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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도 아프다
연송이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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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별로 매력적인 제목이 아니다. 저자의 이름도 낯설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책장을 들춰보게 되는 것은 대체 무슨 얘기를 써놓았나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조금이라도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일 것이다.
읽어보니 글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기는 하다. 마치 옆집의 입심 좋은 아줌마의 한바탕 수다를 깔깔거리며, 무릎을 쳐가며 듣고 난 기분이랄까. 속이 좀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순간적인 공감은 줄 지언정 아무런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왜 우리 아줌마들은 어느 순간 반 우울증 환자가 되고, 매사에 의욕을 잃으며, 한때 좋아서 결혼까지 한 남편이 그저 귀찮고 무심한 존재가 되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한숨 쉬게 되는지, 금방 공감이 되게 글을 쓰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리고 평소의 나의 생각을 보태어 제안하고 싶은 것을 이 기회에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뭐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이 될수도 있겠는데 막상 결혼을 앞둔 후배가 직접 물어온다면 그냥 겪어보라고 할 것 같다. 

1. 경제력
가사 노동, 육아, 이런 것들에 하루 24시간을 다 소비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내 역할을 인정받기는 힘들다. 현실이다. 남이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내가 내 자신에 불만족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남편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자기의 수입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시댁, 친정, 기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를 낳은 후 잠시 일을 손에서 놓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에도 일을 놓는 것이 '무한 기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유한 기간' 놓는다는 마음 가짐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본인이 길을 터놓아야 한다.  이거, 거저 되지 않는다. 남편이 해주지 않는다. 기대하지 말자. 내가 해야할, 온전히 나의 몫인 일이다.

2. 나를 위해 살자
나 역시 책 속 저자의 말처럼 나는 절대 '일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어릴 때부터 결심을 했던 사람이다. 즉 보통 여자라면 일과 육아, 둘 다 만족스럽게 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혹시 본인은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그 자식은 늘 결핍 상태로 자라고 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부터 내 일과 육아가 오버랩되는 시기가 왔고 그때 나는 일을 놓았다. '일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는 생각의 실천이었다. 이후로 나의 온 신경과 관심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감에 따라 그 신경과 관심은 조금씩 늦추고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말 못하고, 엄마가 먹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그래야하는 서너살 시기가 지나면 이제 아이는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을 점차 배워가고 거기서 만족과 기쁨을 느껴간다. 우리 나라 엄마들,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아이가 엄마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생활을 하며 자식의 (학업)성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NO, NO, NO.
생활 패턴의 스위치가 누구나 쉽지는 않지만, 늘어지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전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래서 내 책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추진력 있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즉 알아서 내 앞가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남 탓, 주위 환경 탓, 실컷 하되 한번으로 족하다. 그것을 계속 마음에, 입에 담아두고 나의 앞으로의 행보를 막는 구실이 되어서도 안되고 변명이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을 누가 알아다 던져주기 전에 스스로 찾고 뚫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줌마만 아프겠는가? 아저씨도 나름 아플 것이고, 아무 걱정 없어보이는 아이들도 나름의 고민과 걱정이 다 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괜찮다, 괜찮다 덮어두며 살아 큰 병이 되기 전에, 이렇게 '나는 아프다'고 만방에 알리는 것, 자신으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엔 대책이 와야한다. 나의 주변 상황, 주변 인물들을 개조시키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는 대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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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공감해요. 타인을 개조시키기 위한 대책이 아닌 나를 움직이는 대책에서 특히.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민감하도록 키워지잖아요. 요즘은 좀 덜 하려나요?
여하간... 내 욕심 보다는 가족을 우선할 때가 많죠.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포인트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라는 말씀...... 저 진짜 긍정해요. ^^

hnine 2011-01-05 11:03   좋아요 0 | URL
가족, 아이 위주로 사는것에 대해 사람마다 각자 가치관이 다르니까 뭐라 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중에 아이도 엄마의 그런 지나친 관여가 부담스럽고 귀찮아 질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 상처 받지 않고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것, 나 자신이 챙겨야 할 문제인데, 나도 모르게 누구때문에, 어떤 상황때문에 라는 말을 저부터 대화나 글 중에 자주 쓰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말이 나오고 그런 글이 써지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제일 먼저 달려와 공감, 긍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섬사이 2011-01-0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서관 엄마들과 미술관에도 가고, 콘서트도 가고, 독서모임도 해요.
엄마들의 공통된 의견이 남편들이 그런 아내들을 '낯설어' 한다네요.
가사일과 아이들하고 세트로만 묶어 생각했던 아내가
어느 날 그럴 듯한 책을 읽고,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 미술관에 간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하더랍니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런 남편들을 보며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경제적 독립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를 움직이는 대책'이 와야 한다는 말에 박수치며 공감해요.

hnine 2011-01-05 12:02   좋아요 0 | URL
'가사-아이들-나' 이렇게 세트로 묶어져 생각되어지는 것은 많은 주부들의 공통점일거예요.
도서관 엄마들과의 미술관, 콘서트, 독서모임. 가족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아요. '엄마가 무슨 심부름꾼일줄 아느냐, 오늘 하루 종일 엄마 시간은 한 시간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이런 말을 퍼붇고 있는 것을 알고 제 자신이 참 싫어지더라고요. 다른 가족들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이 나이까지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해서 다른 엄마들과의 모임에 참석을 잘 못하고 있네요.

BRINY 2011-01-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신 어머니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함부로 못하고...그냥 안타까울 뿐이에요.

hnine 2011-01-05 17:2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오신 것을 보았으니 우리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해요. 대책을 세운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도 그대로 답습하고 우리 딸들이 또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너무한 여자의 일생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요?
나이드신 어머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없답니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
권하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권하은이라는 이름은 벌써부터 내 귀에 익어 있었다. 무슨 문예지 공모를 통해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는 더더욱 아닌, 어떻게 보면 신인 작가임에도 그녀의 이름이 여기 저기서 조용조용히 거론되는 것을 나도 가만가만이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지금까지 두권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녀의 두번째 소설이고, 조만간 그녀의 첫 소설 <바람이 노래한다>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따로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 않아서 좋다. 언젠가 그녀가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들었다. 자신은 따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쓰지 않았는데 책이 나오고 나니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고 자신을 청소년 소설 작가로 부르는 경우가 있어 좀 뜻 밖이었다고. 아무튼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아마 나로 하여금 관심을 더 끌게 하는 요인이었던 것은 맞다. 주인공 '나'가 소설의 화자가 된다. 주인공이 아기때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별 다섯개 전과자. 고등학생이 된 '나'는 그래서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뭐든지 늦고 서툴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자신을,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발이 닿지 않는 아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물건을 훔치는 버릇까지 있는 '나'는 담임으로부터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그러면서 변명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우등생 친구 (여기서 '군중1'이라고 호칭된다)와 가까와 진다. 폐휴지를 모아 고물상에 넘기고, 동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어느 날 '군중2'라고 호칭되는 반 여자 친구의 호감을 사게 되고,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셋은 점차 가까와져간다.
수감중인 아버지가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져 형사가 '나'의 집을 감시하는 일이 생기자 문득 아버지와 엄마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무작정 엄마가 있다는 B도시에 가보기로 하는 주인공을 친구인 군중1이 동행해준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자신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함께 해주는 것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저렇게 강하면서 단순한 녀석들이 바로 나중에 커서 세계 평화를 위한다면서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어차피 사람이란 자신이 겪고 경험한 거 외엔 절대 알 수 없는 거 아닐까, 그래서 그 녀석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는 주인공은, 내가 보기엔 절대 남들보다 모자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정을 폭로하기 위한 작업에 주인공을 끌어들인 여자 친구 '군중2'는 아버지의 외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그런 엄마를 이해해야한다는 사실때문에 이중으로 마음이 괴롭다. 그녀의 엄마는 수시로 이삿짐 싸는 것이 취미라며, 주인공에게 너의 도둑질은 우리 엄마의 이삿짐 싸기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폐휴지 모으는 일을 함께 하며, 어떻게 보면 주인공과 경쟁 상대이던 동네 할머니 집을 우연히 찾아간 주인공이 눈 앞에 펼쳐진 암울한 상황을 그냥 등돌리지 못하고 나름대로 수습하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하고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할머니의 네 살짜리 손자를 주인공이 리어커에 싣고 그 집을 뜨는 그 마지막을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봐야하는가, 또다른 찌질한 인생의 시작이라고 가슴 아파야 하는가.
이 책은 순전히 작가 자신을 위해 쓰였기 때문에 작자도 자신이지만 독자도 자기 자신이라고,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말한 작가 후기도 인상적이다. 340kg의 체중으로 호흡곤란때문에 서른 여덟살에 죽은 '이즈'라는 가수가 부른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는 노래도 이왕이면 들어봐달란다. 이 책 중에도 나오고, 실제로 이 책을 쓰는 중 계속 들은 노래라고.
뭐든지 모자라고, 발육이 늦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처음부터 묘사해놓고, 그런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말하는 투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눈에 거슬려, 책을 읽는 중반까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앞과 잘 맞물려 가는 구성이라든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작가만의 특별한 그 무엇이 전해져와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무지개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자장가에서나 들어오던 꿈이 있고 상상 속의 파랑새가 날고 있을까? 그 노래 역시 What a wonderful world가 노래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불려질 수 있는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 * 지난 달에 작가의 세번째 소설 <비너스에게>가 나왔음을 리뷰를 올리고 난 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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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0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소설 하면 대부분 가정환경이 열악한 아이들만 주인공일까 하는 의문점을 갖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을 위해 쓰여졌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깁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 참 좋죠. 340kg의 거구라니 꽥!!

hnine 2011-01-04 22:28   좋아요 0 | URL
쓰면서 작가가 자기 속의 많은 응어리를 풀어낼수 있었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요.
'이즈'라는 가수가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찾아보니 목소리가 참 편안하더군요. 이 가수의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이 소설을 썼대요.

hnine 2011-01-1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처량한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다. 모두 이 작가때문, 이 소설때문.
 
윈터걸스 개암 청소년 문학 8
로리 홀스 앤더슨 지음, 공경희 옮김 / 개암나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계획 없이 먹는게 뭔지 기억 못 한다. 칼로리와 지방 함유량을 계산하고,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늠해서 그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가늠한다. 보통은 안 된다고, 먹을 자격이 없다고 결정한다. 그러면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 놓으며 피가 나도록 혀를 깨물고 입을 꾹 다문다. 그 사이 눈먼 촌충 한마리가 내 기관을 감싸고, 킁킁대며 내 뇌의 열린 틈을 찌른다. (261쪽)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섭식장애를 가지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친구이자 소아과 의사로 부터 이 주제를 한번 소설로 다뤄보라는 권유를 받아 쓰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대학 진학을 앞둔 한 소녀 '리아'와, 그녀의 절친이었다가 한동안 관계가 소원해진 동안 결국 혼자 모텔에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캐시', 그리고 그 둘의 가족들이 등장 인물로 나온다. 캐시는 죽기 전에 계속 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리아는 그 전화를 무시했고 그 죄책감때문에 캐시가 죽은 후에도 사방에서 그녀의 환영을 보며 괴로와 한다. 죽기 전 캐시는 뚱뚱한 자기 모습 때문에 고민하고 잃어하는 자신감을 찾기 위해 먹고 토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리아는 캐시의 그런 모습을 혐오하기 보다는 동정하고 도움을 주어왔다. 그런 둘 사이가 멀어지게 되자 마음이 의지할 곳을 잃은 캐시는 더 방황을 하게 되었고 리아는 신경을 끄고 있던 중이었다.
삐쩍 마른 신체를 가지고 있는 리아는 먹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여 음식이 나오면 일단 칼로리부터 계산을 하는 타입. 비정상적으로 말라가는 그녀를 가족들은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기도 하고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도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리아에게는 더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다. 심장 전문의인 엄마와 역사학과 교수인 아빠를 둔 리아. 엄마는 늘 바빴고 자로 잰듯 철저한 사람이었으며 부모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결국 부모는 이혼을 하고 리아는 새엄마와 새엄마가 데리고 온 이복 동생과 새로운 가족 구성 속에서 살게 되는데 리아의 문제점을 안 새엄마는 매일 리아의 체중을 재면서 그녀를 지켜보는 책임을 맡았고 이런 새엄마의 눈을 속이기 위해 리아는 체중계에 올라가기 전 주머니에 돌멩이를 잔뜩 숨겨 넣고 몸무게를 속이고, 다른 식구가 먹은 접시를 자기가 먹은 접시인양 꾸미는 등, 먹을 것을 거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자기 몸을 면도칼로 긋는 자해 행위를 하며 내 몸 속의 온갖 독소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하며,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카페테리아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보며 꾸역꾸역 모여드는 수족관을 연상하는 리아는 현실을 현실로 보기 보다는 혐오스럽고 피하고 싶은 도가니로 볼 뿐이다.
'윈터 걸'. 완전히 산 것도 아니고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닌 사람을 말한다. 죽은 친구 캐시의 환영은 리아에게 너도 이쪽 세계로 오라고 권한다. 리아 자신도 먹을 것을 극도로 거부함으로써 온전한 삶을 꾸려나가질 못한다. 즉 윈터 걸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비록 그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믿고 따라주는 이복 동생 엠마를 위하는 마음, 자신의 극단적인 행동이 어린 엠마에게 또다른 상처와 회복되기 힘든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리아를 보며 그녀의 순수하고 여린 본성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제발 그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길 바라며 조마조마 했다.
이 책은 번역본이긴 하지만 눈에 띄는 개성있는 표현들 때문에 더 좋았다. 
다음은 망가져가고 있는 자기 몸을 리아가 상상하는 부분이다.

고름 색깔의 지방 덩어리가 내 허벅지와 배를 짓눌렀지만, 의료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내 뇌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두개골 안쪽에 전기 폭풍우가 밀어닥쳤다. 내 지친 간은 가방을 싸고 있었다. 내 콩팥은 모래 바람 속에서 길을 잃었다. (238쪽)

다음은 리아를 또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아빠를 보며 리아가 하는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다.

땅콩 버터가 아빠의 입술을 딱 붙여 버렸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로 끈끈하지 않다. (263쪽) 

 작가는 어떻게 보면 일반인으로서는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를 리아의 심리 묘사를 참 특이한 방법으로 잘 해놓고 있었다. 훌륭했다.

내 이야기로 실을 잣고 내 세상이란 천을 짜고 있다. 어린 요정 무용수는 나무 인형이 되었다. 무신경한 사람들이 그 인형에 달린 줄을 홱홱 당겼다. 나는 통제력을 잃고 빙빙 돌았다. 먹는 게 힘들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사는 것은 가장 힘들었다. (345쪽)

마지막 페이지의 그녀의 힘겨운 한마디는 어떤 결의보다도 감동적이다.

나는 내 언어와 환상을 물레질하고 짜고 뜨개질한다. 삶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할 때까지. 마법의 치료 따위는 없다. 뭐든 영원히 떨쳐 버릴 수도 없다. 다만 작은 발걸음으로 나아갈 뿐이다. 좀 수월한 하루, 예상치 못한 웃음,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거울. (345쪽)

참으로 삶은 극복해야할 일 투성이이다. 그건 꼭 나이와 상관 없다. 그 한가지를 극복해낸 주인공 리아는 마지막 부분에서 내게는 십대 소녀가 아니라 거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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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30 05:35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가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 책에는 음식 거부증 뿐 아니라 자기 몸에 자해하는 행위까지 나와요. 자기 몸에 대한 이런 자해 행위는 지구 상에서 인간들만이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어요. 원인이 뭘까 파헤쳐 보고 싶기도 하고요.

세실 2010-12-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숨쉬기조차 힘들때가 있지요. 그 느낌 알아요.
그렇게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크는거죠. 전 아직도 크는 느낌이예요.
몸도 마음도. ㅋㅋ
내년엔 딱 5킬로만 뺐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온 세상이 하얘요. 조금 미끄럽기도 했지만 출근길이 참 예뻤어요.
마무리 잘 하시길^*^

hnine 2010-12-31 22:26   좋아요 0 | URL
세실님, 나이가 들어가면 사는게 좀 더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 책에서는 참 위태위태한 십대를 보내는 이야기라서 마음이 아팠어요.
어제 오늘 서울 다녀왔는데 남대문 시장을 다녀오는 계획은 제대로 실행을 못했네요.
우리, 긍정적인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다독여주며 2010년을 보내기로 해요.

stella.K 2010-12-3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원더걸스란 책도 있었구나 했더니, 원터걸스였군요.
나인님은 청소년 문학이 좋은가 봐요.^^

hnine 2010-12-31 22:27   좋아요 0 | URL
하하, 원더걸스 ^^
원터걸스도 아니고 윈터걸스랍니다. 윈터걸의 뜻은 위에 적어두었어요.
stella님에게도 들켰네요, 저 청소년 소설 정말 좋아해요 ^^

마녀고양이 2010-12-3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ㅠㅠ

저두 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라고 되뇌이던 때가 있었는데.
인용구의 섬세한 문장이 참 좋네요. 청소년 문학이라고 한정짓기에는 너무 공감가네요.

hnine 2010-12-31 22:29   좋아요 0 | URL
세상이 하도 험하고 덧없기도 하다보니, 그저 하루 하루 이렇게 제 정신과 움직일수 있는 몸으로 숨쉬고 산것도 감사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뭐가 모자라 투덜거릴 때가 더 많지만요. ^^
청소년문학이라고 쟝르를 꼭 나눠야하나, 그런 생각이 가끔 들어요. 우리 모두 경험을 한 시기라서 그런지 공감이 더 잘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순오기 2010-12-3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섭식장애~~~~ 이런 현상을 겪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죠.
인생이란 어느 나이를 막론하고 견디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hnine 2010-12-31 22:30   좋아요 0 | URL
외모, 비주얼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이 완전히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고 완전히 치료되기도 힘들다고 하네요. 인생이란 누리기보다는 견디는 것, 슬프지만 저도 완전 공감합니다.

2010-12-31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3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루클린 오후 2시 -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 이야기
김미경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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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를 읽고난 소감이 괜찮았던지라 그녀가 교장으로 있는 sunjooschool.com에 고정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  김 미경의 단행본이 나왔다고 할 때 조금은 기대를 했다. 그녀 역시 짧지 않는 세월 한국에서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인데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고 2005년에 미국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열 여섯 된 딸을 혼자 키우며 살고 있다. 아마 책 표지의 '두 번째 삶 이야기'라는 말은 그녀의 이런 이력을 뜻하는 것 같다. 뉴욕의 브루클린이란 낯선 땅에 사는, 올 해 나이 쉰의 그녀의 인생은 하루로 친다면 오후 2시쯤 되지 않을까 해서 붙친 제목이란다. 내가 나고 자란 땅이 아닌 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며 그 동안의 자기 생활 방식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 ('나 지금 뉴욕에서 철학한다'), 사춘기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이야기 ('나 지금 뉴욕에서 엄마한다'), 뉴욕 생활 즐기기 ('나 지금 뉴욕에서 논다'), 그리고 영어 이야기 약간 ('나 지금 뉴욕에서 영어한다'), 이 책은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다.
사진이 군데 군데 들어가있고 저자의 글발이 있어서 읽기는 금방 읽힌다. 하지만 그 글발이 김 선주의 그 글발과는 다르다. 읽으면서 느낌도 많이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왜 김 선주의 책을 읽으면서의 공감이 이 책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터라 어쩔 수 없이 여기에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겠다. 김 선주의 책은 글에 충실하다. 사진이 약간 첨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글을 넘어서지 않는다. 한 꼭지마다 해야할 말들을 넘치지 않게, 분명하게 하고 있다. 빈 지면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사진이 비교적 많다. 그것도 모두 칼라 사진들. 빈 지면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페이지는 빨리 넘어가지만 그만큼 마음 속에 채워지는 것이 많지는 않다. 김 선주의 문체에 비해 이 책 저자의 문체에서는 과장이 느껴진다. 쓰다보면 자기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과장된 표현을 쓰는 수가 있겠지만 그게 지나치면 금방 표가 나며 글의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과장된 표현이 눈에 많이 띄었고 생각의 비약이 있었다. 또 하나, 글의 소재가 다르다. 김 선주의 책은 사회 현상, 정치 현실, 변해가는 세태 등을 소재로 삼은 반면 이 책은 그저 일상이 주 소재이다보니 뉴욕이란 곳에서 몇 년 살다보면 이 정도는 쉽게 나올 수 있는 소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감히 드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많다. 뉴요커들의 일상, 갤러리 순례라는 새로운 취미, 뉴욕의 크리스마스, 고등학교 올라가는 딸과 친구처럼 나누는 키스와 섹스 얘기, 뒤늦게 대학에서 예술 비즈니스 코스 과정에 들어가게 된 얘기,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 식으로 지극히 가볍게 '이야기'하고 휙 지나간다.
책의 뒤표지에는 만화가 박재동과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추천사가 올라있다. 그들이 칭찬하는 만큼 매혹적인 글이라는 인상을 받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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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2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보셨군요, 이책.
그러게 말이죠...인터넷에서 볼 때랑 종이책으로 볼 때랑 느낌이 이렇게 틀려지기도 하더군요.
특히, 글의 중량감에 있어서 말이지요~^^

hnine 2010-12-28 09:43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글은 기교만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책으로 낼때에는 특별히 사람들을 향해 자기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 뚜렷한 의견이 있어야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아벨라 그리고 로사 그리고...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9
벌리 도허티 지음, 고수미 옮김 / 대교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괜찮은 구성이다. 각각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두개의 스토리가 하나로 만나는 결말. 그 한 스토리는 영국의 열세살 소녀 로사, 또 하나의 스토리는 탄자니아 출신의 아홉 살 소녀 아벨라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잘 크고 있던 아벨라는 아버지에 이어 엄마도 에이즈로 잃고 어린 동생도 잃는다. 죽어가는 엄마에게 약이라도 써보게 하기 위해 아홉 살 소녀의 몸으로 엄마를 부축하여 먼거리 버스 여행을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병원에도 약이 없다는 것이 아프리카 빈민국가의 현실이다. 그렇게 엄마를 잃고 위장 결혼하여 영국에 이민가고 싶어하는 삼촌의 계략에 말려 강제로 할머니와 헤어져 아무도 없는 영국에 떨어진 아벨라의 인생은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다. '이제 나에게 행복이란 없다'고 확신해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은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비하면 영국의 셰필드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로사는 행복하다. 책의 중간 쯤에 가서야 알게 되지만 로사의 엄마는 백인, 하지만 로사는 흑인 아버지를 둔 혼혈이다. 탄자니아 출신 아버지가 영국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 혼자서 로사를 키우지만 로사의 엄마는 긍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품성을 지닌 사람이어서 언제나 남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가 로사에게 입양을 하고 싶어하는 엄마의 생각을 꺼내는데, 처음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반대하던 로사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여 간다. 책의 300여 쪽이 거의 다 넘어갈 무렵에 영국의 소녀 로사와 탄자니아의 소녀 아벨라가 만나게 되기 까지 그 여정이 짧지 않다. 하지만 허술하지 않고 짜임새 있게 작가가 이야기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어 읽기에 수월했고 흥미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실제로 작가는 이 책을 위해 탄자니아로 날라 가서 그 곳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조사했다고 한다. 실제 그 곳 출신의 아이를 모델로 하여 이야기 구상을 하게 되었다니 이 책이 어색한데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몇 년 전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어설프게 들렸기 때문일까? 듣는 그 누구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마음 어느 한 켠에 쭉 밀어놓고 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고개를 들으며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랑과 보호 속에서 커야할 아이들이 사랑과 보호가 아니라 무방비와 무관심, 애정의 결핍 속에 방치 되어, 그렇게 절망과 결핍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좋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에이즈에 걸려서도 약 한번 못써보고 죽어가는 상황, 그렇게 부모를 모두 잃은 아홉 살 어린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국가. 왜 이 세계는 이렇게도 불공평한 것인지, 새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작가는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리라. 뉴스가 아닌 스토리로 우리가 모르는 삶을 세상에 알리고 관심을 돌리게 하고 싶었으리라.
불공평, 불균등, 무지와 이기심, 이런 것들이 우위를 다 차지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가. 로사의 엄마 같이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도 버티고 있음을 자꾸 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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