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리서적 신간이 나왔다. 건국대 이승호 교수의 책이다. 예전에 1정연수때 이승호 교수님이 강의를 하시면서 답사애기를 좀 하시던데 이 책이 그 답사 일부의 결과물인듯 싶다. 조만간에 구입해야 할 듯. 아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의 2010년 한국소개서 <한국의 기후 & 문화 산책>이 선정되어 영문판이 나왔다. 영어공부할때 같이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

이데일리 2010.8.17  우리강산 ‘아는만큼 보인다’ <자연과의 대화, 한국>

우리나라의 다양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한국사람이 한국의 땅을 모르고 어떻게 한국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연과의 대화, 한국≫은 우리나라의 땅덩이는 어떻게 생겼으며, 그 땅을 구성하고 있는 산, 평야, 물, 바다, 기후를 우리의 생활 모습, 가옥 구조, 이용 모습 등을 사진으로 보여 주며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다. 산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산 속에 묻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축척의 지도를 펼쳐 놓고 보아도 매 쪽마다 산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도 높건 낮건 간에 산을 볼 수 있다. (…)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게 마련이다. 높은 곳은 산이고 낮은 곳으로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 흐를 터이니, 마을이 어디에 터를 잡건 배산임수가 아닐까. 우리는 왜 굳이 그런 터를 명당이라고 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보편적인 삶의 터전이 명당이란 말로 들린다."

기후학을 전공한 지은이 이승호는 16년째 2주마다 카메라를 들고 답사를 떠나고 있다. 지리학에 대해 다양한 책이나 교과서에서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지만, 지은이는 “지리학은 그 속에서 주민생활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어떤 깊고 고뇌에 찬 철학적 사고에 의해서라기보다 경험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갯벌과 어울리는 황해의 모습은 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었다. 흙탕물로 보이던 것이 아름답고 풍요롭게 다가왔다. (…) 새벽에 봉화에서 출발한 버스가 비포장 길을 달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에 당도한 울진 왕피천 하구의 바다 모습은 내 글재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의 파란색이었다. ‘옳지. 저것이 바다야!??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 그만큼 처음 접한 동해의 아름다움은 인상적이었다. (…) 남해안의 참 맛을 깨우친 것은 아주 최근이다. 남해도를 이틀 정도 돌아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용트림을 멈춘 곳이었다. (…) 급경사의 땅과 바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작은 섬이 있는 곳, 그곳이 남해였다."

지은이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설명하기 보다는 이야기하듯이 풀어놓고 있다.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시작하면서 그 현상과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어떤 현상이 주민생활에 미친 영향이나 우리에게 주는 의미 등을 이야기한다. 특히 지리학의 기본이 될 만한 산지와 평야, 산과 평야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물과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엮고, 기후의 계절 변화와 지역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20여 년 전 쯤 전에 외국을 다녀온 사람이 이야기하는 ‘물 값이 콜라 값만 하더라.??는  소릴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러던 우리도 이제는 콜라보다 더 비싼 물을 마시게 되었다. (…) 이제는 물에 대한 생각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국 어디에서 누구든지 고향의 물을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 우리가 마시기도 하고 땅을 적시기도 하면서 하천을 흐르는 모든 물은 빗물이나 눈이 녹은 것이다. (…) 작은 빗방울이나 눈이 녹은 물이 모여서 개울을 이루고, 그것이 모여서 하천을 이루고, 그리고 모든 물은 오랜 시간 강을 따라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서 만난다. (…)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이 되기까지는 어떤 행로를 거쳐 온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은이는 “지리학은 자연현상과 인문현상을 이어 주는 학문이라는 점이 다른 학문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라면서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 사진 속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무엇을 읽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책 속의 사진들은 지나가다가, 혹은 놀러 갔다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만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에는 새로우면서도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또 책에 수록된 산, 평야, 물, 바다, 기후는 제목만 달리 할 뿐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우리나라 지리 부분의 주제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서두르려 한다. 그것을 우리 문화 중의 하나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런 빨리빨리 문화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날씨와 관련하여 생각한다. (…) 우리나라만큼 계절이 뚜렷하게 바뀌는 나라는 드문 것 같다.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에게 계절 변화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을 것이다. 항상 계절에 맞는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 계절의 차이가 ‘때??를 만든다. 우리에겐 항상 중요한 때가 있다. 그 때에 맞춰서 뭔가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즉, 때를 놓치고 나면 다음의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그 때가 찾아올 때까지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자연 속에서 발품을 팔고 다닌 지은이가 몸으로 깨우친 것들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역은 한 편의 파나로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간의 힘>과 함께 쓴 <도시의 기억> 서평 글을 올려 놓는다. 허접하지만. 물론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글을 좀 끄적끄적 거려보았지만 너무 재미있다. 물론 약간의 손품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리고 조금더 글 쓰는 연습을 해야 할 듯 하다. 계속 머리 속에서만 맴 돌뿐이지 글이 잘 써지지가 않는다. 물론 당연한 애기긴 하지만, 내가 글 쓰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배워 본적도 없고.... 하여튼 꾸준히 한번 해보자. 

-------------------------------------------------------------------------------------- 

2010.8.22 시간의 기억, 역사의 기억 그리고 도시의 기억 

아침 6시30분 출근길. 차(승용차일수도 버스일수도)를 타고 숭실대, 상도터널을 지나 한강대교를 건넌다. 난 한강대교를 지날 때 꼭 창문을 연다. 그 시원함이 졸린 나의 아침 기분을 조금은 상쾌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산을 지난다. 용산 남일당 빌딩. 2009년 1월20일 오전 혹은 오후일 것이다. 방학이기는 하지만 뭔 일이 있어 종로쪽에 가는 길. 차가 평소보다 엄청나게 막혀있었다. 버스에 탄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근데 조금씩 용산쪽으로 오자 엄청난 수의 전경 버스와 경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뭔 큰일이 일어났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 장면은 소방차들과 불에 탄 건물과 돌과 유리파편이 나부러져 있는 길들이었다. 그게 내가 본 ‘용삼참사’의 첫 장면이다. 그 이후 난 항상 남일당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과 마주해야 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항상.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죄의식도 조금씩 느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이 불합리하고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뒤에 숨어있는 듯 한 내 자신의 모습에...요즘엔 경찰인력이 보이지 않더라. 더 이상 장사할게 없어 졌나보다. 그리고 숭례문.(아직도 방화 직후 시커먼 숭례문의 모습이 기억난다) 시청. 시청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또 역시 한 무리의 경찰버스와 경찰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과 최근에 생긴 세종대왕 동상 그리고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근무하는 학교가 종로에 있다 보니 이런 기억들이 머리속에 새겨졌다. 고종석씨의 <도시의 기억>을 읽으며 내가 생각해본 최근 몇 년간의 서울에 대한 간단한 ‘도시의 기억’이다.

고종석씨의 <도시의 기억>은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동명의 기사들을 엮은 지은이의 20번째 책이다.(20번째라 부러울 따름이다, 난 괜찮은 책 딱 3권만 내는게 소원이다) 제목으로 봐서 단순한 여행기, 체류기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되지만, 저자의 해박함으로 인해 전해 느낄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이 장난 아닌 책이 바로 <도시의 기억>이다. 특히나 언어에 대한 저자의 해박함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고종석씨는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니 뭐 그럴만 하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어의 풍경들>, <감염된 언어>도 있으니 읽어봄직 하다.

<도시의 기억>은 1992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프랑스 파리에 근거지를 두고 '유럽의 기자들'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취재차 둘러보았던 경험이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샌프란시스코, 오사카 같은 도시들을 포함해서 총41곳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말하고 있듯 짧은 곳은 하루 길어도 며칠을 넘기 힘든 체류기간동안의 ‘기억’에 한정하여 내용을 담아내고 있어 제한된 면도 없지않지만, 지은이 특유의 세련된 문장과 박식함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글 읽는 재미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들은 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욕망할까? 내 존재의 생활 근거지를 떠나 낯선 곳을 찾는 ‘원심적 움직임’과 또다시 생활의 근거지로 돌아오는 ‘구심적 움직임’의 반복. ‘원심적 움직임’이 하나의 일상탈출이라면 ‘구심적 움직임’은 안정추구일 것이다. 개인의 나이에 따라 심리적 상태에 따라 결혼 유무 등등에 따라 두 움직임의 정도는 차이가 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난 예전에 비해 확실히 ‘구심적 움직임’이 월등하다. 집이 편하다. 여러분들은 어떠한지요?  

지은이는 파리에서의 첫 번째 체류기간에 파리에 매혹되어 결국 직장에 사표내고 가족이랑 파리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여파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을 때 깨달았다고 한다. “겉멋에 들려 파리 사람인 양 살았지만, 내 알량한 허영심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은 서울이었음을. 나는 파리에 살면서도 뿌리를 서울에 박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리에 떠 있는 서울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곧 내가 지르는 비명이었다.” 여행을 떠나 가끔은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심, 환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칫 허황된 ‘원심적 움직임’이 여행에 도시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수 있다. 아이들에게 말 그대로 ‘도시의 기억’을 가르쳐야 하는 지리교사로서 '현실'과 '동경'은 구분해야 할 듯 하다. 

지은이는 서문의 제목을 ‘도시의 영혼들’이라 했다. 내 생각에는 이 ‘영혼’이라 함은 다른 말로 ‘인문학적 사유’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종교가 없는 나는 ‘영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앞에서 이 말을 여러 차례 썼다. 사실 내가 이 말에 담고자 했던 것은 ‘흔적’이나 ‘무늬’ 정도의 뜻이었으나, 나는 ‘닭살스럽게도’ 영혼이라는 말을 취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종교를 백안시하는 내 이성 저 밑에 종교적 경건함이라 부를 만한 의식의 말랑말랑함이 원래부터 슬그머니 자리잡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내가 가본 도시들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도시들의 영혼을 찾아볼 생각이다.”라는 서문의 내용이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면서 아랍어에서 차용한 스페인어와 영어·프랑스어 어휘들을 떠올리거나,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집에서 인종주의의 피해자에서 그 자신들이 “최악의 인종주의자들”로 바뀐 유대인을 비판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도시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곳에 나 자신의 ‘시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은이가 파리에 그토록 의미부여를 하는 이유도 ‘유럽의 기자들’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세계 각 지역에서 온 기자들과 함께 뒹굴며 먹고 마시고 떠들고 춤추고 뽀뽀하고 보낸 그 격렬한 시간들, 밤새 술을 마실 수 있는 싱그러운 젊음의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이었다고 애기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 개인에게 의미 있는 시간의 기억을 간직하게 도와주는 파리의 그 수많은 낭만적인 거리들, 카페, 박물관과 같은 사회·문화적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도시 특성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단순히 ‘경제성’, ‘미관’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부스고 또 부셔 ‘삐까뻔쩍’ 건물들을 세우는 ‘건설토목주의자’들이 횡행하는 서울의 현실은 무엇일까? 과연 서울에서는 어떤 ‘도시의 기억’들을 간직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ps : 파리에서 5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 매혹이 얼마나 강렬한지 35년을 산 서울의 기억들이 희미해질 지경이었다고 고백하게 만든 도시 파리. 물론 저자 개인의 감수성에 기인한 측면도 많겠지만, 파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파리지앵’과 ‘파리지엔느’로 만들고 있다. 아마도 정수복씨가 쓴 <파리를 생각한다>를 읽으면 조금 더 파리의 생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고종석씨도 낯선 도시를 가서 짐을 풀고 하는 일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걷는 것이라고 한다. <파리를 생각한다>는 바로 지은이기 7년동안의 파리 걷기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라 할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도시의 기억>의 파리편으로 생각해도 될 듯 하다. 참고로 정수복씨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도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기회되시면 한번 꼭 읽어보시길 강추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랜만에 보고싶은 영화 두 편이 생겼다.(영화관에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한 편은 일본 스릴러 영화(스릴러지만 나에게는 왠지 코미디일것 같은)와 나머지 한 편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더 콘서트'이다. 특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예전 개막작 '어거스트 러쉬'도 대단히 재미있게 보았는데, 덕분에 기대가 더 된다. 그리고 최근 음악 취향이 클래식쪽으로 기울어져서 영화 속에 나오는 음악에 대한 기대도 한층 오른다.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다. 근데, 문제는 과연 볼 수 있느냐 여부다.

--------------------------------------------------------------------------

한겨레신문 2010.8.16   “내가 총리 암살범?”…‘숨은 인연’들의 누명 벗기기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골든 슬럼버’
권력이 ‘만들어낸’ 범인 이미지
끈끈한 관계로 바로잡는 과정
이사카 고타로와 3번째 협업
원작 행간까지 읽는 ‘찰떡 궁합’

이렇게 말해도 될까. 영화 <골든 슬럼버>에 반했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도 좋고 같은 또래인 원작 소설가 이사카 고타로도 마음에 든다.

나카무라 감독이 베스트셀러 제조기 이사카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2008), <피쉬스토리>(2009)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지금까지 영화화한 이사카의 작품이 여덟 편임을 고려하면 이들 사이는 우정을 넘어선다. 500쪽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을 두 시간으로 압축해 원작의 행간까지 영상으로 구현해낸 연출력은 원작자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할 정도다.

영화는 반미 성향의 신임 일본 총리가 취임 퍼레이드 중 폭파 살해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대학 선배와의 약속으로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전직 택배기사 노총각 아오야기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총리 암살범으로 몰려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하지만 홍두깨가 아닌 것이, 경찰은 곳곳에 설치된 시시티브이에서 빼낸 화면 등 미리 준비한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한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 2년 전 아이돌 스타를 강도한테서 구출한 적이 있는 아오야기는 ‘영웅에서 암살범으로’라는 뉴스의 요건에 ‘딱’이었던 것.

“한때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었지/ 그래, 집으로 돌아갈 길이 있었지/ 눈 감으렴! 예쁜 아기야 울지 마라/ 자장가를 불러줄게/ 금빛 졸음이 눈에 그득하구나/ 네가 잠 깨면 (정다운 사람들의) 미소가 너를 바라볼 거야.”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에 실린 노래 ‘골든 슬럼버’가 바닥에 깔리면서, 대학시절 맛집 기행 동아리 선후배들, 축제 때 도와주었던 폭죽공장 사장, 후드를 뒤집어쓴 연쇄살인범, 지하배수관 지리를 꿰는 노인 건달 등이 숨은그림들처럼 하나둘 나타나 아오야기의 수호자가 된다. 거기에 앵무새 기자들에게 아들의 결백을 호통치는 아버지까지. 

모든 것의 매개는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에선 아오야기를 범인으로 기정사실화해 호들갑을 떨지만 그 뒷면에선 중화요리 양념 광고, 날씨뉴스 배경으로 나온 동물원 원숭이, 옛날 자동차 시엠송 등이 실마리가 되어 잠재된 인연을 환기시킨다. 권력과 돈의 위세에 가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관계를 지탱하는 건 수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습관과 신뢰’가 아닌가.
이야기는 아오야기 마사하루와 그의 옛 캠퍼스커플 히구치 하루코의 시선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초콜릿을 잘라 먹어도 큰 것을 하루코한테 건넸던 아오야기. 하지만 그의 배려는 지질함으로 비쳤고 장래의 결혼생활이 ‘참 잘했어요’가 아닌 ‘잘했어요’ 수준이 될까 봐 헤어진 사이다. 이제 아오야기는 도망자 신세이고 하루코는 출장으로 바쁜 회사원 남편과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주부일 따름.

영화에서는 아오야기와 하루코는 단 한 차례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이심전심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도망자-주민, 노총각-주부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과 불꽃을 함께 바라보며 첫 키스를 나눴던 기억이 뒤섞이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다. 훗날 다시 스치는 옛 연인에게 딸아이를 통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애초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로 다층적이고 공감각적이기는 하지만 막상 화면으로 옮겨진 모습은 참 놀랍다. ‘참 잘했어요’를 받을 만하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ps : 이 영화 여주인공인 히구치 하루코역을 맡은 다케우치 유코는 한국에서도 좀 알려진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아오이 미오역을 맡은 배우이다. 이미지가 상당히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배우인 것 같다. 더욱 기대된다. 영화가? ㅋㅋ 



-------------------------------------------------------------------------------------- 

한겨레신문 2010.8.16  청소부 마에스트로 단원의 ‘천상의 하모니’  

영화 ‘더 콘서트’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
고운 선율·휴먼스토리 버무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던 30년 전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회. 천상의 그 하모니를 다시 재연할 수 있다면….”
볼쇼이극장의 청소부인 안드레이 필리포프는 옛 볼쇼이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 창창했던 지휘봉을 꺾인 탓에 알코올중독자가 된 그의 꿈은 차이콥스키를 다시 연주하는 것이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 12일 밤 선보인 <더 콘서트>는 일생을 음악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으나 공산당의 유대인 박해로 나락으로 떨어진 단원들이 다시 모여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뤄낸다는 내용. 거기에다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빼돌려졌던 아기가 바이올린연주자로 성장해 중단됐던 협연을 하며 진실을 알게 된다는 휴먼스토리가 버무려져 있다.

필리포프는 어느 날 극장장의 방을 청소하다가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온 팩스를 우연히 발견한다. 볼쇼이극장 오케스트라를 파리에 초청하고 싶다는 팩스를 읽는 순간, 중단된 옛 꿈을 재현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브레즈네프 서기장 시절 오로지 완전한 화음을 위해 유대인 단원들을 몰아내라는 당의 지시를 어기고 연주를 하다가 지휘봉을 빼앗겼다. 연주를 그만두고 거리의 악사, 공장 노동자, 집시가 된 옛 동료들을 규합하여 정규 볼쇼이극장 오케스트라를 사칭해 파리로 연주여행을 떠난다. 단원과 매니저는 보따리장사, 파리 시내 관광, 옛 공산당의 영화 재건 등 동상이몽이지만 그가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안 마리 자케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

마리가 리허설 장소에 왔을 때 단원들은 서너명뿐. 급하게 빌린 악기가 실려오고 현장에서 연주복을 다리는 등 말도 안 되는 아수라장에 실망하고 옛 바이올린 협주자 레아 스트룸의 환상에 젖은 필리포프를 본 마리는 자신은 레아가 아니라면서 협연을 거절한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찾아온 첼리스트 그로스만이 자신들과의 협연이 끝나면 당신의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음악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삶의 진실을 알게 한다”면서. 스물아홉 해 동안 후견인의 손에서 자란 마리는 부모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아왔던 것. 후견인 구일렌은 연주를 하라면서 레아가 해석해 놓은 악보를 남기고 떠난다.

루마니아 출신의 라두 미하일레아누 감독은 프랑스 국립영화학교를 나와 1993년 장편 <밀고>로 데뷔하여 몬트리올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더 콘서트>를 통해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어린 시절 경험해야 했던 억압을 슬며시 끄집어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유머러스한 연출로 관객한테 보인다. 파리의 유서깊은 샤틀레극장에서 펼치는 차이콥스키의 선율은 멋진 음악의 감동을 선사한다.

제천/임종업 선임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간의 힘'관련 서평을 쓰다 겸사겸사 블레이의 저서를 모아본다.(근데 예전에 듣기로는 '하름 드 블레이'라고 한글로 옮긴것 같은데?)  

이 중에서  The World Today 3판은 얼마 전에  '개념과 지역 중심으로 풀어 쓴 세계지리'란 긴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내가 알기로는 지리교사모임 중 하나인 '지평' 선생님들의 스터디 모임의 결과로 출간되었다. 대단하신 것 같다. 

그리고 블레이의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상당히 많은 책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책이 꾸준히 개정되어 나온다는 것이 참 좋아보인다. 외국의 전공서적들은 한번 책이 나오면 꾸준히 개정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저자가 죽으면 저자의 제자들이 이어서 개정판을 내기도 하더라.


1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개념과 지역 중심으로 풀어 쓴 세계지리- 제3판
Blij, H. J. De 외 지음, 기근도 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9년 2월
38,000원 → 38,000원(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절판
Social Geographies of the Modern Worldregional Texts (Paperback)
Harm J. De Blij / John Wiley & Sons Inc / 2003년 2월
42,560원 → 34,890원(18%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품절
Physical Geography (Paperback, 3rd, Study Guide)- The Global Environment
Harm J. De Blij / Oxford Univ Pr / 2003년 8월
176,160원 → 158,540원(10%할인) / 마일리지 4,760원(3% 적립)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절판
Human Geography (Paperback, 8th)- People, Place, and Culture: Advanced Placement Student Companion
Harm J. De Blij / John Wiley & Sons Inc / 2006년 10월
87,590원 → 71,820원(18%할인) / 마일리지 3,600원(5% 적립)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절판


1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름 데 블레이의 '공간의 힘' 서평을 쓰다 자연스레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를 참고하게 됬다. 집 책장을 보니 프리드먼의 책이 3권이나 있더라, ㅋㅋㅋ 언제 읽나?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경도와 태도- 세계는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김성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건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월
44,000원 → 39,60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화가 불러들인 기회와 위험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 장경덕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40,000원 → 36,000원(10%할인) / 마일리지 2,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코드 그린-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영민 외 옮김, 왕윤종 감수 / 21세기북스 / 2008년 12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8월 17일에 저장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