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물학 -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이은희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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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전 하리하라의 과학 카페라는 책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은희 과학저술가는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읽는 생명과학저술가이다. 올해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바로 구해서 읽은 이 책은 그동안의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본인의 경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머리말 부터 순탄치 않았던 본인의 임신과 출산 과정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자면 여러 관점으로 시작할 수 있고 한마디로 말 할 수 없겠지만 여기서는 생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성평등, 젠더 갈등 등 다른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자는 두번의 출산을 하였는데 첫 아이 출산 후 쌍둥이를 낳아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세아이 모두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얻는 것만 해도 힘든 과정이다 싶었는데 첫째 아이와 둘째, 세째 쌍둥이가 알고 보면 '시간차 쌍둥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큰 아이 를 얻기 위한 시술을 할 때 채취하여 냉동 시켜 보관했던 배아를 보관했다가 다음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형성된 배아가 5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동안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난자와 정자를 따로 채취하여 인공 수정을 통해 배아만 만들어지면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배아가 엄마의 자궁 속에 주입되어 자궁 벽에 성공적으로 착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임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연스런 수정이 아니라 난소를 자극하여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 즉 원래 한번에 하나씩 만들어져나와야 할 난자인데, 억지로 과배란이 일어나도록 하여 여러 개 만들어지고 그렇게 자극받은 난소는 여성에게 아픔과 고통,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어렵게 얻어진 난자와 채취된 정자를 인공적으로 수정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과정도 자연스런 수정과 같을 수 없다. 가만히 있는 난자와 가만이 있는 정자에 수정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때로는 난자 세포 표면에 구멍을 내어 정자와 퓨전이 일어나게 한다고 한다. 그렇게 겨우 만들어진 배아를 엄마 자궁속에 넣어준다고 해서 자기가 알아서 자궁벽에 착상하는게 아니다. 자궁벽을 일부러 두툼하게 하기 위해 자궁벽에 일부러 상처를 내는 과정을 선행시킴으로 해서 자궁벽이 두꺼워지도록 하기도 한다는데, 자궁벽이 두툼할 수록 착상이 잘 된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던 의사들은 자궁 내막의 두께가 임신율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합니다. 

(Dickey , R.P. et al. "Endothelial pattern and thickness associated with pregnancy outcome after assisted reproduction technologies" Human reproduction 1992)

자궁 내막이 두꺼울수록 임신율이 높았다는 분석 결과는 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자궁 내막의 두께를 늘릴수 있다면 임신율이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궁 내막 자극술입니다. 자궁 내막 자극술은 자궁안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자궁 내막을 인위적으로 긁어 상처를 내는 겁니다. 상처가 나는 경우 이 부위를 메우기 위해 세포의 재생이 활발해집니다. 때로는 이것이 과다해서 상처가 난 곳이 오히려 원래 피부보다 부풀어 올라 불룩한 흉터를 남기기도 하죠. (76쪽)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도 있는 과정을 인공적으로 하나하나 유도한다는 것은 물론 그만한 과학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하긴 하지만 얼마나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하는 과정인지, 여성이 겪는 고통과 그것을 참아내야 하는 시간들을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인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이 책에서 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듣거나 읽은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겪은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목적이 아니었다.

본인이 경험했던 것을 생물학이라는 보편적인 과학이론으로 설명하는 한편, 그러는 과정에서 과학이론이 놓친 사실과 경험이 없는지 살피어 삶과 과학의 연결 고리와 차이점을 성찰하고 그려 내려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보았고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저자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생후 2개월에 큰 아이는 선천성 근성 사경이라는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했고 뇌성마비가 아닌가 해서 불안해야했다. 

인공 자궁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최근 과학 뉴스, 집밥이 정답일까 하는 제목의 워킹맘의 딜레마, 포유동물에게서는 드물게 인간의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폐경 현상에 대한 진화적 해석을 설명한 '할머니 가설', 여성의 가슴이 자연 선택된 게 아니라 성 선택의 결과라고 해석한 '상체에 달린 엉덩이 가설 (데즈먼드 모리스, 김석희 옮김 '털없는 원숭이' 문예춘추사 2006) 등 사회 문화적인 이슈도 담고 있다.  

엄마로 살고 있든 살고 있지 않든,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태어나 평생 기능하고 있는 여성의 몸, 생물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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