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너의 존재감 르네상스 청소년 소설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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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재 감.

자존감은 알겠으나, '존재감'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퍼지게 되었을까.

존재감이 뭘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데 그것을 남이 알아주는 것. 이렇게 확대된 의미가 요즘 사용되는 '존재감'이라는 말에 살짝 들어가있지 않나 생각된다.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숨쉬고 먹고 잠자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고 하는 모든 행위들만으로는 존재의 증거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는 뭔가 내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존재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박수현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소개글과 올라와 있는 리뷰들을 읽어보니 구성도 독특하고 그저 그런 식상한 내용만은 아닐 것 같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고 보니, 이야기의 배경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 열 여덟 살 이순정. 부모의 이혼.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엄마 집으로 합세하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려 밤 늦게 들어오는 엄마는 집에 와서도 술에 쩔어 있는 날이 많다. 이 아이가 주요 인물들 중 첫번째. 김예리라고 나중에 이름을 밝히는 '그림자'가 두번째 인물. 이순정과 같은 반인데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고 꿈이 불확실한 아이이다. 세번째 강이지. 나서기 좋아하고 끼어들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이 아이는 돈 때문에 늘 싸우는 부모님과 아직 어린 동생 셋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의 중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게 하고 있는 네번째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세 여고생의 담임 선생님인 쿨쌤. 개학도 하기 전 일주일 미리 나와 자습을 하고 있는 미래의 자기 반 아이들 앞에 나타나 "내가 누구게?" 부터 하는 선생님이다. 미혼에 키 크고 몸매 통통. 학생들에게 '이년'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선생님. 공부만 하지 말고 쉬는 시간엔 운동장에서 뛰어 놀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매우 비현실적인 선생님. 담당 과목은 정치이지만 반 아이들에게 마음 일기장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다. 마음이랑 생각은 다른거란다.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돌멩이가 날라올 때, 앗, 돌이다! 피해야겠다! 이러는건 '생각'이고, 무섭다는 건 '마음'이라고. 즉 즉각적인 느낌, 기분을 여기서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반면 생각은 좀 더 이성적인 것, 기분보다는 대책, 행동의 방향, 지시 같은 것. 생각에 앞서 우선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 솔직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무척 중요해서, 내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어야 남이 나에 대해 하는 소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부분에서 '음, 이 책 좀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와 대화가 상당히 발랄하고 재미있다. 저자가 혹시 방송작가 출신이 아닌가 다시 봤을 정도로. 여기 나오는 쿨쌤은 실제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의 사촌동생이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그 동생 분이 무척 발랄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이 책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보니 저자와 이 사촌동생이라는 분이 함께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자료도 있었다.) 그렇게 신나는 노랫가락 같던 사촌 동생이 학교 선생님이 되고서 점점 힘든 기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으로 밖에 대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괴롭고 힘들고 급기야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다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마음이 통한 것이다. 사촌 동생은 아이들과 마음 나누기라는 방법으로 서로 치유하기를 시도하고,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말한다. 요즘 아이들에 대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은 순전히 오해였다고. 아무데서나 욕설을 툭툭 던지고 버르장머리 없고 귀하게만 자라서 아쉬울 것도 없고 아픔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이 아이들의 마음을 한 겹 들춰 보면 세상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고, 어른들만 그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엄마를 걱정하고 아빠를 여려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더라고. 그래, 청소년이라고 다를까. 청소년이 어른된다고 무슨 다른 종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도 어른들도 거기서 거기, 같이 끙끙 앓는 존재들이다. 누가 자신있게 누구를 가르치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을까. 가르치고 지시하려 들지 말고 이렇게 차라리 서로 들어주고 나누는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서사가 지지부진 해진 점, 시작에 비해 식상한 결말. 그래서 별점은 넷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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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7-0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을 피하거나 무섭다 하는 것은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에요. 느낌이자 지식이지요.

생각이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거나 사랑하거나 꿈을 꿀까 하고, 스스로 짓는 길이에요.
마음이란, 내 목숨을 돌보면서 지키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내 참모습'이고요.

이 책을 쓴 분이든 다른 사람들이든, '생각'과 '마음'을 잘 느끼면서 알면 좋겠어요.

돌이 날아올 때에 피해야겠다 하는 것은 '지식'으로서, 몸에 아로새기는 것이고,
무섭다 하는 것 또한 '지식'이면서, 이 지식을 몸으로 '느끼는' 것인 줄
잘 새겨야 할 텐데요.

아이들은 맨 처음에 무서움도 두려움도 없어요. 어른들이 지식으로 아이들한테 가르치니
무섭거나 두렵다 하고 느끼지요..

hnine 2012-07-05 20:09   좋아요 0 | URL
필요하니까 어른들이 가르치는 것이고, 그래서 '지식'은 필요한데 문제는 내 마음을 느끼고 알아차리기 전에 '지식'으로 대응하려고 하니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아닐까해요.
아이들은 정말 맨 처음 무서움, 두려움이 없더라고요. 벌레를 보고도 신기해서 아이는 다가가는데 옆에서 엄마가 무서워 피하면 그 다음부터 아이도 그 벌레를 보면 피하는 것을 종종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