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오늘, 1998년 6월 20일, 서른 셋의 나이로 나는 결혼을 했다.
그 때 나는 영국에, 남편은 미국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 즈음 건강이 악화되신 시아버님때문에 결혼을 서둘러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 나는 3주 휴가를 받아 한국에 나왔다. 결혼하러.
약혼식은 물론 생략, 피부 마사지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드레스는 가까운 드레스 대여점에 가서, 그 집 주인이 골라주는 드레스 한번 입어보고 그냥 괜찮은 것 같아서 더 골라볼 것도 없이 그것으로 정했다. 물론 대여 드레스. 그래도 뭐, 지금 사진으로 봐도 나름 괜찮았다 ^^
결혼식 날, 야외 촬영도 생략. 무슨 사진 찍는데 이렇게 비싸? 하면서 내가 빼자고 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빠께서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시아버님께서 그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네 결혼식때 아버지께서 많이 서운하셨던 모양이시라고.
1998년이라면 IMF가 우리 나라 사람 모두의 주머니를 조이고 있을 때, 공부한답시고 외화를 소비하고 있던 우리는 신혼 여행도 국내로 가기로 했다. 3박 4일로 경주에. 당시 한창 경주에 필이 꽂혀 있던 나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가서 보니 경주는 남편 문중 어른들께서 살고 계시는 곳. 막 시작된 장마비속에, 길지 않은 일정의 많은 시간을 친척 분들 댁에 인사다니면서 보내야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며칠 후 나는 다시 영국으로, 남편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떨어져 살다가 내가 공부를 마친 2000년이 되어서야 나는 남편과 한 집에 살게 되었다. 그것도 번듯한 주택이 아니라, 남편이 렌트해놓은 원룸에서.
오늘 아침 할머니 댁에 가 있는 아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 결혼 기념일을 축하한다고.
정말 세월이 유수이다.
예전에도 한번 올렸던 노래인데, 오늘 다시 듣는다. 어렸을 때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믈으면 항상 '수선화'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봐도 수선화는 그리 화려하고 예쁜 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길가에 아무데나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꽃이 수선화였다. 나는 그때 수선화가 어떤 꽃인지나 알고 그 꽃이 제일 좋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름이 예뻐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일까.
노래 가사만큼은 참 아름답구나.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는 뜻으로 끄적거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