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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다락방님 덕분에 최영미 시인의 신간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 배송된 시집을 비오는 오늘, 처음부터 주욱 읽고,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또한번을 주욱 읽었다.

최영미의 시는 시로 쓰여진 일기장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누구도 이런 식으로 일기를 쓰지 못하리라.

1990년대 중반, 서른 언저리에 낸 첫 시집으로 베스트 셀러 시인이 되었던 그녀의 나이 이제 오십대 후반이다.

열 다섯 살엔 가장 먼 미래였던 서른 살.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던 서른을 넘겼고 이제 오십이 지나 뻣뻣해진 손가락으로 쓰는 나이가 되었다고 했다. 어제도 오늘 같고 오늘도 내일 같아 달력을 보지 않는 새벽을 맞이하는 나이라고 ('낙원').

 

지난 사랑의 기억, 페미니즘, 미투 운동, 부친상, 요양원에 있는 모친 병간호 등 외롭고 고달픈 시간의 일기장이다.

힘 앞에, 권력 앞에, 거짓 앞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내느라 버티는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했을 시간들의 기록이다. 아마 시인은 시를 쓰며, 시로 풀어내며 스스로 위로하지 않았을까.

문제의 시 <괴물>도 이 시집에 다시 실었고, 재판 과정을 소재로 한 시들이 이 외에도 더 수록되어 있다.

시의 형태로 태어나면서도 여전히 퍼렇게 날이 살아있는 기록들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져오다가 정작 눈물이 차오른건 오랜만에 시 청탁을 받고 쓴 '원고 청탁'이라는 시를 읽을 때였다. 시인은 오랜만에 흥이 나있는데 그런 시인을 보며 나는 왜 참고 있던 감정을 터뜨렸을까.

 

시집은 두번 연달아 읽고, 시에서 언급된 노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Mad girl's love song)'는 듣고, 듣고 또 듣고 했다. 아마 수십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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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9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곧 읽을게요, 나인님.

hnine 2019-06-30 05: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서재에서 보고 바로 주문하고, 바로 받고, 바로 읽고, 그랬네요. 감사합니다~ (꾸벅)
제가 워낙 최영미 시인 팬이라서요.
최영미 시인 나이들어가는 모습 보는 것이 좀 서글프네요. 저도 늙어가면서 말이죠 ^^

Nussbaum 2019-06-30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들렀다가 한 여름의 더위에 그늘진 곳처럼 잠시 쉬었다 갑니다 :)

hnine 2019-07-01 06:15   좋아요 1 | URL
점점 낮 더위가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왔어요.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한건 밤에는 그나마 서늘하다는거죠. 밤까지 더운 열대야가 오는 여름을 어떻게 날지 모르겠어요. 더위도 참고 공부하는 수험생들, 생활전선에서 땀흘리는 분들 생각하면 투덜거림이 좀 들어갈까요? 제 서재 들어오셨다가 더 더워지시면 안될텐데 말이죠 ^^
 

 

 

 

 

 

 

살구는 왜 살구일까

 

 

 

 

살구는 왜 살구일까

먹고 살라고 살구일까

살살 구슬리며 살라고 살구일까

 

 

 

느티나무는 왜 느티일까

늦게 태가 나서 느티일까

늘 태가 난다고 해서 느티일까

 

 

 

궁금한게 많으니

일곱살이시군요

어느분 말씀

 

 

 

일곱살엔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

오십 되어 궁금합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오래 전에 올렸던 글들을 읽어보았다.

대부분 일관성도 없고

밝고 희망적이지도 않은 아닌 울적한 글에

댓글들은 어찌나 따뜻하고 다정한지.

 

나의 재산은 바로 이런 것.

 

 

위에 쓴 시에도

두분의 댓글이 들어가있다 (프레이야님과 글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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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조은의 시들은 그나마 공감하고 좋아하고 부러워할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반해, 뒤이어 읽은 신용목의 시들은 부러워도 못하겠다. 시가 너무 난해해서 이해도 안되고 공감도 못하겠다면 차라리 이건 내가 좋아할 타입이 아니라고 제껴두고 말았을텐데. 그런 시집일거라 지레 짐작하고 여태 읽어볼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것을 얼마전 '노을 만평'이라는 시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마침내 구입하여 읽게 된 것이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능력이 특별했다. 

 

고생대가 데려가지 않은 은행나무 아래서 빗소리를

듣는다

버려진 그늘

 

-'투명한 뼈' 중에서-

 

한 상황에서 이 시인은 도대체 얼마나 광범위한 시간대와 단어들과 소리와 감각과 경험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조합되어 나오는 한줄 문장이 어찌 독특하고 세밀하고 정확하지 않으며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

...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시 '갈대등본'중에서 몇 구절 뽑아본 것인데 이 시 마지막 구절이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몇번 반복해서 읽다가 생긴 의문점. 여기서 '걸어야 한다'가 다음 중 어떤 뜻으로 쓰인 것인지. walk?  hang?  bet?

어떤 걸 넣어도 뜻이 안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행을 나누는 방법이 독특한 것을 모르고 잘못 교정이 된 줄 알았다.

 

 

신촌 현대백화점 앞

누에처럼 꿈틀거리는 버스들이

비 먹은 옷깃을 싣고 떠날 때

쓸모를 다한

복권이 젖는다

 

-'복권 한장 젖는 저녁' 중에서-

 

 

'한 장 복권'의 한 과 장을 저렇게 띄어쓸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뒤에 다른 시에도 비슷한 예가 나와서 이건 시인이 의도한 바 임을 알았다.

 

어둠을 길들이던 달빛이 어둠이 될 때까지

내가 깎은 내

마음의 절벽을 긁어내리는

 

-'목련꽃 지는 자리' 중에서-

 

 

그래도 이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수작이라고 꼽고 싶은 시가 있었을까?

있다. 한번 베껴써보지 않을 수 없었던.

 

 

다비식

 

 

 

 

바위 위에 바위보다 한 발은 더 바다로 나가 석양볕에

늙은 뼈를 태우는 해송을 본다

 

 

서해 변산

물 위에,

하늘의 다비식

 

 

가지 저 끝에서 타올랐으니 그래서 어두웠으니

휘어진 허리 감고 사리 같은 달과 별 더러 나오리

 

 

날마다, 그러나 파도 끝 붉게 젖는 때

 

 

또 한 줄 바람을 긋고 갈라지는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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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04 04:59   좋아요 0 | URL
유레카를 외쳐야하나요. 이유까지 이렇게 명확하게 이해가 될수가.
이 페이퍼를 쓴 소득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은 비오는 날 남편과 카페에 가서 찍은 것인데, 촛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유리창 빗물이 보이기도 하고, 비가 바닥에 그리는 동심원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마침 읽고 있던 시의 ‘투명한 뼈‘란 말도 읽어보니 ‘비‘를 의미하는 것 같기에 사진도 올렸어요.

일찍부터 새소리를 듣는 새벽입니다.



Nussbaum 2018-07-0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 짧은 생각을 남기고, 잠시 어디 가려다가 벤치에 앉았습니다.

마침 서늘한 기온에 바람도 불어주어서 7월의 사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일지 올려주신 사진과 시도 더 정겹네요 ^^

hnine 2018-07-05 08:29   좋아요 0 | URL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시던 중이군요. 아직은 해 떨어지면 서늘하니 못견딜 더위는 아니니 말씀하신대로 7월의 사치를 누릴 수 있지요. 저 지금 pek님께서 알려주신 문태준 시인의 수필집을 읽고 있는데 시인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모든 것이 자라는 계절이기 때문이라고 썼더라고요. 그 생각 하면서 올 여름 본격적인 더위도 버텨보려고요.
여긴 새벽에 잠깐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어제보다 좀 덜 더울지 모르겠어요.
 

 

내가 만약 재주가 있어 시인이 되었다면 이런 느낌의 시를 비슷하게라도 쓰지 않았을까. 감히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시인이 있었다.

조은.

1960년 안동 출생. 1988년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를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이고 에세이집도 냈으며 동화도 썼다.

사실 내가 조은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동화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을 처음 만났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바로 이 책에서.

 

 

 

 

 

 

 

 

 

 

 

 

 

 

 

 

 

 

사직동에 있다는 그녀의 작고 소담한 집이  이 책에 다른 집들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드러나게 치장하지 않았지만 잘 보면 그녀 방식으로 나름 치장되어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한동안 눈길을 붙잡아 두는 그런 집이었다.

 

 

 

 

 

 

 

 

 

 

친한 문인들이 놀러와서 낮잠을 자고 가기도 한다는 말이 이해될 만큼 처음 방문한 사람도 푸근하게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집. 익숙한 물건들이 정갈하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

집 주인에게는 물건들이 아니라 한 식구이고 친구인 것 같은 사물들, 그리고 집 자체.

이렇게 혼자 집을 꾸미고 사는 사람이 쓰는 글은 어떤 글일까 궁금해서 그녀의 책을 사서 읽어보기 시작했던 것이 그녀 글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되었다. 에세이, 시, 그리고 동화의 순서로.

 

최근에 읽은 조은의 책은 hellas님 서재에서 보고 오랜만에 구입한 시집이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이 비록 벼랑이긴 하지만, 떨어질 자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버티고 있는 자세. 그래서 알면 알수록 시인에게서 처음에 안보이던 생에 강단과 애착이 느껴지는 그런 시들.

 

내가 만약 시인이 되었다면 이런 느낌의 시를 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그러고보니 그녀의 집을 보면서도 내가 만약 혼자 살았다면 이런 방에서, 이런 집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만한 일은 세상에 널렸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 다시 내려놓고

종착역까지 갔다

 

 

 - 조은의 시 <옆자리> 중 -

 

 

 

웬만한 일은 세상에 널린 일이라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며 어쨌든 종착역까지 가겠다는 마음.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시인에게, 동시에 나 자신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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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6-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이라는 수필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 - 내가 수필가였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었을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가가 있더라고요.

hnine 2018-06-30 12:58   좋아요 1 | URL
=3==3=3 --> 문태준 시인의 수필집 사러 가는 제 발걸음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서요.

Nussbaum 2018-07-02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은 시집이 곧 옵니다.

오면 다이어리에 시 하나 적어보렵니다. 어쩌면 hnine님께 답페이퍼를 쓸지도요^^

hnine 2018-07-02 23:31   좋아요 0 | URL
선입견 없이 무심한듯 만나보시길. 그녀의 시들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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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1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의 리뷰 보시고...?!^^

hnine 2018-05-11 22: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
제가 유안진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아마 지금까지 낸 시집 거의 다 가지고 있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