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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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도 잘 그러듯이 다른 어떤 책을 읽다가 언급된 것을 보고 찾아 읽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강 석경의 <숲속의 방> 이었는지 또는 다른 어떤 책이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때 그 소설에서 풍기던 몽환적이고도 감상적인, 그 때까지 주로 읽어오던 고전 소설이나 한국 소설에서 느껴 보지 못한 그 묘한 느낌은 어찌 보면 나의 책읽기의 한 전환점을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몇 작품 더 읽어보고서 '하루키 풍'이라는 것에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려버리고는 그 이후 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안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회에 여러 번 부딪히게 되었다.  아마 다른 분들의 리뷰에 소개된 인용문들을 읽어 보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소설이 아닌 이 신변잡기 류의 책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과연 무엇일까.
우선, 그가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이라고 표현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재즈 클럽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재즈 클럽 운영을 그만 두고 글쓰기를 거의 하루의 일과로 하게 되면서부터 체중은 불어나고 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달리기, 1980년대 초의 일이다. 그러면서 점차 체중도, 몸의 상태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이제는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닌,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서, 나를 비우고 다시 채워가는 한 수단으로서의 달리기를 계속해나가게 되었다고.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주로 쓰여진 이 책의 글들에는, 그동안 그가 참가했던 마라톤이나 레이스들을 주축으로 해서 자기가 소설가가 된 경위, 소설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 소설가로서의 자기의 성격, 소설가로서의 생활, 어떻게 글을 써오고 있는가, 미국 보스턴, 하와이 등에서의 생활 등에 대해서 그야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해나가고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이던가, 무슨 일때문에 결근하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수업 시간에 들어오신 교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로 '주리반특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어느 절에, 불교에 입문하고 싶어하지만 학식도, 인물도 보잘 것 없기 그지 없는 '주리반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불경을 읽게 하여도 읽으면 곧 잊어버리기를 되풀이하기만 하는 그에게, 그 절의 주지 스님은 어느 날 그에게 불경 읽기 대신 매일 새벽마다 절의 마당을 비로 깨끗이 쓰는 일을 하도록 시키셨단다. 하루도 거르면 안되고 아주 깨끗이, 정성을 다해 마당을 쓸라고. 그날 부터 주리반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마당을 쓸기 시작하여, 그러기를 수십년 계속한 끝에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30여년 전에 들은 이야기이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였다. 

일생을 두고 마음을 다해 지속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강제로 하는 일이 아니고, 생계 수단으로써 하는 일도 아닌, 그러면서도 매일 정성을 다해 나의 시간과 마음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있는가. 

매일 수십 키로 씩을 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 오래 살기 위한 일이라든지, 멋진 몸매를 위한 일이라든지,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라든지,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추측을 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 자신에게 있어서 달리기란 꼭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달리기 이었지만,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그는 다른 무엇을 그렇게 달리기 하듯이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예술 행위라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다고 볼때 작가의 생활은 실생활 그 자체의 레벨부터 퇴폐적으로 전락할 수 있고 (149쪽), 하루 종일 안 보이는 것들을 그려 내느라 머리 속을 굴리며 쌓여 가는 체내의 독소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강력한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유지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어디서 구하겠는가, 자신의 경우에 그것이 어쩌면 달리기라는 작업이 아니었겠느냐고.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기 때문에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에도 공감.
어느 한 군데 치우치기만 하는 것이 '몰입'은 아니겠다 라는 것에 까지 생각의 한 자락이 퍼져 갔다.  

이 멋진 책의 제목을 어딘엔가 이용해보고 싶어져서, '달리기' 대신 다른 말들을 집어 넣어 보았다. 과목 이름 혹은 강의 제목을 넣어 <'ooo'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기말 에세이를 써보라고 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의 묘비 문구로 적어 넣고 싶다는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말이 오래 동안 머리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멈춤이 없는 삶, 멈춤이 없는 삶. 적어도, 그리고 최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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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8-3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에세이. 저런 과제라면 정말 신나겠어요. 요즘 학생들은 어떨지
하나하나 남다르겠어요

hnine 2009-08-31 09:57   좋아요 0 | URL
황당해하지 않을까요? ^^

2009-08-3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