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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
신정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1월
평점 :
포스트모던 시대란 근대 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한다.
Modernity 를 '근대성'이라고 번역한다면 postmodernity 는 '후기근대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쓰게된 원천이 된 생각에 대해 머리말과 본문 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나의 책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은 '현대 문명으로 창조되는 그 많은 행복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거대한 현대문명으로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려는 하나의 노력이다. (5쪽)
포스트모던시대를 정의하는 말은 아마 문화비평가의 수 만큼 다양할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비평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삶에서 행복을 잃었던' 반세기를 포스트모던 시대 (the postmodern age)'라고 부르고 이 시애에 대한 이념적 태도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른다고 한다. 1,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그만큼 사람들의 관점과 철학, 세계관을 바꿔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는 말이 되겠고, 행복을 잃었다고 내린 정의는 지금까지 어떤 주의나 사조로도 극복이 되지 않고 있다. 과학과 문명은 말도 안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불행하고 허무해가는 것은 왜일까. 이제는 그것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턱없이 광대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저자는 서론과 결론 외 다섯개 장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를 위하여
서론이면서 이 책 전반에 대한 요약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이다. 포스트모던 시대가 오게 된 역사, 문화적 전조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인본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이 서구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신에 집중되었던 가치가 인간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신에 대한 믿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시대, 즉 근대에 대한 설명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다른 어떤 주의나 사상으로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였으나, 결국 그것은 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비극을 낳았고, 이제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그 지나친 이성 중심 사상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계몽주의의 역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작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출구없는 절대허무를 보여주고 있는 배경이다.
제1장: 포스트모던 문명의 전조들
계몽주의와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계몽주의의 역설과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을 낳게 된 전조가 된 이 당시 인간들 마음 속에 들어있던 강박관념을 네가지로 분류해놓았다. 그것은 호기심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멈춤장치 없는 앎에의 욕망이 그 하나이고, 자기사랑 콤플렉스와 관련된 자기 파괴적 자기 사랑이 그 두번째. 세번째는 중심지향 콤플렉스인데 한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이 경우엔 도구적 이성)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 생각하고 삶을 획일화 규격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명 콤플렉스와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교감지수의 감소를 초래한 일을 들고 있다.
제2장: 포스트모던 문명 속의 디스토피아
근대문명이 가져다준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의 싹은 근대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근대에는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고 다시 유토피아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찾고자 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역설을 보았을 뿐 아니라 이것은 어떤 이즘이나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가 절대허무로 갈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던 정신이라는 것이다. 기술문명 속에서 인간은 자유로와졌는가, 보이지 않는 더 큰 부자유로 옭아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소비주의가 다른 모든 가치관에 우세하는 사회, 이에 따라 주체적이 아니라 식민화되고 있는 자아를 초래하여 소비형 인간이라는 신종 인간을 탄생시켰다. 디스토피아적 현상들에 대한 일거이다.
제3장: 모더니즘 문학: 계몽의 역설에 대한 깨달음
중심지향 콤플렉스에 대해 1장에서 설명했듯이, 계몽주의에 대한 역설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여명기의 모더니즘이다. 길잃은 세대들 (the lost generation) 이라는 말이 나왔고, 예이츠, 로런스, 스티븐스, 조이스, 엘리엇, 포크너 등의 많은 모더니즘 문학을 낳았다. 이 장에서는 주로 모더니즘 문학의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조가 된 모더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제4장: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들
개인적으로 제일 읽기 힘들었던 장. 앞의 장에서도 여러 철학가의 사상을 설명하긴 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장에서는 리오타르, 데리다, 라캉, 푸코를 대표적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로 들어 그들의 주의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들은 합리와 과학에 대한 광신적 믿음을 해체하고자 했고, 존재의 본질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 조리가 아니라 부조리, 선이라기 보다 악, 창조와 발전이 아니라 엔트로피,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임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제5장: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출구 없는 절대허무
포스트모더니즘 정신과 문학을 나타낸 말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용어가 아닌가 한다. 절대허무, 또는 행복의 레시피가 없는 세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핀천의 <49호 품목의 경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로웰의 고백시, 보르헤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결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결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요약이다. 서구 계몽주의 역사의 가장 큰 태생적 결함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지녔던 인지적 결함에 비유하였다. 계몽주의 역사가 이성에 대한 믿음에의 오만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오이디푸스의 계몽적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역사를 앞에 놓고 현대인들이 창조해낸 기술문명, 소비주의 문명, 세계화 문명 등 그 엄청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은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물음은 문학과 철학과 역사에 있어서의 모더니스트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었다고 하면서, 서구 근대에 일어난 계몽의 역설로 인간이 불행하다면 그것을 되돌리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것 자체가 의미없음을 보여주었다. 차라리 인간의 삶에 원래부터 내재된 비이성과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절대이성의 탈을 쓰고 전체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 어느 하나의 비이성적 이성에 묶여 살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요약하고 넘어가기엔 이 책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예를 들어 설명한 문헌만 해도 방대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저서이지만 이 책은 문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문화비평서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각 내용에 적절한, 적절하다못해 절묘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인용, 그리고 문학 뿐 아니라 많은 철학 서적이나 문헌들의 인용이 이루어진 것은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점이자, 나 처럼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쉽지 않은 분야지만 몰입하여 읽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주관성이 너무 드러나는 기술 방식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은 이것이 인문학 서적이기 때문인지, 수년간 자연과학을 공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읽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근대 이전, 과거 과학 기술의 발달이 덜 이루어졌을 당시 인간의 삶은 그럼 행복했는가? 과학은 감정의 무절제함, 무방향성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철학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과학을 곧 기술, 문명이라고 보는 단순화도 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대한 맹신, 맹목적 환상을 품고 그 이면을 보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과학 자체에 대한 오류로 보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가장 몰입하여 읽은 책이고,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는 책이다.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잘 정제되고 다듬어진 문장들, 적절하고 절묘한 비유들이 많은 문장들은 읽는 동안의 기쁨을 배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