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가 사라졌다 일공일삼 20
공지희 지음, 오상 그림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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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희 작가의 이 책은 아빠의 폭력과 압력에 못이겨 이 세상에 없는 자기만의 나라로 사라져간 영모,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영모를 찾아 나선 단짝 친구 병구가 등장하는 장편 동화이다.
영모의 아빠는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기 자식만은 절대 고생하지 않도록, 누구에게 뒤지지 않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영모에게 늘 완벽할 것을 요구하고, 그에 못미칠 때에는 매질도 서슴치 않는다. 심심치 않게 몸에 매맞은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등교하는 영모는 자기의 그런 처지를 제일 친한 친구 병구에게만 털어놓고, 병구는 그런 영모를 늘 안스러워 하며 마음을 써준다. 영모가 유일하게 마음의 위로를 삼는 것은 친구 병구, 그리고 취미로 하는 조각을 할 때이다. 어떤 재료든지 영모의 손에 들어가면 멋진 조각품이 되고, 이런 조각을 하는데 사용하는 조각칼은 영모에게 제일 소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영모의 아버지가 영모의 조각칼을 다 부숴버리고 조각들을 오븐 속에 던져 넣어 태워버린 날, 영모는 집을 나온다. 병구는 영모가 갈만한 곳을 다 찾아보지만 영모는 어디에도 없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던 길에 병구는 우연히 이상한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원래 '즐거운 나'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라온제나'라는 이 세계는, 숨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나라, 이 세상 어디에도 숨을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을 때 오게 되는 나라, 그런 아이들을 숨겨 주는 나라이다. 그곳에서 병구는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는 나라에서 제물감이 되는 것을 피해 도망온 아이 로아와, 로아와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들은 병구가 그 세계에 방문할 때마다 다른 모습, 다른 연령대로 나타난다. 즉 시간 이동이 가능했던 것. 그런데 영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 앞 부분에 영모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는 내용을 읽으면서, 아마도 부모로부터의 지나친 압력과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의 이야기인가보다 했었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판타지 동화로 분류되어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면서. 그러다가 차츰 알게된 것은, 판타지 세계란 어떻게든 현실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그 현실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일 때 그려볼 수 있는 탈출구로서 등장한다는 것을. 현실의 하루하루가 어린 아이의 능력으로는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영모는 마침내 이런 세계로 숨어버린 것이다. 판타지라는 것은 이렇게 등장하는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던 인물이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는 없다. 지금은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나라, 지친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안아줄 수 있는 나라를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숨을 수 있는 세계가 있어서 아이들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고 이 세상을 영영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뒷부분의 결말이 너무나 예상대로, 정답처럼 끝맺음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뿐 아니라 우리 나라 아동 문학 작품에서 많이 아쉬운 점이 아닌가 한다. 별 세개만 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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