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이 시작됐다 창비청소년문학 28
최인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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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석. 그가 1953년생이고 2010년에 이 책이 나왔으니 저자 나이 50대 후반에 쓴 청소년장편소설이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중년 후반의 남자 작가가 청소년소설을 냈다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읽어보니 청소년대상이라지만 내용의 수위가 만만치 않다. 열일곱 여고생과 서른 다섯 담임선생님의 교제, 술집 여주인인 친구 엄마의 벗은 몸을 보고 연정을 품는 고등학생 성준, 가출과 무단결석 끝에 고등학교 졸업도 포기하고 석수장이가 되기로 결심하는 용태, 학생과 원조교제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파면당하는 교사. 청소년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의 이런 저런 모습이 비껴가진 않는다. 오히려 방어벽이 튼튼하지 않은 탓에 더 고스란히 노출되고 더 직접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보통 청소년소설에서 한두 가지 정도 다룸직한 사건들을 다 벌여보자 작가가 작심하고 쓴 듯한 서사 덕분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마음에 남는게 별로 없다. 이 책에서만 보여주는 특별한 주제, 혹은 작가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어떻게 어떻게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결말. 그래도 그나마 결말이 부자연스러울만큼 갑작스럽지 않게 느껴진 건 연륜있는 작가의 노련한 문장력 때문이지 노련한 구성, 개연성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3인칭 시점으로 쓰여있지만 읽다 보면 술집을 하는 친구 엄마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성준에게 작가가 가장 깊이 자신의 과거를 이입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상습적으로 약탈이 일어나고 있는 시내 한복판 상가 장면으로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끝맺은 것은, 이런 약탈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의 제목도 그렇게 연결이 되긴 하지만 많이 아쉽다. 너무나 많은 책들이, 아니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뉴스에서 신문에서 보고 들어 새로울게 없는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있는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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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3-20 0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작가의 상상과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집필해도 결국은 무엇을 얘기하는지 주제 전달이 문제로군요.

hnine 2015-03-20 06:40   좋아요 1 | URL
앗, 순오기님. 아침 일찍 들러주셨네요. 창비문고는 순오기님께서도 애정하시는 책들이지요? ^^
우리 나라 청소년소설들을 보면 어딘가 좀, 2% 아쉬움이랄까, 그런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왜일까요. 청소년소설을 애정하는 또한사람으로서 느낌이랍니다.
주말이네요. 오늘 하루 잘 지내시고 주말엔 푸욱~ 쉬셔요.

파란놀 2015-03-20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문이나 방송에서 흔히 떠도는 이야기까지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에서
왜 다루어야 하는가를
저도 늘 생각해 봅니다.

굳이 그 사건과 사고를 다루어야 한다면
슬기롭게 바라보는 눈길로
사랑으로 녹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이렇게 삭이지 못한 채
그저 무턱대고 아이들한테 숙제처럼 떠넘기는 글이
너무 많이 나돈다고 느껴요...

hnine 2015-03-20 12:49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저보다 더 정확하게 적어주셨네요.
저자 나름대로 생각을 삭여 얻은 어떤 목소리가 들리길 바랐어요.

하늘바람 2015-03-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속에 남는 그 무언가.
좀 찔려요
그게 참 엄청 숙제거든요

hnine 2015-03-20 12:49   좋아요 1 | URL
어렵고 또 필요한 숙제이겠지요.
그냥 서사만 있는 이야기에서 사람들 마음에 남는 이야기 사이에는 그만한 작가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있는 것 같아요.

stella.K 2015-03-20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이 선생님한테서 잠깐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ㅋㅋ
그만큼 자기 세계가 확고 한 분 같긴 했어요.^^

hnine 2015-03-20 12:51   좋아요 0 | URL
와, stella님 이분 강의도 들으셨군요. 무섭다는 말씀이 의외로 들리지는 않아요 어쩐지 그럴것도 같다는 짐작이 들거든요 ^^ 작가에게 자기 세계가 확고하다는 것은 좋은 면도 있고 한계점이 되기도 하고 그럴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stella님이 소설을 쓰신다면 어떤 색깔의 소설이 될까요? 이런 청소년소설보다 저는 웬지 역사소설같은 좀 진지하고 무게 있는 소설이 떠오르네요.

2015-03-20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0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마선은 달무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마치 과학 논문 제목 같은 이것은 1972년에 만들어진 영화 제목이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리 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는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 6학년때였는지 중학교 1학년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고 내용도 대충만 기억한다.

억척스런 엄마와 약간 비정상적이던 언니를 둔 조용하고 말없는 아이가 주인공이었는데 학교에서 과학 경진대회 같은게 열렸고 거기에 이 아이가 발표한 과제 제목이 바로 이 영화 제목이기도 했다는 것. 처음으로 내가 나도 저렇게 혼자서 조용히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이다.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유명한 과학자들을 보면서 과학자를 꿈꾼 적 없는데, 흑백이었는지 칼라였는지도 가물가물한 이 영화를 우연히 TV에서 혼자 보면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걸 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조용한 은둔자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보다.

 

다 큰 후에 이 영화가 기억이 나서 겨우 제목만 기억하는 상태로 아무리 여기 저기 검색을 해봐도 이 영화를 찾아낼 수 없어서 안타까웠었다.

어제, 과학 과제로 조사하고 발표 준비 하는 아이 옆에서 구경하면서 그 영화 생각이 나서 얘기를 했다.

얘기를 듣던 아이가 내게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금방 검색해와서 내게 관련 사이트를 알려준다

 

영화 --> https://www.youtube.com/watch?v=MLlGZQkU3ak

 

 

영화 정보 --> http://en.wikipedia.org/wiki/The_Effect_of_Gamma_Rays_on_Man-in-the-Moon_Marigolds

 

 

3분이나 걸렸나?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찾던 걸 겨우 3분 만에.

영화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youtube에 전체 영화가 다 올려져 있었다. 1시간 40분이나 되는 분량인데 이게 가능한가보다고 그랬더니 아이 말에 의하면 구독자수가 많은 사람에겐 그렇게 용량이 크게 할당되는 혜택이 주어진다나.

 

"The Effect of Gamma Rays on Man-in-the-Moon Marigolds" (1972)

 

1964년에 원래 연극으로 공연되었던 것을 1972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그 영화를 TV에서 방영해준 것을 본 것이다.

30년도 더 지나, 오랜만에 앉아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감회가 깊었다.

그렇게 되고 싶던 과학자가 되었던가 나는?

그런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 더 뭉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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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3-19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길어서 찾아봤는데요, 연극이 있더라구요, 저는 제목만 보고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 생각났어요,

hnine 2015-03-19 06:1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
전 이제 밥하러 나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 2015-03-19 06:12   좋아요 0 | URL
아니오, 못 잤어요, 요즘 잠을 잘 못자요^^
hnine님, 좋은 아침 시작하세요

상미 2015-03-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니?
내용도 처음들어 .
역시 요즘 젊은이들-다린이 ㅎㅎㅎ 정보 수집력은 대단하다.

hnine 2015-03-20 08:25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나도 우연히 보게 된 영화야. 애들이 봐도 되는 영화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봤지. youtube 에 올라와있는건 아쉽게도 자막이 없는 영화이구나. 나야 내용을 아니까 그럭저럭 보겠는데 말이야. 어제 다시 보면서 끝나는 부분에서 울었어.

yamoo 2015-03-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독특한 제목이 끌립니다.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얼릉 찾아 볼게요~^^

hnine 2015-03-20 16:29   좋아요 0 | URL
yamoo님, 혹시 우리말로 자막이 제공되어 있는 나오는게 발견되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위에 제가 올린 동영상은 영어로만 되어 있어요. 저는 오래전이나마 (약 35년전 ^^) TV에서 한번 봤던거라 다시 봐도 그럭저럭 내용을 따라가겠는데 처음 보는 분들에게는 저대로 권유하기가 그렇네요 ㅠㅠ
 
동화의 윤리 -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
유영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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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상력과 동화>라는 그의 첫 평론집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감탄하고, 밑줄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두번째 평론집이 나왔다.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가 부제. 아이들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궁금해할 독자보다는 짐작하는 독자가 더 많으리라 본다. 아이다운 아이가 없다. 너무나 세상을 빨리 배우고 생존하는 방법을 주입받고 뒤지지 않게 달려야 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그 아이들다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아는 그 동화를 읽힌다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저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부모나 선생님으로써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을 위한 헛짓아닐까?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 선생님, 또는 어린이 책을 쓰거나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고민이 많다. 가장 힘든 주체는 어쩌면 아이들 당사자일지 모른다.

 

저자는 왜 윤리라는 말을 제목에 내세웠을까?

 

동화는 이야기이다. 동화가 이야기라는 점에서 동화는 아이들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세계와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특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동화책의 구매자인 부모의 요구는 사회적 적응을 통한 '중산층 되기'논리로 기울어지기 쉽다. 이런 기존 질서로의 편입은 문학의 윤리가 아니다. 문학의 윤리는 기존 가치관을 뒤집고 의심하며 고착화된 언어를 흔들어놓는 것이다. (14쪽)

 

윤리는, 기존 가치관을 잣대삼아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치관을 뒤집고 의심하는 것. 문학의 윤리는 언어를 수단으로 하여 기존 가치관 속에 고착화되지 않도록 흔들어놓는 것.

 

오늘날 요구되는 동화의 윤리 중 하나는 현실을 유지시키는 부모의 환상, 즉 성공 신화를 깨뜨려 그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현실을 유지하는 강력한 장치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환상을 깨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객관적 상황보다 주관적 의지를 강조하는 것,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서사 속에서 주변 상황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나만 달라졌다고 하는 것, 즉 사회적 문제의 극복 없이 개인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입지전적 인물의 형상화는 성공 신화로 함몰될 위험을 안고 있다. (23쪽)

 

이제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더 확실해졌다.

인용한 이 글들이 나와있는 첫 꼭지글 제목이 동화의 윤리-성공 신화의 폐기이다.

 

동화가 소설과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일까?

갈수록 차이가 없어져간다는 것이 그동안 나의 느낌이었고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이가 없어져간다는 것이지 같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동화가 소설과 구별되는 점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동화 장르는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보다는 낭만적 인식을 저변에 깔고 있다. '동화'라는 체로 현실을 한번 흔들고 나면 현실성, 계몽성과 함께 꼭 낭만성이 남는다. 이 체의 문제는, 낭만성과 함께 현실순응주의라는 자갈들을 필연적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48쪽)

 

비록 현실이 비극적이라 할지라도 비극적 현실을 그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낭만적 시각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읽는 대상을 생각해서이다.

 

유은실의 그간 작품과 약간 비껴간 듯한 작품 <일수의 탄생>을 예로 들면서 나온 다음 문장은 청소년이든 어린이든 그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쓸때 그들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판단하고 가르친다는 입장에서 쓰기보다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런 주인공을 내세워 쓰는 편을 지향한다는 저자의 의도를 읽었다. 유은실의 작품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이 책 저자의 다음 문장이 마음을 치고 지나간다.

 

치유의 힘을 가진 자는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질병의 소유자이거나 깊이 앓았던 자인 것이다. (51쪽)

 

동화와 더불어 1990년대 이후로 하나의 쟝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 청소년소설은 여전히 삐약거리는 병아리 단계이고 어른들이 읽는 소설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동화보다 더 혼돈스럽다. 나야 그저 읽는 사람의 입장이고 세 분야 모두에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보니 동화, 청소년소설, (어른이 읽는)소설의 구분을 꼭 해야하는지 마땅치 않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현재 동화에서 나타나는 세가지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세가지 흐름 (132쪽)

첫째, 동화의 소설화 경향

둘째, 동화와 청소년소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

셋째, 동화와 판타지, SF, 호러, 추리 등 여러 장르문학과의 결합

 

동화와 청소년소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요즘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웬만한 청소년소설은 읽고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문학의 윤리에서 설명했듯이 청소년소설의 당면 과제 역시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을 학습-기계화하고 정체성 확립을 방해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파헤쳐나가는 것(115쪽)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청소년소설인 이금이 작가의 <청춘기담> 에 대한 서평에서 저자는 단편과 장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문득 혹은 느닷없는 사건으로 무언가 삶이 어그러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이상 이전과 같이 살 수는 없다. 이제는 망가지고 훼손된 것을 회복하거나 봉합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 모든 과정을 그린 것이 장편소설이다.

단편소설은 이와 다르다. 단편은 그가 '내 삶이 무언가 어긋난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순간, 익숙했던 모든 게 낯설어져 이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깨달음이 번쩍하는 순간 끝이 난다. 그래서 좋은 단편을 다 읽고 나면 가슴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지거나,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224쪽)

 

평론집이고, 평론가이니, 더 어려운 용어로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한다고 해서 이보다 더 명쾌하고 전달력 있었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 문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책 전체가 그렇다. 어렵고 모호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능한 가장 쉽고 기본적인 언어로 묘사할 수 있는 능력, 나는 그것을 그사람의 어떤 분야에서의 능력, 혹은 실력이라고 본다.

 

이틀 걸려 다 읽고나니, 다 읽어냈다는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뭔가 더 읽고 싶은 마음이랄까?

한번 더 읽을 날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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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4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3-14 21:14   좋아요 0 | URL
우리 이미 어린이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거쳐왔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책을 읽다보면 거쳐온건 맞지만 끝나진 않아서 아직도 어느 구석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어린이와 청소년책을 쓰거나 평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그래서 뜬금없는 방향으로 글이 흐르기 쉬울텐데 이책 저자는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매일 대하고 있기 때문인지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냉철하나 이해안되는 부분 없게 쓰여진, 아주 맘에 쏙 드는 책입니다.
 

하이드님 서재에서 보고 들어가봤다.

 

http://dailyroutines.typepad.com/daily_routines/scientists-mathematicians/

 

각계 유명인사들의 Daily Routines 에 대한 사이트인데 지금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대신 책으로 나왔다.

 

종의 기원으로 알려진 찰스 다윈의 하루 일과. 아들인 프랜시스 다윈의 회상에 기초한 것인데 중년 이후 그는 이런 하루 일과를 지켜오면서 집에 손님이 왔을때조차 30분 이상의 대화를 나누는 법 없었다는데 일과에 차질이 생길까봐 라기 보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 쉽게 피곤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Charles Darwin

 

[The following is from Francis Darwin's reminiscences of his father. It summarizes a typical day in Darwin's middle and later years, when he had developed a rigid routine that seldom changed, even when there were visitors in the house.]

7 a.m.Rose and took a short walk.
7:45 a.m.Breakfast alone
8–9:30 a.m.Worked in his study; he considered this his best working time.
9:30–10:30 a.m.Went to drawing-room and read his letters, followed by reading aloud of family letters.
10:30 a.m.–
12 or 12:15 p.m.
Returned to study, which period he considered the end of his working day.
12 noonWalk, starting with visit to greenhouse, then round the sandwalk, the number of times depending on his health, usually alone or with a dog.
12:45 p.m.Lunch with whole family, which was his main meal of the day. After lunch read The Times and answered his letters.
3 p.m.Rested in his bedroom on the sofa and smoked a cigarette, listened to a novel or other light literature read by ED [Emma Darwin, his wife].
4 p.m.Walked, usually round sandwalk, sometimes farther afield and sometimes in company.
4:30–5:30 p.m.Worked in study, clearing up matters of the day.
6 p.m.Rested again in bedroom with ED reading aloud.
7.30 p.m.Light high tea while the family dined. In late years never stayed in the dining room with the men, but retired to the drawing-room with the ladies. If no guests were present, he played two games of backgammon with ED, usually followed by reading to himself, then ED played the piano, followed by reading aloud.
10 p.m.Left the drawing-room and usually in bed by 10:30, but slept badly.

Even when guests were present, half an hour of conversation at a time was all that he could stand, because it exhausted him.

Adapted from Charles Darwin: A Companion by R.B. Freeman, accessed on The Complete Work of Charles Darwin Online.

(Thanks to Eoin McCar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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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3-1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에 읽었던 <리추얼> 생각났어요^^ hnine 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hnine 2015-03-14 21:15   좋아요 1 | URL
<리추얼> 검색해보고 왔어요. 그 책도 흥미있어보이네요. `리추얼`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데일리 루틴`이 곧 리추얼이 되는거군요, 적어도 뭔가를 이루어낸 사람에게는요.

하이드 2015-03-1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식으로 나오는데, 되게 재미있어요. 번역본 나왔을때는 안 땡겼는데, 사이트 보니깐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hnine 2015-03-14 21:17   좋아요 0 | URL
한 사람꺼 읽다보니 계속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며 읽게 되더라고요. 이런 사이트 만든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요.

몬스터 2015-03-14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넉 줄이면 충분하겠어요. ㅎㅎ

hnine 2015-03-14 21:19   좋아요 0 | URL
위에 저도 넉줄이라고 쓰고 다시 생각해보니 한줄 추가되었어요. 4:00 am, 11:00 am, 5:00 pm, 7:30 pm, 11:30 pm, 전 이렇답니다 ^^
몬스터님, 정말 정제된 일과를 갖고 계시군요.

상미 2015-03-2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근데, 너 너무 일찍 일어난다...
4:00 am이 일어나는 시간이겠지?

단조롭기로 나만큼 단조로운 삶이 있을까 ㅎㅎㅎ
물론 기한이 있으니 버틴다마는....
하던 일도 안하고,
내가 해야했던 일도 남이 해주다 보니.

hnine 2015-03-20 08:31   좋아요 0 | URL
4시보다 더 일찍 깰 때도 있어 ^^ 그런 날은 최소한 4시 될때까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누워서 버티지.
외국에 있으면 확실히 한국에서보다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아. 한국 사회라는게 많이 복잡하고 상업화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서 덜 심심하고 덜 단조롭고 무슨 무슨 이벤트도 많고.
좁은 한국에서도 서울 생활과 지방에서의 생활이 또 틀리단다. 대전에서 서울의 다이내믹한 생활을 가끔, 아니 자주 그리워하고 있으니.

상미 2015-03-20 08:3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남편 출근 시키고,
하루에 운동을 서너 시간해.
4킬로쯤 걷고 수영 한 시간 하고...
경은 아빠가 철인 삼종 경기 나갈거냐고 ㅎㅎ
운동 한 날이 그래도 푹 자니까.
열심히 운동한다.
내가 땀 흘리는거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몰랐는데, 내가 운동을 좋아하더라구.
일주일에 두 번 장보고, 저녁 준비 하고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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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나이 예순에 알았던 것, 그것을 나는 이미 스무 살에 깨닫고 있었다. 확인을 위한 사십여 년에 걸친 길고, 무용한 작업......(16쪽)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종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43쪽)

 

사람이 늙어갈수록 '문제'를 제쳐 놓고 자신의 과거를 들쑤셔 보는 것은 아마도 사념에 집중하기보다는 추억을 뒤적이는 것이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리라. (71쪽)

 

냉소로써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도울 수 없는 법이다. 냉소로써는 오로지 자신의 상처-자신의 혐오감이 아니라면-만을 감출 수 있을 뿐이다. (213쪽)

 

나는 불안에 대한 처방을 회의에서 찾았다. 처방은 마침내 병과 한통속이 되어 버렸다. (220쪽)

 

자동장치와 변덕의 혼합물인 인간은 결함 있는 로봇, 고장난 로봇. (230쪽)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기초를 뒤흔드는 것, 자신의 기초를 뒤흔드는 것을 말한다. 행동은 우리 사이의 간극을 채워 주는 까닭에 보다 위험성이 적다. 반면에 사고는 그 간극을 위험스러울 정도로 넓혀 놓는다. (260쪽)

 

구원은 없다는 확신은 구원의 한 형태이며, 구원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거기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역사 철학의 체계를 세울 수도 있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유일한 출구롤 삼음으로써..... (265쪽)

 

나는 왜 이사람의 책을 읽는가.

그에 대한 답을 책 속의 한 문장에서 찾았다.

 

내면 깊은 바닥에까지 내려가 있는 사람, 일상의 환상들로 되돌아갈 욕구도 기력도 잃은 사람과 나는 마음이 통한다. (43쪽)

 

산다, 살아간다, 살아낸다

같지 않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를 읽은 후 두번째로 에밀 시오랑의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관점으로 한번 보았다. 그 역시 살아내려고 했고, 그래서 실망하고 아파했, 그래도 그건 진행형이었기에 끝까지 살아내었다. 무엇이 그를 끝까지 버텨내게 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마지막까지 가보기 전엔 결코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의 생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직접 끝까지 살아보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 것은 내가 어떻게 한 시각 한 시각을, 하루하루를, 한 해 한 해를 넘길 수 있을 것인가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이었다. (273쪽)

 

태어남이 불행이라는 말의 뜻은, 태어날때의 순수성과 본성을  살아가면서 점점 잃어버리게 되고 퇴색되고 변색되고 왜곡되어가는 것에 대한 통탄의 라고 본다. 태어날때, 혹은 태어나기 직전이 그래서 가장 덜 불행하다고 한 것이다.

 

삶을 한번 이렇게 보기 시작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기란 어렵다. 에밀 시오랑은 이것을 황홀경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겨우 찾아낸 출구를 보면서 다른 출구를 찾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선 것 자체가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회의주의는 막다른 길에 몰린 자의 황홀경이다. (156쪽)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 상황을 명징하게 볼 수 있는 힘이 과연 있을지. 명징하게 볼 수 있으려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보다 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이 있을까 싶은 상태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묻게 된다. 즉, 객관적 회의주의란 가능할까, 회의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명징하게 볼 수 있는 힘만이 사막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유일한 악덕이다. (22쪽)

 

명징하게 볼 수 있었는지, 그것은 잘 몰라도 에밀 시오랑은 적어도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명징한 언어로 표현하는 힘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전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에 비해 짤막한 글들이 아포리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읽혀진다. 원제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책 안쪽에 물론 나와있는데 프랑스어엔 까막눈이다보니. '존재의 불편함', 뭐 이런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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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3-1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을 뽑아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그중 인상 깊은 것 세 개만 뽑으라면,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종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회의주의는 막다른 길에 몰린 자의 황홀경이다)

이 세 가지 문장의 공통점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라는 것, 이네요.

아포리즘의 글을 좋아해서 예전에 이런 류의 책을 찾아 읽었어요.
이 책 팍팍 끌리는군요.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명징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더욱...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를 다시 들춰 봐야겠어요...

hnine 2015-03-14 12:37   좋아요 0 | URL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아포리즘 식이 아니었고 글도 더 촘촘했지요.
이 책이 훨씬 더 쉽게 읽힌건 토막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에밀 시오랑이 어떤 식으로 쓸지 예측하고 읽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이런 내용의 책을 누군가 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다양한 사고 방식의 하나로 보기 보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결정내리려고 하는 우리의 습관이 이런 책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