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참 많이 온 8월이었습니다 ('이것 봐. 8월이었다고, 이렇게 과거형으로 쓰는 날이 오잖아?')

비가 아주 많이, 쏟아붓듯이 오기 전

그나마 갑천변을 걸을 수 있었던 날입니다.

 

물방울이 잎 위에 저런 모양으로 맺혀 있네요.

'사진 제목을 <표면장력>이라고 해야하나?'

 

 

 

 

 

 

 

 

바람은 눈에 안보이지만

바람이 해놓은 일은 보입니다.

풀들이 단체로 누워버렸어요.

 

 

 

 

 

 

아직 어린 <수크령>이네요.

 

 

 

 

 

 

 

 

 

 

 

비바람이 만들어놓은 풀들의 웨이브.

 

 

 

 

 

 

 

 

일부러 만들어 놓은 계단이 아니라

떨어져있던 소나무잎이 저렇게 계단 모양으로 뭉쳐있었습니다.

바람이 어떻게 불면 저런 모양의 나뭇잎 퇴적이 생기는지 신기했어요.

 

 

 

 

 

 

 

새벽에 제 방 망창에 저런 곤충이 붙어 있었습니다. 빨간 날개.

처음 본 저는 신기해서 사진 찍어 보여주었더니 남편 말이 중국매미라면서 해충이라네요.

검색해보니 <주홍날개꽃매미> 같은데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코로나에 장마까지, 집에서 칩거하는 것에 너무 너무 지친 날.

혼자 집 앞 카페에 간 날도 있었습니다.

2층 창가에 앉아 1시간 쯤 있다 왔습니다.

마스크는 계속 하고, 커피는 그냥 폼이었어요.

 

 

 

 

 

어느 날 오후, 장 봐가지고 오다가 하늘을 보니 저런 그림이었습니다.

(사진 보정 하지 않음)

 

 

 

 

 

 

 

 

 

 

 

 

 

 

 

강풍과 함께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창문을 닫아 놓아 높아진 실내 습도.

빨래는 안 마르고 몸은 끈적하고

5분 간격으로 짜증이 나는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시 비바람의 강도가 수그러든 틈을 타서 우산들고 튀어나가 집 주위를 한바퀴 돌고 들어왔어요.

몸을 씻고,

읽던 책 들고,

방바닥에 벌렁 누웠습니다.

'이제 이렇게 잠들면 돼.'

 

비는 다시 세차게 내리고 있는데,

비 소리가 아까와 다르게 상큼하게 들리는겁니다.

'같은 빗소리인데,

내가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 짜증나게 들리기도 하고

상쾌하게 들리기도 하는구나.'

 

우리의 느낌이라는 것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주장할 만한 것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 코로나 사태도,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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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2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카페에 혼자 있으려면 2층 창가가 짱이죠.
하도 코로나 코로나 하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그 배짱이 잠깐 부럽기도 하더군요.
사람이 팔과 다리를 묵고는 못 사는 법인데 그걸 강제하는 것도 한계는 있겠다 싶기도 해요.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이 어느 날 집단 항체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건 아닐까
얄궂은 상상도 해 봅니다.ㅋㅋ

hnine 2020-08-22 04:33   좋아요 0 | URL
이번 주말이 또한번 고비가 되어 큰 결정이 내려질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최소한으로 움직이고 최대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고 보니 참 답답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럴때마다 더 힘든 상황에 있을 환자라던가 몸이 불편하신 분들 생각하며 불평 말라고 스스로 가르치지만 그게 오래 못가네요 ㅠㅠ

바람돌이 2020-08-2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갇혀 있는 날 저 사진들로 힐링이 되네요. 방금까지 열심히 집 치우다가 아 나도 집에서라도 커피 내려야겠다 합니다.

hnine 2020-08-22 04:36   좋아요 0 | URL
네, 집에서 카페 놀이, 식당 놀이, 서점 놀이, 다 한번씩 돌아가며 해야해요 ^^
식구들에게 괜히 짜증내지 않도록 해야겠다 미리 마음 단속도 해보지만 알고 보면 제가 제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있더라고요 누구 탓도 아닌데.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요.
커피 맛있게 내려 드세요~

조선인 2020-08-2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코로나도 과거형으로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합니다.

hnine 2020-08-22 04:38   좋아요 0 | URL
이렇게 오래 갈줄 몰랐어요 정말.
가을 바람 선선하게 불면서 코로나도 사라져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겨울까지 갈 것 같다는 뉴스 기사 보면서도 이런 마음을 버릴 수가 없네요.
조선인님 올해 안그래도 병원 다니시느라 고생 많으신데 몸 조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난티나무 2020-08-2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과거형 빨리 쓸 수 있기를....

hnine 2020-08-22 04:41   좋아요 0 | URL
과거형도 좋고 과거 완료형도 좋고. 현재 진행형만 아니라면 참 좋겠어요 ^^
어린 아기들, 기저질환 있으신 환자분들 가족은 장기간 어려움이 더할거예요. 평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요즘 많이 깨닫고 있고요.
장마는 그나마 빨리 끝나는거였어요 코로나에 비하면 ㅠㅠ

페크pek0501 2020-08-2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 아주 멋집니다. 내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요.

코로나19 끝나고 옛일을 얘기할 날이 분명히 온다고 믿어요. 그땐 그랬지, 하면서 말이죠.

hnine 2020-08-22 11:57   좋아요 1 | URL
사람이 일부러 그림을 그린다고 한들 저런 모습일까 생각했답니다.
자연을 너무 만만히 생각하고 살고 있구나 안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중국에선 양쯔강 주변 큰홍수로 수만명 이재민이 생기고 있다는 뉴스 보면서, 아무리 기술과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인이상 자연 재해의 무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역시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을 겪어내면서 하고 있답니다.
그때 그랬지, 그런 얘기를 할 날이 분명히 올테니 잘 참고 기다리고 있어야겠어요.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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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 '식후에 이별하다' 마지막 연

    2008, 문학과 지성사 <슬픔이 없는 십오초>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라는 물음 속엔, 자기 쪽 풍경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있는 쪽은 어둠이다. 천 만 억을 세어도 빛나지 않고 걷히지 않는 어둠이다. 까마득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두 권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제목에 모두 '없다'는 부정어가 들어가 있다. 슬픔은 겨우 십오 초 정도만 부재해주었다고, 부재하는 연인에 대해 예찬한 심보선은 내 머리 속엔 시인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처음부터 시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고 시가 아닌 다른 전공으로 교수직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를 시만 쓰는 시인으로 쉽게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두 시집에 실린 시들로 인해 그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1994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2008년에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는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2011년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작년 2019년엔 그동안 다양한 지면에 발표한 짧은 산문들을 묶어 이 책을 내었다. 출간을 위해 지난 글들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양 어색하고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어색하고 부끄러워하는 그 느낌도 그 자신의 한 부분일 것이다.

산문집에서 만난 그는 적어도 시만 쓰는 시인은 아니었다. 사회의 여러 약자들의 외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참여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에서 열리는 예술 워크샵에 참여하고 (207쪽, '달려라 중학생'),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를 보며 악이 얼마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잠수사들의 증언을 통해 발견하는 사람 (216쪽, '선과 악의 평범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규명하자고 기획된 공연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218쪽, '기억을 위한 장소'). 쌍용차 해고 노동자, 현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트위터 상에 소리연대라는 기획을 내놓기도 하였다 (226쪽, '어색하고 부끄러운 기쁨').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에 실렸던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긴 시는 용산 참사 2주기 추모행사에서 낭독했던 시라고 한다.  

그가 시 속에서 부재를 자주 언급하고 즐겨 사용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한다기 보다 존재를 넘어 있을,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 무엇을 인정받게 하고 추구하고 싶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음 구절을 통해 짐작해보았다.

 

시인은 없어져도 시 쓰는 사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 안에 우리를 넘어선 존재가 숨어있는 한 말이다. (203쪽, 시 쓰는 사람)

 

책 리뷰를 쓰기 전에 예전에 읽은 그의 두권의 시집을 꺼내왔다. 밑줄 그어 놓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두 시집 속 밑줄 그어놓았던 부분들과 지금 읽은 산문집을 다시 들춰보기를 반복했다.

이 쪽 풍경은 답답하고 숨막힌다. 그쪽 풍경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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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 쓰는 사람 중 시인들이 가장 존경스러워요. 단 몇마디의 언어로 최적의 감정을 표현하는건 정말 신이 내린 경지같다는..
덕분에 오늘 시 한편을 또 알고 가네요

hnine 2020-08-19 05:06   좋아요 0 | URL
위에 인용한 시에 나오는 ‘폐허‘라는 단어는 심보선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라는 시에서는 자기 생을 폐허에 비유했는데 그냥 폐허가 아니라 ‘빛나는 폐허‘였다고 했어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이런 단어 조합, 이게 노력으로만 될까 싶지요 타고 난게 있고서 노력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시를 처음 읽을땐 시 전체의 느낌을 보다가, 마음에 들어오면 단어 하나 하나 다시 새기며 읽어보게 되는데 그러면 더 좋아지고 감탄할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시집은 한번만 읽게 될 수가 없어요.

페크pek0501 2020-08-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두뇌를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시를 읽다가요...

hnine 2020-08-22 11:47   좋아요 1 | URL
저는 시인의 일기장을 훔쳐 보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시가 맘에 들면 나중엔 시보다 시인에 더 관심이 갈때도 많고요. 사람과 그 사람의 창작물을 구분없이 받아들일때가 많은데 별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시인.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언젠가 본 영화에서 시인이 그렇게 정의를 내리더군요.
 
안녕, 바이칼틸 숨쉬는책공장 청소년 문학 2
이주현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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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이 소설 첫문장은 주인공인 열네살 소녀 설희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제목의 바이칼틸은 러시아어로서 우리에겐 가창오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새의 한 종류이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설희는 할머니, 엄마와 함께 강제로 태워진 호송열차에서 탈출하기 위해 뛰어내리면서 할머니, 엄마와 헤어지게 되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가 된 설희. 허허벌판에서 만난 새가 바이칼틸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 역사 소설이다.

책장을 넘기면 글자가 큼직하고 행간도 넉넉하여 가볍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갈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러일전쟁후 일본과 관계가 악화된 러시아는 연해주에 살던 일본인과 함께 고려인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 까지 강제 이주 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쫓아낸다.

연해주에 살고 있던 설희네 가족은 독립운동하던 아버지가 러시아 경찰에 끌려가게 되고 남아있는 설희 가족은 이 강제 이주 열차에 태워져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호송되어 가고 있던 중이다. 할머니의 제안으로 모두 열차에서 뛰어내려 탈출하기로 하는데 설희가 먼저 뛰어내려 할머니, 엄마와 헤어지게 된다.

이후 엄마와 할머니를 찾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하얼빈, 조선의 북쪽 마을 온성, 울릉도에 이르기까지,설희가 오랜 시간 긴 여정을 혼자 겪어가는 이야기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털보아저씨와의 만남, 카자흐스탄 까레야 마을까지 고생해 찾아갔지만 가족은 찾지 못하고 안나라는 이름으로 브로에 카페에서 지내게 된 일, 다시 하얼빈으로 가던 중 생체실험장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나온 일, 함경북도 온성 마을로, 다시 울릉도로 오는 동안 열네살이던 설희는 열여덟살이 된다.

그 시대 고난의 역사를 몸으로 겪어내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특히 청소년기 소녀의 삶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원래 단편 초고로 작성한 것이 15년 전이었고, 하얼빈을 직접 다녀올 기회가 생기면서 장편 서사가 본격적으로 그려져 올해 200여쪽의 소설로 나오게 되었다. 완성에 15년이 걸린 셈이니 그동안 들여졌을 작가의 시간과 노력, 끈기가 대단하다 생각된다. 바이칼틸이라는 철새를 이야기의 도입과 마무리에 등장시켜 설희는 물론 우리 민족의 처지를 비유하였고 마침내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다.

200여쪽 분량이 청소년 소설로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무대, 서사를 그 분량으로 다 전달시키려다보면 과부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재미 사이를 줄타듯 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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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5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다가 조금 헷갈릴 수 있을듯하여 말씀드려요. 러일전쟁은 1904년에 시작해서 1905에 끝났고 러시아는 1917년 볼세비키혁명으로 무너졌어요. 그후 1922년에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탄생하는데 이는 러시아지역과 주변 국가들을 합친 연방국가였죠. 우리가 흔히 소련이라고 불러요.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에 대한 강제이주는 이 소련의 등장 이후 스탈린 시대 즉 1937년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강제이주의 주체는 러시아가 아니라 소련이 되어요. 소설의 시대배경이 헷갈릴수 있을것 같아서 잠시 한자 적어요. ^^

hnine 2020-08-16 04:3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늘 러시아에서 소련, 다시 러시아로의 전환시기와 계기에 대한 것이 헷갈렸었는데 설명해주신 것 읽으니 잘 알겠네요. 본문을 인용하다보니 정확하게는 소련으로 표기되어야 할 곳도 러시아로 적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0-08-17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성장 소설 많이 읽었어요. 특히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은 흥미롭지요.
동화나 청소년 소설도 어른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중요하니까요. 자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도 되고요.
어느 책에서 봤는데 동화나 어른 책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어린 왕자>의 경우 생텍쥐페리가 동화로 쓴 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나 동화로 읽히기도 하고 그래서 더 좋은 책이라고 하네요.
정채봉 작가가 새 장르를 개척했다고 하는데 바로 ‘어른이 읽는 동화‘를 썼다는 거라고 합니다.
저도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구입해 읽어야겠습니다.

hnine 2020-08-17 16:05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좀 뜸했지만 성장소설 무척 좋아해서 많이도 읽었어요. 제 안에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있어서 그런가봐요.
요즘은 그림책에도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그림책도 일부러 구입해서 옆에 두고 볼까 생각중이어요. 나이들어간다는 증거일까요? ^^
 
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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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세여성이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듯 진행하는, 즐겨듣는 팟캐스트가 있다. 내려받기해서 산에 오를때 듣곤하는데 그날 진행자중 한명이 에너지 충전이 필요할때, 지치고 힘들때, 혼자서 내리는 처방같은 것으로써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면서 심지어 아껴가며 읽는다고까지 했다. 물론 정세랑이라는 이름을 익히 알고는 있다. 나온 소설도 여러 권이고 편집자 출신 작가라는 것, 재미있게 쓰는 작가라는 것 알고 있었음에도 아직 한권도 그녀의 책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이날은 드디어 읽어봐야겠다고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오픈한 도서관엘 갔는데, 다 대출중이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책이 바로 이 책 <재인, 재욱, 재훈>이었다. 읽고 싶었던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루기 싫어 빌려왔다.

출판사에서 노벨라 시리즈로 낸 짧은 소설이라서 160쪽 밖에 되지 않는다. 삼남매 재인, 재욱, 재훈은 재욱의 출국을 앞두고 함께 휴가를 보낼 목적으로 바닷가로 놀러간다. 여기서 미묘한 형광색의 바지락을 먹은 후 세사람 모두 가벼운 초능력 같은 것을 얻게 된다. 재인에게는 강력한 손톱이 자라나게 되었고, 재욱의 눈엔 트러블감지기가 내장되었으며, 재훈에게는 엘리베이터가 자기만을 위해 서는 일이 일어난다.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 예전엔 없던, 다른 사람에겐 없는 능력을 가지게 된 이들은 누군가를 도와주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렇게 한다.

가볍고, 산뜻하고, 발랄한 이야기이다. 길지도 않은 분량 읽으면서 세사람의 이름을 계속 헷갈려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까? 비슷한 이름에다가, 성별, 누가 첫째이고 막내였더라, 누구에게 무슨 능력이 생겼더라, 아마 읽는 동안 집중하지 않았나보다.

갑자기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발상도 특이하지만, 세사람의 활동무대가 대전, 아랍, 미국 조지아주 염소농장이라는 설정도 특이하다. 세 곳에 대한 묘사를 아주 세밀하게, 작가가 직접 경험했던 것 처럼 생동감있게 썼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중에 작가 후기를 보니 작가는 주위 친구나 가족에게서 그 소재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늘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소설에 이용함으로써 생생하게 쓸 수 있다고. 어떤게 더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지인으로부터의 이야기가 먼저이고 그것을 소설의 무대로 설정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랍, 대전, 미국 시골의 염소농장이 너무나 각각이라서 말이다. 다른 곳은 모르겠고 대전에 대한 묘사는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하나도 실제와 다른것이 없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의 의미와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아서 누군가의 일생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과연 재미있게 쓰는 작가였고, 딱 이 분량으로 쓸만한 소재를, 최대한으로 살려 썼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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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선으로부터 읽고 지금 지구에서 한아뿐 읽을려고 해요. 이 작가의 글 좋더라구요
^^

hnine 2020-08-13 04:57   좋아요 0 | URL
저도 <시선으로부터> 읽고 싶어요. <재인 재욱 재훈>은 재미는 있는데 이 작가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엔 섣부르고 최근작이나 대표작을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능력이란 아무나 타고나는게 아닐텐데 타고난 작가의 길로 잘 들어선것이겠죠?
 
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쓴다면 이 정도는 써야겠지.'

다 읽고 우선 느낀 점은 그거였다. 미스테리한 표지, 갸우뚱하게 하는 제목의 이 책은 인기 폭풍을 이미 한차례 거친 후이고 나는 어쩌다 지금에야 읽게 되었지만 기대를 넘어섰다. 기대보다 덜 식상하고, 속도감있게 읽었고, 어둡고 침침하지만은 않았으며, 작가의 메시지가 모호하지 않게 전달되었다.

아미그달라 (Amygdala, 편도체, 扁桃體). '아미그달라'라는 이름의 어원부터가 아몬드 열매처럼 생겼다는데서 유래한다. 한자로 번역되는 과정에선 아몬드가 복숭아씨로 바뀌어 '편도체'가 되었지만 말이다. 크기도 아몬드 열매 크기 정도인데 우리 뇌의 한 부분으로서 좌우 하나씩, 해마 (Hippocampus)끝에 달려 있다.

주인공 윤재의 엄마가 선천적 편도체 위축을 가지고 있어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지고 있는 윤재의 증세를 고쳐보려고 아몬드 열매를 매일 먹도록 시키는 대목이 나오는데 실제로 아몬드 열매에 그런 효과가 있는지는 들어본 적 없지만, 뜬금없는 것 같으면서도 내용과 관련 없지 않는 아몬드가 이 소설의 제목인 것에 나는 플러스 점수를 주고 싶다.

아버지 없이 엄마와 할머니 손에, 그리 풍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지만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윤재를 사랑으로 키우고 절망적으로 말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것도 윤재의 생일이고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한 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현장에서 할머니는 윤재를 보호하려다 그 자리에서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윤재는 사실상 혼자가 된다. 할머니의 사망 보험금과 엄마가 하던 중고책방을 당분간 맡아하며 윤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거기서 윤재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해줄 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윤재처럼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지면 오히려 요즘 같이 감정 과다가 문제가 될 수 있고, 감정 과다가 곧 우울증으로 연결되기 쉬우며, 감정 억제가 곧 논리적 합리적인 것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아남기에 더 유리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담아 졸작시를 끄적그려본것도 있다. 아래 접힌 부분)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윤재를 보며 오랜만에 떠올랐다. AI 인간형이라고나 할까.

신체적으로 가정적으로 결핍의 조건으로 시작하여 그 상황을 헤어나오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결국 주저앉고 마는 것으로 이 소설이 끝날까? 아니면 불굴의 의지와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 극복한다는 드라마조로 흐를까? 그렇다면 이 소설이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겠지? 혼자 섣부른 추측을 해보며 읽는 것도 내게는 소설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단순히 플롯을 짜지 않았고, 그렇게 독자가 예측할 수 있는 쪽으로 가지 않았다. 대단한 반전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작가는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유감없이 표현하며 이야기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편도체 위축이니, 감정표현 불능증이니 하는 과학적이고 분명한 규정을 넘어서, 인간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살아남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 읽고 작가 후기를 읽다가 한줄에서 눈이 멈췄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결핍 없는 내면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한다.'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문장이었다.

결핍 없는 내면.

아낌없는 사랑.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며 자기가 받은 것 보다는 결핍되었던 것을 먼저 떠올리고 자신을 연민하는데 급급하기 일쑤인데, 이 작가는 결핍 없는 내면이라고 자신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가 내게 해준 것보다 해주지 않은 것을 먼저 떠올리며 차별, 무관심, 애정결핍이라고 탓을 하기 일쑤인데, 아낌없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꼭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결핍 없는 내면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한때는 내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것이 작가가 될 깜냥이 못 되는 거라 생각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다. 세월을 거치면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평탄한 성장기 속에서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몹시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수 있는 힘을 주는지, 부모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262쪽, 작가 후기 중에서)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 부지런히 아는 사람들 이름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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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재조합 

 

 

조증 유전자를 넣어주세요.
전 아마도 선천적으로 그 유전자에 
부분적 결실이 일어났는가봐요.
가능하다고요?
좋아요.
다른 유전자까지 같이 들어오지 않게
말끔하게
조증 유전자만 넣어주셔야해요
서약서에 서명하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요?
여기 주의 사항이라고 깨알만하게 적혀있는
이 말 말이어요
이 유전자가 들어가고 나면
울증에서 벗어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울증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요?
하필 조증 유전자 삽입 위치가
정서 공감 유전자 중의 하나를 비집고 들어가야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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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11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쩌다 아직도 못 읽은 1인입니다.
h님 부지런히 떠올린 이름중에 저도 있던가요?
그렇다면 함 읽어보겠습니다.ㅋㅋ

hnine 2020-08-11 21:35   좋아요 0 | URL
이 저자가 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고 시나리오와 영화 작업도 하고 있으니 stella님께서도 관심있게 보실 것 같아요. 최근 직접 감독한 작품도 개봉을 했는데 전 못봤네요. 작가로 더 나갈지 감독으로 더 이름을 빛낼지, 지켜보고 싶어요.

moonnight 2020-08-1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중2 조카아이도 좋아했구요. 아낌없는 사랑으로 결핍없는 내면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이라니.. 부모로서 정말 뿌듯할 찬사로군요. 손학규씨 기쁘겠어요@_@;;

hnine 2020-08-11 21:38   좋아요 0 | URL
한국 소설에 잠시 시큰둥하고 있느라 격조하고 있는 동안 아몬드 인기가 몰고 지나갔지요. 뒤늦게 손에 잡혀 읽게 되었는데 감히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저 가끔 이런 망상을 해보며 즐거워합니다 ^^).
자기 어린 시절과 자기 부모에게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정말 드물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나중에 이 작가 가족사항을 알고서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