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양의숙 지음 / 까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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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에 KBS에서 방영하는 'TV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995년에 시작했다고 하니 거의 30년이 되어 가는 프로그램이다. 

영국에는 이런 TV프로그램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에는 유일한 고미술품, 민속품 감정 프로그램 TV진품명품에 고미술품 감정의원으로 자주 출연하던 한 분이 책을 내셨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분야별로 전문 감정 위원이 다른데 이 책의 저자 양의숙 감정위원은 주로 고미술품 감정을 담당해왔다. 

1946년생.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민예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범대학에 들어갔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공예를 전공했다. 이후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해오다가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비전은 없다고 생각, 직접 화랑을 열었다. 아현동에서 시작하여, 인사동을 거쳐 지금은 제주에서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장을 지내고 있으며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생기가 느껴지고, 좋아하는 그 일을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깊이와 함께, 그 사람만의 세계가 보인다. 

새것이 쏟아져 나오고 유행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굳이 옛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의 가치를 알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일을 사십년 해온 저자는 고미술 명품이라면 꼭 백자, 청자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녀가 처음 구입한 민속품이 쌀 뒤주였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민속품들은 아름답고 화려한것도 있지만 소박하고 서민적인 것들이 많다. 명품이란, 양반이나 궁궐에서 쓰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고 시간이 느껴지는 것들 아닐까. 화려한 단청을 새로 입힌 웅장한 사찰보다 낡고 오래된 나무 기둥, 칠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도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는 절집에서 한 걸음 더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이 말이다. 

둥글고 푸근한 멋 달항아리, 풍요의 상징 뒤주, 어둠을 밝히는 별 목등잔, 담백하고 화려하게 조선철, 경이로운 이름표 경패, 격조 높은 미감 주칠삼층탁자장, 원광의 미학 염주함, 승려의 애달픈 염원 저승효행상, 선비의 기백 화약통과 화살통, 고급스러운 사치품 담배합, 꿈길마저 아름답게 목침, 한 폭의 진경산수화 흉배, 선비의 머리 정장 탕건과 망건, 불멸의 꽃 어사화, 안비낙도의 삶 서안, 일탈과 파격의 미 제주문자도, 오색영롱한 세계 화각, 가체를 단정하게 다래함, 집안의 상징과 전통 약과판, 당당한 위용 머리꽂이, 세계 유일의 혼수품 열쇠패, 여인들만의 격식 노리개, 축하와 축복의 옷 원삼과 활옷, 신기루 같은 빛의 덩어리 백자개함, 살림의 기본 반닫이, 당당하고 섬세한 품새 채화칠기 삼층장.


책 읽는 사람에겐 아마도 자그마한 앉은뱅이 책상 '서안'엥 눈길이 머무를 수 있을 것이고, 활옷을 보고는 내가 결혼식날 폐백 드릴때 입었던 옷이 활옷이었구나 빙그레 웃음질수도 있을 것이다. 큰 달항아리 살 여유는 없어서 몇년 전 사다놓은 내 미니어쳐 달항아리는 둥글고 푸근하기보다 귀엽기 그지 없다. 단색으로도 멋을 충분히 내는, 절대 크지 않은 반닫이는 지금도 있으면 쓸모가 많을 듯 하다.


문화는 전해준 곳에서는 쇠퇴해도 그 문화를 전달받은 곳에서는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의 당대를 지배하던 청빈사상과 온돌 문화가 조선철을 망각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선철이 일본에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한 사례일 것이다.

(*조선철: 털실과 면실을 엮어서 짠 조선의 카펫)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조선철과 같이 귀하고 소중한 문화재 속에서 화려하고 당당했던 한국미의 진정한 유전자를 되찾는 일이다. 일본인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미를 일컬어 "애상적 소박미"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가치를 어찌 이 하나의 틀 안에 가둘 수 있겠는가. (47쪽)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우기 보다 일반인들을 위해 쉽고 길지 않게 설명이 되어 있어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용 중에 건축을 전공한 남편 얘기가 종종 나와 알아보았더니 명지대학교 건축과 교수를 지낸 김홍식 교수. 한옥 건축의 권위자이며 민중건축론을 주창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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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투어
앤디 왓슨 지음, 김모 옮김 / 이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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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만화가이자 작가인 앤디 왓슨의 그래픽 노블이다.

읽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바로 카프카의 작품 '소송'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내가 계획한 것과 전혀 다르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어 간다. 주인공도 모르고 읽는 독자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며 페이지를 넘겨간다. 

앤디 왓슨의 이 책에서 주인공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인디 소설 작가 프렛웰. 새 소설이 출간되고 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북 투어를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그가 만났던 사람들이 다음 날 죽어서 발견되는 일이 일어나고 이런 이유로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채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하고 추적을 받기도 하며 이야기는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우연의 일치인가?이 책에서 앤디 왓슨이 새로 낸 소설의 제목이 <사라진 K>인데, 카프카의 소설 <소송>의 주인공 이름도 K이다.


이하는 책을 읽고난 나의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과 해석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프렛웰의 모습에서 작가로서 사는 삶이 늘 계획만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앤디 왓슨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작가는 열과 성을 다해 책을 만들어 이 세상에 내어놓지만 항상 대중들로부터 그만큼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자기를 작가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책 사인회에 참석하지만 독자가 한 사람도 안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은 작가로 발돋움할때 상상하던 그런 세상이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나도 금방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어나가게 된다. 이 세상 자체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간다.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인생은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약속된 북투어를 가느라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게 되면서 밤마다 가족과 전화 통화를 시도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관심사가 다르고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다르다. 세상은 나를 그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본다. 내가 나를 규정짓는 타이틀은 작가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때로 나를 도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살인자로 보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일을 했다고 하고 내가 모르는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카프카의 불합리?)


또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보았다. 작가들의 직업이란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직업이기 때문에 늘 무언가 있을 수 있는 상황들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며 살지 않을까? 북투어란 것은 요즘 흔하게 있는 행사이고 작가들이라면 한번씩은 다 해봤을 것 같은 일정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북투어와 작가 사인회를 앞두고서 긴장과 불안의 시간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내 책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면? 사인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서점에서 내 책이 한권도 팔리지 않는다면? 그런 생각에서만 그치면 작가의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세상은 나의 계획대로, 예상한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상황을 극대화 시켜 갑자기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기도 하고, 분명이 내가 아님에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런 상황 (바로 카프카의 소송에서 K가 그랬던 것처럼)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독특한 내용과 메시지로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서 나도 이런 저런 해석을 븥여보느라 작가의 세계를 잠시 흉내내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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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03-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h9 님 글 읽고 아마존에서 이 책,
<The Book Tour> 찾아보니
지금 Kindle Unlimited 로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download 받았습니다.

다들 Cartooning Kafka,
comic version of <The Trial> and <The Castle> 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알라딘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책,
알게되면 괜히 뿌듯해집니다.

hnine 2023-03-21 13:57   좋아요 1 | URL
엇! 그런가요? 제가 워낙 카프카의 <The trial>을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저 혼자 넘겨짚은건 아닌가 조심스러워했는데 다행이다 싶고 기쁘기도 하네요.
저도 알라딘 서재에서 다른 분 리뷰 보고 어딘지 끌리는데가 있어 바로 주문해서 읽었어요. 금방 읽혀지더라고요.
읽다보니 저는 이 책의 내용과 더불어 이 책의 작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던데요. 어떤 계기로 이 책을 구성하게 되었을까? 영국 작가면서 왜 처음에 프랑스어로 출판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 까지요.

근래에 Jeremy님 서재에서 단어 정리해놓으신 것 훑어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왜 제가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분이 애써서 정리해놓은 것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고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일까요. 감사드립니다.
 
법구경 민족사에서 펴낸 선물용 경전
석지현 옮김 / 민족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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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에 꽃구경 다녀 왔다.

기념품 파는 곳에서 두 권의 책을 사가지고 왔는데 법구경은 동생 주려고 샀고, 다른 한 권 '선가귀감' 은 남편이 읽어보라고 권해서 샀다.

그중 동생 주려고 샀던 책을 집으로 돌아오는 세시간 여 동안 다 읽었다.

오래 전에 법정 스님께서 풀어쓰신 법구경을 읽은 적이 있다.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법구경은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어서 인용되는 구절도 많고 그중 어느 구절은 예전에 가요의 가사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읽었다. 

금방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말로 쓰였다는 뜻이고, 새삼스런 내용 대신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이라는 뜻일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정복되지 않나니

미움은 오직 사랑으로써만 정복되나니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제1장 오늘 (쌍서품 雙敍品) 중-


사랑은 종교를 막론하고 진리가 맞나 보다.


명상의 실습과 굳은 의지력,

그리고 강력한 정신력이 있는 그들은

마침내 저 진리의 절정인

'니르바나(열반)'에 이르게 된다.


-제2장 깨어있음 (방일품 放逸品) 중-


아마 법구경에서 빈도수 가장 높은 단어 중 하나가 '니르바나'가 아닐까.

니르바나. '열반'이라고 번역되어, 곧바로 죽음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 말은 정확하게는 깨달은 상태, 번뇌의 불길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겐 기나긴 밤이여,

지친 나그네에겐 머나먼 이 길이여,

불멸의 길을 찾지 못한 

저 어리석은 이에겐

너무나 길고 지겨운 이 삶이여.


이 삶의 기나긴 여행길에서

나보다 나은 이나 

나와 동등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라.

저 어리석은 자는 결코

그대의 여행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아들이다.

이것은 내 재산이다.

어리석은 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대 자신조차도

그대의 것이 아닐진대

여기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재산이란 말인가.


- 제5장 어리석은 이 (우암품 愚闇品) 중 -



법구경은 1965년에 처음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된 이후 여러 번 다른 이의 번역과 해설로 재출판 되어 왔다. 

법구경의 원래 이름은 <담마파다>, 진리의 언어라는 뜻.

전 26장 423편의 시구로 되어 있다.

서양의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불교 경전, 

이번에 다시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어온 시편은 다음 두 편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고뇌다.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고뇌와 슬픔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리니

이는 영혼의 순결에 이르는 길이다.


이 모든 사물에는

불변의 실체가 없다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고뇌와 슬픔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리니

이는 영혼의 순결에 이르는 길이다.


-제20장 진리의 길 (도행품 道行品) 중-


'모든 것은 고뇌다, 모든 사물에는 실체가 없다.'

언뜻 생각하면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근본으로써 인정하고 나면 대부분의 다른 현상들을 받아들이는데 훨씬 수월해짐을 느낀다.


언제 무슨 계기로 나는 이 법구경을 다시 읽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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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이 다를거 같아요. 지금 나의 상황에 따라서 읽기가 달라진달까?
hnine님 덕분에 법구경의 구절들을 오늘 되새겨보게 되네요. ^^

hnine 2023-03-04 16:50   좋아요 1 | URL
다 아는 것도 잘 못 지키고 살면서 새로운 것을 알겠다고 아둥바둥 하고 있구나, 이런 가르침도 덤으로 깨닫게 해주네요. 이날 함께 사온 책 <선가귀감>도 같은 맥락이 책이더군요.
 
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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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로 분류되고 있는 작품이다, 고독과 방랑의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만 쓰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게 하는데에 이 말테의 수기가 있다. 작가의 분신이면서 이 작품의 1인칭 화자인 말테는 몰락한 덴마크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나온다. 조용한 고향을 떠나 대도시 파리로 이주해온 스물 여덟살 말테는 고향과 너무 다른 파리 생활을 하면서 화려해보이는 도시의 뒷면에 어둡고 비정하고 가난하고 위협적인 면이 있음을 발견해갈뿐 정을 붙이지 못한다. 그를 도시에서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었고 그 기록이 바로 이 '말테의 수기'가 되는 것이다. 

'말테는 나의 정신적 위기에서 태어난 인물이다'라는 릴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인공 말테와 작가 릴케 사이의 구분이 모호한채 읽어가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릴케 본인이 아닌 말테라는 인물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일기체 소설이라고 분류하긴 하지만 소설보다는 일기에 가깝다고 봐도 무관하다고 여겨진다. 소설이라고 보기에 특별한 서사가 없다. 대신 그때 그때 느낀 점을 메모 혹은 단상의 형식으로 서술해나갔다. 시인으로서 시에 대한 생각, 죽음, 신에 대한 얘기가 불연속적으로 펼쳐져 있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오히려 읽어나가는데 어려울 수 있다. 일기나 단상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훨씬 읽는데 편안해짐을 느꼈다.


파리에서 고독과 절망의 삶을 살아가면서 말테가 아니 릴케가 시에 대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대해, 인간과 신에 대해,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게 되는지 나타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만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니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26-28쪽)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는 감정이 아닌 경험이니까, 그당시 그의 고독과 절망의 경험이 모두 시의 자산이 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우습다. 나 브리게는 스물여덟살이나 되었는데, 아무도 나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이 여기 내 작은 방 구석에 앉아 있다. 여기에 앉아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이 존재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회색빛 파리의 오후에 6층 방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이 현실적이고 중요한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도 그리고 말해 보지도 못한 일이 가능할까라고.

인간이 보고 생각하고 글로 쓰기에 수천 년의 시간 여유를 갖고 있었으나 이 수천 년을 마치 학생이 버터를 바른 빵과 사과를 먹는 학교의 휴식 시간처럼 흘려보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30쪽)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방문지에서라면 자유로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거주지나 생존지일때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주게 될 것이다. 내가 대단히 사랑하고 아끼는 시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흘러가버리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는 '학생이 버터를 바른 빵과 사과를 먹는 학교의 휴식 시간처럼'이라고 비유했다.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매일 밥을 하고 설겆이를 하듯이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했을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하루는 마치 시곗바늘 없는 시계판 같다. (74쪽)


변화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 주는 불안에 대한 릴케식 표현은 다음 구절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불 가장자리에 비어져 나와 있는 작은 털실 하나가 강철로 된 비늘처럼 딱딱하고 뾰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잠옷의 작은 단추가 내 머리보다 더 크지나 않을까, 크고 무섭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지금 침대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닿자 유리처럼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그렇게 되면 실제로 모든 것이 다 깨어져 영원히 돌이킬 나위 없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걱정... (75쪽)

이렇게 구체적이다. 추상적이 아니라.


내가 파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뻐하고 부러워해. 일리가 있지. 파리는 대도시로서 크고 또한 온갖 야릇한 유혹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런 유혹들에 빠져버렸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다고 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내 세계관의 변화랄까, 어쨌든 내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어. 이로 인해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은 나의 내부에서 완전히 다르게 형성되었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면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 더 많이 인간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게 되었다는 거지. 하나의 달라진 세계. 온통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새로운 삶.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져서,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로워서 나를 다소 힘들게 하고 있어. (83쪽)

외딴 환경, 혼자 버티는 시간을 겪어내는 인간은 내면에서는 변화가 진행된다.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로 내면에서는 천천히,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릴케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겠지만 릴케는 이렇게 구체적인 언어로 보통의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표현을 해냈을 뿐이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절대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구절이 거침없이 마음으로 들어온다.

행여 네가 앉아 있는 뒤쪽에 생긴 그림자가 너의 주인처럼 일어서지나 않을까 하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라. 어쩌면 어둠 속에 그냥 남아 있어서 너의 무한정한 마음이 모든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의 무거운 마음이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너의 내부에는 공간이 거의 없어지고 이런 좁은 데서는 네 안에 아주 커다란 것이 머무를 수 없게 된다는 게 너를 매우 안심시킨다. 어떤 엄청난 것도 네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런 환경에 맞추어 작아져야 한다는 것이 또한 너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너의 밖은 끝이 없다. (84쪽)


목사님이 하는 아가미 호흡은 힘들게 이어져 입가에 거품이 북적거렸으며 그 모든 것이 불안하였다. 대화의 화제는 정확히 말하면, 전혀 없었다.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화제가 비싼 값이 매겨져 팔렸고 그것은 하나의 재고품 정리장 같았다. (122쪽)

관심없는 화제가 억지로 오가는 상황에 대한 이런 구절을 읽을 때에는 그 상황이 머리 속에 그려지면서 나도 모르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가미 호흡,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화제, 재고품 정리장.


성서의 <탕아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책 말미에 그가 <탕아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사랑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사랑을 받기를 거부하는 청년, 그는 사랑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그 본질이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사랑을 받기를 불편해하고 회피한다. 그가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신 (神)이다. 

신과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면 그것은 일상과 다른 상황에 놓였을때 비로소 찾아온다. 많은 문학들이 그렇게 탄생하였다. 정답이 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서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도 다른 이의 문학 작품을 파고 드는지도 모르겠다. 


파리에서의 고독과 절망이 릴케를 통과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리뷰 제목에 썼지만, 이 작품의 의미는 더 깊고 복잡하다. 삶과 죽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탐색 작업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페이지와 행을 다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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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2-27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는 정말 이 책이 끝날 때까지 릴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나 장미 가시에 찔려 죽는 게 아니구나, 이게 제가 느낀 이 작품의 진정한 독후감이었는데요.
여러가지로 제가 생각이 짧습니다. 흑흑흑....

hnine 2023-02-27 22:28   좋아요 1 | URL
위에도 썼지만 소설로 읽기를 포기하고 (자꾸 이야기의 흐름을 찾게 되기때문에) 남의 일기장을 읽는다 생각하고 읽으니 페이지가 좀 잘 넘어가더라고요. 남의 일기, 다 이해안되는게 당연하잖아요? ㅋㅋ
‘시인은 뭘 써도 달라...‘ 이전에 김소연 시인의 여행산문집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도 역시 그랬어요. 아무나 시인이 될수는 없는 것 같아요. 장미 가시에 찔려죽는것도 그런것처럼 말이지요.
그동안 돌아다니는데 정신 팔려서 (ㅋㅋ) 책은 한동안 안중에도 없었어요. 이제 다시 책으로 눈길 좀 돌리려고 합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hnine 2023-03-14 1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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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김소연의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산문집'이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여행을 기록할 때 우리는 보통 시간순으로 혹은 지역별로, 다녀온 곳을 쭉 나열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 여행지에 대한 정보 등을 기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김소연 시인의 이 책은 분명 여행 때문에 만들어진 책이긴 하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지도 않고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 여행책을 읽고 싶어 찾고 있던 참이었다. 

'역시 시인이 쓰면 뭘 써도 달라.'

하루 만에 단숨에 다 읽으며 아쉬워했다. 좀 더 페이지가 남아있었으면.

'찻물을 끓이는 데에 한나절을 보냈다' 같은 글의 소제목에 비하면 '그 좋았던 시간에' 라는 책 제목은 너무 평범하다. 


나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별 짓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기꺼이 나아간다. 낯설어져서 비로소 새로워지는 나를 자랑하고 싶을 때, 엽서를 사러 나간다. (35쪽,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중에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한치도 다름없이 똑같을 때, 그래서 내일의 나도 역시 그대로 재현될 것이 뻔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안정이라 부르는 대신 무료함, 지루함, 공허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럴땐 나를 낯선 환경에 놓아보는 적극적인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안정을 깨어보는 댓가, 낯설어져 보는 용기를 택한 댓가로 우리는 비로소 새로워지는 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서 확인까지 받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의 진짜 목적은 그런데 있다고 생각한다.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불상사가 저절로 차단될 수 있었던 것은 불필요한 우연들이 곳곳에 포진된 혼자만의 여행보다 분명 나은 점이었다. (173쪽, '잠든 친구의 얼굴' 중에서)

같은 곳을 가더라도 혼자 하는 여행과 동행이 있는 여행은 각각 다른 여행으로 카운트해야 한다고, 그만큼 다른 경험이고 다른 느낌을 준다고 나는 말해오곤 했다. 그리고 솔직히 혼자 하는 여행을 조금 더 선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동행이 있는 여행이 주는 미덕도 있음을 얼마전 그룹 여행을 다녀오면서 체험했는데 그것을 시인은 위와 같이 표현했다. 친구와 여행을 하면서 어딘가 편하지 않은 느낌을 받아오던 어느 날 문득 잠들어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든 느낌을 적은 글이다. 


즐거웠지만, 나는 이상했다.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건조해져갔다. 거울을 보면 슬픔도 근심도 말끔히 사라져,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라던 것이었으나, 바라던 게 아닌 것만 같았다. 안온하되 허전한 상태. 그 허전이 난감한 상태. 나는 소파에 심드렁하게 누워 바다를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토록 바라던 한가함을 얻었고 이토록 태평한데, 왜 헛헛해하는지에 골똘하다가 그만 불안해져버렸다. 한 톨의 슬픔조차 남지 않아 공허했고 그게 불편했다. (216쪽, '바캉스적 인간' 중에서)

한 톨의 슬픔마저 없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허전하고 공허하다는 것.


시인은 여행 그 자체의 의미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느냐에서 나아가 위에 인용했듯이 낯설게 하여 새로와지기, 살아있음을 확인하기에 여행의 궁극적 목적을 두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다음 인용한 시에서도 시인의 그런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목적지보다는

목적지에 가다가 만난

시골 마을이 더 좋았다.


시골 마을 보다는 

시골 마을의 사람 없는 골목이 더 좋았다.


(...)


목적보다는

목적한 적 없는 것들이 언제나 좋았다. (120쪽, '시골 마을' 중에서)


분명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배경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닌 듯 보이는, 시인이 직접 찍어올린 사진들은, 글에 더하여 덤으로 좋았다고 하면 미안할 정도로 매우 좋았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여행기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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