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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가 사라졌다 일공일삼 20
공지희 지음, 오상 그림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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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희 작가의 이 책은 아빠의 폭력과 압력에 못이겨 이 세상에 없는 자기만의 나라로 사라져간 영모,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영모를 찾아 나선 단짝 친구 병구가 등장하는 장편 동화이다.
영모의 아빠는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기 자식만은 절대 고생하지 않도록, 누구에게 뒤지지 않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영모에게 늘 완벽할 것을 요구하고, 그에 못미칠 때에는 매질도 서슴치 않는다. 심심치 않게 몸에 매맞은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등교하는 영모는 자기의 그런 처지를 제일 친한 친구 병구에게만 털어놓고, 병구는 그런 영모를 늘 안스러워 하며 마음을 써준다. 영모가 유일하게 마음의 위로를 삼는 것은 친구 병구, 그리고 취미로 하는 조각을 할 때이다. 어떤 재료든지 영모의 손에 들어가면 멋진 조각품이 되고, 이런 조각을 하는데 사용하는 조각칼은 영모에게 제일 소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영모의 아버지가 영모의 조각칼을 다 부숴버리고 조각들을 오븐 속에 던져 넣어 태워버린 날, 영모는 집을 나온다. 병구는 영모가 갈만한 곳을 다 찾아보지만 영모는 어디에도 없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던 길에 병구는 우연히 이상한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원래 '즐거운 나'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라온제나'라는 이 세계는, 숨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나라, 이 세상 어디에도 숨을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을 때 오게 되는 나라, 그런 아이들을 숨겨 주는 나라이다. 그곳에서 병구는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는 나라에서 제물감이 되는 것을 피해 도망온 아이 로아와, 로아와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들은 병구가 그 세계에 방문할 때마다 다른 모습, 다른 연령대로 나타난다. 즉 시간 이동이 가능했던 것. 그런데 영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 앞 부분에 영모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는 내용을 읽으면서, 아마도 부모로부터의 지나친 압력과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의 이야기인가보다 했었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판타지 동화로 분류되어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면서. 그러다가 차츰 알게된 것은, 판타지 세계란 어떻게든 현실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그 현실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일 때 그려볼 수 있는 탈출구로서 등장한다는 것을. 현실의 하루하루가 어린 아이의 능력으로는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영모는 마침내 이런 세계로 숨어버린 것이다. 판타지라는 것은 이렇게 등장하는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던 인물이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는 없다. 지금은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나라, 지친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안아줄 수 있는 나라를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숨을 수 있는 세계가 있어서 아이들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고 이 세상을 영영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뒷부분의 결말이 너무나 예상대로, 정답처럼 끝맺음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뿐 아니라 우리 나라 아동 문학 작품에서 많이 아쉬운 점이 아닌가 한다. 별 세개만 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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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소리로 말하던 시간
안 리즈 그로베티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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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냐민과 오스카라는 두 사내 아이가 등장하여 함께 학교 다니고 놀고 장난 치는 얘기가 나오길래 처음엔 '꼬마 니콜라' 같은 분위기의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꼬마 니콜라는 굳이 낮은 목소리로 말해야 할 필요가 없었지.
오스카의 아버지는 은행에서 일하는 회계사, 벤야민의 아버지는 작은 식료품 가게 주인. 둘 다 시를 좋아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학교를 마치면 벤야민은 아빠의 식료품 가게에 들러 오스카와 함께 사탕을 얻어 먹기도 하고, 그 또래 사내 아이들처럼 장난도 치며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그러던 그들에게 언제부터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해야 하는 시간'이 오게 된다. 나찌의 세력의 범위 내에 이들의 마을이 들어가게 된 것. 유태인인 오스카의 가족은 당장 위협을 받게 되고, 이들 가족을 도우려는 오스카 아버지까지 혹시 피해가 갈까봐 염려 속에 오스카 아버지가 택한 결단은 그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것. 이 두 아버지는 물론 오스카와 벤야민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함께 제비꽃 사탕을 먹으며 뭐든 따뜻하고 달콤한 것에는 제비꽃 사탕 같다고 비유하던 벤야민과 오스카의 행복한 어린 시절, 서로가 더 좋은 시인의 기질을 가졌다고 농담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와 아름다운 언어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던 이 둘의 아버지의 삶의 낙이, 이 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시대적 상황, 여기서는 인간의 광기로 벌여진 엄청난 불꽃의 열기라고 묘사되어 있는 히틀러의 광기와 이념때문에, 어떻게 묵살되고 폐허처럼 남게 되는지, 열변과 폭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천진한 어린이의 입장에서 보고 느낀 대로 묘사되어 있다.

   
  사람들의 말과 인사를 나누는 방법, 목소리의 크기가 바뀌었다. 그 다음에는 깃발과 행렬이 조금씩 늘어 갔다. 우리 어린아이들은 축제라고 믿고 싶었다. 어쨌거나 어깨에 힘을 주고 음악에 맞춰 깃발을 따라 행진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으니까. (27쪽)  
   

 동네가 나찌 세력권에 들어감에 따라 달라저 가는 모습이 어린 벤야민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 묘사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임무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33쪽)  
   

 세상이 그렇게 다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던가? 어느 강한 소수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서?
오스카의 가족과 헤어진 후 벤야민은 시인이 되기를 바랐던 아빠의 기대와 달리 물리학자가 되었지만, 작은 입자들 속에도 하이네의 시에 있는 것만큼이나 많은 시구(詩句)가 들어 있다고 아빠를 설득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작은 입자들 속에도 많은 시구가 들어있다는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이런 마음이 시대를 버티게 하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작가는 삶이 경멸당할수록 삶의 소소한 면면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다고 한다 (78쪽). 이야기 속의 이들에게 그것은 였고 아름답고 진실된 이었다.

   
  아빠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지금까지 늘 노력해 온 것이 있다. 악의를 품은 말도, 숱한 어리석은 말도 입에 담지 않도록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 (74쪽)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시대상황을 극복해가는 방법으로서 말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 금방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한 사람의 말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지 않도록 하는데 더 마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열아홉살에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가 이제 육십이 다 되어 펴낸 소설이라는데, 어린 아이의 눈으로 묘사되어 그런지 짧고 간단한 문장, 그리고 70여 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때문에 소설보다 꼭 시를 읽는 것 같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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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4-13 01:06   좋아요 0 | URL
아이쿠, 후다닥 올린 리뷰였는데 칭찬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자연과학과 문학이 별개의 다른 분야가 아니라 이렇게 서로 교통되어질 수 있을 때 참 멋있는 것 같아요.
'우아하다'라는 말에는 그렇게 높은 격이 있었네요.

하늘바람 2010-04-1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는 것같은 책.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시처럼 간결하고 깊음을 담은.
제목도 참 시 같네요

hnine 2010-04-13 01:09   좋아요 0 | URL
예, 깊이 있는 글이 꼭 길고 장황한 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깊이있는 글을 쓰겠다고 작정하며 쓰면 대개 글이 길고 장황해지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고 간결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오히려 감동을 주는 것 같았어요.

프레이야 2010-04-1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의를 품는 말도, 어리석은 말을 입에 담는 일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나인님의 글은 늘 정곡을 찌르는 감동이 있는 것, 아시죠?^^

hnine 2010-04-14 06:04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책에서 그 부분을 읽으면서 찔끔했거든요.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살지 않는 한 누구든지 그러지않을까 싶어요.

같은하늘 2010-04-16 15:1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 많지요.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살 수도 없고...
 
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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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과 같이 의학이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전염병'이라는 것이 풍궐하고 있다. 최근의 신종 플루에서부터 광우병, 구제역, 조류 독감에 이르기까지.
한번 이런 병이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고 이것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문제는 없다. 사람들의 모든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이슈가 되어버린다.
작가는 최근의 이런 일들에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을까?
아내와 이혼하고 표지의 소개처럼 절대고독의 한 남자가 그 고독을 헤치고 다시 시작할 마음으로 직업상 파견된 국가는 전염병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상황, 남자는 공항에서부터 쉽게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채 검사대에 오른다. 당장 출근해야 할 회사에서조차 출근을 보류당한채 타국에서 방치되어 있는 그는 불안하기만 하다. 전염병의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수시로 뿌려대는 소독약,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거리, 방역복이 일상복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복장, 검사 결과에 따라 외부 출입이 제한되고 음식도 배급되어지는 상황. 거리에 넘쳐 나는 쓰레기, 숨을 쉬는 이상 피할 수 없이 맡아야 하는 악취등,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사회에서 갖혀 지내는 남자의 상황은 이후 계속 등장하는 쥐의 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아갈 수가 있나 하며 읽다 보니 어찌 보면 이렇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상황은 어차피 하나의 상징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힘으로 어찌 못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사람을 피하면서 동시에 절대고독에 괴로와하는 모순 속에 지내는,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하나 그것 조차 불투명한 상황, 그 속에서 무제한 기간을 버텨내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랄까. 작가는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본다.
작가가 그린 이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 한 구절을 예로써 옮겨본다.

   
  몰입해서 보려고 해도 뉴스는 광고로 자주 중단되었다. 우울하고 암울한 화면과 달리, 우울증의 전구증상이라도 되듯 광고는 들뜬 유머 일색이었다. 죽음을 전하는 화면 다음에 이어진 광고에서 한 사내가 신나서 죽겠다는 얼굴로 거품이 가득 인 맥주를 시원하게 마셨다. 광고가 끝나면 다시 화면이 바뀌어 아나운서가 굳은 표정으로 소식을 전하고, 잠시 후에는 다시 똑같은 맥주 광고가 이어지는 식이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알코올 0도라는 맥주였다. 도대체 알코올도 없는 맥주를 왜 마셔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생각과 상관없이 아무리 마셔도 절대 취하지 않는다는 카피가 광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는 신기원의 발명품인 듯 들뜬, 알코올 0도의 맥주 탄생을 알리는 광고와 종말을 예보하듯 누군가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암울한 뉴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43쪽)  
   

그는 간간히 출국 전의 일들을 회상한다. 아내에 대한 그의 의심으로 이혼까지 가게 되었고, 그 아내를 그리워한다. 아니,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로 인해 제공되던, 함께 나란히 누워 누군가 내 옆에 있음을 느끼며 그나마 절대 고독 상태를 잠시 잊을 수 있던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런 아내를 출국 전 남자는 어떻게 하고 왔던가.
전염병 감염자로 의심받게 되자 아파트를 탈출하여 쓰레기 더미 가득찬 공원의 부랑자 생활을 하며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 사는 생활을 하기도 하고, 쥐가 들끓는 하수구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는 여전히 쥐가 무섭고 두려웠다. 처음에는 자신이 쥐와 같은 처지라는 게 무서웠고 나중에는 쥐를 잡을 때에만 쥐와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어, 그 안도감 때문에 틈나는 대로 쥐를 잡으려고 하는 게 무서웠다. 쥐 한마리가 이끈 우연의 행보가 두려웠고, 그 행보를 원망하듯 어떤 독한 약이나 험한 매질에도 죽지 않는 쥐를 끝끝내 죽이고 싶어하는 자신이 무서웠다. (228쪽)  
   

쥐와 남자의 관계를 통해 남자의 처지와 심리를 매우 잘 표현한 구절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작품 여기 저기에서 주인공 남자의 생활은 쥐의 생활사에 많이 비유되어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쥐의 생활사가 작품 전체에 걸쳐 무척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프란체스코 산토얀니의 <쥐와 인간>, 로버트 설리번의 <쥐들> 을 참고했다는 각주가 붙어있기도 하다.
전염병에 감염되었다고 의심되는 개체는 가차없이 소각되어 지며 그 결과로 남는 것은 회색의 '', 살아있는 개체에 대한 살생 행위의 흔적으로 남는 피의 '빨강'. 바로 이 책의 제목 '재와 빨강'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간이 인간의 능력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서 신종 전염병이라는 속수무책의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소외 현상을 접목시켜 생길 수 있는 이야기를 절묘하게 만들어나갔다. 소설 속의 가상적인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에게 전염병 시대는 먼먼 옛이야기가 아님을 최근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때문에 읽는 독자로서 실감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다만, 읽는 동안 어딘지 이야기의 흐름이 일관적으로 흐르지 않고 산만한 느낌이 들어 읽다가 자주 멈추게 되기도 했었다. 그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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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의 제목을 보니 까뮈의 "페스트"가 떠오르네요. 저도 이 소설을 샀는데 (편혜영소설은 처음이구요), 아직 읽기 전이예요. 그나저나, 리뷰를 참 부지런히 많이 쓰시네요. 대단하세요...

hnine 2010-04-11 21:32   좋아요 0 | URL
저도 편혜영의 소설로 처음 읽었답니다. 한번 읽어보실만 해요.
책을 읽고 나면 좋았거나 별로였거나 어쨌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리뷰를 올리긴 합니다. 또 요즘은 그 낙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침묵의 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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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기에 앞서 책 표지에 필기체로 쓰여져 있는 글씨부터 눈에 들어왔다.
Love, Christian, is a warm bearing wave.
나중에 보니 이 문장은 슈텔라가 크리스티안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내용이었다.
크리스티안, 사랑은 따스함을 머금은 물결이야. (144쪽)
고등학생 크리스티안과 그의 학교 영어 선생님인 슈텔라 사이의 짧은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을 80대의 노장 소설가가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하며 감정으로부터 절제되어 있다.
크리스티안은 그 당시 슈텔라에게 느끼는 자기의 감정을 과장하지도, 축소시켜 억누르지도 않고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으로 불붙는 모습의 사랑이 아니었다. 슈텔라 역시 크리스티안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물리치려 애쓰기 보다는 그대로 반응한다.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들의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겉잡을 수 없이 갈 것인가, 고뇌하며 괴로와하지 않고 솔직한 감정을 주고 받는 단계까지 진행될 시간만이 주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슈텔라가 크리스티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저 짧은 편지 내용처럼, 그들의 사랑은 뜨겁기 보다는 따스함을 머금은, 거센 파도라기 보다는 잔잔한 물결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주위에 떠벌리고 싶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그들만의 영역 속에 침묵으로 머물고 지키고 싶은 사랑이었는데 남들에게 누설하는 순간 내게 전부였던 것이 단번에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153쪽) 생각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그들의 사랑에 종지부가 찍어진 후 크리스티안은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지도, 있을 수도 없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혼자 있는 것이었다. (153쪽)
혼자 있고 싶은 순간, 혼자 알고 싶은 일, 혼자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말 소중하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침묵의 시간 속에 넣어두기.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사랑이라는 주제도 전혀 흥미를 자아내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이 책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이러한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 책과 함께 남을 감상이 될 것이다.
담백하고 절제된 이야기의 흐름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재미는 덜한 감이 있다는 점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넘어가자. 별이 네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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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4-06 23:55   좋아요 0 | URL
"쟤는 통 말이 없어요." 전 늘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하마트면 이 책의 '침묵'을 그런 말없음과 착각할 뻔 했어요. 의사 표현을 잘 못하는 말없음이 제 경우였다면 이 책의 침묵은 목적과 의도가 분명한 침묵이었지요.
남도의 봄을 보고 오셨다는 말씀에 왜 제가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화사해지는지 모르겠네요.

2010-04-0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7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뢰제의 나라 푸른도서관 1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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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타지 동화를 몇 권 골라서 읽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에 리뷰를 올린 <신기한 시간표>, <두로크 강을 건너서>에 이어 현재 국내에서 대표적인 역사 동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강 숙인 작가의 2003년 작 <뢰제의 나라>를 읽었다. <아, 호동 왕자> 이후로 그녀의 작품은 이것이 두번 째인 셈. 책의 제목을 보고 누구나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 했을 것이다. '뢰제'라는 이름때문인데 여기서 '뢰'는 우뢰 뢰(雷), '제'는 임금 제 (帝)로서 우뢰의 황제를 뜻하는, 작가가 어느 문헌에서 본 후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어 등장시킨 인물이다.
다섯 살때 사고로 아빠를, 1년 전엔 병고로 엄마를 여의고 경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다함이와 다예 남매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열두 번째 생일날, 다함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동생 다예의 축하를 받지만 일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울적해하며 엄마를 그리워 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러고 며칠 후 다함이가 우연히 동네에 나타난 문화재 도굴꾼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뒤를 쫓다가 발각되어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갑자기 가게 된 세계, 즉 저승 세계에 도착해보니, 다른 사람과 착각에 의해 잘못 불려들여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이야기는 흔히 들어오던 얘기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관심과 지식, 상상력이 총망라하여 실로 흥미 진진하게 펼쳐 진다.  
역사적 기록에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보태어 구상되어진 이 책의 저승 세계는 뢰제의 나라로서, 동, 서, 남, 북으로 위치한 궁에 각각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네 신이 거주하며 뢰제를 비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뢰제의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이 생겨나고, 그 질서를 다시 되돌려놓기 위해 뢰제의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매년 뢰제가 잠들어있다는 궁으로 들어가는 도전을 하게 된다. 느닷없이 이 뢰제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게 된 다함이가, 그 젊은이 중의 한 사람과 함께 그 도전의 행로에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열흘 동안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저승 세계라면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그 또한 나름대로의 질서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영위되어 나가는 하나의 세계로 그려지고 있으며, 인간이 아닌 신이 다스리고 있는 이 나라에서 힘과 권세가 신민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 없는 기(氣)가 작용하여야 해결되는 일들이 있고,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정은 저승 세계에 대한 신비함을 그대로 지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미래에 뢰제의 아들이 나타나서 뢰제의 나라의 무너진 질서를 다시 잡아주리라는 설정은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보여지는 전형적인 패턴인 것 같기는 하다. 한번 가진 신념을 굳게 지켜나가는 것, 섣불리 나서기 보다는 적절한 때가 되기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친구, 동료 사이의 신의를 중요시하는 모습 등은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읽는 사람에게 조용하고도 확실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물질적인 부나 무기,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확고한 신념과 질서, 믿음, 정신력(氣)이 강조되는 세계인 뢰제의 나라는 저승 세계이지만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향으로도 보여져서 사후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가 얼마나 큰 애정과 노력으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엮어냈을지 짐작이 가며,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이렇게 훌륭한 환타지 동화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도 될 것 같아서 다 읽고 난 느낌이 무척 뿌듯한 책이었다. 

 

* 참고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블로그가 있어 소개해놓고자 한다.
-->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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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05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숙인 작가 역사 동화, 소설 많이 썼지요.^^
개인적으론 '초원의 별'이 제일 좋았어요. 영화를 만들어도 스케일 방대한 작품이 될 거 같은... 전엔 이분 블로그에도 갔는데 오랫동안 글이 안 올라와서... 오늘 간만에 님 덕분에 가봤어요.^^

hnine 2010-04-05 11:40   좋아요 0 | URL
제가 만약 영화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런 책 읽을 때마다 영화로 만들고 싶어할 것 같아요. 작가 블로그에 가보니 역사 동화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단 데뷰도 환타지 동화로 했다고 하시더군요. 이 책은 역사와 환타지가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지요. '초원의 별'도 읽어봐야겠어요.

bookJourney 2010-04-05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희 첫째 아이가 흥미있어할 것 같은 책이에요. 우선 찜해둡니다. ^^

hnine 2010-04-05 11:40   좋아요 0 | URL
용이에게 이 책이 재미있었다면 아마 이분의 책들을 다 찾아서 읽으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