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정의 (특별판)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데뷔작이라고해서 꼭 이야기의 무대가 소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아이 둘을 키워낸 50대 여성의 데뷔작이라고 해도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을 마침내 이루어내기에 여성의 50대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혼돈은 예상했다 할지라도 끝까지 다 읽도록 그 혼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비록 처음의 혼돈과 마지막까지 남은 혼돈이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기 시작하여 나보다 더 빨리 읽어버린 내 친구는 처음 도입부는 복잡해보이지만 좀 넘어가면 수월하게 읽힌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영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남아있었달까. 완전히 녹지 않고 끝까지 아래에 침전물이 남아있는 혼탁한 액체처럼.

먼 미래 우주.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범우주적인 제국이 등장한다. 앤 레키가 탄생시킨 제국이다. 라드츠라는 이름의 이 제국의 목표는 전 우주 인류를 병합하는 것. 여기에 인공지능 함선 군단이 이용되는데 이 함선의 이름이 저스티스 토렌이다. 이 책 제목 <사소한 정의>에서 '정의'는 이 함선의 이름 저스티스를 상징했는지도 모른다. 제목의 <사소한>이라는 단어는 ancillary를 번역한 것인데, ancillary는 사소한이라기보다 <보조적인>이라는 뜻인데 번역하시는 분이 몰랐을리 없고 아마 제목으로 하기 좋게, 중의적으로 붙인 제목이 아닐까 짐작된다. 실제로 책 내용중엔 많은 <보조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 보조체가 부품으로 들어가 있는 함선 저스티스 토렌호가 제목 Ancillary Justice의 실제 의미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은 현실화 되어 있는 세상이고, 유전자 치환, 복제 기술을 이용한 클론도 SF소설에나 등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시작한지 오래인데, 앤 레키가 만든 라드츠 제국에서는 인공지능 속에 인간 유전자가 삽입해 들어가는,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기술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인간이 죽게 되면 사체를 보관해놓았다가 나중에 필요한 부분을 인공지능에 삽입하여 보조체로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보조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살아있는 시체'인 셈이다. 그럼 이렇게 보조체로 존재하기 전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기억은 유지되는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을 뭉뚱그려 이야기화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예 상상속의 기술들이라면 모를까, 현재 가능화된 기술들을 망라한 복합체라면 좀 더 이해 가능하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게 썼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또한편으로는, 아무리 오래 고심한다 할지라도 작품 속에서 한 작가의 머리속으로 모두 깔끔하게 해결하여 완벽한 제국을 구사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작가가 그린 제국은 사소하지 않다.

인간의 부속품이 들어가있는 보조체, 인공지능이 그럼 인간일까? 아니다. 함선에 부속된 장비의 일부이다. 외형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특이하게 감정도 있고 명령에 불복할 수도 있게 이 책에서는 그려지고 있지만 엄연히 독립된 개체라기보다 큰 장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혼돈.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이 흐려진다.

복제의 결과 여러 개체로 존재할 경우, 즉 이 책에서 라드츠 제국의 군주처럼 자기 복제를 계속하여 서로 연결된 수천 개 몸으로 구성된 인간으로 존재할 경우, 그 각자의 인간은 복제의 결과 유전자 조성이 같을 뿐 늘 똑같은 생각과 판단을 하리란 법은 없다 (쌍둥이가 항상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래서 생길 수 있는 일은, 하나의 나와 다른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서 나아가 두개의 나가 대립하여 서로의 적이 되어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생각 아닌가? 복제 인간의 딜레마이다. 반면 이 책의 화자로 나오는 브렉은 수천개의 보조체, 즉 죽은 인간의 몸에서 유래한 구성품이 삽입되어 있는 단일한 하나의 인공지능이다. 복제인간과 인공지능중 누가 실제 인간에 더 가까운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이 책에서 라드츠 군주 같은 복제 인간은 인간으로 보는 반면 인공지능 브렉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그것은 정당한가?

시간차를 두고 생겨난 복제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은, 50살의 나와 5살의 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 레키는 이런 상황을 적시에 절묘하게 이용하였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두개의 군주를 상대로 복수를 벌인 브렉앞에 결국 나타난 이 존재를 브렉은 상상이나 했을까.

먼 미래 우주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안된다. 이 책의 본질은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른단다.

저자의 다음 책을 주문하기에 앞서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담겨있던 한국SF소설집 한권부터 주문한 것은 앤 레키의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에서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SF소설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은 한 등급 올라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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