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첫번째 나온 책도 다 읽지 못했는데, 반갑게도(?) 두번째 책이 나왔다. 

이 책이 나온다고 했을때 가장 불만이 제목이었다. 원래 제목은 르몽드 아틀라스였는데, 르몽드 세계사로 변경됐다고 하더라. 출판사 입장에서 '아틀라스' 보다는 '세계사'로 하는게 더 친근할거라 생각한 듯 하다.  

이런 책이 제목에 '지리', 'Geography'가 들어가야하는데...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보다 좋은 시가 있어 찾아 보니 16c 프랑스의 서정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의 시였다. 제목은 "난 그대에게 꽃다발을 보내나니 ", 근데 어떤 사이트에는 다른 식으로 표현(해석)된 시가 있었다. 같이 옮겨 본다. 난 개인적으로 첫번째 표현이 더 좋다.  

..."지금은 한껏 피었지만 내일이면 덧없이 지리 그러니 알겠니? 꽃 같은 네 아리따움도 머지 않아 시들어 꽃처럼 덧없이 지리라는 걸"... 나도 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새삼.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그래, 잊혀질거야...세월이 가면...모두다!!
 

 

나 그대에게 꽃다발을 보내나니


내 손으로 추리고 묶어
네게 보내는 이 꽃송이들
지금은 한껏 피었지만
내일이면 덧없이 지리

그러니 알겠니?
꽃 같은 네 아리따움도
머지 않아 시들어
꽃처럼 덧없이 지리라는 걸

세월이 가네, 내 여자여, 세월이 가네
아니,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가네
그리고 이내 우리 모두 저 땅속에 누우리

속삭이는 사랑도 우리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니리니
나를 사랑해주렴 지금, 너 아리따운 동안

 

장미


저물녁에 따 모은 이 꽃들 손수 엮어
꽃다발 만들어 당신께 보내드립니다.
내일 아침이면 이 꽃들 다 시들어
꽃잎들 땅위에 이러저리 떨어지리니.

이것을 분명한 보기 삼아 알기 바라나니
당신의 아름다움 지금 더없이 꽃 같으나
이들처럼 시들어 머지않아 기울고 말아
꽃러럼 덧없이 지고 말 것입니다.

아, 시간이 갑니다, 자꾸 갑니다.
아니, 가는 것은 세월이 아니고 우리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도 묘지 아래 눕겠지요.

그러면 사랑에 관한 우리를 애기 아무도 알지 못하고
우리가 누구였는지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사랑, 당신 아름다울 때 다정하게 굴어 주세요.

  

나 그대에게 꽃다발을 보내나니

조금 전에 활짝 핀 꽃들
저녁에 따지 않으면
내일이면 땅에 떨어질 그 꽃들로 만든 꽃다발을
그대에게 보냅니다

이는 그대에겐 분명한 교훈
그대의 아름다움이 꽃과 같을지라도
머지 않아 시들어 떨어지겠죠
갑자기 떨어지는 꽃처럼 사라질 거에요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세월은 가요
세월이 가요
아니! 세월이여! 하지만 우리도 가는 걸요
머지 않은 날 우리들도 저 세상 산 아래 눕게 될 테지요

우리가 애기하는 이 사람들
우리가 죽고 나면 더는 그 삶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그대여, 어쨌든 당신은 아름다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하로부터의 수기 펭귄클래식 1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알라딘 헌책 코너에서 구입했는데, 책 상태도 아주 좋고, 펭귄클래식 시리즈의 표지 디자인의 우수함(?)도 알게되었다. 예전에는 문학관련 책은 손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꽤 보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다.  

이 책에서의 느낀 점이랄까? 인간의 어쩔수 없는 더러운 속물근성...이중성...그리고 나도 한번 지하로 들어가 수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 

ps : 열린책들에서 나온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표지가 꽤 멋지다. 구입 하고 싶다. 오른쪽에 있는 민음사판은 별로다. 개인적으로 민음사에서 나온 문학 전집 시리즈의 표지 디자인과 판형(보기 불편하다)은 내 개인적 취향과는 너무 멀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재미나게 읽었으나 나머지 책들은 본 읽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몇권의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다. 책의 디자인도 엄청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어제 처음으로 가보았다. 아담하지만 아동열람실도 따로 있고 시간날때 가서 조용히 책보기에는 아주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여직원들도 참 친절하더라 ㅋㅋㅋ 

도서관에 간김에 회원가입을 하고 책을 세권 빌렸다.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과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 이 중에서 동물농장은 펭귄클래식 시리즈인데, 얼마전에 헌책으로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끼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 펭퀸클래식 시리즈의 표지 그림(디자인)이 너무 맘에 들어 대출했다.(장기적인 관점에서 펭귄클래식 시리즈는 야금야금 구입을 해야겠다) 

세권 중에서 우선 도시의 기억을 읽고 있는데, 나에게 무서운 깨우침을 주는 부분이 있어 옮겨 놓는다.


오사카(하편), “나는 조센진입니다.”(p.30-32)

재일동포가 자신을 일컬을 때 쓰는 한국인이라는 말과 조선인이라는 말은 대칭적이지 않다. 자신을 한국인이라 부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소속감을 그 말로써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그 말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소속감을 자동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 말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소속감을 드러낼 수도 있겠으나, 다수는 그 말을 사용함으로써 분단되기 이전의 조선에 대한 소속감, 또는 남북 두 국가에 대한 동시적 소속감을 드러낸다. 그때의 조선은 한국을 포함한 조선인 것이다. 몇 해 전에 보았던 MBC 100분토론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무슨 일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손석희 씨의 100분토론이 서울 여의도가 아니라 일본 오사카의 한국인 거주지역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재일 문제를 토론한 적이 있다. 늘 합리적 의견으로 고마운 깨달음을 베푸는 릿쿄대학의 이종원 교수 말고는 패널 가운데 내가 이름으로나마 아는 이가 없었던 터라, 그들의 면면이 하나하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는 ‘조선인’도 있었고 ‘한국인’도 있었다.

그 패널 가운데 한 사람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스란히 옮겨놓을 수는 없으나, 취지는 이랬다. “나는 대한민국 국적을 지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한국인으로 지칭하지 않고 꼭 조선인으로 지칭한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우리를 차별하기 시작했을 때 ‘조선인’이라는 이름으로 차별했기 때문이다. 그 차별을 부당하게 여기고 이를 고치기 위해 싸우는 사람으로, 나는 ‘조선인/이라는 이름을 버릴 수 없었다. 차별의 시작이 조선인에 대한 것이었던 만큼, 차별의 시정도 (’한국인‘이 아니라)조선인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 패널은 차별의 집중적 대상인 조선인에 벗어나 한국인으로 달아나고 싶지가 않았다. 부정적 뉘앙스가 한국인이라는 말보다 조선인이라는 말에 훨씬 짙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 부정적 뉘앙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그로 하여금 조선인이라는 말을 버리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 한쪽이 써늘했다. 그때부터 나는, 적어도 일본 사람들 앞에서는, 의식적으로 간코쿠진(한국인)이 아니라 조센진(조선인)이 되었다.

그 패널의 말은, 흔히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완곡어 운동이 부분적으로만 정당하다는 사실을 새삼 드러낸다.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 부른다 해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차별은, 그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 사용 너머에서, 계급관계의 실질적 변화가 이워져야만 없어진다. 어떤 흑인 운동가들에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 자체가 역겨울 것이다. 백인들을 ‘유럽계 미국인’이라 부르지 않는데, 왜 흑인들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 불러야 하는가? 흑인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차별은 흑인이라는 이름으로 철폐돼어야 하리라.
 

ps : 패널의 말을 듣고 느꼈던 고종석씨의 써늘함을 나도 오늘 학교 오는 길에 느꼈다. 내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하는 그 무수한 완곡어들이 부분적으로만 정당하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흑인'이란 용어에 대해, 아프리카 '부족'이란 용어에 대해, '인디언'이란 용어에 대해...내가 선택했던 완곡어들에 대한 나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그것만으로 만족해했던 것은 아닐까? 새삼 용어 사용에 대한 어려움과 현실의 벽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겨레신문 2010.6.28 인구 4만 산골에 박물관 20곳…한해 관람객 100만 돌파 

새 임기를 시작하는 시장과 군수들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는, 역시 경제다. 산업 공동화와 인구 감소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발전의 청사진은 공단 개발, 대형사업, 대기업 유치 같은 판박이 단어들로 포장되곤 한다. 달리 뾰족한 방책이 보이지 않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옛것에서 찾아낸 신성장동력

특별한 지역발전의 성공사례를 찾았다. 박물관에서 신성장동력을 확보한 강원도 영월이다. 공장 굴뚝 없이, 농특산물을 내세우지 않고도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생생한 ‘현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구 4만명에 불과한 산골마을 영월에서 지금까지 문을 연 박물관은 20곳에 이른다.

2004년 이전까지 영월에는 개인 박물관 5개와 공립 3개가 산재해 있었다. 2005년 이후 본격적인 ‘지붕 없는 박물관 고을’ 사업을 추진하면서, 박물관을 세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폐교나 복지관 부지를 제공하고 군 예산으로 건물 리모델링을 해주었다. 5년여 만에 12개의 박물관이 더 들어섰고, 추가로 개관을 준비중인 박물관도 7개나 된다. 그중 120억원의 건축비가 투입된 만봉불화박물관과 동강생태정보관, 한국거미관 3곳은 올해 안에 문을 열 예정이다. 조선민화박물관, 곤충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아프리카미술박물관, 국제현대미술관 등 다양하고 특색 있는 볼거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소장품 가치를 자랑하는 곳도 여럿 있다. 
 
지난해 총수입 1천억원 근접

지난해 영월의 박물관을 찾은 유료 관람객은 109만명에 이르렀다. 2007년 61만명, 2008년 88만명에서 해마다 20만명 이상 늘어나더니, 드디어 1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에도 영월 박물관의 폭발적인 신장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방문객 1명이 숙박과 식사 및 교통비 등에 8만4600원을 지출해, 지난해 영월 지역의 박물관 관련 총수입만도 929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2007년의 572억원에서 2년 만에 62%나 늘어난 것이다. 

영월군의 이재현 박물관 계장은 “2005년부터 농식품부 지원을 받아 박물관 고을 사업을 추진했는데, 5년째인 지난해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박물관이 박물관을 부르고, 한번 찾은 사람이 친구들과 다시 찾아오는 탄탄한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사업은 뿌리를 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중앙정부와 주민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하나씩 하나씩 괜찮은 박물관 20곳을 한데 모아놓으니까, 집적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민장터 연결 ‘그린컬처사업’

박물관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전방위적이다. 박물관에서 근처 마을의 농산물을 팔고, 박물관을 찾은 도시 주민들과 직거래를 연결해주는 ‘그린컬처사업’을 지난해 처음으로 추진해, 5개 박물관에서 4억2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박물관장들이 모두 농민장터 연결에 적극적이어서, 앞으로 농가 수입 확대에 톡톡히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민화박물관의 오석환 관장은 “박물관 축제 때는 마당에 농민장터를 연다”며 “마을의 농촌체험과 박물관 프로그램이 합쳐진 그린 뮤지엄 관광 기반이 자연스럽게 다져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사, 고위공무원, 대학교수, 교장, 사업가 등 쟁쟁한 이력을 가진 박물관 관장들은 대외적으로는 영월 홍보대사 노릇을 하고, 지역사회에서는 주민들과 청소년들의 품격을 끌어올리는 교사 구실을 한다.

지붕 없는 박물관들은 국제적 관광상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2007년 1500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에는 1만2500명으로 8배나 늘어났다. 동강 같은 천혜의 자연자원, 김삿갓 문학과 단종 유배지 등의 역사 유산이 박물관과 어우러지면서 외국인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호텔과 컨벤션 시설 하나 없이, 전세계 문화예술 분야의 국립대학 총장 등 120명의 외국 손님을 모시는 국제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영월의 지붕 없는 박물관 사업은 지역소득 증대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를 함께 이야기하고 문화를 배우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영월 주민들의 행복한 공간이 바로 이웃에 널려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