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KBS의 어떤 시사프로그램에서 동성애자들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그런데 TV를 보며 내내 불편했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질병'으로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향'한 예전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하며 '니들도 이들처럼'될 수 있다. '노력'해라 뭐 이딴식이다. 참고로 난 절대적인 '이성애자'이다. 그러나 '동성애' 인정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나 나나 같은 사람이다. 그 프로에서 동성애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이 나오는데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어딘지 의심스러운 통계였다. 특히 표본추출에서. 만 15세 이상 15,000명을 인터넷으로 설문했다는데, 의심스러웠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뉴스와 신문의 내용을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에 나와', '뉴스에서 그렇게 나오던데'하고. 이 말이 참이되기 위해서는 그 '신문'과 그 '뉴스'가 진실만을 옳은 내용만을 전달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대로. 아래 책도 그러겠지만 학교의 교사의 큰 책무중 하나가 봐로 이런 문제들을 현실의 모습을 옳바르게 알려주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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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12.4  당신 머릿속에 ‘촘스키’를 키워라 

올바른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정보의 조작과 왜곡 ‘분별법’

광고 속 오류·통계의 맹점 등
미디어 통한 ‘세뇌’ 사례 탐구 

붉은색 사과를 본 사람은,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꿀 경우 사과 빛깔이 달라지는데도 여전히 붉다고 생각한다. 신경학자 테런스 하인스의 실험이다. 사과를 상자 안에 넣고 그것이 사과라는 걸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부분만 보이게 조그만 구멍을 뚫어 피실험자에게 보여준다. 그런 뒤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꾸고 다시 그것을 보여주면 피실험자는 그걸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 상자 속의 사과가 사과인 줄 몰랐기 때문에 ‘사과는 붉은색’이라는 배경지식(고정관념)에 좌우되지 않은 것이다. ‘지각의 항상성’이라고 한다. 이는 지각이 구성작용의 결과란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봤다고 믿는 ‘지각의 왜곡’도 일어난다.

연평도에 간 집권당 대표가 보온병 잔해를 북이 쏜 포탄 껍질로 착각하고 장성 출신의 측근이 그 착각을 더욱 희극적으로 만든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인 것도 이 지각의 구성작용 탓이라고 봐야 할까. 환상과 착시의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인가. 아니면 관찰된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신념이 충돌하는 모순으로 인한 불안과 거북함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인지 부조화’ 탓일까. 그 사건을 특정 방송의 의도된 연출 탓으로 몰아간 신문기사는 전형적인 ‘연막치기’인가 물타기인가.  

나폴레옹이 말한다. “주세페, 저 병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나? 터무니없는 소리만 해대는데.” “폐하, 저 병사를 장군으로 승진시키십시오. 그럼 그의 말이 흠잡을 데 없이 들리실 겁니다.” 이건 ‘권위에 호소하기’의 역설이다. 동료 피실험자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고압 전류인줄 알면서도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전압을 계속 높여가는 ‘밀그램의 실험’도 잘 알려진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 사례다.  

‘애시의 실험’이라는 것도 있다. 카드에 그려진 같은 길이의 직선을 맞히는 그 실험에서 다수의 실험 참가자들이 실험 기획자와 사전에 몰래 약속한 대로 전혀 엉뚱한 답을 내놓자 이게 짜고 하는 것인 줄 모르는 피실험자는 눈치를 보다가 뻔한 정답을 버리고 그들 다수를 따라간다.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 인간의 뇌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라는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얘기도 상통한다. 박사학위는 받는 사람의 뇌에만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뇌도 바꿔버린다. 똑같은 말도 박사학위라는 권위의 세례를 받기 전과 받은 뒤에 전혀 다르게 들리게 만드니까. 
  
 
» 노엄 촘스키(1928~ ). 에드워드 허먼과 미디어의 프로파간다 모델을 만들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군중에 호소하기’도 있다. 예컨대 “×를 마셔보세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니까!”, “자동차 Y. 설마 수백만의 운전자가 잘못 판단했겠습니까?” 같은 광고문구들이 대표적이다. 그 맥주나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게 그것들의 품질이 가장 좋다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그 둘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왜 ××일보를 가장 많이 볼까요?”라는 광고문구도 다르지 않다. 부분이 옳으면 전체가 옳다고 주장하는 ‘구성의 오류’, 그 반대로 전체가 옳으면 부분도 옳다고 주장하는 ‘분할의 오류’도 있다.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온 캐나다 퀘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노르망 바야르종의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은 이런 흥미로운 사례들을 무수히 제시한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신비주의나 초과학, 뉴에이지 등이 횡행하고 학계와 지식계가 성찰과 판단력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채 추락해버린 현실이 야기하는 인식론적 문제,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를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또 다양한 방향에서 제공받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걱정하듯이, 나도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린 언론의 실상이 걱정스럽다. 이처럼 언론이 시장지향의 경향을 띠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어떻게든 우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보 폭탄과 말 폭탄을 쏟아부으며 수행하고 있는 프로파간다적 역할도 무척 우려된다.”

그는 “고객중심의 사고방식과 경제지상주의”가 판치는 교육계도 참여민주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심각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교육’을 ‘세뇌’로 바꿔 읽는 것이 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얘기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이런 현실에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로 맞설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적인 생각의 무기, 성찰의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씌었다. 원래 제목 ‘Petit Cours D’Autodefense Intellectuelle’은 ‘지적인 자기방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단기 코스’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 훈련 입문서다. 따라서 어렵지 않다. 언어, 숫자, 경험, 과학, 미디어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요령있게 펼치는 악성 프로파간다 깨부수기 훈련과정은 흡인력이 있다.

통계상의 표준편차를 설명한 뒤 이런 예를 든다.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53%였는데, 3월의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56%였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보도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 조사의 정확도가 95%, 표준오차 범위 ±5%라면 그 보도는 거짓일 수 있다. 이 표준오차 범위라면 1월 지지율은 48~58% 사이고 3월은 51~61% 사이다. 따라서 1월에 58%였던 지지율이 3월엔 51%로 추락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숫자 공포증을 치유하는 10가지 비법’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지난해 ㄱ시와 ㄴ시에서 각각 5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5년 전엔 ㄱ시에 42건, ㄴ시에선 29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5년간 두 도시 살인사건 증가율을 백분율로 표시하면 ㄱ시는 19%, ㄴ시는 72%다. 따라서 ㄱ시 쪽 치안이 더 나을까?

지은이는 신문을 볼 때 이것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ㄱ시는 지난해 인구가 60만이었고 5년 전에는 55만이었다. ㄴ시는 지난해 80만, 5년 전에는 45만이었다. 따라서 인구증가속도까지 고려한 지난해 살인사건 발생률은 ㄱ시가 10만명당 8.33명, ㄴ시가 10만명당 6.25명이었다. 따라서 ㄴ시가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까지만 봐서도 안 된다. 5년 전 두 도시 살인사건 발생률을 마찬가지 인구비례로 계산하면 ㄱ시는 10만명당 7.64명, ㄴ시는 10만명당 6.44명이다. 따라서 5년 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ㄱ시는 증가율이 높아졌고 ㄴ시는 낮아졌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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