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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은희경이라하면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중견 소설가임에는 분명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은희경을 좋아하고 그녀의 작품을 사랑한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아직 그녀의 소설을 몇권 읽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인터뷰 기사라든지 그녀가 새로 소설을 출간할때마다 책 소개 기사는 눈에 띨때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읽어보곤 했다. 그러면서 정작 읽은 것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였나? 그것도 끝까지 읽었는지, 읽다가 말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그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걸 보면. 그럼에도 계속 그녀가 새 작품을 낼때마다 관심있게 소개글을 읽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어떤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정작 작품을 읽지는 않고 있었다는 것은 그 기대가 책장을 넘기게 할만큼은 아니었다는 뜻.
이책 <소년을 위로해줘>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늘 나를 잡아끄는 자석이나 다름없는 청소년이 화자로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아, 그런데 그냥 그뿐, 여전히 나로 하여금 그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렇게 잊어가고 있던 중 이 책을 결국 읽어보게 한것은 다름아닌 여기 알라딘 서재의 어느 분의 페이퍼를 읽고서였다. 책을 다 읽고 올린 리뷰도 아니었는데, 나보다는 작품 속의 주인공과 더 비슷한 세대의 느낌글이라서 그랬는지 그 페이퍼를 보고 바로 책을 손에 넣어 읽어보게 되었다.
소 년 을 위 로 해 줘.
은희경의 소설들은 제목에서부터 일단 남들과 달라보이려는 의도가 보인다. 가령 '엄마를 부탁해'보다, 소년을 위로해줘, 타인에게 말걸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등, 훨씬 더 차가우면서 도발적이고 복잡한 심리의 인물, 혹은 구성이 연상되지 않는가?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를 떠나서.
읽다 보니 제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389쪽에 잠깐 나왔다.
우리 모두는 궁극적으로 우주의 어린 아들, 즉 소년들이다. 서로 위로해주자.
엄마의 애인이기도 한 재우 형이 주인공 강연우가 다니는 학교 교지에 실은 글 중 일부이다. 꼭 소년이 아니더라도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늘 그런건 아니라 할지라도 인생의 어느 시점, 누군가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한 시기가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외롭고, 뭔가를 찾아나서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러는거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연우가 특별히 위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 그리고 인물인가 하는 점에서 독자의 공감을 끌어당기기에 좀 부족하다.
그리고 문체. 그냥 나오는대로 말해보자면 겉멋 들린 것 같은 문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예쁘다는 것과 예뻐보이려고 애쓴 티가 난다는 것의 차이. 많이 아는 것과 많이 아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티가 난다는 것의 차이.
483쪽이 마지막인 이 책의 477쪽을 읽으면서는,
'결국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군 이렇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거의 실망의 수준까지 가고 말았다.
이거 하나는 명심해. 딱 한 번 잘못 발을 디뎠다가 다시는 돌아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장소란 게 있거든. 행동하기 전에 그걸 먼저 생각해야 해. 만약 이게 잘못되면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 최후의 상황까지 상상을 해본 다음에 시동을 걸라구. 그냥 딱 한 번만 해본다고? 그런 건 없느니라. 네가 이겨내지 못한 단 한 번의 충동과 잘못된 판단, 그것만으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이 말씀이야.
하하, 이건 참. 누가 할만한 말 같은가? 주인공의 엄마가? 주인공의 선생님이? 주인공의 선배 형이? 아니다. 따옴표 속에 대사 처리 되어 있지는 않지만 앞뒤 문맥으로 보건대 이건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자기 또래 다른 아이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에효...
은희경 작가는 왜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얼마나 절실하여 탄생시킨 작품일까? 작가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만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