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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 런던 아줌마 김은영의 페어플레이한 영국도전
김은영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약력을 보자. 한국의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나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통역대학원 시험을 여러번 응시했었다는 것을 보면. 결국 통역대학원에 진학은 못했지만 통역관련일로 회사에 근무하던 중 영국에서 한국으로 파견나와있는 지금의 영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 영국으로 이주한다. 영국에 가서 그동안의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원래 전공을 살려 영국의 대학에서 수학과 학부과정, 그리고 PGCE (Post Graduate Certificate of Education), 즉 대학원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는 1년 코스를 마치고, 보조 교사 과정을 거쳐 중학교 수학 교사가 된다. 그러면서 아이도 낳아 키우고.
2002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그동안 그녀가 경험한 이야기 속에는 영국의 교육 제도,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영국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등,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길래 읽어보게 되었다.
그녀의 경력에서도 엿보이듯이 작은 체구이지만 소신있게 선택, 결정하고,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으며 자기 개발을 위해 한시도 쉼없이 정진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글도 꽤 꼼꼼하게 비교하여 쓴 내용들이 많았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생각을 주관있게 펼쳐나갔다.
영국의 모든 제도가 우리 나라에 비해 좋다, 혹은 나쁘다 식으로 단정짓지 않고 객관성을 지키려 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론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실습을 병행시키며,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가정 생활이나 특수 상황 등을 일일이 신경쓰며 배려해주는 분위기, 교사로 하여금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조차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신체적인 벌칙이나 불미스러운 일을 미리 방지하자는 방침, 안전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경쓰는 것 등,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을 조목조목 잘 짚어 놓았다. 학제부터 우리와는 많이 다른 영국이 아니던가. 실습을 중시한다는 것은 영국에서 대학 2년을 마치면 1년은 학교를 떠나 현장 실습 기간으로 하는 것을 보며 익히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비단 학부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대학원 과정에서도 그렇고, 보조 교사 기간을 따로 두어 충분한 실습을 경험하게 한 후 다시 자격 시험을 통과한 후에야 정식 교사가 되게 하는 제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영국은 멘토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는 나라이다. 저자가 보조 교사 수습 기간을 밟을 때에도 그 학교에서 그녀를 위한 멘토를 지정받아 그녀가 학교에서 겪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여 주었다고 한다.
영국의 교육 제도를 말하면서 저자가 가장 흥분하며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에 대해 비판 했던 것은 과중한 학습량도, 지난친 사교육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못하면 사람 대접 못 받는 사회 분위기, 그것도 둘째 사항이었고, 문제는 열 몇살에 문과, 이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서 아직 미래에 대해 정확하게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시기에 벌써 진로를 정해야 하고, 한번 진로를 정하면 거기서 그 방향을 수정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 그것이었다. 열 몇 과목을 하루에 다 치뤄서 그 점수 가지고 대학엘 가야하는 대학 입학 시험에 대해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영국 사람들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모든 학생들이 열 몇 과목을 전부 시험 과목으로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도 이해가 어렵거니와 하루에 몽땅 시험을 봐버리면 혹시 그날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경우라면?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대학엘 들어가고 나니 대학생들은 졸업할 무렵이 되어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이게 무슨 시간과 인력의 낭비인지.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같아서 무척 공감이 하며 읽었다.
영국의 의료 제도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영국의 의료 제도는 전국민 무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병원에 수납창구가 없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렇다 보니 제대로 한번 진찰 받고 치료 받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길다는 것이다. 또한 연봉 4,000만원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한달에 의료보험비가 20만원이 넘는다니, 무료가 사실 따지고 보면 무료가 아닌 것이다. 대신 집 없고, 소득이 없는 사람이 아플 경우 결코 돈이 없어서 병원 문 앞에도 못가보는 일은 없다고 한다. 다른 세금과 마찬가지로 의료 보험 제도도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하는 것에 촛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는 않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좀 되더라도 말이다.
영국의 고질병, 절대 버리지 않는 것이란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전혀 쓸 일이 없는 물건 조차 꽁꽁 싸놓고 절대 버리지를 않는단다. 침대를 주문하고서 도착하기까지 몇달을 기다려야 하는 것을 참다 못해 집에서 문짝 가지고 침대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얘기도. 그러니까 한국이 그리운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읽으며 제일 부러웠던 것은 역시 육아 제도. 영국에서는 아이를 봐주는 사람을 childminder 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 처럼 이웃에서 알음 알음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교육을 받고 정식 직업으로 등록되어 있어  세금까지 내는 사람들이 childminder 라고 한다. 아이가 학교 또는 유치원에서 끝날 무렵이면 가서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먹여 주고, 숙제도 봐주고, 함께 놀이도 하다가, 5~6시 쯤 부모가 퇴근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가는데, 나라에서 가끔 childminder집을 방문하여 안전 시설이라든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를 조사까지 한다고 하니. 이건 확실히 영국이 우리 보다 낫지 않은가? 하긴, 육아 정책에 있어 우리 나라보다 낫지 않은 나라가 몇이나 될까.

얄팍한 두께에, 별 기대를 안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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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0-0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에요.

hnine 2009-10-07 11:52   좋아요 0 | URL
영국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더라구요. 하지만 육아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나라가 확실히 많이 뒤쳐져있음은 분명한 것 같아요.

같은하늘 2009-10-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분의 이력도 눈에 들어오고 영국의 사는 모습을 살짝 엿보니 완전 딴 세상이군요.

hnine 2009-10-07 18:58   좋아요 0 | URL
우리와 정말 많이 다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비슷한 점도 있어요. 영국 사람들도 '체면' 중요시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 시키는 것 잘 못하고요 ^^
 
Twilight (Paperback) - 『트와일라잇』원서 The Twilight Saga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 Little Brown Books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에 워낙 이런 류의 이야기에 별 흥미가 없었는지라, 얼마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때에도 볼 생각을 안했음은 물론이고 어떤 스토리인지에 대해서조차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몇 주 전 도서관에 갔더니 구김 하나 없는 새 책인채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무심코 들춰보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옆에서 아이가 자기도 이 책 무슨 내용인지 조금 안다고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뱀파이어와 어떤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내용이라나. 그래서 읽어보게 되었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우선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성인이 아닌 10대 소년, 소녀 들이다. 물론 남자 주인공 Edward의 경우엔 원래 출생 년도가1900년대 초라고 나오긴 하지만, 양아버지가 된 Dr. Cullen에 의해 새로 태어나, 주인공 소녀 Bella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현재 나이 17세 전후 인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함께 살던 엄마와 떨어져 아빠가 살고 있는 낯선 곳으로 이사하여 새로운 학교로 전학간 첫날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서먹한 가운데 우연히 보게된 Edward의 한눈에 반할 만한 외모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가?) Bella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런 Bella를 오히려 피하는 것 처럼 보이던 Edward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Bella에게 끌렸음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되는데, 서로에게 가지던 관심과 호기심이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지금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쓴 것 처럼 생각될 정도로 심리묘사가 섬세하고 뛰어났다. 그런데 읽고 난 지금 돌이켜보니 그 부분이, 책 내용과 상관없이 이 책에 대한 나의 흥미의 클라이막스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오히려 스토리 자체의 긴장감은 그 이후에 펼쳐짐에도 그 위기감이나 긴장감이 그닥 실감나지 않았다고 할까. 어차피 이렇게 전개될 소설이라는 지레짐작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류의 소설에 몰입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지 없이 드러난 것이다. 
오히려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를, 다른 몇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읽어가는 재미가 대신했는데 그 첫째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없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서양에서 탄생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고, 둘째, 이 소설에 등장하는 Edward는 훨씬 옛날에 태어났지만 한 외과 의사에 의해 벰파이어로 새로 태어난다. 이 대목에서 또 프랑켄슈타인과 혼동되기 시작. 벰파이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원래 벰파이어가 이렇게 탄생되는 것인가, 아니면 작가 스테프니의 아이디어인가, 작가의 아이디어였다면 그녀는 그 아이디어를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져온 것 맞는지 궁금해졌다. 세째, 이 소설 중의 Edward는 인간으로서 지니기 힘든 절대 미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보통 인간으로서는 가질 수 없고 그래서 갖기를 소망하는 능력과 외모의 소유자인 반면, Bella로 대표되는 인간은 Edward의 신비한 외모에 반하여 사랑하게 되는 것 외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혼자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한쪽은 남자이고 다른 한쪽은 여자라는 것 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 책을 읽는 나는 스토리에서 재미를 찾기보다 엉뚱한 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줍짢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이 소설의 문체까지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작가의 감성적이면서 위트있는 문장들은 이 소설의 재미에 크게 한 몫 하고 있어 따로 적어좋고 싶은 부분들도 간혹 있었지만, 과연 문학적으로도 좋은 문장이고 새겨둘만한 표현들인지는 모르겠다.

이 책의 뒤에는 이 소설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는 New Moon의 일부가 실려져 있었는데, 나는 물론 안 읽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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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0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론 한글 번역본으로 보았지만, 벨라가 에드워드에게 반해서 느끼는 온갖 심리 묘사들이 저는 너무 지루했답니다. 원서로 본 게 아니라 문장이 어떻다고 확언하기 힘들지만, 저는 문장은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리즈 중에는 '뉴문'이 제일 재밌었답니다.^^

hnine 2009-10-04 13:50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저랑 서재에서 오래 알고 지내셨으니 아시지요? 저 환타지 류에 워낙 무디다는거요 흑흑...
마노아님은 그러니까 제가 흥미를 잃기 시작한 부분부터 재미가 더해지셨겠네요.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서 내일 모레가 반납일이랍니다.

turnleft 2009-10-0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느끼는 식욕(?)을 성욕으로 대체해보면 꽤 재밌는 분석이 나오더군요. 잘생기고 능력있고 부자에, 성적으로 안전(?)하기까지 한 남자친구. 언제나 짜릿한 긴장감이 상존하면서도 결국엔 안전할거라는 믿음이 있는 남자친구. 요즘 미국 10대들이 뭘 원하는지를 짚어낸걸까요?

hnine 2009-10-04 18:27   좋아요 0 | URL
흠, 성적으로 안전하기까지한 남자친구라...역시 벰파이어 뿐이겠는걸요 ^^
식욕을 성욕으로 대체시켜본 분석, 그럴 듯 해요.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행복은 오히려 덜어냄으로써 찾아온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는 것, 나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포기하는 것, 세상은 이래야 하고 나는 이래야 된다는 규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나를 짓누르는 과거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조금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아마 이책에 대한 리뷰는 인용문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밑줄긋기 형식으로 남길까 하다가, 내 의견도 덧붙여 남기고 싶을 것 같아 리뷰로 쓰기로 했다. )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서 제일 처음 밑줄을 그은 부분이다. 행복은 무언가를 하나 더 가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낼 때, 벗어날 때 찾아온다는 말이 와닿아서이다.
  

 

   
  그대의 기쁨은 가면을 벗은 그대의 슬픔.
그대의 웃음이 떠오르는 바로 그 우물이
때로는 그대의 눈물로 채워지는 것

...
그대들 중의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하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것.
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
이들은 언제나 함께 오는 것.

 
   

 슬픔을 억누르지 말고 흘려보내라는 글에서는 칼릴 지브란의 시 <예언자>중 일부가 인용되고 있었다.
슬픔은 머물지  않는단다. 머무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순간에조차 슬픔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못 참는다고 한다.
슬픔이 찾아 오면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고 놓아줄 것. 인생에는 슬퍼할 수 밖에 없는 요소가 구석구석 너무나 많으니까.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박 목월 시인의 <가정>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부모 노릇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주는 저자의 조언은 '너무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가 그 한가지였고, '아이는 아이의 길을 걷게 하라'가 또 한가지였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으며이상적인 부모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줄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그 뿐, 머리 속에 꿈꾸는 부모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서 속상해할 것 없다는 말이다. 또한, 언젠가 자식은 부모 곁을 떠나게 되어 있고 이때 상처를 받는 쪽은 부모이기 마련이라고, 마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라는 듯이 쓰고 있다. 그러니 아이를 부모 뜻대로 끌고 가려고 하지 말라고. 부모와 아이 사이의 거리는,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글에서 말하는 딱 이 정도가 아닐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는 아이가 혼자 서는 법을 가르친다. 엄마는 아이로부터 떨어져서 언제라도 팔을 뻗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이를 붙들어 주지는 않는다. 아이가 넘어질 듯이 뒤뚱거리면 엄마는 마치 아이를 잡아 주는 것처럼 허리를 구부린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혼자 걷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게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서 아이는 격려와 칭찬을 읽는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별 어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아이는 자신을 잡아 주지는 않지만 곁에 있는 엄마의 손을 의지하여 걷는다. 아이는 언제라도 필요하다면 엄마의 품이라는 피난처로 뛰어들 수 있다.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지만, 엄마 없이도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혼자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주시하되 간섭하지 않기란, 스스로 자기의 길을 가게 하되 방관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좀더 유쾌하게 나이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 이외의 남에게 관심을 갖고 이 세상을 향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나이들면서 느끼는 의기소침과 외로움, 쓸쓸함, 허무한 감정들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내부에서 생기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말고, 그냥 주시하고 흘러가게 두라고 한다. 그나마 '좀더' 유쾌하게 나이들기 위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누구에게도 나이 들어감을 느껴가는 것은 유쾌한 감정은 아닌 것이다. 이 다음에 나오는 죽음에 관한 글에서도 본인 역시 죽음이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감정을 시인한 후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한다. 죽음이 현재를 잠식하면 안되므로.
또한, 용서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는 말로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용서할 일이 마음 속에 쌓여가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용서하기 힘든 대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용서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용서란 내 마음에서 분노와 미움을 떠나보내는 작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이 다시 고요를 되찾게 하는 작업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나의 현재와 미래를 사장시키는 일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러니까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도 쉽지 않게 생각되는 과정
.  

강력한 주장으로 어떤 교훈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담담한 마음으로, 저자 자신 역시 흔들림 많고, 남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또 받는 사람임을 드러내보이며 상당히 관조적으로 글을 써나갔다. 극복해라, 희망을 가져라, 목표를 가져라, 앞으로 나아가라, 뭐 이런 분위기라기 보다는, 기대를 덜어내라, 감정을 인정하고 그리고 지켜 보아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라,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어른으로서 산다는 것은, 산 넘어 산이 아닌지. 높은 봉우리를 만나더라도 크게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평평한 평지를 만나더라도, 다시 곧 오르막길에 부닥칠 것을 아는 것.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절망할 일도, 알고 보면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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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녀야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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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현종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로서 관심이 가서 읽어보려고 했던 책은 이 책이 아니라 최근작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다가 읽고 싶던 책은 빠지고 같은 저자의 이 책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세이렌' 세 권을 앞에 두고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고른 것이 바로 이 책 '너는 마녀야'. 제목의 '마녀'라는 단어로부터 다소 엽기적인 성격의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을까 짐작했다면 그 짐작은 빗나가고. 주인공 '김 율미'는 마녀라고 불리기에는 살면서 언제든 어디서든 마주칠 것 같은 그런 성격의 여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등단하였으나 아직 이름이 크게 알려질만한 소설을 내지는 못한 신인작가인 그녀 김 율미. 저자 자신의 얘기인가 궁금해졌다. 주인공 율미가 그토록 집착하는 것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또한가지는, 사귀고는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어보이는 애인 '이 철수'이다.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말을 남자로부터 수차례 듣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이 여자에게 남자가 종종 하는 말이 바로 제목과 같은 '너는 마녀야'.

별다른 사건이 없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소설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고 보니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많은 소설들이 실제로 그렇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 소설은 별다른 사건이 없으면서 특별한 감동이 남지도 않는다. 결혼은 자기의 야망에 걸림돌이 될뿐이라 생각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이 철수뿐 아니고, 남자가 그럴수록 더 그 남자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여자 또한 김 율미 뿐 아니라 흔하디 흔하다. 소설이 되려면 최소한 좀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헤어지자는 남자를 만나러 집으로 찾아가고,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어대고, 투정하고, 단둘이 여행을 가고 하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방식을 아예 되집거나 아니면 최소한 뭔가를 덧붙여서 말이다.
또한, 책을 다 읽어갈 때까지 한번도 주인공 여자의 진심이 진지하게 느껴져 오질 않았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쉽게 공감하고 감정이입 잘 하는 나인데도 말이다.
소설에 대한 그녀의 집착이 또다른 집착 대상인 남자와 동일 선상에서 보여져야 할지. 그것도 별로 마음에 안들고, 글의 초반부터 애완용 이구아나를 등장시킨 것은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모호하다. 주인공의 직업과 경력이 작가와 비슷한 점이 많아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픽션일까 잠깐 궁금해지는 정도의 흥미와,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문장 때문에 끝까지 마칠 수 있던 책.
기대하고 읽은 소설인데 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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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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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도 잘 그러듯이 다른 어떤 책을 읽다가 언급된 것을 보고 찾아 읽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강 석경의 <숲속의 방> 이었는지 또는 다른 어떤 책이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때 그 소설에서 풍기던 몽환적이고도 감상적인, 그 때까지 주로 읽어오던 고전 소설이나 한국 소설에서 느껴 보지 못한 그 묘한 느낌은 어찌 보면 나의 책읽기의 한 전환점을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몇 작품 더 읽어보고서 '하루키 풍'이라는 것에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려버리고는 그 이후 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안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회에 여러 번 부딪히게 되었다.  아마 다른 분들의 리뷰에 소개된 인용문들을 읽어 보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소설이 아닌 이 신변잡기 류의 책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과연 무엇일까.
우선, 그가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이라고 표현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재즈 클럽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재즈 클럽 운영을 그만 두고 글쓰기를 거의 하루의 일과로 하게 되면서부터 체중은 불어나고 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달리기, 1980년대 초의 일이다. 그러면서 점차 체중도, 몸의 상태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이제는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닌,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서, 나를 비우고 다시 채워가는 한 수단으로서의 달리기를 계속해나가게 되었다고.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주로 쓰여진 이 책의 글들에는, 그동안 그가 참가했던 마라톤이나 레이스들을 주축으로 해서 자기가 소설가가 된 경위, 소설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 소설가로서의 자기의 성격, 소설가로서의 생활, 어떻게 글을 써오고 있는가, 미국 보스턴, 하와이 등에서의 생활 등에 대해서 그야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해나가고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이던가, 무슨 일때문에 결근하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수업 시간에 들어오신 교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로 '주리반특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어느 절에, 불교에 입문하고 싶어하지만 학식도, 인물도 보잘 것 없기 그지 없는 '주리반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불경을 읽게 하여도 읽으면 곧 잊어버리기를 되풀이하기만 하는 그에게, 그 절의 주지 스님은 어느 날 그에게 불경 읽기 대신 매일 새벽마다 절의 마당을 비로 깨끗이 쓰는 일을 하도록 시키셨단다. 하루도 거르면 안되고 아주 깨끗이, 정성을 다해 마당을 쓸라고. 그날 부터 주리반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마당을 쓸기 시작하여, 그러기를 수십년 계속한 끝에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30여년 전에 들은 이야기이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였다. 

일생을 두고 마음을 다해 지속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강제로 하는 일이 아니고, 생계 수단으로써 하는 일도 아닌, 그러면서도 매일 정성을 다해 나의 시간과 마음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있는가. 

매일 수십 키로 씩을 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 오래 살기 위한 일이라든지, 멋진 몸매를 위한 일이라든지,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라든지,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추측을 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 자신에게 있어서 달리기란 꼭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달리기 이었지만,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그는 다른 무엇을 그렇게 달리기 하듯이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예술 행위라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다고 볼때 작가의 생활은 실생활 그 자체의 레벨부터 퇴폐적으로 전락할 수 있고 (149쪽), 하루 종일 안 보이는 것들을 그려 내느라 머리 속을 굴리며 쌓여 가는 체내의 독소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강력한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유지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어디서 구하겠는가, 자신의 경우에 그것이 어쩌면 달리기라는 작업이 아니었겠느냐고.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기 때문에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에도 공감.
어느 한 군데 치우치기만 하는 것이 '몰입'은 아니겠다 라는 것에 까지 생각의 한 자락이 퍼져 갔다.  

이 멋진 책의 제목을 어딘엔가 이용해보고 싶어져서, '달리기' 대신 다른 말들을 집어 넣어 보았다. 과목 이름 혹은 강의 제목을 넣어 <'ooo'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기말 에세이를 써보라고 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의 묘비 문구로 적어 넣고 싶다는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말이 오래 동안 머리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멈춤이 없는 삶, 멈춤이 없는 삶. 적어도, 그리고 최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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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8-3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에세이. 저런 과제라면 정말 신나겠어요. 요즘 학생들은 어떨지
하나하나 남다르겠어요

hnine 2009-08-31 09:57   좋아요 0 | URL
황당해하지 않을까요? ^^

2009-08-3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