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벽에 부닥쳤을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죠.' 

한겨레신문 2010.12.4 "문학은 시대현실을 어떻게 뚫고 나왔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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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이지 않은 글이지만, 지리적인 글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우리들이 얻는 이득은 정말로 많다. '시간거리'의 단축으로 우리들은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그로인해 우리들이 잃은 것들은 무엇일까? '추억', '낭만' 뭐 이런걸까? 시간이 더 중요할까 '추억'과 '낭만'이 더 중요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 상황마다. 그러니 그 두가지 모두다 필요한 것이다. 필요할때 마다 접근할수 있게, 그러나 현실은 모두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씁쓸할 따름이다.  

세상이 깔끔하고,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서비스를 해주는 고급 술집에 가고 싶어하고 좋아해도 난 소주 반병을 1000원에 팔고 고기 한점 없는 국밥을 2500원에 파는 인사동 허름한 골목길 국밥집과(지금 있나 모르겠다), 혼자 가도 전혀 부담없는 지저분한 것 같지만 냄새 하나 안나는 반찬이라고는 김치 두가지와 새우젓이 다인 학교 근처 돼지국밥집이 더 좋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내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딘가에 나같은 사람도 있겠지 한다. 그러니 제발 그런 가게, 장소는 최소한 몇 군데 남아 있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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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12.7  시간에 내주는 것들 
  
케이티엑스(KTX)에 타고 눈 좀 붙이겠다고 생각했다간 자칫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고 허둥대는 이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비몽사몽 충혈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면서도 이게 꿈은 아니겠지, 란 표정이었다. 새로 탄 손님이 제자리를 찾느라 깨운 뒤에야 아차차, 하는 이들도 종종 보았다. 한번은 서울 유학하는 딸아이를 배웅하러 기차에 올라탄 어머니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꼼짝없이 한 정거장을 가기도 했다.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컴퓨터로 작동되기 때문에 한번 닫힌 문은 열기 어렵다고 누군가 알은체를 했다. 케이티엑스에서 한 정거장 구간은 꽤 먼 거리이다. 손지갑만 달랑 들고 슬리퍼를 끌고 온 어머니는 내내 얼떨떨해 보였다. 케이티엑스에서도 이런 추억거리 하나쯤은 만들 수 있다.  

케이티엑스를 타면 객차 안에서 잡담은 삼가고 휴대전화 벨소리도 진동으로 해주십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대부분 출장중인 회사원이 많다. 말끔하게 복장을 갖춰 입었다. 창가 쪽에 앉아 통로로 나가느라 양해를 구할 때 빼고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서울~부산 거리라고 해야 이제 두 시간 안팎으로 줄어들었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노트북을 켜놓고 밀린 일을 하거나 휴대전화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이것이 케이티엑스 분위기이다.

여덟 살, 외가로 가는 장항선 완행열차를 탔던 때가 떠오른다.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그땐 네 시간도 더 걸려 갔다. 자도 자도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에서 깰 때마다 곁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기차 안의 풍경도 바뀌어 있었다. 객차 양쪽에 길게 한 줄 의자가 놓인 기차였다. 앉을 자리 없어도 할머니들은 엉덩이부터 디밀었다. 그때마다 요상하게 자리가 났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이들이 우르르 올라타면 온양온천역이었다. 바다가 가까워 오면 촌부들이 조개나 생선이 가득 든 고무 다라이를 들고 탔다. 다라이 옆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이들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말을 붙였다. 어디서 와유? 어디까지 가유? 처음 시작은 늘 이랬다. 그 시절 기차는 칙칙폭폭 달렸다. 긴 시간 함께 있어야 했으니 무료함을 달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동죽 맛을 쇠고기가 당하기나 하느냐고 알려준 것도 기차 안에서 만난 할머니였다.

기차를 타고 외가에도 가고 지방 근무 중인 아버지에게도 갔다. 기차 안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술이 잔뜩 취해 안주머니에서 돈다발을 꺼내 흔들던 아저씨도 있었다. 내게 삶은 달걀을 사주었다. 무엇을 판 돈이었을까, 누군가 돈을 훔쳐갈까봐 아저씨가 졸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도둑을 지켰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이면 케이티엑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정시에 고객님들을 모실 수 있어 저희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기차 이용료가 비싼 만큼 시간이 급한 이들이 이용할 테고 당연히 십여분 연착에도 불평들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시원스레 앞으로 달려도 마땅찮을 판에 뒤로 두 정거장이나 후진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시간관념을 심어준 것도 바로 철도이다. 철도 역사 중앙엔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거나 주위엔 늘 시계탑이 있었다. 하루 세 끼 밥 먹는 때로 시간을 나누던 우리가 기차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옛날 외가의 안방 문가에도 자디잔 글자로 철도 출발과 도착 시간이 적힌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리우면서도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고속열차를 탄다. 추억도 사람도 경치도 포기하고 얻는 것은 시간이다.  

잠깐 존 모양이다. 잠결에 천안아산역을 그대로 통과한다는 안내방송을 들은 것도 같았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측은하다는 듯 한 남자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눌린 머리를 다듬을 겨를도 없이 헐레벌떡 소지품을 챙겨 일어섰다. 천안아산역과 광명역까지도 그대로 통과해 평소 운행 시간보다 20여분 단축된 기차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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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 바야르종의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기사를 스크랩하며 생각난 기사이다. 얼마전 북한의 김정은 3대 세습관련 여론 조사 내용인데, 북한 세습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여론조사'가 주제이다.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통계'수치와 관련된 아주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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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지 못한 민노당의 3대 세습 여론조사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는 10월18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의 3대 세습 및 그와 관련된 민노당의 '중립적'인 논평을 두고 진보 진영 내부의 논란이 가라앉지 않던 시점이었다(< 시사IN > 제161호 기사).

새세상연구소는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54.6%가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을 용인하고 있으며, 응답자의 50.7%가 민노당의 신중한 접근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라고 밝혔다. 새세상연구소는 "대다수 국민은 남북 관계가 상호 체제를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고, 민노당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본다"라고 조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의도하든 아니든, 질문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만으로도 결과가 확 달라지는 것이 여론조사다. < 시사IN > 은 조사의 신뢰성을 따져보기 위해 여론조사 질문지를 받아, 서로 다른 유력 여론조사 업체에 종사하는 전문가 세 명과 여론조사를 전공한 대학교수 한 명(강흥수 국민대 교수)에게 보내 평가를 받아봤다. '동종업계'를 평가하는 일이니만큼 현직 종사자들은 익명 처리를 요청했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두 문항, 즉 3대 세습에 대한 평가와 민노당의 대응에 대한 평가 항목을 대상으로 했다.

먼저 3대 세습에 대한 평가를 묻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문제:김정은 후계 작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보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북한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 체제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과

:39.4% / 30.8% / 23.8%

네 전문가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A 실장
:해당 선택지 3개는 서로 의미하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면서 체제가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일 수도 있는데, 마치 셋이 서로 배타적인 양 나눠놓은 것은 부적절하다.

B 팀장
:첫 문항은 긍정적인 태도 보기가 둘, 부정적인 태도 보기가 하나다. 만약 본 설문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아니라 각각의 세 가지 시각으로 보는 경우라면 세 보기가 모두 가치 중립적·배타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C 대표
:1번은 북한에 비판적인 보기이고, 2·3번은 북한에 우호적인 보기다. 이럴 경우 보기의 수가 많은 쪽으로 (결정이) 기울어진다. 공직선거 관련 여론조사였다면 이처럼 대등하지 않은 보기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강흥수
(국민대 정치대학원 외래교수):언뜻 보면 '북한이 스스로 결정'이라는 보기가 중립점이고 그 좌우에 반대와 찬성 보기가 주어진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반대함' 보기 하나에 '반대하지 않음' 보기가 두 개로 불균형이다.

네 명이 입을 모아 보기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노당 새세상연구소는 '북한이 스스로 결정할 일'과 '체제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 두 응답을 합쳐 '54.6%가 3대 세습을 용인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다음으로 3대 세습에 대응하는 민노당의 태도를 평가하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문제:민주노동당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과 공식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정당 교류와 남북 화해를 고려하여 북한의 후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기

:남북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므로 바람직한 태도이다 / 남북 관계가 더 악화되더라도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결과

:50.7% / 35.1%

전문가 네 명은 아래와 같은 답을 보내왔다.

A 실장
:질문에서 과도한 정보 제공으로 응답자가 독립적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한다. 선택지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라고 한 것은 응답자가 이른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답'을 고르도록 유도한다. 남북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늘 옳으니만큼 그 보기를 고를 수밖에 없도록 했다.

B 팀장
:질문은 민노당의 현재 입장이나 상황에 대한 사실만을 제시하여 그 입장에서 응답할 우려가 있다. 두 번째 선택지에서 '남북 관계가 악화되더라도'라는 문구는 부정 상황이어서 응답자가 선택하기를 주저할 수 있다.

C 대표
:질문에 '허가' '공식 교류' '남북 화해'라는 용어가 응답자로 하여금 이미 첫 번째 보기를 선택하도록 절반은 유도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보기 역시 '신중·바람직'이라는 표현과 '악화·비판'이라는 표현을 대조시켜 전자 쪽으로 유도한다.

강흥수
:질문 중 '정부의 허가를 받아' '공식 교류' '남북 화해를 고려하여'와 같은 표현은 민노당의 방침이나 언행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를 깔아준다. 사안을 민노당의 입장에서만 보도록 프레이밍한다.

역시 네 명 모두 보기가 적절하지 않게 구성되었다는 의견이었다. 질문지의 유도 효과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고, 보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이번 조사에 대한 총평도 부탁해보았다.

A 실장
:특정 방향을 노리는 의도가 보인다. 여론조사의 속성을 잘 알수록 이런 시도를 하곤 한다. 진보적 조직에서 오히려 그럴 때가 많다.

B 팀장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조사 자체가 대단히 무리가 있거나 큰 오류를 가졌다고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C 대표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논거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기획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의뢰처보다 조사업체인 리서치앤리서치가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의뢰처를 위해서라도 설문 구성을 바로잡아주어야 했다.

강흥수
:이 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의 의견을 걸러내고, 의견의 강도나 주목도도 잡아내야 한다. '무관심층'의 응답이 많을수록 이번 질문지와 같은 프레이밍에 잘 걸려든다. 3대 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대응 문제를 관심 갖는 시민이 사실 얼마나 되겠나.  

문항의 적절성에 대해 조사업체인 리서치앤리서치는 "질문지는 새세상연구소가 보내왔고, 내부 토론을 거쳐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해 미세 조정만 했다"라고 밝혔다.

여론조사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과를 뽑아내도록 '마사지'를 한 질문지는 정치권에서 종종 눈에 띈다. 단어 한두 개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바꾼다거나, 보기 제시 순서를 유리하게 정한다거나, 핵심 질문에 앞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질문을 먼저 한다거나 하는 등 방법도 무척 다양하다. 특히 1~2% 포인트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기 일쑤인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는, 사소한 문구 하나 때문에 협상이 완전히 엎어지기도 한다. 여론조사 경험이 많은 선거통들이라면 새로울 것이 없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새세상연구소의 조사 문항은 이런 관행을 '살짝' 넘어섰다는 점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한 기획통은 설문 문항을 두고 "그거 '선수들'이 보면 한눈에 무리수인 거 아는데, 왜 엉터리 조사를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시사INLive |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 입력 2010.10.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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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KBS의 어떤 시사프로그램에서 동성애자들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그런데 TV를 보며 내내 불편했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질병'으로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향'한 예전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하며 '니들도 이들처럼'될 수 있다. '노력'해라 뭐 이딴식이다. 참고로 난 절대적인 '이성애자'이다. 그러나 '동성애' 인정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나 나나 같은 사람이다. 그 프로에서 동성애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이 나오는데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어딘지 의심스러운 통계였다. 특히 표본추출에서. 만 15세 이상 15,000명을 인터넷으로 설문했다는데, 의심스러웠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뉴스와 신문의 내용을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에 나와', '뉴스에서 그렇게 나오던데'하고. 이 말이 참이되기 위해서는 그 '신문'과 그 '뉴스'가 진실만을 옳은 내용만을 전달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대로. 아래 책도 그러겠지만 학교의 교사의 큰 책무중 하나가 봐로 이런 문제들을 현실의 모습을 옳바르게 알려주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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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12.4  당신 머릿속에 ‘촘스키’를 키워라 

올바른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정보의 조작과 왜곡 ‘분별법’

광고 속 오류·통계의 맹점 등
미디어 통한 ‘세뇌’ 사례 탐구 

붉은색 사과를 본 사람은,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꿀 경우 사과 빛깔이 달라지는데도 여전히 붉다고 생각한다. 신경학자 테런스 하인스의 실험이다. 사과를 상자 안에 넣고 그것이 사과라는 걸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부분만 보이게 조그만 구멍을 뚫어 피실험자에게 보여준다. 그런 뒤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꾸고 다시 그것을 보여주면 피실험자는 그걸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 상자 속의 사과가 사과인 줄 몰랐기 때문에 ‘사과는 붉은색’이라는 배경지식(고정관념)에 좌우되지 않은 것이다. ‘지각의 항상성’이라고 한다. 이는 지각이 구성작용의 결과란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봤다고 믿는 ‘지각의 왜곡’도 일어난다.

연평도에 간 집권당 대표가 보온병 잔해를 북이 쏜 포탄 껍질로 착각하고 장성 출신의 측근이 그 착각을 더욱 희극적으로 만든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인 것도 이 지각의 구성작용 탓이라고 봐야 할까. 환상과 착시의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인가. 아니면 관찰된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신념이 충돌하는 모순으로 인한 불안과 거북함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인지 부조화’ 탓일까. 그 사건을 특정 방송의 의도된 연출 탓으로 몰아간 신문기사는 전형적인 ‘연막치기’인가 물타기인가.  

나폴레옹이 말한다. “주세페, 저 병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나? 터무니없는 소리만 해대는데.” “폐하, 저 병사를 장군으로 승진시키십시오. 그럼 그의 말이 흠잡을 데 없이 들리실 겁니다.” 이건 ‘권위에 호소하기’의 역설이다. 동료 피실험자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고압 전류인줄 알면서도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전압을 계속 높여가는 ‘밀그램의 실험’도 잘 알려진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 사례다.  

‘애시의 실험’이라는 것도 있다. 카드에 그려진 같은 길이의 직선을 맞히는 그 실험에서 다수의 실험 참가자들이 실험 기획자와 사전에 몰래 약속한 대로 전혀 엉뚱한 답을 내놓자 이게 짜고 하는 것인 줄 모르는 피실험자는 눈치를 보다가 뻔한 정답을 버리고 그들 다수를 따라간다.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 인간의 뇌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라는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얘기도 상통한다. 박사학위는 받는 사람의 뇌에만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뇌도 바꿔버린다. 똑같은 말도 박사학위라는 권위의 세례를 받기 전과 받은 뒤에 전혀 다르게 들리게 만드니까. 
  
 
» 노엄 촘스키(1928~ ). 에드워드 허먼과 미디어의 프로파간다 모델을 만들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군중에 호소하기’도 있다. 예컨대 “×를 마셔보세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니까!”, “자동차 Y. 설마 수백만의 운전자가 잘못 판단했겠습니까?” 같은 광고문구들이 대표적이다. 그 맥주나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게 그것들의 품질이 가장 좋다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그 둘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왜 ××일보를 가장 많이 볼까요?”라는 광고문구도 다르지 않다. 부분이 옳으면 전체가 옳다고 주장하는 ‘구성의 오류’, 그 반대로 전체가 옳으면 부분도 옳다고 주장하는 ‘분할의 오류’도 있다.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온 캐나다 퀘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노르망 바야르종의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은 이런 흥미로운 사례들을 무수히 제시한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신비주의나 초과학, 뉴에이지 등이 횡행하고 학계와 지식계가 성찰과 판단력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채 추락해버린 현실이 야기하는 인식론적 문제,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를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또 다양한 방향에서 제공받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걱정하듯이, 나도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린 언론의 실상이 걱정스럽다. 이처럼 언론이 시장지향의 경향을 띠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어떻게든 우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보 폭탄과 말 폭탄을 쏟아부으며 수행하고 있는 프로파간다적 역할도 무척 우려된다.”

그는 “고객중심의 사고방식과 경제지상주의”가 판치는 교육계도 참여민주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심각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교육’을 ‘세뇌’로 바꿔 읽는 것이 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얘기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이런 현실에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로 맞설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적인 생각의 무기, 성찰의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씌었다. 원래 제목 ‘Petit Cours D’Autodefense Intellectuelle’은 ‘지적인 자기방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단기 코스’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 훈련 입문서다. 따라서 어렵지 않다. 언어, 숫자, 경험, 과학, 미디어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요령있게 펼치는 악성 프로파간다 깨부수기 훈련과정은 흡인력이 있다.

통계상의 표준편차를 설명한 뒤 이런 예를 든다.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53%였는데, 3월의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56%였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보도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 조사의 정확도가 95%, 표준오차 범위 ±5%라면 그 보도는 거짓일 수 있다. 이 표준오차 범위라면 1월 지지율은 48~58% 사이고 3월은 51~61% 사이다. 따라서 1월에 58%였던 지지율이 3월엔 51%로 추락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숫자 공포증을 치유하는 10가지 비법’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지난해 ㄱ시와 ㄴ시에서 각각 5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5년 전엔 ㄱ시에 42건, ㄴ시에선 29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5년간 두 도시 살인사건 증가율을 백분율로 표시하면 ㄱ시는 19%, ㄴ시는 72%다. 따라서 ㄱ시 쪽 치안이 더 나을까?

지은이는 신문을 볼 때 이것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ㄱ시는 지난해 인구가 60만이었고 5년 전에는 55만이었다. ㄴ시는 지난해 80만, 5년 전에는 45만이었다. 따라서 인구증가속도까지 고려한 지난해 살인사건 발생률은 ㄱ시가 10만명당 8.33명, ㄴ시가 10만명당 6.25명이었다. 따라서 ㄴ시가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까지만 봐서도 안 된다. 5년 전 두 도시 살인사건 발생률을 마찬가지 인구비례로 계산하면 ㄱ시는 10만명당 7.64명, ㄴ시는 10만명당 6.44명이다. 따라서 5년 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ㄱ시는 증가율이 높아졌고 ㄴ시는 낮아졌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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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클래식 음악 관련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과 관련된 <더 콘서트>도 나왔다. 아직 보지는 못해지만, 근데 오늘 신문을 보니 슈만 관련 영화도 곧 개봉된다고 한다. 슈만하면 사실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보다 더 생각나는 이는 브람스다. 그의 로맨스가 더욱 그렇다.

한겨레신문 2010.12.6  핏줄이 그린 세 음악가와 세기의 사랑  

헬마 잔더스브람스 감독 ‘클라라’
슈만과 부인·제자 브람스 이야기 

 

슈만과 그의 제자 브람스가 한꺼번에 사랑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한 세 음악가의 얽히고설킨 사랑은 ‘세기의 사랑’으로 덧씌워져 전설처럼 전해져왔다. 새 영화 <클라라>는 슈만 탄생 200돌에 맞춰 만든 이들 음악가들의 사랑이야기.  

슈만(1810~1856)이 클라라(1819~1896)를 처음 본 것은 대학에 갓 입학한 18살 때. 슈만이 피아니스트 지망생이었던 반면 클라라는 슈만의 피아노 선생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9살 난 딸로 조기교육을 받아 막 성공적인 연주활동을 시작할 무렵이다. 슈만은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스승의 인정을 못 받았다. 슈만과 스승의 딸 클라라는 사랑에 빠지기는 1934년, 이들의 나이 25살, 16살이었다. 슈만의 클라라를 향한 집념은 대단해 이태 뒤 클라라가 정식으로 성년이 되는 날 미래의 장인한테 결혼 승낙을 요청한다. 스승이 대답을 자꾸 미루자 1939년 소송을 내어 1년 뒤에 결혼을 쟁취한다. 하지만 삶은 곤궁했다. 슈만은 사회 부적응자. 교수, 지휘자 자리를 감당 못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으며 끝내는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슈만-클라라의 사랑이 공식이면 브람스(1833~1897)와 클라라의 사랑은 비공식. 그들의 사랑이 사실이든 아니든, 스승의 아내와 제자 사이, 14살이라는 나이 차 등이 어우러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다. 브람스가 슈만 부부의 집에 기숙한 적이 있으며 정신병 증세, 알코올 중독 등에 시달리던 슈만이 이들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증폭된 듯하다. 브람스는 슈만이 병원에 입원한 때 그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했고 사후에도 클라라와 그 자녀들을 돌봤다. 하지만 브람스가 계모와 아버지한테 돈을 보내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계모와 그 친지들을 계속 도와준 데 비춰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그는 클라라가 죽자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그는 1년 뒤 암으로 죽었다.

영화는 브람스의 후손인 여성감독 헬마 잔더스브람스의 작품. 조상 얘기인 만큼 10년 넘게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과 적절한 센세이션 사이에서 고급스런 줄타기를 한다. 마르티나 게덱(클라라), 파스칼 그레고리(슈만), 말릭 지디(브람스) 등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진지하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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