'라는 책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은희 과학저술가는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읽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올해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바로 구해서 읽은 이 책이 그동안 나왔던 저자의 다른 책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본인의 경험담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머리말 부터 순탄치 않았던 본인의 임신과 출산 과정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하나의 관점에서 말 할 수 없겠지만 여기서는 생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성평등, 젠더 갈등 등 다른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폭넓은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총 두번의 출산을 하였는데 첫 아이 출산 후 두번째 출산때 쌍둥이를 낳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세 아이 모두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얻었다고 해서 그것만해도 힘든 과정이다 싶었는데 첫째 아이와 둘째, 세째 쌍둥이가 알고 보면 '시간차 쌍둥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큰 아이를 얻기 위한 시술을 할 때 채취하여 냉동시켜 보관했던 여분의 배아를 5년이 지나 폐기 처분하려고 한다는 연락을 병원으로부터 받고는 마음이 좋지 않아 또 한번의 임신을 시도하기로 하여 여분의 배아 중 하나를 이용하여 다음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같은 시간에 형성된 배아가 5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나게 된 것. 읽고 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그동안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난자와 정자를 따로 채취하여 인공 수정을 통해 배아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임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배아가 엄마의 자궁 속에 주입되어 자궁 벽에 성공적으로 착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임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연스런 수정이 아니라 난소를 자극하여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 즉 원래 한번에 하나씩 만들어져나와야 할 난자인데, 억지로 과배란이 일어나도록 자극을 하고 그렇게 자극받은 난소는 여성에게 아픔과 고통,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어렵게 얻어진 난자와 비교적 쉽게 (?) 채취된 정자를 인공적으로 수정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과정도 자연스런 수정 과정과 같을 수 없다. 가만히 있는 난자와 가만히 있는 정자에 수정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때로는 난자 세포 표면에 구멍을 내어 정자와 퓨전이 일어나게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만들어진 배아를 엄마 자궁속에 넣어주는데, 넣어준 배아가 스스로 알아서 자궁벽에 가서 착상하는 것도 아니다. 자궁벽을 일부러 두툼하게 하기 위해 자궁벽에 일부러 상처를 내는 과정을 선행시킴으로 해서 자궁벽이 두꺼워지도록 하기도 한다는데, 자궁벽이 두툼할 수록 착상이 잘 된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던 의사들은 자궁 내막의 두께가 임신율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합니다. 
(Dickey , R.P. et al. "Endothelial pattern and thickness associated with pregnancy outcome after assisted reproduction technologies"  Human reproduction 1992)

자궁 내막이 두꺼울수록 임신율이 높았다는 분석 결과는 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자궁 내막의 두께를 늘릴수 있다면 임신율이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궁 내막 자극술입니다. 자궁 내막 자극술은 자궁안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자궁 내막을 인위적으로 긁어 상처를 내는 겁니다. 상처가 나는 경우 이 부위를 메우기 위해 세포의 재생이 활발해집니다. 때로는 이것이 과다해서 상처가 난 곳이 오히려 원래 피부보다 부풀어 올라 불룩한 흉터를 남기기도 하죠. (76쪽)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도 있는 과정을 인공적으로 하나하나 유도한다는 것은 물론 그만한 과학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하긴 하지만 얼마나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하는 과정인지, 여성이 겪는 고통과 그것을 참아내야 하는 시간들을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인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이 책에서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듣거나 읽은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겪은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목적이 아니었다.
본인이 경험했던 것을 생물학이라는 보편적인 과학이론으로 설명하는 한편, 그러는 과정에서 과학이론이 놓친 사실과 경험이 없는지 살피어 삶과 과학의 연결 고리와 차이점을 성찰하고 그려 내려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보았고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저자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생후 2개월에 큰 아이는 선천성 근성 사경이라는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했고 뇌성마비가 아닌가 해서 불안해야했다. 
인공 자궁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최근 과학 뉴스, 집밥이 정답일까 하는 제목의 워킹맘의 딜레마, 포유동물에게서는 드물게 인간의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폐경 현상에 대한 진화적 해석을 설명한 '할머니 가설', 여성의 가슴이 자연 선택된 게 아니라 성 선택의 결과라고 해석한 '상체에 달린 엉덩이 가설 (데즈먼드 모리스, 김석희 옮김 '털없는 원숭이' 문예춘추사 2006)' 등 사회 문화적인 이슈도 담고 있다.  

엄마로 살고 있든 살고 있지 않든,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처음부터 온갖 준비 다 하고 태어나 엄마가 되는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그 목적에 맞춰 기능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위해 많이 읽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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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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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 출판사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펴낸 위인 시리즈 책 중에도 빌 게이츠 편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75년 오랜 친구인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개인용 컴퓨터시대를 열었고, 이후에는 자신이 축적한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말라리아 퇴치부터 기후변화 대응까지, 범 지구적 문제 해결에 뛰어 든 자선 사업가이기도 하다. 최근엔 한국을 방문하여 방송 출연도 하고 한국의 발전을 위한 자기의 의견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에 대한 비판의 의견들도 없는 것은 아니나 궁금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뭐라고 썼을지.

70세가 된 올해 초 빌 게이츠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소스 코드> 라는 제목.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로 번역하는 바탕이 되는 프로그램' 이라는 뜻이다.

부모는 물론이고 할머니까지 대학 교육을 받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빌 게이츠는 예상할 수 있듯이 어릴 때부터 똑똑한 아이였고 게임을 즐기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게임 하기 좋아하는, 좋은 가족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집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였고,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대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잊고 거기에 빠져들어 몇 시간이고 보내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자기의 성격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기를 몰입집중이라고 말한다. 장래 희망을 우주 비행사나 과학자라고 적어 내기도 했던 그는 특히 수학에 흥미와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컴퓨터 관련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취미의 수준을 넘어 전문적인 단계까지 이르자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회사 비슷한 사업을 이미 고등학교때 시작하였는데, 일단 흥미가 꽂히고 관심이 집중되자 아무 것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학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생물이나 화학, 역사, 어학에 이르는 다른 과목의 성취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수학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대학을 하버드로 진학하면서도 곧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올거라는 예상과 함께 그것을 위한 프로그래밍 작업은 멈추지 않고 더욱 매진하게 되어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정식 회사를 차리게 되는데 회사 명칭을 마이크로 소프트로 정한다. 마이크로 컴퓨터를 위한 소프트 웨어라는 의미를 담은 명칭이다. 1975년 4월, 그의 나이 20세 때의 일이다.

사업을 수행하느라 학교는 몇 번에 걸쳐 휴학을 해야 했고 단 몇 명의 동료와 함께 사업과 학업 두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감당이 안되는 지경에 이르자 세 번의 휴학 끝에 학교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가 개발한 BASIC 이라는 소스 코드 (원시 언어)는 컴퓨터라는 것이 회사나 기업, 연구소 뿐 아니라 개인용, 가정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책에는 그 과정이 매우 자세하게 나와 있다. 빌 케이츠의 역사는 곧 마이크로스프트의 역사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다른 데 한눈 팔지 않은 것은 그러겠다는 집념을 가져서라기 보다 그의 관심을 한군데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한 수년동안의 시간의 결과이다.

한 분야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그의 성격은 타고난 것일 수 있겠지만 그 성격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해주는 것은 가족이 할 수 있는 몫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 나가는 투지력, 집중력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이 타고난 그의 성격에 더해 그의 성공을 이끈 요소가 된 것이다. 

사회 환원과 글로벌 이슈에 대한 관심은 그를 다른 기업가와 다르게 보이게 하는 점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남다른 노력과 능력이 뛰어났다기 보다는 이미 처음부터 갖춰져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도 그렇다. 

없는 것, 안되는 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으키려는 억지스런 노력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과 관심에 집중하고 몰입한 결과인 것이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앞날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어른이 되어 깨달은 경이로운 한 가지는 세월과 배움을 모두 걷어 내고 보면 나라는 존재의 많은 부분이 이미 처음부터 갖춰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모로 나는 여전히 할머니 댁의 식탁에 앉아 할머니가 패를 돌리길 기다리던 여덟 살 짜리 아이와 같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길 열망하는 어린아이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부모의 기대, 사회 분위기, 다른 사람의 시선, 인기도, 이런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내가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날에 집중하며 살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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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0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와 윈도우의 아버지 빌 게이츠가 벌써 70세시네요.사실 빌 게이츠가 이제는 IT기업의 대명사 같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로 알려져 있지만 운도 억세게 좋은 분이 셨지요.지금으 있는 듯 없는 듯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린 70년대 IT기업의 초거대 공룡 IBM이 당시에는 없던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면서 PC를 구동시키는 OS를 MS라는 신생기업의 DOS란 시스템을 채택했기에 지금의 MS(마이크로 소프트)가 있게된 것이지요.
만일 당시에대형 고가의 하드웨어를 주력으로 만들었던 IBM이 PC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견했고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면 아마 절대 외주로 OS를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IBM의 이 자그마한 잘못된 선택이 수십년 뒤에 바로 IBM과 MS의 명암을 바꾸게 되 것이지요ㅜ,ㅜ

hnine 2025-10-03 23:46   좋아요 0 | URL
IBM으로선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빌 게이츠에겐 행운이었던 셈이네요. 그런데 아마 그런 기회가 아니더라도 빌 게이츠는 다른 기회를 통해서라도 성공했을 사람이란 걸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어요.
저 대학교 1학년때 BASIC, FORTRAN 등의 언어를 수업으로 들었던 기억이 나서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미술과 건축으로 걷다, 스페인 - Spain Art Road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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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초에 다녀온 스페인은 오랫동안 꿈꿔왔고 계획했던 3주의 여행이었다. 허락된 시간은 정해져있고 되도록 많은 곳, 봐야할 곳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획하느라 보낸 시간은 3주보다 훨씬 길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에도 어디서 스페인 에 관한 영상이나 책을 만나게 되면 그냥 못지나치고 눈길을 준다. 내가 갔던 곳이 나오면 반갑고, 들르지 못한 곳이 나오면 거긴 어떤 곳인지 눈여겨 보게 된다.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던 중 서가에서 발견한 이 책은 제목의 '스페인' 뿐 아니라 '미술과 건축으로 걷다' 라는 말 떄문에 더 눈에 들어왔다. 여행을 할때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 같지 않다. 어떤 이는 종교나 역사의 현장을, 어떤 이는 트레킹이나 등산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어떤 이는 그 지역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어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은 공연 관람을 목적으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주로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건축물 위주로 보러 다니는 편이라서 이 책의 제목에서 금방 공감을 느꼈나보다.

목차를 보니 동부의 카탈루냐, 중부의 카스티야, 남부의 안달루시아, 이렇게 세 지역으로 큰 챕터를 잡아 놓고 카탈루냐 아래 바르셀로나, 지로나, 몬세랏, 피게레스를, 카스티야 지역 아래 마드리드, 톨레도, 세고비아, 쿠엥카를, 안달루시아 아래 그라나다아와 세비야를 넣었다. 이 중에 지로나와 피게레스, 쿠엥카는 내가 여행할 때 가보지 못한 곳이고, 내가 간 곳 중에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곳이 있기도 하다. 

어떤 지역을 여행할때 그 지역에서 구경포인트를 미리 정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톨레도에서는

1. 그 자체 그대로의 골목 누비기

2. 톨레도 대성당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기

3. 엘 그레코가 없었다면 이 동네 사람들은 과연 뭘로 먹고 살았을지를 고민해보기

4. 파라도르에서 멋진 전경 즐기기

우리는 주로 방문할 곳 위주로 리스트를 만드는 것에 반해 무엇 생각해보기, 고민해보기 등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마드리드에서는 마드리드 3대 미술관을 모두 들리는 열성을 보였는데, 나의 경우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갔었지만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을 못들른 것이 기억나 또한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각 미술관에 가면 꼭 봐야할 그림들에 대한 소개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꼭 보고 싶었던 그림, 인상적인 그림에 대한 소감을 적어놓은 것도 좋았다. 

바르셀로나는 워낙 가우디의 건축물로 유명한 곳이라서, 나 역시 가우디 건축물 위주로 찾아다녔는데 저자가 '가우디가 아닌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장 누벨, 조셉 푸치 이 카다파르스,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이토 오요, 프랭크 게리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소개한 것을 보니, 바르셀로나에 이런 곳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다녀온 것이 아쉬웠다. 

책의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음식에 관한 장을 두었다. 스페인 하면 워낙 특색있고 맛있는 요리들의 나라이기 때문이겠다.

책 앞에 저자 소개란에 이름외엔 별다른 소개 내용 없이 간단하기만 한데 이 책 외에도 몇권의 책을 이미 낸 바 있었다. 여행 외에도 독서 덕후, 그릇 덕후인듯. <이탈리아, 고작 5일> 이라는 책도 낸 것을 보니, 여행책은 꼭 오래 동안 많은 것을 보아야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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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23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여행 다녀오셨다니 넘 부럽습니다.만일 스페인 여행을 가게 된다면 전 아직까지도 짓고 있다는 가우디 성당을 꼭 보러가고 싶어요^^

hnine 2025-09-23 07:57   좋아요 0 | URL
내년에 완공이래요. 저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랍니다.

딸기홀릭 2025-09-2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

hnine 2025-09-25 02:49   좋아요 0 | URL
반드시 꼭~ ^^
 
등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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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버지니아 울프는 그런 작가였다. 제대로 읽어보기 전에 얻어들은 것들로 이미 선입견과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 작가.

자살로 마감한 작가가 어디 버지니아 울프뿐이냐마는 그녀의 명특하면서도 우울한 성향은 내게 '이런 소설 피해야돼.'라는 자기 방어 본능까지 발동시켜 지금까지 그녀를 제대로 알아볼 기회를 안주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이 작품 <등대로> 을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하였다. 이제까지 읽던 소설이 동네 맛집이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이 작품은 파인 다이닝이라는 것이다.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1882년 런던 출생 (음, 우리 나라에선 고종 임금때. 임오군란이 일어난 해로구나. )

<등대로>는 그녀가 44세때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자전적 내용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을 누구로 봐야하는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고, 주제 또한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선 등장인물들을 보면, 램지씨와 램지 부인, 그리고 여덟명의 자녀가 영국 스코틀랜드 해안의 한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 집에는 램지 가족 외에도 화가 지망생인 릴리 브리스코, 시를 쓰는 카마이클, 시니컬한 성격의 주인공이며 학문을 연구 중인 찰스 탠슬리, 점잖은 뱅크스씨 등이 함께 지내고 있다. 램지는 철학자로서 분별력 있고 공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램지 부인은 아름답고 기품있으며 고적하고 초연한 성격으로, 가족들을 매우 신경써서 돌보고 가족들 외에 집에 함께 머무는 친구들까지, 잘 어울리고 편히 지내도록 조율하려고 애쓴다. 이런 램지 부인을 관찰하며 흠모하는 릴리 브리스코는 33살의 노처녀로, 주위의 인물이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며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 관해, 자기의 그림에 관해 생각한다.


줄거리 속에는 별 사건이 없다. 어느 날 큰 아들 제임스가 별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등대에 가보고 싶다고 하고, 아버지인 램지 씨는 내일 날씨가 안 좋아 불가능하다고 단번에 거절한다. 그 자리에서 램지 부인은 가만히 있었지만 제임스가 상심했을까봐 마음을 쓰며 남편에게 불쾌해한다. 

이 별장에 머무는 이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사회, 문화, 책, 예술, 철학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일상적인 시간들을 기술하며 작가는 실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더 이상 섬세할 수 없게, 버니지아 울프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쓸 수 있으랴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겨우 몇개 예문을 인용하는게 의미 없을 정도로.

작가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각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을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그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고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있는데, 특히 한 등장인물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인물은 바로 별장의 안주인 램지 부인이 아니고 여기 손님으로 와 있는 릴리라고 생각된다. 릴리가 보기에 거의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램지 부인을 주의깊게 관찰하는데 램지 부인의 말, 행동,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거의 모든 구석구석을 분석하고 그녀가 자기에게 해준 말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릴리가 그리는 그림의 의미, 어떻게 진행시킬까,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며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설에 보면 램지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의 엄마를, 램지는 아버지를 반영하였다고 하고, 버지니아 울프 자신은 릴리라는 인물 속에 가장 많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고 나와있었다.

아마 그래서 10년 후에 폐허가 된 별장에 다시 돌아오는 것도 램지 부인이 아닌 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릴리가 고민하던 그림의 마지막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이 되었는지도.

알아주는 철학자로서 공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자신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램지, 그리고 그런 욕구를 존경심을 가지고 채워주는 램지 부인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보다 주위 사람의 만족을 살피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을 본분으로 안다. 결혼한 여자의 본분이 그랬었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가끔은 그녀도 자기의 삶을 뒤돌아 보며 회의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소모되기만 하는 것인가 라고. 


그녀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 작은 시간 조각들이 그녀가 살아온 오십 년 세월을 눈앞에 드러냈다. 삶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삶. 삶이라. 그녀는 생각했지만,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녀는 삶을 바라보았다. 아이들과도, 남편과도 나누지 않은 실재하는 어떤 것, 은밀한 어떤 것이 있음을 분명히 느꼈으니까. 한쪽 편에 놓인 그녀와 다른 쪽에 있는 삶 사이에서 일종의 거래가 진행되었고, 삶이 그녀를 이기려고 했듯이 그녀도 늘 삶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이따금 그녀는 (혼자 앉아 있을 때) 삶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98)


여길 보면 마치 삶이 그녀 자신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 처럼 보인다.


말없이 있는 것, 홀로 있는 것. 모든 존재와 행위가 팽창하면서 반짝이고 시끌벅적하다가 흩어져 버린다. 그러면 사람은 엄숙함을 느끼며 오그라들어 본연의 자신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쐐기 모양 어둠의 응어리가 된다. 

밀착되어 있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 이 자아는 더없이 자유롭게 기이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삶이 잠시 침잠할 때, 경험의 영역은 무한히 넓어 보였다. 

모두들 제각기 자신의 환영,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겉모습들이 유치할 따름이라고 느끼기 마련이다. 그 환영의 밑바닥은 온통 어둡고, 사방으로 퍼져 있으며, 포착할 수 없이 깊다. 그러나 이따금 표면으로 솟구치는 것이 남들에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다. (103)


램지 부인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다. 문학적으로도 아름답지만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사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 이렇게 혼자 앉아 있을 때 삶을 생각하고 극복하려하고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나의 삶은 확실히 같지 않음을, 램지 부인의 이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남이 보는 나의 모습으로 나를 규정하려는 행위는 얼마나 우스운가.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은 권위적이고 수용하지 않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고, 그 사이에서 램지 부인은 이들의 사이가 서로 이해 가능 하도록 교섭해주는 것을 자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여긴다.


10년 후. 램지 가족 내에도 변화가 생겼고, 램지 가족 일부와 릴리, 카마이클 등이 별장에 돌아오고, 10년 전 그 날과 달리 배를 타고 등대에 가보자고 램지가 제안하고 제임스 (아들)과 켐 (딸)은 아버지의 제안이 내키지 않지만 할 수없이 동행한다.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그들은 등대로 향한다. 

그들이 잘 도착했는지, 별장에 남아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던 릴리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그림의 마지막을 어떻게 해야할지 발견한다.

이 책의 큰 줄거리는 이뿐이다. 


이 책 <등대로>는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있는 중수필의 느낌도 난다. 

그녀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 무슨 얘기를 꼭 하고 싶어 단순한 서사 속에 이렇게 섬세하고 아슬아슬하기까지한 심리를, 보통 사람의 다섯 배쯤 되는 민감도와 구체성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등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읽는 사람 대부분 한번씩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 같다.

그 의미라는게 있기는 한 것인가. 있다 해도 사람마다 다를것이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을 두고 달라졌다.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것.

릴리가 이제 이세상에 없는 램지 부인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싶었지만 눈물로 대신하고 혼잣말로 삼킨, 다음의 말처럼 그녀의 심정이 되어 본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암기할 순 없을까요? 안내자도, 피난처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고, 높은 뾰족탑에서 허공으로 뛰어드는 것에 불과할까요? (292)


버지니아 울프는 사람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까지 알고 싶었나 보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작가의 어머니,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자기의 심연을, 이렇게 느끼고 말하고 살도록 만든 근원을, 바닥에서 부터 헤쳐 올려보고 싶었나보다.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헤쳐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그녀의 화법은 어둡고, 모호하고, 독백과 같을 수 밖에.

그녀는 아마도 스스로 자기 자신의 정신분석 주치의로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만의 독특한 처방전을 써내려 갔고, 우리는 그것을 즐겁게, 아니 괴롭게 읽어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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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9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20 0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19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20 0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5-09-20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주 어렵게 읽었습니다.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제게는 제일 곤란한 울프. 마침 저도 어제 새벽에 단편집 독후감 썼는데, 좋게 말하지는 못했군요.

hnine 2025-09-20 05:38   좋아요 0 | URL
이 책, 쉽게 책장 넘겨가며 읽는 분 계실까요? 더구나 Falstaff님까지 어렵게 읽으셨다면 말 다했지요.
저도 이런 저런 이유로 버지니아 울프에 쉽게 접근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친구가 저에게 강력 추천을 하기에 끝까지 붙들고 읽어보게 되었어요. 역시 쉽지는 않았는데 여러 사람의 해설을 찾아 중간 중간 참고해가며 읽으니 그래도 덜 헤매며 읽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