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중반을 갓 넘긴 시인의  "세상은 툭하면 발길로 나를 걷어차곤 했다"라는 말은 왠지 공감이 간다. 나도 한때 왠지 모를 왜 세상은 나에게 이럴까?하는 식의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도 이제 30대 초반이 되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생각도 조금씩 행동도 조금씩 변하는 듯 하다.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변하지 말아야할 열정과 고민은 꼭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찌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뭐 나도 젊지만)은 너무 무사인일주의인 듯 하다. 모르기때무에 대들고 치고 받고 해야할 일도 그냥 그냥 뭐 좋은데로 넘어가는 듯하다. 나도 그러는 듯 하다. 도종환 시인의 젊은날 고독과 고민을 통해 나도 오늘 하루 내 젊은 20대 중반 부품 꿈을 안고 왔던 첫 발령 받은 때를 생각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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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8.27  세상은 툭하면 날 걷어찼고, 난 강가에 앉았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⑨ 

사범대학 졸업 뒤
시골 읍에서도 한참 걸리는
고등학교로 발령받았습니다
세상 외로움과 절망을
신부님이 달래줬지만, 그로 인해
더 시골로 쫓겨가야 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해 삼월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보은읍에서도 오구니재를 넘어 버스로 한 시간 가까이 가야 하고, 옥천읍을 나오려 해도 한 시간이 걸리는 옥천군 청산면 청산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스물네 살. 아직 문학청년인 젊은 나이에 고등학교 국어선생 노릇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루에 여섯 일곱 시간씩 계속되는 수업에 몸은 지치고, 마음은 어두운 골목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박두진의 시를 가르치다가 박두진 시인이 쓴 <바다의 영가>라는 시를 읽어줄 테니 들어보라고 해 놓고는 “아, 바다가 죽으면 가슴도 죽는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그만 울컥 눈물이 솟아 창밖을 쳐다볼 때도 있었습니다.

고3 학생들과는 불과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개중에는 한 살 아래인 학생도 있어서 하숙방으로 찾아와서는 “선생님 술이나 한잔하시지요?” 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동생 같은 녀석들한테 술 한잔을 몰래 사주기도 했는데, 소문이 학교로 흘러 들어가 곤란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혼자 술집에 들러 술 한잔하거나 소주병 들고 강변에 나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날은 한밤중에 깨곤 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문>이라는 시에서 “밤에 홀로 눈뜨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에 홀로 눈뜨는 건 괴로운 일이다/ 밤에 홀로 눈뜨는 건 위태한 일이다”라고 했는데 한밤중에 깨어 무섭고 괴롭고 위태한 불면의 날을 보내곤 했습니다.

제자들과의 관계는 미숙한 대로 그럭저럭 헤쳐 나가는데 문제는 교사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준비가 덜 된 채 학교에 나온 탓에 초임인데도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말도 가려 할 줄 몰랐습니다. 문학청년의 치기와 객기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술상을 엎어버릴 때도 있었고,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 포효하며 울다가, 옷을 진흙바닥에 팽개쳐버리고는 다음날 입고 갈 옷도 없고, 일어나지도 못해 출근을 하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떤 것이든 직업 자체는 모두가 자신에게는 까다롭고 불만스럽지 않을까 하고 숙고해 보라”고 했습니다. “더 큰 자유를 내세울 수 있는 직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의 내부가 크고 넓어서 진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사물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직위란 없다”고 했습니다. 더 위로가 된 것은 그다음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고독은 그런 속에서도 당신에게는 의지와 고향이 될 것이며 그 고독으로 해서 당신은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릴케의 이 말을 공책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 더 고독하게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박 신부님을 만난 것은 참 다행이었습니다. 진초록 어둠이 내리는 유월 저녁 퇴근길이었습니다. 박 신부님은 성당에서 학교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나는 학교에서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스쳐지나가던 신부님이 저에게 불쑥 한마디 말을 던지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사이였는데 신부님은 “절망하지 맙시다” 하는 말을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로 가셨습니다. 나는 방금 들은 말을 곱씹으며 검고 긴 사제복을 입고 걸어가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곤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처음 성당이라는 데를 들어가 보는지라 그냥 가기는 쑥스럽고 사홉들이 소주 큰 병을 사들고 가 사제관 신부님 방에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문학 철학 종교를 넘나들며 신부님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했다기보다 제가 지적인 허세와 오만함에 들떠 혼자 떠들어 대면 신부님은 대개 말없이 들어주시곤 하였습니다. 제가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가 얼마나 순수한 삶을 살고자 했던 시인인지 이야기하면, 신부님은 정치적 저항과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제가 고은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 신부님은 고은 시인이 최근에 쓴 시라고 하며 전단에 있는 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시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다 구사대 남자들이 던진 똥물을 뒤집어쓰고 처참하게 서 있는 사진 옆에 있었습니다. 
 
» 세상은 툭하면 날 걷어찼고, 난 강가에 앉았습니다. 그림 이철수 

저는 제 절망도 주체하지 못하여 헤매고 있었는데 신부님은 술에 취해 돌아가는 저에게 김지하의 시집 <황토> 복사본 또는 김지하의 옥중 양심선언문 이런 것들을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시국을 위해 단식을 하고 계셨고, 성당 마당에는 검은 지프차가 서 있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헤매는 양임을 명심하라. 목자가 아니다. 시인은 헤매는 동안에 가장 많은 일을 한다. 헤매라.” 저는 그런 최인훈의 소설 구절에 더 빠져 있던 때라 신부님이 주시는 팸플릿과 각종 자료들보다는 성당에서 빌려온 책 중에 나오는 <염소의 기도> 한 구절이 더 좋았습니다. “주님/ 제가 살고픈 대로 살게 놔두세요// 얼마 되지 않는 소탈한 자유와 황홀경/ 이름 모를 꽃들의 이상한 맛/ 그게 필요해요.”

우리에 갇힌 양보다 헤매는 양, 길들여지는 가축보다는 산기슭을 떠도는 염소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해 겨울 후배와 둘이 시화전을 하느라 문화원 화랑에 있다가 누가 와서 신문에 보니 인사발령이 났더라고 하는 바람에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를 옮기겠다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그런데 교감선생님은 자신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으니 교육청에 전화를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 나와 있던 다른 선생님들도 무슨 이유일까 하고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저는 제가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점이 있어서 그렇겠지 하고는 교육청에도 알아보지 않은 채 짐을 싸들고 더 작은 시골학교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박 신부님과 자주 만나는 것이 좌천의 원인이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안내면 소재지인 현리에서 중학교가 있는 인포리까지는 삼십분 이상을 걸어야 했습니다. 어둠이 뭉턱뭉턱 내려와 산 위에 턱턱 걸터앉는 모습을 보며 혼자 하염없이 걷는 날이 있었습니다. 혼자 소주병을 들고 장계리 강가에 앉아 어두워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는 강물에 빈 병을 던지곤 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십 리를 걸어 인포리에 도착했으나
마음을 누일 봉놋방은 없었다
오리를 더 걸어 강가에 이르렀으나
거기도 물소리뿐이었다
거친 붓자국이 선명한 하늘은 먹물빛이었다
귀퉁이에 남은 하늘색도 회색에 가려 희미했다
붓질을 한 이는 보이지 않고 먹물만 흘러내려
산허리를 덮었다 툭 툭 던져 놓은
육중한 고독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산자락 끝에
아주 작고 흐릿하게 나는 서 있었다
오는 동안 벌판에는 가등 하나 없었다
이십대 중반을 갓 넘긴 나이여서 나도
서툴기 짝이 없었으나
세상은 툭하면 발길로 나를 걷어차곤 했다

그때마다 이젠 끝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등불도 노새도 없이 넘어야 할 벼룻길만 앞에 있었다
안주 없는 찬 소주를 혼자 마시곤
빈 병을 강물에 던질 때면 강물이
잠깐 몇 방울의 눈길을 내 쪽으로 던져주곤 했다
오늘도 어둠이 내리는 광막한 하늘 아래
혼자 눅눅하게 젖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어디엔가 있으리라
홀로 찬 술을 마시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이 있으리라

입술이 팽팽하게 모여 건너야 할 강 쪽을 향해
마음보다 먼저 돌출해 있는 걸 자신도 모른 채
오래 강가에 앉아 있는 이 있으리라

- 졸시 <인포리> 전문 

첫 번째 직장 생활부터 시작된 어긋남, 좌천당하고 쫓겨나는 생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십칠 년간 교직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제 손으로 이동희망내신서를 써 보지 못한 채 떠돌고 쫓겨나게 되는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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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도시빈민들의 귀농현상에 관련한 글이 있어 스크랩한다. 혹자들은 귀농하면 느긋하게 노년을 즐기려, 자연을 벗삼아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을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도시에서의 도피처로 삼는 이들이 더 많은 듯 하다. 지리적인 직주분리 현상과도 관련된 내용이기도 하다. 지리학자의 글이지만 단순히 지리적이기보다는 학제적인 성격이 강한것 같다. 좀 내용이 길지만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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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0.8월(23호)  귀농한 도시 빈민들, 더 끔찍한 가난에 갇히다  

가티앵 엘리, 알랑 포플라르, 폴 바니에 - 지리학자 

몽펠리에에서 자동차로 45분쯤 떨어진 곳에 강주라는 도시가 있다. 에로 강 지류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구 4천 명의 시골 도시다. 몽펠리에 북쪽에 위치한 ‘꿈을 실현해낸 이 도시’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유로메드신과 아그로폴리스 기술단지 사이로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몽펠리에가 끝난다. 이때부터 포도밭과 랑그도크의 구릉지대를 지나는 직선도로가 펼쳐진다. 이윽고 세벤 초입에 이르면 직선도로는 구불구불한 시골길로 변한다. 강주는 일자리와 편의시설을 갖춘 몽펠리에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의외로 꾸준히 이주민이 늘고 있다. 1992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이들의 수는 어림잡아 1천 명에 달한다.

빚더미 해결 못해 시골행 선택

몽펠리에 시 외곽에 살다가 조기 퇴직한 베르나르와 크리스틴 부부(1)는 2008년 강주를 찾았다. 남자는 도시청소 용역회사 ‘니콜랭’에서 일했고, 여자는 지역 중학교에서 미화원으로 일했다. 퇴직 시기가 되자 이 부부의 소득은 급격히 줄었다. 이들은 퇴직 전에 받은 신용대출을 상환해야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빚더미에 앉아 늘어나는 가계지출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지방세 인상이 쐐기를 박았다. 이들은 결국 몽펠리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음은 모두 우연에 의해 일이 진행됐다. 우연히 시골에 저렴한 집 한 채를 구했다. 지방세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고, 몽펠리에에서 5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고 부부는 말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우연이란 필연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그저 이들이 필연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 부부나 혹은 이들과 비슷한 인생 역정의 예를 살펴보면, 농촌 인구가 20년 전부터 다시 증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도시민 이주 현상은 기존에 도시 외곽에만 제한돼 있던 데서 벗어나 이제는 이름 모를 시골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시골 도시의 4분의 3에서 인구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농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해석한다. 마침내 수십 년 소외의 역사에서 벗어나 ‘농민의 몰락’과 ‘향토의 종말’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2) 하지만 사회·지리학적 차원에서 동태 분석을 해보면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동안 귀촌은 중산층이나 상위층, 혹은 가족과 시골에 단독주택을 마련해 좀더 안락한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젊은 회사 중역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민층도 도시를 떠나 귀촌한다. 이에 따라 농촌의 사회학적 양상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농촌 인구의 60%는 일용직 노동자나 임금노동자가 차지한다.(3)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던 산업혁명 시기에는 소농민이나 장인이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요즘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특히 가장 빈곤한 가정(4))가 부동산 가격 인상을 견디다 못해 도시 밖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도시화의 부산물로 치부한 1970년대 도시 정책으로 인해, 이런 변화의 본질은 뒤로 묻혀버렸다. 그러나 오늘날 94개 도 중 90개 도에서 도시보다 시골의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농촌 세계의 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시골 빈곤 문제의 중심에는 신흥 빈곤층의 등장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느는 인구, ‘농촌의 부활’?

“이곳은 콜로라도의 축소판이다. 저 아래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정말이지 지상낙원이나 다름없다. 여름이면 저마다 이곳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고 실비가 설명했다. 그녀는 10년 전 직장을 잃고 파리를 떠나 처음 강주에 왔다. 다른 단기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여름휴가철 강주의 매력에 빠졌다. 사방을 둘러싼 산들이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에로강변에서는 기분 좋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시청 광장도 끝내준다. 광장에 즐비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오늘날 도시는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운 전원의 삶을 예찬하며 도시민을 유혹한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더라도 집세가 저렴하기 때문에, 전원생활은 전혀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퇴직 시기가 되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혹은 직장에서 쫓겨난 다음 강주에 새로이 보금자리를 튼다.

1970년대에 이르러, 환경이 새로운 정치 화두로 떠오르고 일부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우며 천편일률적인 도시생활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전원의 삶이 지닌 긍정적 가치를 새로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도시의 삶에 대한 비판이 자본주의와 만나 전원의 삶은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에 편입된다. 하지만 이런 ‘문화접변’(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해 새로운 문화 형식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역자) 현상은 부동산 개발업자나 심지어 ‘향토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지역의원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지역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5) 지역의 상업적 이용 현상(특히 지중해 연안 지역의 마케팅)이나 대도시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등장한 농촌 문화 붐(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된 친환경 제품 시장)이 신흥 빈곤층의 환상을 만들어냈고, 이 환상을 통해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사회·지리학적 유배 현상을 승화시켰다.

빈곤, 도시보다 시골이 심각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금세 저마다 불행한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고 실비는 말한다. 가을이 되면 세벤 지역 특유의 소나기와 폭우가 마시프 상트랄(프랑스 중남부 산지-역자)의 산줄기를 거세게 두드린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온대기후에 속해 있지만, 세벤은 의외로 겨울이 길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매년 9월이면 복지 상담자가 줄을 잇는다. 이들은 여름의 강주만 보고 1년 내내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캠핑촌으로 이주했다가, 가을의 악천후나 매서운 겨울에 실망한다”고 말했다.

강주에 차갑고 짙은 안개가 끼는 계절이 찾아오면 아파트로 이사온 새 입주민은 다시 한번 당황한다. 프랑스의 다른 농촌 지역처럼 강주의 집들은 모두 1949년 이전에 지어졌다. 구멍 뚫린 지붕, 방음이 되지 않는 창문, 옛날에 설치된 구식 전기 설비 등 집들이 대체로 노후하다. 세벤의 낡은 아파트는 열악하다.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있지만 집이 거의 폐가 수준”이라는 게 실비의 설명이다. 겨울이면 벽이나 높은 천장에서 스며나오는 습기 때문에 집이 거의 냉동고나 다름없다. 도무지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등유 탱크가 비거나, 전기세를 낼 형편이 안 되면 석유난로를 중심으로 생활 동선이 재편된다.

새 입주민들은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츰 소득이 주는 것을 경험한다. 쥐꼬리만 한 퇴직금이 월급을 대신하게 되고, 실업수당도 차츰 줄어든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월 460유로의 ‘능동적 연대소득’(6)(RSA·실업수당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재취업하는 실업자에게 그 차액만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역자)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된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헤어나기 힘든 늪이다. 저렴한 집세에 끌려 이주했다가는 일자리가 많은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재취업이 어려워진다. 도시는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에 의해 경제활동이 다각화·집중화되고 있지만, 농촌의 일자리는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을뿐더러, 다양성도 떨어지고 희귀하기까지 하다.

그림 같은 풍광, 여름에만 좋았다

안느는 병에 걸려 직장을 그만둔 뒤, 딸을 데리고 몽펠리에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비싼 집세 때문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처음에는 몽펠리에에서 15km, 그 다음은 20km…, 그러다 강주를 발견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일단 일자리가 널려 있는 큰 지방도시에서 멀어지자 실업과 잡업,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일자리도 없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그녀가 털어놓았다. 안느는 현재 한 공립 초등학교에 시간제 비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월급 810유로에 빚까지 진 그녀는 툭하면 빈민무료식당(Resto du Coeur)이나 푸드뱅크(식품을 기탁받아 이를 소외 계층에 지원하는 식품 지원 복지 서비스-역자)를 전전하기 일쑤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큰 도시 근처로 이사해 다시 일자리를 얻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폐가 다름없는 주택, 말라버린 돈줄

강주에서는 경제활동인구의 15%가 실업자이고(강주가 속한 에로도가 13.7%, 프랑스 전체는 10%),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이 시간제로 일한다.(7) 처음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합성섬유가 등장하더니 그다음에는 아시아 국가의 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예전에 황금기를 구가하던 지역 섬유산업은 퇴락의 길을 걸었다. 한창 때 강주의 방적회사들은 세벤 지방의 양잠장에서 나오는 명주실로 전세계로 수출될 고급 스타킹을 생산했다. 하지만 요즘 이곳 일자리의 80%는 섬유산업이 아닌, 여름철 관광 숙박산업이다.

점점 대도시를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반대로 일자리는 주요 도시에 집중되고 있다. 사람과 일자리의 분포 지역이 서로 다르다 보니, 매일 거주지에서 직장까지 원거리로 출퇴근할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 농촌 지역은 빈곤의 무게를 더욱 가중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30km나 떨어진 곳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오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기름값을 추가로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차는 낡아서 덜컥 고장이라도 나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대중교통 시설이 열악한 이 지역 주민에게 도의회 버스는 자가용을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시간은 금이요, 최대한 활동 거리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최대 미덕이라는 기치 아래, 지배층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공간을 구조화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은 사회·지리적 차원에서 항상 임금노동자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구축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성을 요구하는 것은 빈곤과 소외를 더욱 부추기는 촉진제와 같다.(8) 지리학자 장피에르 오르페이유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이동성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는 빈부 격차를 판가름하는 요소다. 나아가 빈과 부의 대물림까지 결정한다.”(9)

일자리는 대도시에만 몰려 있는 법

계급 추락의 마지막 단계는 귀촌이다. 사실 농촌으로 이주하면 적은 돈으로도 더 잘 살아야 맞다. 하지만 새로운 생활공간에서 비롯되는 자원을 이용해, 생계(어떤 이들은 ‘항전’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전략을 찾아내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시장을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텃밭을 가꾸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이 한 푼도 없는 이들에게 농촌은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사회적 자본, 즉 경제력과 권력이 세대 간에 대물림되는 것을 의미-역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줄 기적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만성 실업자가 되어 ‘능동적 연대소득’으로 연명하며 빈곤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이 지역 사회복지 담당자 알랭 샤펠은 “빈곤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력을 더욱 보강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주에 배속된 복지사는 모두 3명이다. 10년 전만 해도 1명이면 족했다. 자크 리고 강주시장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강주의 푸드뱅크가 지원하는 사람이 족히 300명이나 된다. 하지만 빈곤층이 늘면서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점점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당국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리고 시장은 “5년 전, 빈곤 가정에 세를 줄 요량으로 낡은 주택을 매입하는 투자자가 대거 등장했다”고 말한다. 대도시 빈민가에서처럼 이곳에도 세입자를 등쳐먹는 악덕 임대인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낡은 주택을 전혀 손보지 않은 채 저렴한 주택 수요에만 의지해, 형언할 수 없이 열악한 집을 빌려주고 세를 받아먹는다. 저렴한 집세는 이곳으로 극빈층을 유혹하고 집중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차츰 빈민시장이 형성됐다.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집을 임대하며 돈을 버는 투자자가 다가 아니었다. 항상 최적의 입지 지역을 찾아다니는 하드디스카운트 스토어도 짭짤한 사업거리를 찾아나섰다. 할인전문점 ‘리들’은 낡은 옛 협동 양조장(Cave Cooperative·와인 생산자들이 연합해 만든 회사 및 조합-역자) 건물에 새 매장을 오픈했다. 다른 두 슈퍼마켓 할인점 ‘알디’와 ‘리더 프라이스’도 현재 점포 부지를 물색 중이다.

시골로 확대되는 구호단체 활동

빈곤층이 한곳에 집중되는 현상은 이곳에 많은 구호단체가 몰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1만 명이 사는 작은 시골 도시에 푸드뱅크에서 ‘대중구호’, ‘가톨릭 구호’, ‘구세군’, ‘마음의 식당’(빈민 무료 식당-역자)까지 극빈층을 도우러 오는 단체가 줄을 잇는다. ‘대중구호’ 지역 담당자 나탈리 톨렐은 연간 350명, 겨울철에는 550명 이상을 상대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임금자, 퇴직자, 노숙자, 가족이 해체된 젊은이 등 대상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도시를 떠났지만, 농촌에서 도로 가난과 재회한 이들이다. 도시 탈출 현상이 심화되자 ‘대중구호’는 주변의 작은 시골 도시까지 구호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여러 작은 시골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지만, 베다리외시에도 새로 지역 사무소를 개설하기로 결정했다.

도시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흔히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시골에서의 삶이 일종의 사회적 목회(Social Ministry·교회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목회 활동-역자)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농촌 지역은 사회적 차원에서 불균형한 양상을 보인다. 일단 도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중산층이나 상위층이 주를 이루는 몇몇 도시는 비싼 토지를 무기로 내세우며 서민층이 자기네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막고 있다.(10)

각각의 작은 시골 도시 차원에서도 똑같은 사회계급 분리 논리가 작용한다. 강주에서도 도시의 전형인 공간 분리, 즉 폐쇄형 주택 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돈 가진 자에게 자기들끼리의 안전한 삶을 제안한다.

이로 인해 이제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구별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농촌 이주민은 여전히 도시와 시골은 엄연히 다르다고 느낀다. 단지 그 차이가 역전됐을 뿐이다. 이제 이들에게 잃어버린 낙원은 전원생활의 진정성이 아닌 도시의 불빛이다. 가령 이들은 “도시생활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는데, 모두가 알고 지내며 자유롭게 담소를 즐기곤 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제 도시는 정겨운 마을이 되고, 반대로 시골 마을은 ‘게토’로 그려진다. ‘게토’는 시골 마을 사회복지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다. 이들은 예전에 일하던 도시 외곽 빈민가와 지금 일하고 있는 시골 마을이 별반 차이 없다고 여긴다.

도시는 그들의 귀환을 거부한다

귀촌한 도시민 중엔 도시의 상업화된 오락 공간과 인위적으로 연출된 활기의 공간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겐 대형 할인점 ‘오샹’이 있었다. 몽펠리에에서의 생활은 아주 좋았다”고 말한다. 앙티곤 지구와 대형 상업센터 ‘폴리곤’, 그리고 복합센터·프랜차이즈 레스토랑·대형할인점 등이 즐비한 오디세움 신흥지구까지 연극무대 연출에 가까운 도시 개발이 비정상적인 환상을 낳았다.

몽펠리에는 다른 도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프랑스에서 몽펠리에만큼 시 단위로 대대적인 개발 정책이 진행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직 시장이자 현재 몽펠리에 도시공동체 회장으로 있는 조르주 프레시는 도시 유토피아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고대 격언을 포스트모던적으로 짜깁기한 말로 ‘지중해 거점 도시’라는 신화를 현실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랑그도크 지역의 이 도시는 시장 자유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신자유주의적 시행정의 모태가 되었다.(11) 몽펠리에의 실험적인 정책은 이후 다른 지역 의원들에게도 전범이 되었다. 이제 의원의 가치는 얼마만큼 시의 상업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첨단기술 기업을 유치하느냐에 결정된다.

에로 지역으로 이주하는 인구는 매달 1천 명에 달한다. 가히 기록적인 이주율이다. 빈곤층은 도시 중산층을 위해 대형 세탁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몽펠리에에서 내몰려 먼 시골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현대판 아테네’와 다름없는 몽펠리에에서는 소수의 자유 시민에게만 사회적 장소를 소유하고 누릴 권리가 주어진다. 도시는 최초의 단계이자, 유형을 예비하는 이행기다.

글•가티앵 엘리 Gatien Elie, 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폴 바니에 Paul Vannier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이 이름은 가명이다.
(2) 각각 지리학자 베르나르 케제르, 사회학자 앙리 망드라, 역사학자 으젠 베베르가 저술한 책 이름이다.
(3) 크리스토프 귈리, 크리스토프 누아이에, <프랑스 신사회 격차 지형도>, 오트르망출판사, 파리, p.38, 2006.
(4) 프랑스에서 빈곤선(Poverty Line)은 1인의 경우 757~908유로로 다양하다. 이 정의에 따르면, 420만~800만 명이 빈곤계층에 속한다.
(5) 브누아 메로냉, <지역 마케팅>, 뷔베르, 파리, 2009.
(6) 자녀가 없는 개인이 받는 금액이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690.14유로를 받는다.
(7) 2009년 말. www.insee.fr 참조.
(8) 뱅상 두메롱, ‘이동의 자유 위해 주거권을 약탈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4월.
(9) <교통, 빈곤, 소외: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이동성을 갖추라>, 로브출판사, 라 투르데그, 2004.
(10) 이 도의 ‘작은 스위스’로 불리는 이웃한 카즈비엘 시의 경우, 개량 토지 가격이 ㎡당 70유로다. 토지이용계획상에 각 필지를 1천㎡ 이상으로 잡아, 저소득층의 접근을 막고 있다.
(11) ‘빛바랜 개혁, 불타는 디트로이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4월.
(12) 앙리 르페브르는 저서 <도시권>(에코노미카 앙드로포스·파리·2009)에서 현대 도시를 고대 아테네 도시와 비교했는데, 이 미학적 모델을 조르주 프레시가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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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상봉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진정성과 현실참여 의지도 있지만, 글의 명쾌함과 시원함에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3호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내 뱉었다. 시원하다. 정말 시원하다. 군더기가 없다.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 난 교사로서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순간 '낡은 전교조와 이별하라'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언젠가 이와 관련된 글을 하나 쓰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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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 8월(23호)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 

한때 나는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는 옛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아니 저분들이 왜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을 택해 정치를 할까’ 하고 철없이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이른바 진보정당이라 자처하는 정당에 몸을 두고 정치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들이 왜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굳이 진보정당에 자리를 잡고 정치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진보정치와 진보정당 건설을 입에 올리는 정치인들에게 니체가 기독교인들에게 물었듯이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아직도 진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진보는 죽었다! 하지만 관성은 무서운 것이어서 사람들은 진보의 사망을 믿지도 않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오해는 계속되고 우리의 선량한 열정은 부질없이 낭비된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유럽 진보정당의 중요한 대의는 자본주의의 극복과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이었다. 노동자로 사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 존재 방식이 된 우리 시대에, 노동계급을 자본의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럽의 진보정당은 바로 그 대의를 위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100년을 싸워왔다. 비록 처음의 혁명적 열정이 세월 속에 식고, 하나였던 대열도 여럿으로 갈라졌으나, 지난 세기 사회주의에 기반한 유럽 좌파 진보정당 운동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보편적이며 역동적인 정치적 운동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깃발을 들고 시작된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는 이제 끝났다. 오늘날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대의는 아무도 믿지 않는 구두선이 된 지 오래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자본주의를 폐지하더라도 경제는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말하기는 했으나 사회주의 경제가 어떤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예들은 사회주의적 경제로 통하는 길을 생산수단의 국유화에서 찾아냈다. 하지만 생산수단이 국유화된다 해서 자본주의 경제가 전혀 다른 종류의 경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레닌 이후 공산권 국가가 채택한 ‘국가 관리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수십 년간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뒤 오늘날 중국처럼 공산주의를 내걸고 있는 국가조차 경제에서는 자본주의국가와 다름없이 되었다. 공산국가의 상황이 그렇다면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초기의 열정은 주요 대기업의 국유화와 사회복지 확대로 대치되었다. 하지만 몇몇 대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데 무슨 대단한 도움이 되겠는가? 그리하여 오늘날 서구의 사회주의 정당이란 한편으론 자본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다른 한편으론 보편적인 사회복지 체제를 추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에 군대를 보낸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 사회주의 진보정당의 대의였다면, 그런 진보정당은 이제 죽었다.

박근혜도 외치는 ‘복지사회’

허탈한 일 아닌가? 우리는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제대로 싸움을 시작해보지도 못했는데, 바깥세상에서는 그렇게 싸움이 끝나버렸다. 지난 시절 우리에겐 언제나 자본주의 타도보다 더 절박한 정치적 과제가 있었다. 식민지 시대, 우리에겐 민족의 독립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였다. 서양의 사회주의 진보정당이 민족주의를 퇴행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고 있을 때, 이 땅의 진보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눈물로 껴안았다. 그 역사는 해방되었다고 해도 끝나지 않았다. 보수 우익이 외세에 기생하는 매국노들인 나라, 전직 국방장관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이 물구나무 선 나라에서 민족주의는 어쩔 수 없이 진보의 몫이었다. 그뿐인가?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고착된 독재는 다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제를 진보의 몫으로 맡겼다. 게다가 그 독재 권력이 지역 차별과 맞물리면서 급기야 호남과 영남을 나누는 지역적 경계를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경계선으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도대체 이 땅에서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수정당이 해야 할 일까지 진보정당에 맡기고 나면,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땅에서 진보정당이 겪는 특별한 곤경은 여기서 비롯된다.

자본주의에 둔감해진 진보정당

좀더 절박한 현실적 과제에 떠밀려 본래적인 진보정당의 과제인 반자본주의 투쟁은 늘 나중으로 밀려나 한 번도 진보 정치의 중심적 의제가 된 적이 없으므로, 대중의 진보적 정치 의식 역시 고작해야 독재 타도를 넘지 못한다. 보수든 진보든 정당정치는 대중의 의식 수준과 분리될 수 없는데,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유권자가 자본주의의 극복을 꿈꾸지 않으니 그들에게 자본주의를 타도하자고 아무리 설득한들 반향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이것이 진보 운동가나 정치인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으로 부패시킨다는 데 있다. 한때는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도 하나둘 지쳐 더러는 한나라당으로, 더러는 민주당으로 흩어진다. 여전히 진보정당의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자본주의 극복 같은 것은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소박하게 복지국가라도 된다면 감지덕지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그것을 새로운 진보의 깃발로 삼으려 한다.

누가 복지국가를 싫어하겠는가? 박근혜 의원조차 복지국가를 좋아한다. 이는 복지국가 건설이 우리 시대의 새로이 등장한 보편적 시대정신임을 증명해주지만, 동시에 그것으로는 진보정당을 보수정당과 구별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독재 타도가 아무리 절박한 과제라 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궁극적 존재 이유가 될 수 없듯이, 복지국가가 아무리 바람직한 과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서양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그럭저럭 적응해 살기로 한 까닭은 그들이 그 괴물을 나름대로 길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 괴물과 그토록 오래 싸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괴물을 그 정도라도 길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 땅에서는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정당이라 자처하는 어떤 정당도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이 없었으므로, 자본가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지극히 역설적이게도 지난 10여 년 이른바 민주 정부 아래서 나라는 아예 기업을 위한, 기업에 의한, 기업의 나라가 되었다. 기업은 가장 독재적인 조직이다. 그리하여 국가가 전반적으로 기업에 동화된 ‘기업국가’로 전락하면 반드시 시민의 자유가 근본에서 위협받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이명박 정부의 독재적 행태는 우리가 우연히 대통령 한 사람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기업화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재벌 기업 또는 재벌 가문의 이윤 추구를 위한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말했듯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CEO)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재벌 기업의 CEO에게 민주적인 기업 운영을 바랄 수 있는가? 굳이 한국이 아니라도 현재의 자본주의 기업지배구조에서 모든 CEO는 기업의 독재자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주식회사가 가장 봉건적인 가족 지배 아래 있다. 원래 자본주의 기업의 역사에서 주식회사란 가족  경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출현한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주식회사가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주식을 가진 재벌 가문에 의해 완벽하게 사유화되어 있다. 또 그런 재벌 기업에 의해 국가기구가 포위되고 장악된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민주주의의 퇴행은 그런 국가 기업화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정부 권력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모두를 위한 공화국이 아닌 사적 이익 추구의 도구로 만드는 한국의 재벌 기업 체제를 해체할 궁리를 해야 한다. 

재벌 해체 없는 반신자유주의?

하지만 이 나라의 야당들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책임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듯이 ‘반MB’를 부르짖는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야 어차피 한나라당과 똑같은 ‘FTA 정당’이요 재벌당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정당조차 반MB 전선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반MB뿐만 아니라 반신자유주의를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와의 투쟁은 그 자체로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일 뿐 결코 구체적인 적과의 현실적 대립이 아니다. 마르크스 이래 사회과학은 언제나 주체 없는 구조에 대해 말해왔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과학의 길이라는 듯이. 하지만 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인간의 일인 한에서, 그것의 구조는 언제나 주체성의 구조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주체,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절박한 과제다. 하지만 그 주체가 누구인가? 재벌 가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체성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주체이고 만 사람이 객체인 ‘홀로주체성’이다. 신자유주의를 해체하려면 재벌 기업의 홀로주체성을 해체해야 한다.

합종연횡의 몽상에서 벗어나야

기업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처럼 폴리스가 되면 안 될 까닭이 무엇인가?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도 노동자가 경영권을 가지면 기업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은 없다. 국가의 주권이 시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자를 노동자가 선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기업의 전문경영인이, 주주가 아니라 노동자가 책임을 지는 체제가 될 때, 비로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노동의 비정규직화와 사회계층의 양극화,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파괴를 극복할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조차 재벌 해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앞으로 우리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한국의 봉건적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원없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이 땅의 민중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한국의 재벌 체제를 해체하고,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퇴치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할 것이다. 진보정당이 살아 있다면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자칭 진보정당들은 내심으론 자본주의 극복도, 재벌 해체도 포기했으니 주검에 지나지 않는다. 뜻이 죽었으니, 진보정당이 홀로 설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앞으로는 진보정당의 간판을 내걸고, 뒤로는 저보다 오른쪽에 있는 정당에 빌붙는 것이 진보정당의 습속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반MB 어쩌고 하면서 민주당과 동거하고, 진보신당은 진보 대통합을 핑계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에 추파를 보낸다. 그러면서 합치면 국민이 감동할 것이라 몽상한다. 지금이 1987년인가? 만약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뛰쳐나와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 등과 동서화합과 4대강 중단, 그리고 남북통일과 복지국가 건설을 내걸고 합친다면 나도 감동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노당이 합치거나, 민노당 또는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이 합치는 것이 무슨 감동을 주는가? 당신 같으면 죽은 남편에게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늙은 과부와 야심만만한 젊은 총각의 결혼에 감동하겠는가? 살을 섞어도 어차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자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진보는 죽었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지금 진보정당들의 가장 치명적인 허위의식이 생겨난다. 낡은 것이 죽고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운행이니, 죽은 것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보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새로운 진보의 역사를 바란다면,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먼저 낡은 진보의 역사와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 언제나 생명의 씨앗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러나 나 자신 속에 새로운 세계가 숨어 있음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새로운 시대의 씨앗이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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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달의 저서로 읽고 있는 책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가 있다. 얼마 전부터 읽다가 지금은 역시나 다른 책을 읽고 있다. 이사를 하는 바람에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ㅠ.ㅠ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우리들은 흔히 민주주의, 민주주의적인 국가하면 미국을 떠오른다. 하지만 2000년 엘고어와 조시 W.부시의 선거에서 나타나듯이 도대체 대통령 선거를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난 궁금했다. 이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격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면서 미국 헌법을 읽어 보았고 상원과 하원의원 선출방법 등을 조금씩 알게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생각으로는 이런 체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과연 민주주의적일까하는 의문만이 남는다. 뭐 아직 더 책을 읽어봐야 겠지만. 신간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나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모두 이런 나의 궁금증, 미국의 헌정체제는 과연 민주적인가?하는 의문에서 출발된 결과물들일 것이다.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는 아직 책도 없고 읽어보지 않았지만 분량도 적고 상대적으로 쉬 읽힐듯 하지만,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는 제목에서 풍기듯이 읽기가 녹록치 않다. 그래도 한번 일독한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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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북 2010.9.3  민주주의는 '이성' 아닌 '열정'에서 나온다 

1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김순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민주주의 이론 분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학자로 평가되는 로버트 달이 91세의 나이에 저술한 책으로, 거의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민주주의 이론과 사상을 집약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2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달의 민주주의 이론 속에서 이 책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가 마지막 책의 주제를 '정치적 평등'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지향점이 책의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달은 민주주의 이론 분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그 한계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적 입장이 시간이 갈수록 기존 체제에 대해 비판적이고 개혁적으로 변화되어 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에서, 달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더 심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달은 이 책에서 정치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더 절박하게는 정치적 불평등의 확대를 막고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대기업의 영향력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시민 개개인의 의식과 문화에 스며들어 만들어낸 소비주의 문화를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시민권의 문화를 역설하고 있다.

달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달은 시장 경제가 탈중앙 집중화된 결정을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중앙 집중화된 국가 계획 경제 체제보다 민주주의와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가져오는 정치적 불평등 효과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고, 이 점에서 그는 대기업이 평등의 원리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갖고 있다.

민주적 가치와 양립하는 기업의 소유 및 운영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젊은 시절부터 달이 평생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달은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자본주의 현실 밖에서 문제를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시장 경제 내지 시장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이자 개혁자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다.

3
 
▲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달은 정치적 평등을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루소식의 민주주의나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집회 민주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시민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는 급진적 참여 민주주의자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다.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로 달의 관심은 훨씬 현실적이다.

"어떻게 하면 큰 규모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를 확장하면서도 여전히 소규모의 데모스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생 나를 매료시킨 문제였다."

달은 일련의 대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대표의 선출, 자유롭고 공정한 주기적 선거, 표현의 자유, 대안적인 정보 원천, 결사의 자유, 모든 데모스의 구성원을 포괄하는 보통선거권-를 통해 정치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달은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그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이를 향해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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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달의 학문적 입장의 연장선에서 볼 때 이 책은 그의 연구의 총괄이자 정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달은 자신이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로 설정한 정치적 평등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다.

왜 정치적 평등이 요구되는가,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동시에 경험적으로 실현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이며, 반대로 정치적 평등을 제약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런 제약 요인들은 향후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달은, 정치적 평등이 도덕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판단해 볼 때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 내지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논증한다. 또 지난 18세기 이래 인류가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향해 진전해온 성취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정치적 평등이 실현 가능한 목표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달은 결코 민주주의의 미래를 막연히 낙관하거나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진전할 것이라는 어떤 결정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달은 현대 사회가 정치적 평등을 가로막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강력한 장애물-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비롯한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시간의 제약, 정치 체제의 규모, 시장 경제의 위세, 비민주적인 국제 체제, 테러리즘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불평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미래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려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러한 논의 중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사람들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이다. 달이 이 질문을 중요시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는 행위가 인간이 가진 어떤 기본적인 본성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나 이상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은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에는 어떤 기본적인 한계가 있고, 그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조차 정치적 평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정치적 평등이란 결코 완전히 달성될 수는 없는 하나의 이상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정치적 평등을 향해, 민주주의를 향해 커다란 진전을 이룩해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달은 이러한 놀라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평등을 지지하고 이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인간의 행동을 추동하는 인간의 어떤 근본적인 특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달의 기존 연구를 뛰어넘는, 그의 마지막 저작에서 새로이 개척된 연구 영역으로서, 가히 이 책의 핵심이자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도록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 달은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정서나 감성 또는 열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어떤 숭고한 감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혐오, 질투심, 시기 등과 같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동료 인간들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그런 추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달은 이러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의나 공정함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힘으로서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임마누엘 칸트를 비판하면서, 감정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이비드 흄의 이론을 끌어 온다. 주지하듯이 흄은 영국 경험론을 완성한 철학자로서, 인간의 구체적 경험을 뛰어넘는 어떤 초월적·선험적 능력으로서의 이성의 힘을 부정한다. 흄에 의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목표나 윤리적 목표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열정에 의해 추동된다.

결국 흄의 논의를 근거로 하여 감정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근본적 특성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의 이러한 논의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향한 보통 사람들의 지혜와 실천을 중시해 온 그의 민주주의 이론에 하나의 완결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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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이 갖는 의미는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이론과 대비해 보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사적·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므로 개인의 자유의 영역을-특히 국가의 간섭으로부터-지키는 것이 우선시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 평등 달리 표현하면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로서는 부차적인 관심사가 된다. 그것은 공적 영역에 관심을 갖는 정치적 인간-또는 정치 엘리트-이 주로 관여하는 영역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공화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적 영역에만 치중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억누르면서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헌신하려는 '시민적 덕성'을 키우고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의 논의는 이러한 주장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달에 의하면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본성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며 특별히 어떤 시민적 덕성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과 열정 등 평범한 시민 모두가 갖는 인간의 어떤 특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이 결론 부분에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을 위한 시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어떤 규범적 차원의 요구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달은 결론에서, 인간은 소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행복이나 복지를 위해 정치에 개입하려는 또 다른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소비주의 문화'가 전자에서 연유한다면, '시민권의 문화'는 후자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권의 문화가 소비주의 문화보다 우위에 서게 될 때 정치적 평등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 짧은 한권의 책은, 평생 보통 시민들의 현실적 조건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를 추구해온 달의 정치적 이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박찬표 목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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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씨의 신간이다. 뭐 이런류 자신의 독서편력을 엮은 책들이 요즘 많이 나오는 듯 하다. 생태 운동가 최성각씨도 비슷한 류의 책인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를 얼마전에 출간했다. 뭐 내 개인적으로는 책의 디자인이나 그 면면이 최성각씨의 책이 더 구미를 당기기는 하지만, 장정일씨의 독서편력도 궁금하긴 하다. 글 기사 내용중에 장정일씨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은 다음 구입하고 곁에 둘 책을 선택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검증의 절차를 거쳐야만 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읽어보고 겪어본 다음에야. 하지만 난 정반대인 듯 하다. 난 느낌으로 직관으로 책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지금까지 거의 틀린적이 없다.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뭐 얼마전에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고'싶은 것이 아니다. 느낌으로, 직관으로 내 곁에 있어야 할 내가 읽어야 할 책이 뭔지를 알 수 있다. 읽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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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9.4  장정일이 인연맺은 책 80권 담아 

소설가 장정일씨의 독서 습관이 참 독특하다. 그는 우선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빌린 책을 읽다 너무 아까운 좋은 책을 보게 되면, 필히 곁에 두어야 할 책을 뒤늦게 산다. 이런 검증을 거치지 않고 산 책 가운데는 읽은 뒤 버리는 것도 많다. 그는 버릴 책은 아무 공중전화 부스의 전화기 위에 놓는 방법으로 버린다고 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제목은 그의 이런 독서 습관에서 따왔다. 빌리고 사고 버리면서 인연을 맺은 책 80여권이 담겨 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건간에 책들은 나름대로 문제를 던지고, 지혜를 준다. 우선 책을 읽는 방식에 관한 책들은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가령 그는 “300쪽짜리 책을 10여분 만에 읽을 수 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류의 속독술을 “사고의 숙성을 본질로 하는 ‘책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비판한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하게 한다. 지은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 대통령이 읽은 책의 제목을 써놓지 않았고 존경하는 스승도 거론하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이런 점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낸” 이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성격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이 밖에도 역사문제를 서술한 책 속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발견하거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을 통해 나 자신을 살펴보기도 한다. 독자들이라면 이런저런 책을 소개한 이 책을 통해 내가 궁금해하던 책이 빌릴 책인지, 살 책인지, 아니면 버릴 책인지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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