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벛꽃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조팝나무 하얀 꽃.

이름 비슷하여 헛갈리기 쉬운 이팝나무는 아직 핀걸 못봤다. (조팝나무는 꽃 가운데가 좁쌀처럼 노랗다.)

 

 

 

 

 

 

 

찍어놓은지 몇주 지난 사진.

이제

거의 모든 벚꽃은 졌다.

내년에 또 보자. 안녕~~

 

 

 

 

 

 

아파트 화단에 이런 게 보여 도감에서 찾아보았더니 <머위> 같다.

 

 

 

 

 

 

 

 

 

 

아파트 화단의 꽃사과 나무.

활짝 핀 것도 예쁜데 봉오리도 예쁘고.

 

 

 

 

 

 

 

같은 꽃집에서 1-2주 간격으로 연속 세번 튤립을 샀더니 주인께서 기억하시나보다.

"튤립만 사시나봐요."

이제 튤립도 끝물이라고 하시네.

 

 

 

 

 

 

 

 

 

 

명자나무.

 

 

 

 

 

 

 

 

 

 

 

 

<오리나무>로 추정 (^^).

5리마다 심어 거리를 가늠하게 쓰였다고 해서 오리나무.

 

 

 

 

 

 

 

 

 

 

 

 

 

 

 

 

 

 

 

 

 

 

이날은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 아니었다.

난 저 정도면 그냥 쓰고 다니는데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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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8-04-23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꽃사진은 제가 그림 그릴 때 참조해도 될만한 선명함을 지녔네요^^

오랜만입니다. hnine님.

계절담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hnine 2018-04-23 21:44   좋아요 0 | URL
선명하고 확실한 계절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무척 기분 좋아요 ^^
기타로 연주하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색다른 느낌이던데요. 지금은 아무도 연주하지 않는 기타가 제 집에도 셋이나 있어요. 괜히 보기 미안하고 측은하기까지 해서 제가 한번 배워볼까도 가끔 생각한답니다.
기타 소리의 매력은 다른 어떤 악기와도 구별되는 특징을 가졌어요.
그러고보니 Nussbaum님 페이퍼 댓글을 제가 여기다 쓰고 있네요 ^^
 
사소한 정의 (특별판)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데뷔작이라고해서 꼭 이야기의 무대가 소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아이 둘을 키워낸 50대 여성의 데뷔작이라고 해도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을 마침내 이루어내기에 여성의 50대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혼돈은 예상했다 할지라도 끝까지 다 읽도록 그 혼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비록 처음의 혼돈과 마지막까지 남은 혼돈이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기 시작하여 나보다 더 빨리 읽어버린 내 친구는 처음 도입부는 복잡해보이지만 좀 넘어가면 수월하게 읽힌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영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남아있었달까. 완전히 녹지 않고 끝까지 아래에 침전물이 남아있는 혼탁한 액체처럼.

먼 미래 우주.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범우주적인 제국이 등장한다. 앤 레키가 탄생시킨 제국이다. 라드츠라는 이름의 이 제국의 목표는 전 우주 인류를 병합하는 것. 여기에 인공지능 함선 군단이 이용되는데 이 함선의 이름이 저스티스 토렌이다. 이 책 제목 <사소한 정의>에서 '정의'는 이 함선의 이름 저스티스를 상징했는지도 모른다. 제목의 <사소한>이라는 단어는 ancillary를 번역한 것인데, ancillary는 사소한이라기보다 <보조적인>이라는 뜻인데 번역하시는 분이 몰랐을리 없고 아마 제목으로 하기 좋게, 중의적으로 붙인 제목이 아닐까 짐작된다. 실제로 책 내용중엔 많은 <보조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 보조체가 부품으로 들어가 있는 함선 저스티스 토렌호가 제목 Ancillary Justice의 실제 의미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은 현실화 되어 있는 세상이고, 유전자 치환, 복제 기술을 이용한 클론도 SF소설에나 등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시작한지 오래인데, 앤 레키가 만든 라드츠 제국에서는 인공지능 속에 인간 유전자가 삽입해 들어가는,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기술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인간이 죽게 되면 사체를 보관해놓았다가 나중에 필요한 부분을 인공지능에 삽입하여 보조체로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보조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살아있는 시체'인 셈이다. 그럼 이렇게 보조체로 존재하기 전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기억은 유지되는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을 뭉뚱그려 이야기화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예 상상속의 기술들이라면 모를까, 현재 가능화된 기술들을 망라한 복합체라면 좀 더 이해 가능하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게 썼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또한편으로는, 아무리 오래 고심한다 할지라도 작품 속에서 한 작가의 머리속으로 모두 깔끔하게 해결하여 완벽한 제국을 구사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작가가 그린 제국은 사소하지 않다.

인간의 부속품이 들어가있는 보조체, 인공지능이 그럼 인간일까? 아니다. 함선에 부속된 장비의 일부이다. 외형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특이하게 감정도 있고 명령에 불복할 수도 있게 이 책에서는 그려지고 있지만 엄연히 독립된 개체라기보다 큰 장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혼돈.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이 흐려진다.

복제의 결과 여러 개체로 존재할 경우, 즉 이 책에서 라드츠 제국의 군주처럼 자기 복제를 계속하여 서로 연결된 수천 개 몸으로 구성된 인간으로 존재할 경우, 그 각자의 인간은 복제의 결과 유전자 조성이 같을 뿐 늘 똑같은 생각과 판단을 하리란 법은 없다 (쌍둥이가 항상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래서 생길 수 있는 일은, 하나의 나와 다른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서 나아가 두개의 나가 대립하여 서로의 적이 되어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생각 아닌가? 복제 인간의 딜레마이다. 반면 이 책의 화자로 나오는 브렉은 수천개의 보조체, 즉 죽은 인간의 몸에서 유래한 구성품이 삽입되어 있는 단일한 하나의 인공지능이다. 복제인간과 인공지능중 누가 실제 인간에 더 가까운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이 책에서 라드츠 군주 같은 복제 인간은 인간으로 보는 반면 인공지능 브렉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그것은 정당한가?

시간차를 두고 생겨난 복제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은, 50살의 나와 5살의 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 레키는 이런 상황을 적시에 절묘하게 이용하였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두개의 군주를 상대로 복수를 벌인 브렉앞에 결국 나타난 이 존재를 브렉은 상상이나 했을까.

먼 미래 우주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안된다. 이 책의 본질은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른단다.

저자의 다음 책을 주문하기에 앞서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담겨있던 한국SF소설집 한권부터 주문한 것은 앤 레키의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에서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SF소설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은 한 등급 올라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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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방울 같이 생긴 열매는 어제 길에서 주운 프라타너스 열매.

예전엔 참 흔했는데 요즘은 이마저 오랜만에 본 것 같아서 보는 순간 주워서 집에 까지 (서울에서 대전까지) 들고 왔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포플라 열매다!" 라고 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포플라가 아니라 프라타너스.

정정한다고 지금 친구에게 문자보냈다 ㅠㅠ

 

솔방울은 벌써부터 우리 집 식탁 위의 소품으로 자리하던 것.

이제 옆에 친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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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4-15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hnine 2018-04-15 23:39   좋아요 2 | URL
솔방울에 붙어 있던 씨앗은 벌써 날아갔을테고요, 프라타너스 씨앗은 아마 저 방울 (!) 속에 들었을거라고 남편이 그러네요. 잘라서 속을 보려고 손으로 눌렀더니 딱딱해서 안 열리더라고요. 제가 만만히 봤어요.

[그장소] 2018-04-22 0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구경만 하고 주워와 본적은 없는데 가까이 보니 귀엽네요~^^ ㅎㅎㅎ

hnine 2018-04-22 10:12   좋아요 2 | URL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 뭐 그런거죠 ^^

[그장소] 2018-04-22 10:28   좋아요 1 | URL
네~^^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
신정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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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란 근대 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한다.

Modernity 를 '근대성'이라고 번역한다면 postmodernity 는 '후기근대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쓰게된 원천이 된 생각에 대해 머리말과 본문 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나의 책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은 '현대 문명으로 창조되는 그 많은 행복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거대한 현대문명으로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려는 하나의 노력이다. (5쪽)

 

포스트모던시대를 정의하는 말은 아마 문화비평가의 수 만큼 다양할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비평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삶에서 행복을 잃었던' 반세기를 포스트모던 시대 (the postmodern age)'라고 부르고 이 시애에 대한 이념적 태도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른다고 한다. 1,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그만큼 사람들의 관점과 철학, 세계관을 바꿔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는 말이 되겠고, 행복을 잃었다고 내린 정의는 지금까지 어떤 주의나 사조로도 극복이 되지 않고 있다. 과학과 문명은 말도 안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불행하고 허무해가는 것은 왜일까. 이제는 그것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턱없이 광대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저자는 서론과 결론 외 다섯개 장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를 위하여

서론이면서 이 책 전반에 대한 요약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이다. 포스트모던 시대가 오게 된 역사, 문화적 전조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인본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이 서구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신에 집중되었던 가치가 인간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신에 대한 믿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시대, 즉 근대에 대한 설명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다른 어떤 주의나 사상으로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였으나, 결국 그것은 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비극을 낳았고, 이제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그 지나친 이성 중심 사상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계몽주의의 역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작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출구없는 절대허무를 보여주고 있는 배경이다.

제1장: 포스트모던 문명의 전조들

계몽주의와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계몽주의의 역설과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을 낳게 된 전조가 된 이 당시 인간들 마음 속에 들어있던 강박관념을 네가지로 분류해놓았다. 그것은 호기심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멈춤장치 없는 앎에의 욕망이 그 하나이고, 자기사랑 콤플렉스와 관련된 자기 파괴적 자기 사랑이 그 두번째. 세번째는 중심지향 콤플렉스인데 한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이 경우엔 도구적 이성)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 생각하고 삶을 획일화 규격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명 콤플렉스와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교감지수의 감소를 초래한 일을 들고 있다.

제2장: 포스트모던 문명 속의 디스토피아

근대문명이 가져다준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의 싹은 근대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근대에는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고 다시 유토피아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찾고자 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역설을 보았을 뿐 아니라 이것은 어떤 이즘이나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가 절대허무로 갈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던 정신이라는 것이다. 기술문명 속에서 인간은 자유로와졌는가, 보이지 않는 더 큰 부자유로 옭아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소비주의가 다른 모든 가치관에 우세하는 사회, 이에 따라 주체적이 아니라 식민화되고 있는 자아를 초래하여 소비형 인간이라는 신종 인간을 탄생시켰다. 디스토피아적 현상들에 대한 일거이다.

제3장: 모더니즘 문학: 계몽의 역설에 대한 깨달음

중심지향 콤플렉스에 대해 1장에서 설명했듯이, 계몽주의에 대한 역설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여명기의 모더니즘이다. 길잃은 세대들 (the lost generation) 이라는 말이 나왔고, 예이츠, 로런스, 스티븐스, 조이스, 엘리엇, 포크너 등의 많은 모더니즘 문학을 낳았다. 이 장에서는 주로 모더니즘 문학의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조가 된 모더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제4장: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들

개인적으로 제일 읽기 힘들었던 장. 앞의 장에서도 여러 철학가의 사상을 설명하긴 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장에서는 리오타르, 데리다, 라캉, 푸코를 대표적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로 들어 그들의 주의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들은 합리와 과학에 대한 광신적 믿음을 해체하고자 했고, 존재의 본질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 조리가 아니라 부조리, 선이라기 보다 악, 창조와 발전이 아니라 엔트로피,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임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제5장: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출구 없는 절대허무

포스트모더니즘 정신과 문학을 나타낸 말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용어가 아닌가 한다. 절대허무, 또는 행복의 레시피가 없는 세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핀천의 <49호 품목의 경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로웰의 고백시, 보르헤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결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결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요약이다. 서구 계몽주의 역사의 가장 큰 태생적 결함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지녔던 인지적 결함에 비유하였다. 계몽주의 역사가 이성에 대한 믿음에의 오만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오이디푸스의 계몽적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역사를 앞에 놓고 현대인들이 창조해낸 기술문명, 소비주의 문명, 세계화 문명 등 그 엄청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은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물음은 문학과 철학과 역사에 있어서의 모더니스트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었다고 하면서, 서구 근대에 일어난 계몽의 역설로 인간이 불행하다면 그것을 되돌리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것 자체가 의미없음을 보여주었다. 차라리 인간의 삶에 원래부터 내재된 비이성과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절대이성의 탈을 쓰고 전체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 어느 하나의 비이성적 이성에 묶여 살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요약하고 넘어가기엔 이 책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예를 들어 설명한 문헌만 해도 방대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저서이지만 이 책은 문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문화비평서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각 내용에 적절한, 적절하다못해 절묘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인용, 그리고 문학 뿐 아니라 많은 철학 서적이나 문헌들의 인용이 이루어진 것은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점이자, 나 처럼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쉽지 않은 분야지만 몰입하여 읽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주관성이 너무 드러나는 기술 방식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은 이것이 인문학 서적이기 때문인지, 수년간 자연과학을 공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읽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근대 이전, 과거 과학 기술의 발달이 덜 이루어졌을 당시 인간의 삶은 그럼 행복했는가? 과학은 감정의 무절제함, 무방향성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철학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과학을 곧 기술, 문명이라고 보는 단순화도 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대한 맹신, 맹목적 환상을 품고 그 이면을 보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과학 자체에 대한 오류로 보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가장 몰입하여 읽은 책이고,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는 책이다.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잘 정제되고 다듬어진 문장들, 적절하고 절묘한 비유들이 많은 문장들은 읽는 동안의 기쁨을 배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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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09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책을 읽으시는군요.
저는 더 이상 이런 딱딱하고 어려운 책은 못 읽을 것 같아요.ㅠ
제가 오직 읽고 싶은 책은 소설이죠.
꽤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읽어도 새발의 피처럼 읽었죠.
안 읽은 책이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없고 맨날 한숨만 짓고 있습니다.ㅠㅠ

hnine 2018-04-09 19:38   좋아요 0 | URL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이 생겼는데 (!),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도 원래 소설 좋아하는데, 소설이 단지 스토리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의미를 알고 읽으려면 그 시대 정신을 알고 읽어야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많은 문학 작품들이 인용되어 있어서 (소설은 물론) 소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버렸습니다.
stella님도 충분히 읽으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만~ ^^

stella.K 2018-04-09 20:26   좋아요 0 | URL
암만~ㅎㅎ
근데 값이 장난이 아니네요. 왤케 비싸데요...?ㅠ

hnine 2018-04-09 22:13   좋아요 0 | URL
좀 비싸죠?

sonar119 2018-04-0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세요

hnine 2018-04-09 22:14   좋아요 0 | URL
어이쿠, 감사합니다.
 

 

바로 어제 다녀온 곳 대청호.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면 집에서 40여분 밖에 안되게 나오는 곳이고,

이번이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역시 이번에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건 집에서 나온지 2시간만이었던 길치 부부.

 

 

 

 

 

 

 

 

 

 

 

 

 

 

 

 

 

 

 

 

 

 

 

 

 

 

 

 

 

 

 

 

 

 

 

 

 

 

 

 

 

 

 

 

 

 

 

 

 

 

 

 

 

 

 

 

 

 

 

 

 

 

 

벚꽃 만발. 목련 반발.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들과는 풍채가 다르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온, 버텨온, 연륜이 느껴져서

그냥 "예쁘다"라는 느낌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에도 오래 살아내고 난 사람에게서 모두 그런 느낌이 풍겨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부러 멋을 부리지 않아도 풍겨나오는 인품, 성품 같은 것 말이다.

가끔 우리는 나무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맞춤하고.

 

 

 

 

 

 

 

식당이 즐비한 가운데 눈에 띄는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다.

 

 

 

 

 

 

저 타이프라이터 옛날에 우리집에 있던 건데, 나에게 익숙한 물건들이 이제 일종의 앤틱이 되어, 인테리어 목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반가움이 급 쓸쓸함으로.

 

 

 

 

 

 

 

 

 

 

 

 

 

정물화와, 그 모델이 된 정물을 함께 전시해놓은 것이 특이해서 찍어보았다.

 

 

 

 

 

 

 

 

 

 

 

 

 

 

 

 

 

 

 

 

 

 

 

 

 

 

 

 

 

생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 빠진 자리라서 오랜만에 점심으로 "쏘가리 매운탕"을 주문해서 먹었다.

까만 얼룩점이 박힌 물고기 "쏘가리".

이거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그려진 물고기 모델이 되기도 했었다고 남편에게 아는 척 하며,

맵다 맵다 하면서도 맛있게 잘 먹다보니,

아들이 대여섯살 되었을때인가, 친정 부모님 모시고 여기 와서 매운탕 먹었던게 생각났다.

매운탕 좋아하셨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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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4-0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청호엔 아직 벚꽃이 있군요.
청주 무심천엔 지난 비에 후두둑 떨어졌어요.
일주일도 채 가지 못하구...
저두 쏘가리 매운탕 안좋아해요.ㅎ

hnine 2018-04-08 23:04   좋아요 0 | URL
벚꽃엔딩 노래를 ˝좀비송˝이라고 한다면서요? ㅋㅋ 없어지지도 않고 해마다 계속 나온다고요.
벚꽃은 사람들의 주목을 두번 받는 것 같아요. 필때 한번, 질때 한번. 복 많은 꽃이죠.
저는 매운탕 잘 먹었었는데 갈수록 맑은 탕 (지리)를 더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저런걸 무슨 맛으로 먹지? 했던 음식을 말이죠. 그런데 어제는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맛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