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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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 '식후에 이별하다' 마지막 연

    2008, 문학과 지성사 <슬픔이 없는 십오초>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라는 물음 속엔, 자기 쪽 풍경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있는 쪽은 어둠이다. 천 만 억을 세어도 빛나지 않고 걷히지 않는 어둠이다. 까마득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두 권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제목에 모두 '없다'는 부정어가 들어가 있다. 슬픔은 겨우 십오 초 정도만 부재해주었다고, 부재하는 연인에 대해 예찬한 심보선은 내 머리 속엔 시인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처음부터 시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고 시가 아닌 다른 전공으로 교수직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를 시만 쓰는 시인으로 쉽게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두 시집에 실린 시들로 인해 그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1994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2008년에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는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2011년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작년 2019년엔 그동안 다양한 지면에 발표한 짧은 산문들을 묶어 이 책을 내었다. 출간을 위해 지난 글들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양 어색하고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어색하고 부끄러워하는 그 느낌도 그 자신의 한 부분일 것이다.

산문집에서 만난 그는 적어도 시만 쓰는 시인은 아니었다. 사회의 여러 약자들의 외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참여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에서 열리는 예술 워크샵에 참여하고 (207쪽, '달려라 중학생'),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를 보며 악이 얼마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잠수사들의 증언을 통해 발견하는 사람 (216쪽, '선과 악의 평범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규명하자고 기획된 공연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218쪽, '기억을 위한 장소'). 쌍용차 해고 노동자, 현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트위터 상에 소리연대라는 기획을 내놓기도 하였다 (226쪽, '어색하고 부끄러운 기쁨').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에 실렸던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긴 시는 용산 참사 2주기 추모행사에서 낭독했던 시라고 한다.  

그가 시 속에서 부재를 자주 언급하고 즐겨 사용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한다기 보다 존재를 넘어 있을,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 무엇을 인정받게 하고 추구하고 싶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음 구절을 통해 짐작해보았다.

 

시인은 없어져도 시 쓰는 사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 안에 우리를 넘어선 존재가 숨어있는 한 말이다. (203쪽, 시 쓰는 사람)

 

책 리뷰를 쓰기 전에 예전에 읽은 그의 두권의 시집을 꺼내왔다. 밑줄 그어 놓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두 시집 속 밑줄 그어놓았던 부분들과 지금 읽은 산문집을 다시 들춰보기를 반복했다.

이 쪽 풍경은 답답하고 숨막힌다. 그쪽 풍경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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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 쓰는 사람 중 시인들이 가장 존경스러워요. 단 몇마디의 언어로 최적의 감정을 표현하는건 정말 신이 내린 경지같다는..
덕분에 오늘 시 한편을 또 알고 가네요

hnine 2020-08-19 05:06   좋아요 0 | URL
위에 인용한 시에 나오는 ‘폐허‘라는 단어는 심보선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라는 시에서는 자기 생을 폐허에 비유했는데 그냥 폐허가 아니라 ‘빛나는 폐허‘였다고 했어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이런 단어 조합, 이게 노력으로만 될까 싶지요 타고 난게 있고서 노력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시를 처음 읽을땐 시 전체의 느낌을 보다가, 마음에 들어오면 단어 하나 하나 다시 새기며 읽어보게 되는데 그러면 더 좋아지고 감탄할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시집은 한번만 읽게 될 수가 없어요.

페크pek0501 2020-08-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두뇌를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시를 읽다가요...

hnine 2020-08-22 11:47   좋아요 1 | URL
저는 시인의 일기장을 훔쳐 보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시가 맘에 들면 나중엔 시보다 시인에 더 관심이 갈때도 많고요. 사람과 그 사람의 창작물을 구분없이 받아들일때가 많은데 별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시인.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언젠가 본 영화에서 시인이 그렇게 정의를 내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