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은 저녁을 혼자 먹으며 소주 한잔 한적이 있다. 중간쯤 먹다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라.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늦은 시각이지만 혼자 또 한잔했다. 근데 갑자기 글이 막 쓰고 싶어지더라. 글이라기 보다는 '글씨'를 내 생각, 마음을 '글씨'로 쓰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서 그냥 막 썼다.  이런 글이 무슨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글쎄. 처음이니깐, 괜찮겠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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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24 23:05 Sweet Smoke

혼자 먹는 술 

머리가 무겁다. 눈도 무겁다. 왠지 우울하다. 뭔가 거창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조금 무겁고, 약간 무겁고...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술집이다. 난 혼자 있다. 학교 야자 감독을 하고 경복궁역 순대국밥 집에서 소주 한 잔(병) 하고 아쉬워 비오는 거리를 혼자 추적추적 걸어왔다.

예전에 먹고 남은 스카치 블루 반병이 있다. 한치 두 마리, 땅콩, 약간의 과자 이게 내 술 상위에 있는 안주다. 너무 많다. 혼자 먹기에는... 사실 안주는 필요 없는데...

난 왜 난 왜, 술을 먹는 걸까? 그것도 혼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먹는것에 대해 나름 ‘두려워’한다. 그러나, 난 전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편이다. ‘외로움’을 느끼면서 즐긴다. 난 본질적으로 원초적으로 ‘외로운’ 존재인 것처럼.

난 내 본질을 모른다. 하지만 혼자, 외롭게 이렇게 지금처럼 술을 먹고 있으면! 난 원래 이런 인간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이 들곤 한다. 하긴 나 자신도 날 모르긴 하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알수는 없다. 그 어느 누구도 그건 자만이며 오만이며 실수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좀 전에 내가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던 친구. 예전 같으면 나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을텐데... 역시 내 친구다. 내가 통화 하고 싶다는 걸 알았나 보다 적당한 시점에 ‘딱’ 전화를 했다.

통화를 했다. 역시 친구란 이런 건가 보다. 편안하다. 편안하다. 속이 시원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고 싶다는 맘이 든다. 하긴 그 어느 누구에게가 아니라, 내 아내와 아들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난 내 인생의 반은 성공한 것일 것이다. 절반은...

엄마가 편찮으시다. 지금 내 자신이 싫은 이유. 지금 이 순간도 난 엄마가 정확하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모른다는 것이다. 난 엄마의 ‘아들’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난 무엇인가? 아빠에게는 ‘싸가지’없는 아들, 여동생에게는 ‘까칠한’오빠, 엄마에게는...? 모르겠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항상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다. 원죄?

내 마음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그게 현실이다. 현실.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시각 23시34분. 좀 늦었다. 많이. 아내는 야자감독 끝나고 밥만 먹고 집에 돌아오는 줄 알았을 텐데, 아직도 안 들어오니, 화가 많이 났을것 같다. 많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이럴 때면 기분이 찝찝하다.

나의 똑같은 실수의 반복. 난 왜?? 매번 같은 실수, 후회를 반복하는 것일까? 아직 철이 들지 않은게 확실하다. 철이...

시간이 지나니 술이 취한 것 같다. 글씨도 조금 더(?) 명확히 써지지 않는 것 같고, 이렇게 혼자 먹다 보면 문득 너무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자초한 면이 많지만... 외롭다는... 사람이 그립다. 인간이. 대화를 하고 싶다. 내 마음을 애기하고 싶다. 상대방의 애기를 듣고 싶다. 당신의 비밀을 알고 싶다. 결국 난 결국 알고 싶은게 많은 것 뿐이다. 결국 지금의 난 허상일 뿐이다.

 1p.

 

 2p.

 

ps : 술도 먹긴 했지만, 정말 내 글씨는 최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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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정성일은 영화를 알게해준, 그나마 나에게 영화를 볼 수 있게끔 해준, 영화 평론을 알게 해준 그런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잡지 <kino>, 지금 생각해보면 뜻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줄줄히 나오는 그 책을 내가 왜 어떻게 보게된 건지 신기하기도 하다. '겉멋'에 들어 좀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나의 바램의 표출이겠거니 생각한다.  

하여튼 날 한때 시네필로 만들어줬던 정성일씨의 영화평론집 두권이 동시에 나왔다. 당연히 나에게는 필독서다. 기사를 스크랩한다. 

     

   

위 두권은 신간이고 아래 세권은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과의 대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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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없는 관객…그들에게 보여줄 '영화'는 없다"
2010.8.27  [프레시안 books 인터뷰] 영화평론가 정성일 

영화평론집이라는 장르 혹은 형태는 독특한 독서를 요한다. 독자가 어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 영화에 대해 쓴 평론 파트는 읽지 않고 그저 건너뛸지도 모른다. 혹은 거꾸로 그 평론을 읽기 위해서 그 영화를 기어이 찾아볼지도 모른다. 텍스트를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수 없는, 끊임없이 텍스트 바깥의 이미지가 간섭해 들어오고 독자로 하여금 독서 이외의 행위를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야말로 평론집의 특징일 것이다.

하나 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평론집 <필사의 탐독>(바다출판사 펴냄)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정우열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는 그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독서를 요한다. 1989년 창간한 영화 잡지 <로드쇼>의 편집차장을 시작으로, 1995년 창간됐고 한국의 시네필 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영화 잡지 <키노>의 편집장이자 혹은 1990년대 중반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출연하여 새로운 영화들을 청취자에게 소개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아는 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일의 글은 일반적인 영화 '감상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한국의 영화평론계에서 독보적이고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한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적으로 '본다'. 독자 역시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시선을 경유하여 그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독자가 거기서 멈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선을 경유하지 말고 결국엔 당신 자신의 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독려하고 선언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수동적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정성일을 따라잡기 위해서, 혹은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

영화 정보와 가벼운 감상평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더 확장된 삶의 태도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 두 권의 평론집을 통해 확장과 공감과 배움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렸던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를 인터뷰하며, 평론집에 얽힌 궁금증들을 질문했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프레시안(손문상)

- 영화평론가로서 오래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평론집을 내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책 자체를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다음 남는 건 영화지, 그 영화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둘러싼 글이라는 건, 그 글이 쓰인 특정 시간 동안 유효할 뿐이며 소설처럼 계속 읽힐 순 없다. 매우 미안한 얘기지만 그 시들이 남지, 시집 뒤의 김현의 평이 남진 않을 것 같다. 혹은 그 소설들이 남지, 그 소설에 관한 김윤식의 평이 남을 것 같진 않다.

말하자면 그건 비평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글은 그것이 발표된 지면의 운명과 함께 한다. 만일 지면이 오래 남는다면 그 글도 오래 남을 것이고 지면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그 글도 그 운명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태가 좀 변했다.

나는 인터넷이 생기기 이전부터 글을 쓴 사람인데, 인터넷이 활성화되자 예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글들이 되돌아오고 다시 떠돌기 시작하고 무한 자기 증식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 글들이 다른 방식으로 소멸하거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나서서 책으로 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임권택 감독(<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 펴냄))과 김기덕 감독(<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행복한책읽기 펴냄))의 이름 뒤에 숨어서 머물고 싶었다. 첨언하자면, 김기덕 감독 인터뷰를 올해 초에 한 달 반 동안 새롭게 진행했다. 그 책은 아마 올 겨울에 나올 거다. 임권택 감독도 인터뷰를 새로 했다. 감독님의 신작 <달빛 길어 올리기>에 관한 인터뷰까지 추가한 다음, <달빛 길어 올리기> 개봉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다.

 
▲ <필사의 탐독>(정성일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오랜 시간 생명력을 유지하는 훌륭한 평론집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랑소와 트뤼포가 앨프리드 히치콕을 인터뷰한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펴냄) 같은 책 말이다. 당신이 편집장으로 재직한 영화 잡지 <키노>에서도 그런 책들을 전략적으로 소개하고 칭송했는데, 왜 본인의 평론집에 대해서는 그렇게 주저한 건지 궁금하다.

그들만큼 훌륭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이야 워낙 눈이 밝은 사람들이니까. 예전에 프랑스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1959년판을 구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도 별점을 매기더라.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년)와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년)의 별점을 보고 흠칫 놀랐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에게 그 해의 새로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고,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해선 '어린 평론가가 감독을 한답시고 되게 서툴게 할리우드 영화에 오마주를 바친 철없는 영화'라는 평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카이에 뒤 시네마>의 당시 평론가들, 나중에 우리가 눈여겨보게 되는 그 감독들인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프랑소와 트뤼포 등의 별점을 보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별 하나, <네 멋대로 해라>에 별 넷을 줬다. 이쯤 되면 이 사람들이 좀 무서워지는 거다. (웃음)

어떤 영화가 시간을 견디고 남을지를 당대에 딱 알아본다는 거, 정말 대단하다. 그런 안목은 훔치고 싶지. 내게 그런 안목이 있는가에 대해 끝없이 의심스럽고, 종종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예전에 그 영화를 잘못 봤구나 후회하기도 하고. 여담이지만, <씨네21>의 20자 평이 결정적으로 재미없는 건 대부분의 영화에 별 셋, 혹은 별 셋 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 이 영화와 저 영화의 차이가 뭔지를 알 수가 없다. 별 하나를 주는 경우는, 굳이 안 봐도 별 하나짜리인 줄 아는 영화뿐이다. (웃음) 그건 곤란하지 않은가. 물론 그의 안목과 그의 평, 그의 설명이 영화만큼 오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젠 교양이 되어버린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수잔 손탁, 앤드류 세리스 등. 하지만 대부분의 비평문이 그만큼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글쎄…….

- 서문에서 편집자와 3년 전 "첫 영화를 찍은 다음 책을 내겠다"고 약속했고 정말 <카페 느와르>를 마치고 난 다음 두 권의 평론집을 출간하게 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바다출판사 편집자가 3년 전에 처음 전화해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다. 아직 낼 때가 안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다. 마침 <카페 느와르> 제작 준비 단계여서, 첫 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 책을 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정말 연락이 끊겼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카페 느와르>가 상영된 직후 전화가 왔다. "자, 이제 책을 내실 때가 왔습니다." (웃음) 그래서 진행하게 됐고, 대신 한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여기에 실릴 글은 내가 고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필사의 탐독>은 21세기에 발표된 한국 영화로 한정하자는 원칙 하에 에디터가 내 평론 중 일부를 선택했다.

아마 다른 에디터가 일했다면 <필사의 탐독>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됐을 수도 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도 에디터와 (일러스트를 그린) 올드독(정우열)이 함께 글을 선정했다. 그 권리를 그들에게 넘김으로써 그런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할까? 음…나는 책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책이라는 물적 존재에 대해서.

똑같은 글이라도 책에 실린 글은 다르다. 내가 사방에서 썼던 글들이 샘물처럼 흘러들어 고여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 한편으론 그 호수의 고요함과 깊이가 좋지만 또 한편으론 호수의 특징 중 하나가 '썩는다'는 점이다. 뭔가 생각이 멈춘다는 게 싫었다. 내가 글들을 직접 선택한다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내가 이 책에 붙잡힐 거란 생각도 들었다.

- <필사의 탐독>에 실린 평론의 순서는 영화의 개봉 순서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2006년 7월에 개봉한 <괴물> 다음에 6월의 월드컵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

에디터한테 그렇게 부탁했다. 이 책이 연대기로 읽히길 원치 않는다고. <필사의 탐독>이 행여나 21세기 첫 10년간의 한국 영화사로 읽히길 원치 않았다. 그저 10년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이 언제나 순서대로 간직되는 건 아니지 않나. 개봉 순서보다는 책 전체를 쭉 읽어나갈 사람들의 독서의 리듬을 더 많이 생각했다.

- 그 글이 다루고 있는 영화 자체의 리듬이기도 할까?

둘 다다. 혹은 한 가지 더. 그 영화에 접근한 방식의 리듬도 고려했다. 어떤 것은 비평, 어떤 것은 인터뷰, 어떤 것은 현장 방문이다. 난 '현장 방문은 비평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평에는 서로 다른 태도가 있다. 현장 방문과 인터뷰 역시 하나의 비평적 태도다. 어떻게 보면 아카데미에서 시작한 비평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기자로 시작한 비평가인 내가 갖는 메소드의 스펙트럼이랄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에서 훈련받은 비평가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뷰나 취재에는 현장에서의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비평가 후배들이 영화를 본 다음 책상에서만 비평을 쓰는 게 굉장히 불만스럽다.

내가 존경하는 비평가들은, 예를 들어 세르주 다네를 보자.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다가 그 영화 속 바람이 궁금해졌다. 아무리 영화를 들여다봐도 바람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어. 그럼 방법은 하나다. 현장에 가는 거다. 아키라가 자기의 프레임에서 어떻게 바람을 창조하는가를 견학하러 가는 그런 태도, 또는 프랑소와 트뤼포가 에릭 로메와 함께 히치콕의 <이창> 현장을 방문하여 그 메소드를 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 오즈 야스지로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오즈의 촬영 기사와 긴 인터뷰를 하며 오즈의 창작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그 태도가, 지금의 비평가들에게는 명백히 결여돼 있다. 말하자면 호기심의 빈곤, 한편으로는 맹렬한 비평적 애티튜드의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건 책상에 앉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만일 후배 비평가들이 <필사의 탐독>이라는 책을 필요로 한다면, 특정 영화들에 대한 나의 견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메소드를 생각해주었으면 고맙겠다. 책상에서만 쓰인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현장에서, 한편으로 감독과의 인터뷰로 영화에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 <필사의 탐독>에서 제외된 영화, 제외된 평론에 대해서는 본인으로서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로서도 많이 궁금해 할 것 같다. 이를테면 2004년에 중요하게 다뤄졌던 한국 영화에 관한 글들은 여기 없다. <송환>, <빈 집>, <귀여워>, <마이 제너레이션> 같은 영화들 말이다.

혹은 <사랑니>도 빠졌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이 글이 왜 빠졌지 하는 생각은 분명 있다. 하지만 영화의 상영 시간이 결정된 것처럼 책의 쪽수도 결정되어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이건 전집이 아니다. (웃음)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자.

- 두 권의 표지는 각각 어떻게 선택한 건가. <필사의 탐독>은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 역의 김상경이 비 맞으며 손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선택했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는 <알파빌>의 안나 카리나가 폴 엘뤼아르의 시집을 쥐고 있는 장면을 선택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부터 얘기해보자. <알파빌>에 끌렸던 이유는, 영화 속 도시 알파빌에서 '사랑'과 '왜?'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네필들에게 부족한 건 그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영화를 본 다음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지금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와선 "별 두 개야" 혹은 "별 넷이야"라고 말한다. 그 외에는 어떤 궁금증도 없다. 혹은 어떤 관객은 너무 근심어린 얼굴로 "큰일이야. 이 영화 백만이 안 될 거 같아"라고 한다. 아니, 근데 그걸 자기가 왜 걱정하냐고! (웃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의 표지를 보면, 안나 카리나가 이렇게 폴 엘뤼아르의 책을 들고 허공을 바라본다.

그건 두 가지 뜻이다. 첫째, 영화를 읽지 말고 보세요. '영화를 읽는다'라는 말은 아카데미가 만들어냈는데, 사실 영화를 '읽으면서부터' 영화에 대한 비평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영화에서 보지 못한 걸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지젝이나 들뢰즈 같은 온갖 이론가들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은 '본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둘째, 그 영화를 볼 땐 교양을 잊지 말아주세요, 교양의 바탕 위에서 생각해주세요. 만일 여러분들이 '교양은 필요 없고 영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영화는 과연 기뻐할 것인가. 교양 없이 얻어낸 그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필사의 탐독>의 경우, <생활의 발견>의 경수가 손금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지금의 영화를 정확하게 읽는다면 한국 영화의 과거를 볼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니까. 말하자면 과거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한국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대신 그걸 남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보자는 뜻이다.

난 그 장면에 굉장히 마음이 끌렸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 책의 태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디터에게 부탁했다. 다른 순서는 뒤섞어도 괜찮지만 이것만은 지켜달라고. <필사의 탐독>에서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제일 처음 들어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에 바치는 추모사가 끝나자마자 시작하는 원고가 <생활의 발견>이었으면 좋겠다고.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정성일 지음, 정우열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필사의 탐독>의 첫머리는 고 정은임 아나운서에게 바치는, 지금은 가고 없는 영화 친구를 향한 애도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은 올드독이라는 새로운 영화친구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두 책의 첫머리가 그렇게 대구를 이룬다. 그건 결국 가고 없는 친구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나의 새로운 영화 친구가 되어달라'고 초대한다는 인상을 준다.

(한참 생각하다가) 지금 내가 믿는 정치학은 딱 하나다. 우정의 정치학. 예전의 시네필들은 영화의 친구를 애타게 찾았고 그들과 무리지어 다니고 주말엔 중국집에 모여 자장면을 먹으며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1인의 시대다. 개인 블로그, 개인 트위터의 시대다.

오로지 태그에 걸린 영화에 관한 단어들 때문에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그 블로그 혹은 트위터를 찾아온다. 그들은 블로그나 트위터의 주인이 누군지 알 리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이 사람의 관심이 나와 어떤 지점에서 조응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다.

질문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시네필은 그 낯선 이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블로그들을 읽다보면 보면 종종 거칠게 얘기가 진행된다. 너 오지 마. 난 이렇게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이 보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좋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감동받는 순간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에 이르러 극장 어디선가 누군가 "아…" 하는 탄식을 지르는 걸 들을 때다. 그 순간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거다. 이것이 영화를 보면서 갖는 나의 우정의 방식,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의 방식인 셈이다. <필사의 탐독>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두 권의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건, 다소 하드하고 따분한 표현이지만 우정의 정치학, 낯선 친구에 대한 환대를 생각해달라는 나의 호소다.

- 평론들이 원래 실렸던 매체에서 붙인 글의 제목과, 이번에 평론집 내에서 새롭게 붙인 글의 제목 사이에 보이는 긴장감이랄까, 미묘한 차이가 흥미롭다. 어떤 면에선 바로잡고, 어떤 면에선 보충하고, 또 어떤 면으로는 수수께끼 놀이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체에 내 글이 실릴 때 내가 제목을 붙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첫째로 제목을 붙이는 건 편집자의 권리니까. 두 번째로, 내 글에 관한 독후감이 바로 그 제목이니까, 제목을 어떻게 붙이는지가 궁금하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이상한 제목이 붙어서 당황하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근사한 제목을 붙여 과분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래도 매체에 글을 실릴 때는 제목이 시의성을 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제목이 생뚱맞게 들릴 때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 에디터가 제목을 새롭게 달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각 잡고 단 건 아니고, 한편으론 유머처럼 혹은 그 글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나의 메시지 같은 성격으로 제목들을 뽑았다.

- 기억에 의존해서 영화평을 써야 하는 것의 힘듦을 기술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평론을 쓸 당시 영화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던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이 책에 그대로 싣는다고도 했다. 내가 본 것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부분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장면이 명백히 롱테이크라고 생각했는데 쇼트가 쪼개진 거야. 혹은 그 장면이 명백히 클로즈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가 미디엄 쇼트만큼 물러나 있었던 거야. 예전에 임권택 감독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감독님, 보통 '영혼을 끌어내는 듯한 연기, 그 사람의 고통이 드러나는 듯한 얼굴'이라는 표현을 쓸 때, 어떻게 고통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님은 그런 연기를 시키고 끌어내지 않습니까? 그 비결이 뭡니까?"

감독은 0.5초 만에 대답했다.

"그거 다 사기여 사기. 그런 게 어딨어요."

핵심은 다음 말이다.

"그래서 연출의 핵심은 착시요."

잘못 기억된 어떤 순간이 오히려 연출의 의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당신과 대화하고 있다. 미디엄 쇼트만큼 물러앉아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어느 순간 손을 입가에 올릴 때, 당신의 얼굴이 딱 클로즈업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연출자는 미디엄 쇼트로 계속 찍다가 배우에게 '어머'하면서 손을 입으로 올리게 한다. 쇼트는 그대로인데, 본 사람들은 나중에 컷이 쪼개졌다고 생각한다. 미디엄에서 클로즈업으로 들어갔다고.

그런 어펙티브한 쇼크를 줌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건드리는 거다. 그 연출이, 되게 중요하다. 그래서 기억의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수학 문제를 풀거나 팩트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리적 기준을 갖고 비평을 쓰는 사람이니까 그 기억의 오류를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하다.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되,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벌어진 기억의 착시야말로 내가 그 영화랑 소통했던 순간이었던 거다. 사실은, 다음 번에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가 착시다. 클로즈업, 롱 쇼트, 투 쇼트 등 영화의 개념들을 죽 설명하는데, 정석적인 설명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오류를 범했던 순간들, 착시를 일으킨 순간들을 쓸 거다. 말하자면 퍼스널한 터미놀로지에 대한 해설이 될 거다. 영화의 매직은 오히려 거기 있는 게 아닌가, 라는 깨달음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보아온 나의 결론 같은 것이다.

-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평을 바로 써야 할 때, 어느 정도까지 메모를 하면서 보는 쪽인가?

메모를 하지 않는다. 메모하면 영화가 안 보인다.

- 그렇다면 <생활의 발견> 평론 등에서 보이는 신과 쇼트의 수는 어떻게 기록하는 건가.

영화 보면서 손가락으로 센다. <생활의 발견>의 경우는 두 번을 보고 쓴 거지만, 대개의 경우는 직접 세어 본다. 칸영화제에서 하루에 6편씩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장면이 30컷 미만이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세기 시작한다. 대충 어떤 템포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 그게 아마 지금의 젊은 세대와 나의 차이일 텐데….

내가 비디오를 처음 본건 20대 후반이었다. 그 전까지 영화는 오로지 극장에서 봐야만 했다. 한번 보면 끝이다. 이 영화를 내가 소장하기 위해선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세대 평론가들의 공통적인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정보에 접근성이 용이해질수록 기억의 능력이 퇴보하기 시작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공감했다.

지금 영화과 학생들을 보면 리와인드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막 보고난 영화를 쇼트 바이 쇼트(shot by shot)로 기억하지 못한다. 10분 전에 본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다. 기억이라는 능력의 퇴화, 퇴보라기보다는 퇴화가 더 정확하겠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착시라는 매직을 얻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중요한 능력 하나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필사의 탐독>에서는 2006년 월드컵의 스펙터클에 관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는 김선일 참수 비디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영화평이 이어지다가 문득 현실의 이미지를 논하는 그 글들이 등장하는 순간 유독 도드라진다. 이 글들을 저널에 발표할 당시에는 그 무렵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당연한 발언이었겠지만, 몇 년 뒤 책으로 엮일 때 이 글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는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두 글 모두, 난 그 글이 활용되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썼다. 말하자면 영화평론가가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 말이다. 평론가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는 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격문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철수가 쓰고 영희가 쓴 거지 영화평론가가 쓴 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평론가라면 광화문 촛불 집회 당시, 집회에 참가한 경험을 쓰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것이 중계되는 방식에 대해 쓰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촛불 집회가 방송에서 올바르게 중계되고 있는가, KBS와 MBC가 이를 중계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그 쇼트의 운영 방식에서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는가. 그것이 평론가가 정치적 임무를 실행하는 방식이다.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이 죽여요, 라고 쓰는 건 영화평론가의 글이 아니다. 대신 NHK와 한국 방송의 중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중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할 때 스포츠의 윤리에 대한 평론가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이 그 메소드, 그 애티튜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고 자기의 방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 그렇다면 스펙터클에 관한 이 글들이, 월드컵 사진과 김선일 사진이 없이 책에 실린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책을 낼 때 원칙 중 하나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면 사진을 삽입하지 말자는 거였다. 많은 이들이 들뢰즈의 <시네마 : 운동-이미지>, <시네마 : 시간-이미지>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책들에게 가장 영향을 받은 건 스틸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맨 처음 불어판본을 받아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무슨 영화 책이 사진이 없어! (웃음)

나도 모르게 관습적으로 생각한 셈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미지가 운동하고 있을 때만 영화이고, 이미지가 시간 안에 있을 때만 영화이다. 그걸 멈춰 세운 스틸 이미지는 이미 영화가 아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 평론집에서도 장식으로서의 사진을 빼자고 했다.

- 평론집에서 당신이 되풀이 강조하는 바는 환상에 대한 거절이다. 관객이 영화에게 기대하는 환상, 영화에서 읽어내려는 환상, 혹은 감독이 제공하는 거짓된 위안으로서의 환상. 그 태도에 대해 어쩌면 찬반의 의견이 갈릴 것 같다.

나한테 영화는, 결국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로셀리니가 세상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 영화가 가져야 하는 윤리, 그 윤리가 영화의 형식이 되어가는 과정, 그럴 때에만 비로소 영화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믿음. 그러나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동료들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서로 다른 견해의 다양성이 그만큼 영화에 대한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나라는 평론가가 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관계 맺는 방식, 혹은 영화로부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로셀리니적인 태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지지하고 있는 영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 <필사의 탐독>에서 개인적으로 놀랍게 읽은 글은 허진호 감독의 <외출> 평론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말하자면 영화의 '얼룩'이라고 할 만한 어떤 디테일에서 시작한 의문으로부터 그 글은 시작되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밀어붙여진다. 일반적인 영화평이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라든가 전체를 관통하는 무엇에 대해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언젠가부터 영화 기자나 비평가들이 갖고 있는 고질병은, 자신이 쓰는 그 글이 그 영화에 대한 최종본이 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그런 글이 있을 리가 없잖아. (웃음) 보편적 비평, 일반적 비평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비평은 특수한 비평이다. 난 영화에서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비평의 시작이라고 본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나를 멈춰 세우는 대목들 말이다.

왜 이렇게 됐지? 이 대목에서 감독이 명백하게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영화 전편으로 확산되는 하나의 논리일 수도 있다. 내가 그에 대해 답을 낼 수 있다면 사실상 이 영화의 논리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못 만든 영화와 잘 만든 영화 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궁금한 영화와 내가 무관심한 영화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내가 무관심하다면, 글을 쓸 때 쥐어짠다는 느낌이 있다. 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웃음) 쓰고 나서도 스스로 너무 못마땅해. 하지만 모두가 별로라던 <외출>을 봤을 때, 난 어떤 장면에서 멈춰 섰다. 이런 이상한 연출이 왜 나온 걸까?

혹은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의 마지막 장면, 수애가 남편의 뺨을 때린 다음 바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영화를 여기서 끝낼까? 아, 이 감독은 지금 나랑 다른 논리로 영화를 끌고 왔구나.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거꾸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점에 있어 정말 흥미롭고 궁금한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다. 그의 영화는, 매 장면이 다 그렇다. (웃음) 1시간 40분의 러닝 타임 동안 한 장면만 나를 멈추는 게 아니라 매 장면이 다 그렇다. 모든 장면을 그렇게 운용하는 홍상수의 영화적인 비전, 그의 영화의 리듬에 이르면 "아, 굉장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 사실 지금까지 왜 당신이 홍상수 감독에 관한 책을 내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어딘지 모르게 그에 관한 긴 발언을 미루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거꾸로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에 관한 인터뷰집을 낸 이유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에 대해 책을 쓰기까지 나를 이끈 열정의 근원은, 그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도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만 영화를 배웠다. 자기가 자기로부터 배운 사람들. 그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나은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나아갔다.

한편으론 그 태도를 배우고 싶었고 또 한편으론 그 자수성가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 과정의 기록이 지금 막 영화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격려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 역시 한 번도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는 동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선생님이 가르쳐줬다면 한 시간 만에 끝났을 일이, 어떤 경우에는 1년, 어떤 경우에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오로지, 끊임없이 몸으로 배우는 거다. 또한, 그들이 만든 최종 결과물로서의 영화로부터 배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난 인간의 기록을 하고 싶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어떤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흥미롭다.

사람이 먹고 사는 건 언제나 치사한 일이고 자신의 배움을 배신하는 일이다. 타협하고, 교활해지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일상이 그의 예술적 영혼을 갉아먹고, 갉아 먹힌 다음 앙상한 나머지만을 끌어안고 그걸 부숴가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제일 역겨운 건 비평가나 전기 작가들이 그 과정을 멋있게 치장하는 거다. 아름다운 표현이 정말 싫다. 난 스스로 경험한 자의 목소리로 직접 담고 싶었다.

반면 홍상수는 그들과 다르다. 홍상수는 결론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사실상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찍었을 때 이미 자기 영화를 완성했다. 그 다음부턴 끊임없는 변주만 해나가고 있다. 난 홍상수 감독의 말이 궁금하거나 만드는 과정을 알고 싶지 않다. 그의 영화가 흥미롭고 그의 영화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홍상수는 충분히 미루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를 인터뷰하고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그의 예술적 태도에 온당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국 영화사에 위대하고 훌륭한 감독들이 많다. 그러나 홍상수는 어쩌면 한국영화사가 처음 맞이하는 예술가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그의 작업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벌고 싶다.

 

책 속으로

무엇보다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기억을 다루는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당장 다시 보면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아서 다시 생각하고, 왜 그것만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 왜 저것은 사라져버렸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게서 사라져가는 시간과 남아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경기장이다. 나에게 영화란 그것을 보는 시간과 그것을 보러 가는 시간, 그리고 보고 난 다음의 시간, 세 개의 시간 사이에서 기억의 사용에 대한 용법과 능력의 문제이다. 그저 자유롭게, 종종 선험적으로 상상하며, 때로는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즐겁게 세상을 쳐다본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13쪽)

나는 오픈 토크에서 앙겔로풀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시대는 영화가 이미지에 포위당한, 점점 더 야만적인 이미지들, 이를테면 게임이나 뮤직비디오처럼 사유하지 않는 이미지들에 의해 영화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화에서 에술을 향해서 싸우고 있는 당신에게 영화의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

앙겔로풀로스는 매우 길게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인상적인 말로 마무리를 했다.

"결국 영화는 하나의 기록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것을 포기한다면 더이성 우리 시대의 인간에 대한 시선의 기억은 말소되고 말 것입니다. 시선을 거둘때, 우리는 더이상 다른 사람을 보지 않겠다는 시대를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너를 볼 때, 이미 너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입니다."

그리스에서 온 이 현자는 우리들에게 왜 여전히 영화가 필요한지 웅변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몇 번이고 말했다. "영웅적인 절망을 포기하지 마라." 그는 우리 시대에 거의 마지막 남아있는 거인이었다. 다시 한번 그의 영화를 모두 볼 생각이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422~423쪽)

(내 생각에) 홍상수의 새로운 점은 바로 그 변덕, 말하자면 종합의 포기에 있다. 그는 균형을 잡으려 들지도 않고, 그 안에서 그 어느 것에도 명령의 자리를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변덕을 멋대로 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홍상수는 자기 영화의 원칙에 대해서 엄격하다. 심지어 이 원칙에 대한 엄격함은 그 자리에 대한 권리를 그 자신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로 그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 혹은 사건에 대해서조차 애매하게 볼 때가 있다. 이미 던져져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의 자포자기한 세상에 대해 홍상수의 유일하게 반성적인 태도는 그의 직관이다. 그러나 홍상수가 자신의 영화를 직관에 내맡길 때 그는 그 직관이 붙든 것을 분석이 설명하려 드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영화를 흔든다. 그가 영화를 흔드는 방법은 언제나 시간이다. 그 안에서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럼에도 시간은 되돌아오거나 혹은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에서 앞의 시간은 반복으로 보이고, 뒤의 시간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는 착시이다. 대부분 그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를 말하면서 그것이 착시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안에서 홍상수는 우리의 기억과 경쟁한다. (<필사의 탐독>, 234쪽)

정성일 : 교실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아마 내 생각에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가장 공들인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이라는 점에서도. 사실 이 신 전체를 신기하게 찍었는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백한상을 죽이러 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카메라가 다 움직이는 쇼트로 찍었어요. 그렇다고 롱테이크로 찍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장면은 장면대로 나누면서, 핸드헬드로 마치 '대사의 액션 장면'처럼 영화를 연출하고 있거든요. 나는 이 회의 장면을 무척 이상하게 봤어요.

박찬욱 : 여기가 가장 활력있는 장면이죠. 액션 장면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금자 씨가 총을 들고 뛰어가는 장면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가득하고 활력있는 장면이라고 봤어요. 그들이 거기서 논쟁을 벌이고 의견을 나누고 하는 것이 찍기에 따라서는 그냥 맥 빠지고 무기력한 군상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이건 너무 절박한 일이고, 아이들이 죽은 뒤 자신의 인생을 결산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의견도 개진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럴것 같았어요. 그럴 때 이것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뭐랄까 너무 좀 편하게 간달까요, 감독으로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필사의 탐독>,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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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8.23  상습수해 지류 놔둔채 멀쩡한 본류에 ‘헛돈’
[‘반환점’ 돈 이명박 정부] ① 4대강 사업  

 

» 지난 7월 집중호우로 교량이 무너져 내린 경북 고령군 고령읍 운산1리 일대는 상습 수해지구이지만 예산부족으로 2013년에야 하천개수가 완료된다. 시민환경연구소 제공 
 
낙동강 지류인 조만강이 흐르는 경남 김해시 주촌면 주촌소방서 옆 하천변에는 공업단지의 침수를 막기 위한 마대자루가 기다란 장벽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하천이 넘칠 때마다 임시로 쌓아놓은 것이다.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를 오래된 마대자루는 모두 해어져 안에 들었던 흙이 둑을 이루기도 한다. 또다른 낙동강 지류인 금성천을 가로지르는 경북 고령군 운수면 운산1리의 교량이 지난 7월 집중호우로 무너져내렸다. 수해 상습지구인 이 일대의 개선사업은 제방 9㎞를 개수하고 다리 2곳을 교체하는 사업비 118억원의 소규모 사업이지만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지난해 시작한 사업이 마무리되려면 2013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준설로 홍수 대비?
국가하천 97% 제방 등 정비끝
골재채취로 추가 준설 불필요

물그릇 키워 수자원 확보?
‘감소 추세’ 물수요 과다 예측
산간·섬지역 가뭄피해는 뒷전 

홍수 예방과 가뭄 대비를 가장 큰 목적으로 내세운 4대강 사업이 정작 문제가 되는 곳에는 눈을 감고 멀쩡한 강 본류에만 예산을 쏟아붓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7월 낙동강 일대의 수해지역을 조사한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치수대책이 필요한 곳은 4대강이 아니라 예산부족으로 해마다 수해를 입고 있는 지류와 지방하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집중호우 피해는 모두 지천에서 발생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소방방재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7월16~18일에는 지천 34곳과 소하천 67곳, 23~24일 동안에는 지천 29곳과 소하천 112곳이 수해를 입었지만 4대강 본류에서는 전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만의 현상도 아니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1996~2005년 동안의 국토 단위 면적당 침수피해액을 보면, 동해안·남해안 도시와 경기 북부, 영남 내륙지역의 홍수피해가 컸다.(지도 참조) 이들은 태풍경로나 태백산맥 등 지형적 영향을 받는 곳으로 4대강 본류와는 무관한 곳이 대부분이다. 

  
 
» 홍수 피해지역과 단위면적당 피해액·가뭄기간 물부족 지역 제한급수 횟수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에 대비하기 위한 사업이라는 정부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남한강에선 2006년 500년 이상 빈도의 폭우로 충주댐을 규정 이하로 미리 비워놓지 않았더라면 여주 제방이 무너졌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사태를 겪은 정부는 2008년 한강유역종합치수계획을 수립해 홍수방어를 제방에만 내맡기지 말고 홍수조절지, 저류지 등을 활용해 유역에서 분담하도록 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홍수의 유역분담량을 없애고 대신 강바닥을 파 홍수위를 낮추는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이에 대해 ‘준설을 통한 홍수 방어’라는 수문학계에 전례가 없는 대책의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4대강 본류를 포함한 국가하천의 97%가 이미 제방을 쌓는 등 하천을 정비한데다 골재채취 등으로 하상이 낮아진 상태여서 준설을 하지 않더라도 홍수 위험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남한강은 그런 사례이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작성한 한강살리기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바탕으로 100년 빈도의 홍수가 났을 때 남한강 제방높이에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지 계산했다. 그 결과 전체 사업구간 가운데 98.2%가 홍수위와 제방 높이의 차이를 가리키는 여유고가 법정 기준인 2m를 넘어섰다. 여유가 부족한 곳은 강 양쪽에서 각각 1.5㎞와 2.7㎞ 구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남한강사업을 마치더라도 이포보 하류와 충주댐 하류의 여유고는 여전히 법정기준에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남한강 사업은 지나친 토목공사이자 예산낭비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대규모 준설과 보 건설이 물그릇을 키워 부족한 수자원을 확보한다는 4대강 사업의 핵심 목표도 흔들리고 있다. 물 수요를 과다 예측한데다 정작 물이 부족한 곳에 확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은 2006년에 작성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을 근거로 2011년 8억㎥, 2016년에는 10억㎥의 물부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2008년의 생활용수는 78억7700만㎥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환경부의 상수도통계를 보면, 2008년 급수량은 57억5500만㎥로 수요예측치의 73.1%에 지나지 않는다. 물 수요량은 약 21억㎥가 과다 예측됐고 그만큼 물이 남아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1년부터 물사용량이 줄어들 것으로 본 수자원장기종합계획과 달리 실제 1인당 하루 급수량은 2004년 365에서 차츰 줄어 2007년 340, 2008년 337를 기록했다. 물 절약 정책, 물 다소비 산업의 감소, 누수 억제 등에 따른 현상이다. 이런 추세라면 2011년 실제 급수량은 330로 예측되는데(민주당 4대강 사업 대안보고서), 수자원장기계획이 예상한 363와는 국민 1인당 하루 33의 차이가 난다. 전국적으로 생활용수로만 연간 약 6억㎥가 과다계산된 셈이다.

물 과다 확보와 함께 공급지와 수요지의 괴리도 문제다.(지도 참조)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 물이 부족해 제한급수를 한 사례는 지난 30년 동안 없었고 낙동강에서 수질오염으로 공급이 차질을 빚은 일이 있었을 뿐이다. 박 교수는 “문제는 수량확보가 아니라 수질개선이며, 상습적으로 가뭄피해를 겪는 산간 농촌과 도서해안지역에 대한 배려”라고 말했다.

가뭄 때 강 바닥을 드러내는 곳이 강 본류가 아닌 지류인데도 본류에 ‘물그릇’을 키운다는 것도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4대강 마스터플랜은 그냥 흘려보내는 하천유지용수로만 2016년 7억㎥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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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과 관련한 기사이다. 보가 건설되어 강물의 양(물그릇이 커진다)이 늘어나 강의 오염이 줄어든다는 논리는 정말 어처구니 없다. 강처럼 동적인 존재에 이와같이 단순한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은 그 어떤 '의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짓 같다. 최근에 4대강 관련 책도 몇권 나왔다. <나는 반대한다>, <한강의 기적>, <재앙의 물길, 한반도 대운하>는 '운하', '4대강 사업'과 반대되는 내용의 책이며, <왜, 한반도 대운하인가>, <한반도 대운하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물길이다>는 '운하'사업을 찬양(?)하는 글이다. 뭐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관련 기사는 나중에 스크랩하기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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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8.23  수량확대→수질개선? 물 가두면 되레 악화  

보가 물흐름 막아 유속 느려지고 부영양화 현상
수문 열어 관리해도 희석보다 썩는 속도 빨라 
 
4대강 사업으로 물이 깨끗해질까? 정부는 이른바 ‘물그릇 확대론’으로 수질 개선 효과를 강조한다. 환경부가 지난 3월16일자로 제작해 홍보중인 슬라이드 자료를 보면 ‘보, 준설로 수량확대→수질이 개선됩니다’라고 돼 있다.(그림 참조) 오염물질이 2t이 녹아 있는 물 100만t의 오염농도는 2/100만t로, 0.0002% 즉 2ppm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을 통해 수량을 200만t으로 늘리면, 오염농도는 2/200만t인 1ppm으로 절반으로 준다는 것이다. 박석휘 서울시립대 교수(환경공학)는 “수질을 개선하려면 오염물질 유입량을 줄이거나, 수량을 늘려야 한다”며 “오염원을 차단했는데도 수질개선이 안 됐다면 물을 늘려야 하고, 이는 홍수나 가뭄통제까지도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제1하수처리장에서 정화처리됐지만 거품이 이는 검은색 물이 지난 3월 초 영산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하수종말처리장 시설이 미비한 상태에서 4대강에 보까지 설치되면 물의 체류시간이 늘어 수질 오염이 심각해질 수 있다. 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하지만 수질 개선을 위해 물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큰 허점이 있다. 이상훈 수원대 교수(환경에너지공학)는 “정부 쪽 설명 중 4대강 사업 이후 물 그릇이 커진 뒤에도 오염 물질이 2t만 유입된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4대강 사업으로 하천에 보를 막은 뒤에도 저수지에 흘러드는 물은 이전과 똑같은 오염농도를 가진 하천수가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물 그릇에 담긴 수량이 200만t으로 2배 늘어났다면 오염물질의 양도 2배로 늘어나서 4t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 쪽 학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놓은 논리가 ‘희석론’이다. “상류에서 맑고 깨끗한 물을 흘려 보내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이다. 한강 상류를 예로 들면, 12개의 농업용 저수지의 둑을 높여 1000만t의 수량을 늘려 희석수로 흘려 보내면 하류의 보에 저장된 물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솔깃하게 다가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교수는 “농업용 저수지에 흘러드는 물도 결국 논밭·산림과 마을을 지나 모이는 물로, 4대강 사업 이전의 저수지 물과 수질이 다르다고 볼 수 없다”며 “보를 막아 악화된 수질을 희석시킬 수 있는 깨끗한 물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보 건설로 흐르는 물이 정체되면 수질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물 흐름(유속)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경기개발연구원 팔당물연구센터 송미영 박사팀이 2009년 7월에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후속 사업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남한강에서 3개의 보가 건설되면 유속이 초당 0.84m에서 0.24m로 4분의 1가량 줄어들고 확산계수(단위 시간에 한 물질이 다른 물질 속에 섞여 들어가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는 초당 1934㎡에서 327㎡로 떨어져 수질이 33% 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정부 쪽 전문가들은 “보 수문을 열고 닫을 수 있기 때문에 댐 조절을 통해 수질을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이 흘러갈 수 있는 가동보를 설치하면 오히려 퇴적토에 의한 오염문제 등이 최소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박 교수는 “가동보의 매뉴얼을 만들어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을 하기 때문에 수질 관리에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대론 쪽에선 수질 희석 효과보다 부영양화가 더 큰 문제를 불러온다고 반박한다. 보로 인해 강이 사실상 호수로 바뀌면 물속에서 질소·인 등이 쌓여 조류(식물성 플랑크톤)가 증식되면서 부영양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산가톨릭대 김좌관 교수는 2009년 7월 낙동강 본류에 보 10개가 설치되면 유속이 보 설치 이전보다 10배 이상 느려지고, 보에 물이 11~39일 동안 머물면서 녹조류 성장을 촉진한다는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김 교수는 “정부 주장대로 보 설치에 따른 유량 증가로 ‘수질 오염물질의 희석 효과’가 나타나지만, 물의 체류시간 증가로 ‘조류 성장률 증대 효과’가 더욱 강력해져 수질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석 효과를 나타내는 1일 희석률 평균값이 7.2%인 데 반해, 낙동강의 대표적인 두 가지 조류의 하루 성장률 평균값은 58.8%로 8.17배나 높다는 것이다.

더욱이 전국 393개 하수종말처리장에 부영양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을 걸러낼 시설을 추가로 설치하지 못할 경우 물이 썩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12년부터 하수처리장 총인 방류기준을 2.0ppm에서 0.2~0.5ppm으로 최대 10배 강화했지만, 자치단체에선 지방비를 투입해 하수종말처리장 총인처리시설을 고도화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성기 조선대 교수(환경공학과)는 “4대강 수질개선 사업비는 3조9000억원에 불과해 하수종말처리장 총인처리시설을 갖추는 데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정부의 수질개선 예측은 2030년까지 32조7000억원이 들어가야 할 환경부 수질보전계획을 2012년으로 앞당기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전혀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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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8.21  고은...외로운 짐승처럼 당신 뒤를 좇았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⑧ 

그처럼 술과 허무의 바다에
빠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황홀한 방랑을 참회한 그는
문학이란 밀실 속에 숨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한 마리 외로운 짐승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절망을 주체하지 못해 나도 내 몸을 어두운 밤 골목이나 노을 물든 강둑, 바람 부는 산기슭 어디에 마구 팽개쳐 버리고 싶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끝없이 술을 마셔대고 노래를 부르고 비틀거리며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습니다. 가난이 싫고, 세상이 싫고, 내가 싫고,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싫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고은이란 이름을 만난 것은.

그는 자신을 구름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그는 문둥이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죄 저지르고 하수도 맨홀을 열고 들어가 암흑과 악취에 지쳐서 죽고 싶었고, 카바레에서 어서 옵쇼 보이가 되고 싶었고, 넝마주이가 집게로 집어 가는 넝마가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구름처럼 한 세상을 떠돌거나,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이 참혹한 세상과 결별을 하거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벗어나 바람처럼 떠다니고 싶었습니다.

“내일 모레쯤 쓰러지면 / 귀여운 승냥이 새끼 / 내 살을 뜯어먹어라 // 오늘 개울물에 씻은 여윈 팔다리”

“미안하다 / 미안하다 //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먹는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중얼거리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그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저 6·25사변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죄악이다. 왜 나 같은 것도 태어나서 살고 있는가를 시골 지경리 3일장 장터에서 파는 20원짜리 허드레 순대국밥이라도 사먹으면서 알고 싶다. 그러다가 파장 장터의 쓰레기 더미에 내던져져서 쓰레기와 더불어 어디론가 실려 가버리고 싶다.”

이런 글을 읽고 며칠씩 술을 마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팽개쳐지고 싶었습니다. 수없는 밤을 자학하고 절망하다 고꾸라졌습니다.

“1975년 1월부터 1년 동안 소주 1천 병을 폭음했다. 이 계산은 소설가 이문구가 했다.” 이런 그의 약력을 들으며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고 하며 술을 마셔댔습니다. 문학의 치기가 문학 그 자체라고 생각하던 저는 퇴폐적 낭만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려다 일본 선원에게 구출되어 살아나거나, 음독을 기도하거나, 수면제 오십 알을 먹고 눈 덮인 정릉 골짜기에 쓰러졌다가 살아 나오기를 거듭하면서 허무주의의 바닷가를 들락거릴 때 저도 비릿한 바닷내음을 흘리며 그 주위를 떠돌았습니다. 허무주의가 문학 그 자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니 허무와 황음과 절망으로부터 문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은이란 이름이 쓰여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습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성 고은 엣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가난한 이를 위하여> <환멸을 위하여> <세속의 길> <역사와 더불어 비애와 더불어> <이름 지을 수 없는 나의 영가> 등등의 책들과 <피안감성> <해변의 운문집>에 실려 있는 시들을 읽었습니다.
 

내 당신을 처음 본 것은
당신이 목숨의 그림자 풀어 물에 던지며
물 끝 그 너머로 끝없이 떠나기만 하던
허무의 바닷가에서였습니다
나는 그때 움푹 패인 당신 발자국 주위를 떠돌던
비릿한 바닷내음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신이 먼지 두터운 세상 이 아수라의 한복판에
절망을 진흙처럼 매달고 어둠 속을 걸어갈 때
나도 내 얼굴 한 쪽의 그늘을 지우지 않은 채
당신의 뒤척이는 발소리 뒤를 몰래 따라 가곤 했습니다

- 졸시 <산>부분

그렇게 그의 뒤를 따라가던 어느 날. 저는 상당히 큰 혼란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1978년에 나온 <진실을 위하여>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 좀 더 까놓고 말한다면 오늘의 작가는 문학을 내던져버릴 줄 알아야 한다… 문학이 너무 문학적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정치가 문학이고 사회가 문학이다. 존재의 심연, 사물의 본질, 영원의 광명… 이런 것들이 무슨 잠꼬대란 말인가.

장미가 어떻고 국화가 어떻다는 말인가. 산의 놀이 어떻고 바다의 비밀이 어떻다는 말인가. 헤어진 임이 어떻다는 말인가. 천 년 동안 해 온 것을 아직도 그것만 한단 말인가.”

“ 이제 우리는 떠도는 자의 꿈을 벗어나서 머무는 자의 현실로부터 그 현실이 담고 있는 많은 절망과 희열을 통해서 진실을 계발해야 하는 것이다. 중생 없이 무슨 부처이며 무슨 보리이며 무슨 선의 선지식인가. 무슨 자비인가.(…) 나는 많은 지난날의 떠돌이 체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황홀한 방랑과 편력이 나 자신을 길러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추억을 현실에 반조했을 때 나는 깊은 참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황홀한 방랑과 편력이 길러낸 사람이 이제 그 방랑을 접겠다니? 참회하고 있다니?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의 시정신은 아직도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무는 자가 되기엔 절망이 컸고 방황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힘겨운 내 영혼으로는 사회와 정치와 현실의 크기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런 제게 그는 밀실에서 나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학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폐소에 들어가 숨어버리는 일을 가장 부도덕하다고 본다.” “그들에게 한 사람을 더 수용할 만한 정신의 면적도 갖춰져 있지 않은 극악한 소승주의나 이기주의만이 드러난다면 그런 현상은 사회와의 삶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부도덕한 상태에 바탕을 둔다.”

“문학은 저 혼자의 밀실에서 나오는 생산품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진실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모든 민중적 고난을 만나서 그 자신도 거기에 명예롭게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나야 한다. 겪어야 한다. 여러 사람의 진실을 자기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 달에 3만원 벌이도 못되는 영세근로자들의 아픔도 알아야 한다. 엄청난 건물들의 중심가를 번영의 상징이라고 보지 않고 폐허라고 믿는 것이 시인의 일인 것이다.”

저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며 곳곳에 밑줄을 긋고 의문부호를 찍고 그리고 코피를 흘렸습니다. 제가 그의 뒤를 따라온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의 허무와 허무에서 건져 올린 반짝이는 언어들이 좋았던 것입니다. 폐결핵을 앓는 그의 시적 자아와 곁을 지키고 앉아 있는 누님의 실크빛 연애가 좋았던 것입니다.

비록 “벌레 한 마리도 위로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소루쟁이 풀 한 포기 위로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이 세상을 돌아다 볼 때 / 가장 쓸쓸하여서 / 나는 이 세상을 떠나기 싫”( 고은 <눈물 한 방울> 중에서)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갈등하고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어떤 날은 괴로워 담뱃불로 팔뚝을 지지며 몸부림쳤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왼팔, 손목시계 밑에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처절한 심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해 후였습니다.
 

그렇게 거친 들판과 물살을 넘어
여기까지 당신을 따라왔습니다
크고 작은 언덕과 구릉도 함께 왔고
목이 갈라지도록 포효하던 짐승은 짐승대로
햇빛을 향해 달려가던 나무는 나무대로 당신 곁에
모였습니다. 저도 목마른 한 촉의 풀잎으로
당신의 골짜기 한 비탈에 몸을 내렸습니다.

- 졸시 <산>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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