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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바이칼틸 ㅣ 숨쉬는책공장 청소년 문학 2
이주현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8월
평점 :
사방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이 소설 첫문장은 주인공인 열네살 소녀 설희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제목의 바이칼틸은 러시아어로서 우리에겐 가창오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새의 한 종류이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설희는 할머니, 엄마와 함께 강제로 태워진 호송열차에서 탈출하기 위해 뛰어내리면서 할머니, 엄마와 헤어지게 되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가 된 설희. 허허벌판에서 만난 새가 바이칼틸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 역사 소설이다.
책장을 넘기면 글자가 큼직하고 행간도 넉넉하여 가볍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갈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러일전쟁후 일본과 관계가 악화된 러시아는 연해주에 살던 일본인과 함께 고려인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 까지 강제 이주 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쫓아낸다.
연해주에 살고 있던 설희네 가족은 독립운동하던 아버지가 러시아 경찰에 끌려가게 되고 남아있는 설희 가족은 이 강제 이주 열차에 태워져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호송되어 가고 있던 중이다. 할머니의 제안으로 모두 열차에서 뛰어내려 탈출하기로 하는데 설희가 먼저 뛰어내려 할머니, 엄마와 헤어지게 된다.
이후 엄마와 할머니를 찾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하얼빈, 조선의 북쪽 마을 온성, 울릉도에 이르기까지,설희가 오랜 시간 긴 여정을 혼자 겪어가는 이야기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털보아저씨와의 만남, 카자흐스탄 까레야 마을까지 고생해 찾아갔지만 가족은 찾지 못하고 안나라는 이름으로 브로에 카페에서 지내게 된 일, 다시 하얼빈으로 가던 중 생체실험장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나온 일, 함경북도 온성 마을로, 다시 울릉도로 오는 동안 열네살이던 설희는 열여덟살이 된다.
그 시대 고난의 역사를 몸으로 겪어내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특히 청소년기 소녀의 삶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원래 단편 초고로 작성한 것이 15년 전이었고, 하얼빈을 직접 다녀올 기회가 생기면서 장편 서사가 본격적으로 그려져 올해 200여쪽의 소설로 나오게 되었다. 완성에 15년이 걸린 셈이니 그동안 들여졌을 작가의 시간과 노력, 끈기가 대단하다 생각된다. 바이칼틸이라는 철새를 이야기의 도입과 마무리에 등장시켜 설희는 물론 우리 민족의 처지를 비유하였고 마침내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다.
200여쪽 분량이 청소년 소설로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무대, 서사를 그 분량으로 다 전달시키려다보면 과부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재미 사이를 줄타듯 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