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좋은 내용의 글이라고 생각된다. 사회적 문제를 지리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인것 같다. 지리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지리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런 좋은 연구사례들이 많이 발굴되고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ps : 수소문 끝에 석사논문을 얻게 되었다. 책이 학교로 오면 한번 꼼꼼히 읽어봐야 겠다. 기대된다. 나도 언젠가는... 

'노숙인'관련 책이 뭐있난 검색을 해보니 임영인 신부의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란 책이 나온다. 책 추천사에 이런 글이 있다. “이 책에는 임영인 신부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한 노숙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의 병들고 지친 육신 속에 감추어둔 아프지만 따듯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차가운 거리에서,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가슴으로 쓴 글들이다. 이 책은 노숙인들의 인간승리를 이야기하는 신파극도 아니고, 어떤 선량한 사람이 불량한 사람들을 선도했다는 위선적인 가식도 아니다. 사회구조적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메마른 투쟁의 구호로 선동하는 글들도 아니다. 힘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사랑하는 한 사제가, 그 사랑의 빛으로 바라본 이웃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히길 바란다. 삶의 의욕과 새로운 희망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의 이야기들은 큰 힘을 주리라 확신한다.” 읽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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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10.9.10 827호   나는 노숙인을 보았다 

한 대학원생이 70여 일 동안 서울역 노숙 생활을 하며 지리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노숙인들…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들의 생활을 몸으로 기록한 이야기  
 
경희대 지리학과 석사과정 김준호(29)씨는 지난 1월1일부터 3월13일까지 70여 일 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인들과 섞여 노숙 생활을 했다. 그동안 노숙인 연구에서 많이 사용된 설문조사나 인터뷰 등으로는 이들의 실제 경험과 인식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류 사회와 단절된 노숙 세계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미묘한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피는 ‘참여관찰’을 통해 내부자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이 기간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할 수 없이 집에 들어가 잔 5일을 빼고는 꼬박 노숙인으로 생활했다. 끊임없이 주변 노숙인들과 대화·접촉을 시도했고, 그 결과를 틈틈이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거리 노숙인이 생산하는 차이의 공간에 대한 연구: 서울역 거리 노숙인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거리 노숙인들은 주로 ‘공공 공간’에서 생활하는데, 그들에게 공공 공간은 일반 시민이 경험하는 공공 공간과 다르다. 즉 공공 공간에 담지된 ‘공공성’이 거리 노숙인에게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씨는 공공 공간을 주류 사회가 만들어낸 ‘지배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이런 지배의 공간을 거리 노숙인들이 다른 방식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만들어내는 공간을 ‘차이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씨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현장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통해 노숙인 문제 해결의 실천적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현재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서울역 일대에서 거리 노숙을 하는 인원은 150여 명 정도며, 쪽방 등에서 잠을 자는 인원까지 합친 서울시 노숙인은 1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전국적으로는 거리 노숙인 1천~1500명, 쉼터 입소자 3천~4천 명, 부랑인 시설 입소자 1만여 명, 쪽방 생활자 6천여 명,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만화방이나 사우나 등에서 자는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자-

필자가 ‘참여관찰’을 통해 접한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 중 중점적으로 관찰한 것은 8명이다. 〈표1〉은 이들의 인적 사항과 주요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필자가 참여관찰을 실시한 기간의 3분의 2 이상을 서울역 일대에서 같이 지낸 사람들로, ‘코트누나’를 제외하고는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했다. 필자가 관찰한 거리 노숙인의 수는 80명이 넘었고, 이들 중 실제로 접촉한 노숙인도 5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동성이 강하다는 거리 노숙인의 특성상 이들을 모두 지속적으로 접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밝히려는 ‘차이의 공간’이 이들 8명에게만 국한된 특정한 사례는 아니다.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보편적으로 생산해내는 대표적인 ‘차이의 공간’을 이들의 구술과 행동을 중심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 표1.등장인물의 인적 사항과 주요 특징.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수면의 공간-자는 곳이 우선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서울역 광장에 나가보면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거리 노숙인들이다. 늦은 밤이건 대낮이건 서울역 광장이나 서울역사 안에서 잠자는 거리 노숙인들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들이 자는 공간이 결코 ‘잠자기 위해’ 기획되거나 조성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잠자라고 만든 공간이 아닌 곳에서 자는 것’, 바로 거리 노숙인들이 생산해내는 첫 번째 ‘차이의 공간’인 ‘수면의 공간’은 그렇게 만들어지며, 이곳은 거리 노숙인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역동적인 공간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수면의 공간은 어떤 동기와 방법으로 생산되는지, 즉 ‘집’이 없는 거리 노숙인들은 어떻게 공공 공간인 서울역 인근을 ‘수면의 공간’으로 전유(교환가치를 극복한 사용가치로 이용 및 참여)하는지, 1월부터 3월까지 관찰한 서울역 거리 노숙인을 통해 살펴보자.
  
 
» 그림1.서울역 거리 노숙인의 공간문화지도
 

낮잠이 생명인 노숙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2010년 1월부터 2월까지 ‘수면의 공간’으로서 생산하던 ‘차이의 공간’은 ①신역사 내 대합실과 ②지하도다. 그리고 3월께 추위가 누그러지기 시작하면 ③서울역 광장과 구역사 앞거리와 ④서부역 앞거리가 여기에 추가된다(그림1 참조). 물론 육교 등과 같이 다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2010년 1~3월에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거리 노숙인은 위 네 군데 중 한 곳에서 자려고 노력한다.

한겨울, 특히 올해 겨울처럼 혹한과 폭설이 동반된 겨울이라면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면의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개인의 기호를 떠나 삶과 직결된 문제로, 바깥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개방된 공간, 즉 육교나 거리 등은 잠을 잘 수 있는 곳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실내 공간, 즉 대합실이나 지하도에서 잘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필자가 노숙한 기간 중 폭설과 혹한이 극에 달했던 1월 초·중순에는 지하도마저 ‘수면 가능한 공간’에서 제외되는 날이 많았다. 결국 한겨울의 거리 노숙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합실에서 자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에는 서울역에서 실제로 노숙을 하는 사람만이 알고 있고 또 갖고 있는 ‘지식’과 ‘시공간 리듬’이 동원된다.

필자가 참여관찰을 위해 처음 서울역을 방문한 날, 어디서 자야 할지,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을 때 ‘최형’과 ‘형님’이 시계탑을 스윽 보더니 내뱉은 말이다. 
  
 
» 표2.‘최형’의 시공간 리듬 
 

최형: 젊은 놈이 왜 이렇게 비실거려? 뭐 아무튼 좀만 참어. (신역사 쪽을 가리키며) 어차피 지금은 저~서 못 자니까. 니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이 시간에 저기서 잘라치면 공안 놈들 득달같이 달려올 거다.

형님: 여기서 살아남을라면 니가 니 몸 잘 챙겨라. 졸리다고 그냥 여기서 디비자면 바로 골로 간다. 암튼 저서(대합실) 잘라면 이따 9시 반쯤에 들어가서 잠깐 자고 나왔다가 2시쯤 다시 기들어가야 하니까 지금은 여서 쇠주나 한잔해.
 

그때가 밤 9시를 지날 즈음이었는데, 그 시간에는 역사 내부 대합실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은 아무 때나, 그리고 아무 데서나 드러누워 자지 않는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자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건 ‘지배의 공간’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1~2월에 거리 노숙인들이 대합실에서 (밤에) 잠을 잤던 요령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민의 시선과 공무원의 단속이 줄어드는 퇴근시간 이후, 즉 밤 9시30분에서 10시30분 사이에 대합실에 들어가 눈을 붙인다. 그러면 얼마 안 돼서 공안의 순찰이 이루어지고, 새벽 1시에 물청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노숙인들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쫓겨난다. 그러다 새벽 2시를 넘기면 노숙인들은 다시 대합실 안으로 슬슬 들어가는데, 그때부터는 출근을 위해 시민들이 모여드는 7~8시 전까지 선잠을 잘 수 있다. 물론 이런 시간 패턴이 항상, 그리고 누구에게나 똑같지는 않지만, 중요한 건 거리 노숙인들이 전략적 실천을 통해 ‘특정 시간대’에 ‘특정 공간’을 ‘수면의 공간’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와 함께 지하도에서 박스를 깔고 있던 중 ‘난형’은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필자가 불안해하자 이렇게 말했다. 
 

난형: 괜찮아 인마. 어차피 쟤네도 다 구색 갖추기용으로 저×× 하는 거야. 그니까 그냥 열심히 깔기나 해. 쟈들이 모라 할라치면 그냥 자는 척하거나 아픈 척해 대충. 근데 그럴 일이나 있을라나 모르겄다. 여긴 그냥 가끔 쟈들이 미쳐서 맘먹고 올 때가 있는데, 그때만 잠깐 나갔다 들어옴 돼. 아마 쉼터로 데리구 가려고 할 거다. 근데 그게 누가 한번 얼어 뒤져야 쟈들이 좀 말이라도 걸지 ××.
 

날씨가 조금씩 풀리는 3월에는 대합실과 지하도 외에도 서울역 광장과 구역사 앞거리, 그리고 서부역 앞거리가 ‘수면의 공간’으로 추가된다. 그러나 이들은 ‘낮잠’을 자기 위해 간간이 이용되는 공간일 뿐, 밤에도 여기서 자기엔 3월의 날씨는 아직 너무 춥다. 대부분의 거리 노숙인들은 여전히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하기에도 좋은 ‘실내 공간’에서 자기를 희망한다. 다만 한파로 인해 도저히 외부에서 잘 수 없던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 시간에 한정해) 어떻게든 얼어 죽지 않고 눈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저주받은 노숙인의 서부역 앞거리”

한편 이렇게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추가되는 시기가 되면, 거리 노숙인의 시공간 리듬은 더욱 역동적으로 조절된다. 그 이유는 거리 노숙인에게 낮잠이 중요한 일과이기 때문인데,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인들의 ‘낮잠’과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일반인들은 ‘나인 투 식스’(9 to 6)와 같이 정해진 일과 시간이 있고 이와 엄밀히 구분되는 수면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으로 확보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거리 노숙인에게는 보장된 수면 시간(과 공간)이 없다. 요컨대 일반인들에게 낮잠은 부족한 수면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추가로’ 만들어내는 시간인 경우가 많지만, 거리 노숙인은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낮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합실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상당수 거리 노숙인이 (비록 스스로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잠을 ‘끊어서’ 자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일률적인 패턴은 없으며, 개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리듬을 조절한다. 표2는 ‘최형’이 1~2월과 3월에 각각 잠을 자던 시공간 리듬을 보여주고 있다.

거리 노숙인에게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요소인 의식주(衣食住)가 골고루 결여돼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욕구보다 의식주가 먼저 해결돼야 하는데, 그중 ‘주’(住)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수면의 공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왜냐하면 ‘의’(依), ‘식’(食)과 달리 ‘주’는 이동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거리 노숙인에게 ‘의’와 ‘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찾아’오지만, ‘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리 노숙인에게 ‘주’에 해당하는 ‘수면의 공간’은 다양한 ‘거리 노숙 지도’를 그리는 데 가장 기본이 된다. 요컨대 뒤에 언급할 ‘취식의 공간’이나 ‘구걸의 공간’, 그리고 ‘부유의 공간’ 등은 ‘수면의 공간’이 먼저 확보된 이후에 형성되는 것으로, 그 순서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음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선생님’의 말이다. 
 

이 선생님: 우리가 백날 외쳐봐야 정부에서 집 안 나와. 그런데 밥! 이건 안 줄 수가 없어. 니가 생각을 해봐. 여기가 무슨 아프리카도 아니고, (거리 노숙인 중 누군가가) 배고파 죽었다고 한번 뜨면 나라님한테도 참~ 안 좋거든? 그니까 내 말이 뭐냐 하면 (필자를 가리키며) 목숨 걸고 잘 데 만들라는 거지.
 

또 ‘수면의 공간’은 거리 노숙인 간 ‘유대가 형성되는 장소’다. 다음은 1월 말 필자를 포함한 5명의 거리 노숙인이 잠을 자기 위해 서울역 2층 대합실에 모였을 때 나눈 대화의 일부다.
 

삼촌: (꼬깃꼬깃해진 사진을 ‘에이스형’에게 보여주며) 흐흐, 자 봐. 이쁘지? 내… 내 따… 딸이야.

에이스형: 와, 형님! 이렇게 이쁜 딸 숨겨놓고 있었소? 아, 고놈 참 형님은 안 닮았나 보네. 그래 뭐, 가끔 연락은 하고?

삼촌: 흐, 하지. 오… 오늘도 했다.(침묵)

에이스형: 나중에 딸내미 볼 때 나도 좀 보여주소!

난형: 아, 형님(‘삼촌’을 가리킴)! 고만 좀 우쇼! 이제 안 그러기로 한 거 다 까먹었나? 


이런 대화는 새벽 4시30분께, 공익요원과 역무원, 철도 공안요원들이 돌아다니며 우리를 쫓아낼 때까지 계속됐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도 잠을 자지 못했고, 모두들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이렇듯 ‘수면의 공간’은 단순히 몸을 누이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거리 노숙인들 간 무수히 많은 정서적·감성적 소통과 교감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잠자기 위해 모인 이들은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부터 가족 이야기, 노숙 진입 이전의 생활 이야기, 앞으로의 꿈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고 교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악화되기도 한다. 이른바 관계가 형성되고 또 견고해지는 공간, 요컨대 ‘유대 형성의 공간’으로서 ‘수면의 공간’이 작동하는 것이다.
  
 
» 그림2.‘수면의 공간’으로서 서울역 대합실의 계급별 공간 배치 
 

조금이라도 ‘집’에 가까운 ‘벽’ 근처로

‘수면의 공간’이 갖는 마지막 특징은 ‘계급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거리 노숙인의 세계에는 그들만의 룰과 계급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공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대합실과 지하도 같은 실내 공간의 경우, 힘있는 노숙인이나 장기 노숙인은 (대합실의 경우) TV 근처 의자와 벽 쪽, (지하도의 경우) 통로 중앙 쪽에 주로 위치하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노숙인이나 노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노숙인들은 (대합실의 경우) 출입구 주변과 콩코스로 진입하는 통로 근처, (지하도의 경우) 출구 쪽 통로와 지하도 교차지점 부근에서 주로 잠을 잔다(그림2 참조). 그런데 ‘힘있는’ 노숙인은 꼭 신체적 조건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노숙인 사이에서 끊임없는 사회화 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그룹 내에서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노숙인과 그렇지 못한 노숙인이 나뉘게 되며, 이는 곧 노숙인 세계에서 ‘힘’이자 ‘권위’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계급별 공간 배치는 ‘공공 공간의 사적 공간화’ 때문에 발생한다. 즉 거리 노숙인들이 ‘수면의 공간’을 전유하는 과정은 공공 공간에서 자신의 ‘집’을 찾는 것과 같은데, 이를 위해 ①추위(혹은 더위)의 영향을 가능한 받지 않는 (환경적으로) ‘안락한’ 공간, ②공간의 경계, 즉 ‘구분선’이 있는 공간(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시민의 발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거리 노숙인에게 ‘벽’의 존재는 그나마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이며 따라서 ‘벽’ 근처에 붙어 잠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집’(혹은 방)에 가까운 ‘수면의 공간’을 조성하려 한다), ③개인의 ‘고정된’ 공간을 동시에 추구한다(대부분의 거리 노숙인들은 자신만의 ‘고정된’ 잠자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 부합하는 공간이 대합실의 경우 TV 근처 의자와 벽 쪽이 되고, 지하도의 경우 통로 중앙 쪽이 된다. 따라서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은 ①번과 ②번에 해당하는 공간을 선택한 뒤, ③번처럼 ‘고정적’으로 이용하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공간이 서로 ‘겹치고’ 결국 힘있는 노숙인이 공간 ‘선택’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한편 낮잠을 위한 공간으로 주로 이용되는 실외 공간에서는 (실내 공간에 비해) 좀더 큰 공간적 범위에서 계급에 따른 공간 배치가 드러난다. 그림3과 같이 서울역 광장과 구역사 앞거리가 주로 ‘주류’ 거리 노숙인의 공간이라면, 서부역 앞거리는 ‘타자화된’ 거리 노숙인의 공간으로 전유된다. 요컨대 여성 노숙인, 나이가 아주 많은 노숙인, 굉장히 어린 노숙인, 성격적 결함으로 동료 노숙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노숙인, 악취가 심한 노숙인, 대인기피증이 심한 노숙인 등은 거리 노숙인 세계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타자화된’ 그룹은 낮잠을 자는 데서도 ‘주류’ 그룹이 주로 포진한 서울역 광장이나 구역사 앞거리를 이용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한산하고 눈에 덜 띄는 서부역 앞거리 쪽으로 밀려난다. 이어지는 구술 자료는 ‘코트누나’가 한 말로, 거리 노숙인 사회에서의 계급과 이에 따른 공간 배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코트누나: 지들(서울역 광장 쪽의 거리 노숙인을 가리킴)이나 나나 어차피 다 똑같은 그지들인데, 뭐 그렇게 싫은 것도 많고 잘난 것도 많은지. 아무튼 난 여자치고 길바닥에서 진짜 오래 버티는 거야. 다른 여자들? 둘 중 하나야. 한 달도 못 가거나 아니면 미쳐버리든가. 여기가 그래 원래. 여기서도 여자는… 여자라서 안 돼. 더러운 조선이지. 그지들도 남자가 상전이고 여자는 이×× 이고… ××. 총각은 저쪽 넘어가서 같이 어울려. 여긴 저주받고 태어난 사람들이 벌받는 데야.
 

이처럼 노숙인 사이의 계급 관계는 서부역 앞거리를 일종의 ‘처벌의 공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2. 취식의 공간-동료와 함께 먹어야 한다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취식의 공간’으로 전유하는 곳은 주로 무료급식이 이뤄지는 지점, 즉 ①구역사 앞거리, ②육교, ③지하도였다. 한편 요즘의 서울역에는 길거리에서 밥을 먹는 거리 노숙인이 그리 많지 않은데, 바로 얼마 전에 개장한 ‘따스한 채움터’ 때문이다. 따스한 채움터는 서울시가 서울역 광장의 거리 급식을 실내 급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 5월4일 개장한 실내 급식장으로, 이곳이 생기면서 거리에서 취식하는 노숙인의 모습은 현저히 감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노숙인들의 거리 취식은, 그들에 대해 진중히 고찰해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거리 노숙인들이 ‘취식의 공간’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체화된 지리 지식’인데, 이는 ‘취식의 공간’이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사용된다. ‘에이스형’과 ‘김간지’의 대화를 살펴보자. 
 

에이스형: 아무튼 오늘은 □□(주변 무료급식 기관 중 한 곳)로 가서 먹자. ‘김간지’형 지금 몇 시야? 천천히 걸어가지 그랴?

김간지: 아 거기 말고 ○○(□□와 다른 무료급식 기관)로 가자. 난 당최 □□ 거는 짜서 못 먹겄으니까.

에이스형: 알았소. 거기로 갑시다. (필자를 부르며) 아야~ □□는 내일 나랑 한번 가보고 오늘은 ○○로 가자. 가서 한번 맛보고 입에 맞나 봐라.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취식의 공간’으로 특정 장소를 이용한다고 할 때, 결코 아무 데나 주저앉아 밥만 먹지 않는다. 요컨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 데나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들은 개개인의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동료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공간’ ‘시민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공간’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 등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생산해낸다. 서울역 거리에 정착한 지 3~4개월 정도 지난 거리 노숙인이라면 ‘언제 어디서 제공되는 무료급식이 어떤 맛인지’를 줄줄이 꿰고 있다. 따라서 ‘입맛’과 ‘기분’에 따라 선별적으로 배식을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결국 이는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는 ‘좀더 감성적인 어떤 것’이 포함된 행동임을 의미한다.
 

정보교환의 공간, 무료급식

한편 ‘취식의 공간’은 단순히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만 이용되지는 않는다. ①(사회적) 유대 형성의 공간과 ②정보 교환의 공간으로 동시에 작동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앞서 언급했듯 ‘취식의 공간’을 전유하는 과정에서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는 ‘동료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취식의 공간’ 역시 ‘수면의 공간’ 못지않게 거리 노숙인 간 수많은 소통이 발생하는 장소로 기능하는 것인데, ‘수면의 공간’이 주로 ‘감성적’ 유대 형성의 공간이었다면 ‘취식의 공간’은 주로 ‘사회적’ 유대 형성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수면의 공간’에서의 유대 형성이 ‘개인적’ 일을 서로 나눔으로써 감성적인 부분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난다면, ‘취식의 공간’은 서로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대화가 주를 이루면서 거리 노숙인 사회 내에서의 상호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한 무료급식소에서 배식을 받아 식사를 하며 ‘에이스형’과 ‘김간지’가 대화한 내용의 일부다.
 

에이스형: 그 누구냐, 그 남박사(노숙인 중 한 명을 지칭) 옆에 있던 갸는 뭐여? 뭣 좀 하다 온 거 같던데. 혹시 형님 아쇼?

김간지: 걔 기름때 만지다 왔다는 거 같던데? 마누라가 집 팔아먹고 튀었다드만. 우리보다 한~참 덜된 놈.(웃음)
 

‘취식의 공간’이 갖는 두 번째 특징은 ‘정보 교환의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거리 노숙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취식의 공간’에서 교류됨을 의미한다.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나눈 또 다른 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선생님: 그런데 넌 아까 어디 갔다 온 거냐.

난형: 엊그저껜가? 사랑 뭐시기에서 커피 풀었잖아여. 그거 오늘도 있다고 해서 또 갔다 왔습니다. 아마 지금은 끝났겠네. 구정 때 걔네 한 번 더 온다더라구여. 그때 제가 한번 모실게여.

삼촌: 치… 치약도 나왔다던데? 흐, 그나… 저나… 구정이네. 이… 이제… 여… 연말에 걔네 다시 오… 오나?

난형: 건 아직 모르겠네. 걱정 마쇼, 형님! 제가 정보통 한번 풀라니까. 근데 아마 오지 않겄나?
   
 
» 밥을 먹는 때는 노숙인 사이에 정보를 나누는 시간도 된다. 2008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서울역 앞에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 구걸의 공간-‘꼬지’는 필수가 아닌 선택

상당수 시민은 거리 노숙인의 구걸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일견 맞는 말일 수 있다. 필자가 노숙 생활 일주일을 갓 넘겼을 때쯤 동료 노숙인들은 구걸을 ‘해볼 것’을 종용했다. 
 

에이스형: 너도 이제 슬슬 꼬지(구걸하는 행동을 지칭함) 뛰어야지? 이 바닥에서 오래 살려면, 아! 아니지… 이 바닥에서 빨리 뜨고 싶어도 똑같애! (광장 쪽을 가리키며) 저기 한번 갔다 와! 어, 그래. (광장을 걸어가던 한 여성을 가리키며) 쟤로 하자. 가서 내가 말한 대로만 해. 앞에 가서 또 빌빌대지 말고. (필자가 구걸을 통해 1천원을 얻어 돌아오자 같이 있던 난형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아 거 ×× 쓸 만하구만. 원래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인마~ (2천원을 더 쥐어주며) 이거 보태서 물(술을 지칭하는 표현임) 좀 사와라.
 

요컨대 구걸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해보라는 것’은, 그들에게 구걸이 꼭 굶주린 배를 채우거나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래는 동료 거리 노숙인들의 몇 번의 구걸 시범과 필자의 구걸 훈련이 한두 차례 더 이루어졌을 때쯤 ‘에이스형’이 필자에게 한 말이다. 
 

에이스형: 왜 이 짓(구걸)을 하냐고? 원래 여기서는 밥도 나누고 술도 나누고 다 나눠. 다 나누는데, 담배는 안 나눠 인마. 근데 너 여기서 담배 안 피우는 사람 봤냐? 못 봤지? 걔들은 다 어디서 난 거야 그럼? 둘 중 하나야, 걔네 다. 담배를 꼬지하든가 돈을 꼬지해서 담밸 사든가. 뭔 소린지 알겠어?
 

이처럼 ‘에이스형’에게 구걸은 담배와 같은 기호품을 사기 위한 수단이다. 실제로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은 대부분 흡연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담배 보관용’ 담뱃갑을 소지하고 다닌다. 이른바 ‘꼬지’로 얻은 담배를 족족 갑 안에 채워넣기 위해서다. 담배가 남아 있든 그렇지 않든, 기회만 되면 꼬지를 통해 갑 안에 담배를 확보해둔다. ‘에이스형’이 말한 것처럼 대다수 거리 노숙인들이 담배를 나눠 피우는 데 인색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밥이나 술에 비해서는 냉정한 편이다. 결국 흡연을 지속하려면 담배를 얻거나 담배를 구입할 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담배든 돈이든) 꼬지를 할지언정, 일용직을 비롯한 직업을 갖는 데 굳이 미련을 두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담배나 커피, 혹은 술이라는 기호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력시장을 통해 일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구걸’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거리 노숙인에게 구걸이란 ‘죽지 않기 위한 필연적 행동’이라기보다 ‘삶, 그 이상의 무엇을 위한 선택적 행동’이며,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먹고살기 위한’ 구걸이 아니라 ‘부수적 차원에서 수행되는’ 구걸이 훨씬 많다
 

꼬지와 짤짤이, 구걸의 ‘감’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구걸의 공간’으로 생산하는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으면서 ‘감시와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 요컨대 ①서울역 광장과 ②육교다. 이 밖에도 ③‘짤짤이’(거리 노숙인의 은어로, 휴일 등을 이용해 주변 교회나 성당, 예식장, 각 자선단체 등을 돌며 구걸하는 행동) 공간이 ‘구걸의 공간’으로 존재하지만, 이는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종류 또한 다양하다.

서울역 광장에서 10대로 추정되는 남성 무리에게 구걸을 시도했다 실패한 필자에게 ‘최형’과 ‘에이스형’은 이렇게 말했다.
 

최형: 인마야! 너 형이 뭐랬냐? 남자 학생놈들한테는 달려들지 말라고 내가 안 그랬냐?! 아, 이래서 꼬지도 짬밥대로 가라고 하는 거야. 뭣하러 뺀찌 먹고 기분 드~러워지냐? 그 ××들이 뭐 보태준 거 있다고.

에이스형: 너가 정 꼬지해야겠다 싶으면 그냥 아가씨한테 가 인마. 저기 좍~ 봐라! 널린 게 가시나들이구만. 왜 애먼 놈한테 갔다가 뺀찌나 먹냐 인마.
 

이처럼 서울역 거리 노숙인에게는 경험적으로 터득한 ‘감’이 있는데, 이는 ‘시간과 대상, 그리고 구걸할 내용에 따라 차별적으로 공략’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거리 노숙인들이 꼽는 구걸 대상 순위는 (구걸할 내용이 ‘돈’일 경우) 첫 번째가 20~30대 여성, 두 번째가 10대 여성이며, 세 번째는 20~30대 남성, 네 번째 40대 이상의 여성,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10대 남성이다. 그리고 담배를 ‘꼬지’할 경우의 구걸 순위는 첫 번째가 20~30대 남성, 두 번째가 40대 이상의 남성이며, 세 번째는 10대 남성이다. ‘시간’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도 있다.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낮에는 ‘살랑살랑’하게, 밤에는 ‘딸랑딸랑’하게” 해야 한다. 즉 낮에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소극적인 자세로, 그리고 정말 ‘구걸답게’ 꼬지를 시도한다면, 밤에는 좀더 뻔뻔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그리고 ‘강탈에 가까운’ 꼬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낮에 구걸을 하는 거리 노숙인들 중에 굉장히 깔끔한 복장을 한 사람이 종종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말이 되면 인근 교회와 성당, 예식장 등은 전부 ‘구걸의 공간’으로 포섭된다. 이른바 ‘짤짤이 공간’이 추가되는 것이고, 공간에 따른 차별화 전략이 여기서 나타난다. 필자에게 ‘짤짤이’를 권유하며 ‘김간지’는 이렇게 말했다. 
 

김간지: 너도 여기랑 여기 좀 다듬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음, 이번주에 짤짤이 한번 같이 돌아볼래? 와 ×× 이거구나 할 거야 너. 요 옆에 쭈욱 나가면 ○○교회 있지? 그리고 저 건너편에서 ○○ 방향으로 고개 하나 넘어가면 ○○웨딩홀인가 뭐 그거 있지? 그런 데 가서 꼬지 치는 거야. 별거 없어. 특히 교회 같은 데는 은혜받겠다고 오는 ××× 같은 ×들이 많아서 여기서 하는 거랑은 게임이 안 돼, 게임이. 그냥 함 따라와바 인마. 그리고 내일쯤엔 박박 좀 씻고 와. 윗도리는 내가 빌려줄 테니까.  

거리 노숙인의 일부는 이와 같이 ‘짤짤이’를 즐겨한다. 그런 부류의 거리 노숙인들은 대체로 말끔하다. 실제로 ‘김간지’의 경우 다른 노숙인들과 달리 의복에 굉장한 집착을 보이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대다수 거리 노숙인들이 ‘짐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서’ 꼭 필요한 의복을 제외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짤짤이 공간’에서는 대체로 깔끔하고 정돈된 복장과 용모를 내세워 구걸에 임하는 전략이 사용되는데, ‘짤짤이 뛰려는’ 대상 공간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이 조금씩 바뀐다. 가령 교회에서는 (‘김간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어두운, 그리고 동시에 착실해 보이는 인상과 복장”으로, 예식장에서는 “당당하고 빠른 템포로” 구걸을 해야 한다. 물론 거리 노숙인들만의 경험적 ‘감’에 기초한 내용이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한편 ‘구걸의 공간’은 단순히 구걸의 장소일 뿐 아니라 ‘정체성 확립 및 자존감 고취의 공간’으로도 작동하는데, 이는 ‘시민’과의 만남, 그리고 ‘거지’와의 차별화를 통해 발현된다. 
 

이 선생님: (필자를 가리키며) 너, 꼬지가 쪽팔려? 그렇지? 쪽팔리지? 이거 안 한다고 굶어죽는 것도 아닌데 왜 해야 되나 싶지 않아? 간단해. 너 꼬지 말고 사람들이랑 자연스럽게 말 섞을 기회 있어? 없을걸? 넌 젊은 놈이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밖으로 나가야지 인마. 그러려면 꼬지라도 부지런히 해봐. 한푼두푼 벌어오라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랑 계속 만나야 되니까 그런 거야. 불쌍하게 돈 달라고 비는 게 아니야. 잠깐 빌리는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게 맞는 거야.

에이스형: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뭔지 알아? ‘그지××’야 ‘그지××’! 너 내가 그지로 보여? 너나 나나 우리가 그지야? 아니잖아! 돈 없으면 다 그지야? 너 내가 저기 한복판에 엎드려서 돈 달라고 비는 거 봤어? 못 봤지? 바로 그게 내가 그지××들이랑 다른 점이야! 난 필요 없어, 돈! ××게 쪽팔리게 엎드려서 돈 달라고 그 ×× 같은 거 난 안 해! 그러는 ××들이 진짜 그지야, 그지. 요런 데서 산다고 다 그지가 아니라고. 우린 당당하게 허리 쫙 펴고 어깨 쫙 펴고 면상 똑바로 들고 그렇게 말하잖아! 안 준다는 놈 붙잡아놓고 사정해 우리가? 아니잖아 인마! 그리고 쟤네들(시민들을 가리킴)은 서로 담배도 안 빌려 펴? 다 하잖아! 우리도 똑같단 말이야! 가다가 담배도 좀 얻어 피고 그러는 거지. 있으면 좀 없는 사람 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렇다고 진짜 그지처럼 우리가 ‘담배 한 개만…’ 이러는 것도 아니고 ××. 너도 인마 어디 가서 쪽팔리게 굴지 마. 그지×× 취급받기 싫으면. 


요컨대 서울역 거리 노숙인은 ‘거지-노숙인-(주류 사회의) 시민’, 혹은 ‘거지-노숙인과 시민’이라는 계층성을 견지하고 있는데, 구걸을 통해 스스로를 ‘거지가 아닌 노숙인’, 혹은 ‘거지가 아닌 시민’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구걸’은 주류 사회와 엮일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며, 구걸 행위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행위’로 봄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주류 사회와 다른 ‘이질적’ 집단이 아닌 주류 사회와 ‘어우러지는’ 집단으로 위치시킨다. 바로 ‘구걸의 공간’의 한 단면인 ‘정체성 확립 및 자존감 고취의 공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노숙인들은 대부분 거리에서 부유할지라도 시설에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2005년 10월24일 서울역 안에서 웅크리고 앉은 여성.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4.부유의 공간-그들의 시간은 ‘현재’만 있다

지금까지 세 가지 ‘차이의 공간’, 즉 ‘수면의 공간’ ‘취식의 공간’ ‘구걸의 공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그렇다고 구걸을 하지도 않을 때,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부유(浮遊)의 공간’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아래는 필자가 노숙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식사를 한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동료 거리 노숙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이 각각 대답한 내용이다.
 

이 선생님: 뭘 하냐고? 뭐하고 싶은데? 뭐해야 될 거 같은데? 생각나는 거 있어? 어? 와서 어깨라도 주무를래? 어? 다 그래 여기 사람들. 여기가 회사야? 학교야? 여긴 우리 집이잖아. 이게 다 니 거야. 아무거나 하고 아무거나 생각하면 돼.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고. 피해만 안 주면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널 쥐어팰 놈도 없어. 그럼 넌 뭘 할래? 뭐가 하고 싶어?

코트누나: 나라고 좋아서 이래? 돌아갈 집도 없고 돈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찾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별수 있어? 하루하루 이렇게 죽지 못해 사는 거지. 그래도 시설엔 죽어도 안 가. 시설 가서 눌어붙지 말고 여기서 세월아~ 하면서 사는 게 나아. 적응되면 이거만한 것도 없으니까. 누가 뭐라고 하기를 해 아니면 매일매일 뼈 빠지게 일해야 하기를 해? 사람들 눈치? 그거 금방이야. 조금만 있어봐. 곧 그리 될 거야.
 

필자가 접한 거리 노숙인들의 공통점은 뚜렷하게 뭔가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장기적 비전을 토대로 진행되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위한 행위들로 일상이 채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거리 노숙인의 시간축은 철저히 ‘현재’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즉 일반인들과 달리 ‘과거’와 ‘미래’가 없는 것인데, 있더라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거리 노숙인에게 ‘과거를 거울 삼아,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며’라는 개념 따위는, 현재를 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구호일 뿐이다.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간 개념

그들의 시간 개념이 이처럼 조정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하나는 ‘노마드(nomad)적 삶 자체를 즐기게 됐기 때문’이다. 아래의 진술은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이유를 각각 잘 보여준다.
 

난형: 난 여기 있는 다른 애들처럼 몇 년씩 이 바닥에서 굴러본 것도 아니고 딱 1년 됐어, 딱 1년. 처음에? 너랑 똑같았지 ××야. 나도 악착같이 모아서 여기 빨리 뜨려 했고 실제로 일도 ×나게 열심히 했고. 근데 지금 왜 이래 내가? 여기가 다 그래. 쎄가 빠~지게 노력해도 앞이 안 보여 앞이. 그게 처음엔 모질게 이 악물고 버텨도 점점 희망이 없어져. 그럼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너 그거 알지? 사형수랑 무기징역수랑 누가 더 미쳐버릴 거 같은지? 당연히 무기징역수란 말이지! 사형수는 죽으면 땡이야. 근데 무기징역수는? 걔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왜냐? 희망이 있거든! 혹시나 하는 그런 거! 그게 사람 피 말리는 거야. 여기도 똑같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언젠간… 언젠간… 계속 이러는 거야. 그런데 현실은? ×도 없다 이거지~. 그럼 어떡해? 별수 있나. 희망을 버리는 거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담주 걱정은 담주에! 그래서 내가 이렇게 이 ××로 사는 거야. 내 필에 충~실하게! 오케이?

최형: 난 여기가 좋아. 솔직히 니가 믿을랑가 모르겠는데, 내가 길바닥 1년차 때까지 모은 돈에서 좀만 더했으면 난 여기 진~작에 떴어. 근데 그때쯤이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여기 나가면… 그래… 나가면 뭐? 나가서 그래도 대학 물 좀 먹은 놈이라고 뻐기면서 ×라게 일하고, 가족이랑 같이 아등바등 살고. 뭐 뻔한 거 있잖아.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내가 도대체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지? 아 니가 생각을 해봐. 군대 빼고 이렇게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가 어딨어? 안 그래? 너도 이제 슬슬 여기 생활 적응되지 않아?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여기만큼 편한 데가 없어.
 

대부분의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은 ‘난형’ 혹은 ‘최형’의 마인드로 생활한다. 한편 ‘부유의 공간’은 ①유대 형성의 공간, 그리고 ②존재를 드러내는 공간(혹은 은폐의 공간)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먼저 유대 형성의 측면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수면의 공간’과 ‘취식의 공간’이 각각 ‘감성적’ ‘사회적’ 유대 형성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면, ‘부유의 공간’은 ‘그룹 (재)형성’을 위한 유대 형성이 발생하는 장소다. 즉 ‘감성적’ ‘사회적’ 유대 형성이 가능하려면 우선 기본적 친밀감 형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유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령 ‘최형’과 ‘난형’은 2월 중순까지만 해도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지만 서울역 광장과 굴다리에서 술을 마시던 중 마찰이 일어나면서 3월에는 다른 그룹으로 각각 갈라섰으며, 반대로 ‘에이스형’과 ‘김간지’는 잘 모르는 사이였으나 ‘부유의 공간’에서 접촉하고 소통하면서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으면서 은폐하는 사람들

‘부유의 공간’은 ‘존재를 드러내는 공간’(혹은 은폐의 공간)으로도 작동한다. 서울역에는 노숙인 관련 단체나 언론인이 종종 방문하는데, 다음은 거리 노숙인에 대한 르포 기사를 쓰기 위해 한 기자가 찾아온 날 ‘이 선생님’이 한 말이다.
 

이 선생님: 난 항상 기자들을 보면 반갑게 맞아줘. 그래야 기사를 잘 써주거든. 근데 보면 내가 뭐라 씨부리든 지넨 지네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겠다 이거야. 그래도 기자들 오면 나 또 잘해줘. 내가 세상과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리고 난 우리들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으니까. 좀 제대로 말이야. 그래야 마냥 불쌍한 놈 적선해주듯 우리를 안 볼 거 아니냐. 


서울역 노숙 공간 중 지하도와 육교는 (서울역 광장 등에 비해) 폭이 좁다. 이는 일반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이나 역사 내부를 통과할 때 거리 노숙인을 마주치는 경우와, 지하도나 육교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거리 노숙인을 마주치는 경우가 서로 다름을 의미한다. 즉 심리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인데, 거리 노숙인들이 지하도나 육교에서 ‘부유’할 때는 주로 길의 양옆 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민들은 양옆에 늘어서 있는 거리 노숙인들 사이를 지나쳐야만 지하도를, 그리고 육교를 건널 수 있는 것인데, 이때 시민이 느끼는 공포감이나 불쾌감은 넓은 공간에서 거리 노숙인을 마주쳤을 때에 비해 훨씬 크고 강하다. 다시 말해 노숙인들이 전혀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다른 공간에서와 똑같은 행동과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그곳은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공간이 된다는 뜻이다. 요컨대 ‘부유의 공간’에 거리 노숙인이 단지 ‘존재’하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곳은 시민들에게 ‘공포의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결국 거리 노숙인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은폐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서울역 거리 노숙인이 생산해내는 네 가지 ‘차이의 공간’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바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첫째, 거리 노숙인들은 주류 사회의 입맛에 맞게 형성된 공공 공간을, 일상의 소소한 실천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고 전유하고 있다. 둘째,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용함으로써 생산되는 ‘차이의 공간’은, 생존 차원의 ‘욕구’뿐 아니라 욕구 이상의 감성적 차원이 결합된 ‘욕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기로 만들어지며, 일반 시민과 구별되는 그들만의 ‘도구’(시공간 리듬이나 지식, 혹은 그들만의 차별화된 시간 개념 등)가 여기에 사용되고 있다. 셋째, ‘차이의 공간’을 통해 거리 노숙인을 바라본 결과, 그들에 대한 주류 사회의 시각이 잘못됐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거리 노숙인은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을 한다”는 식의 기존 입장에 대해 필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를

물론 이런 주장들을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모든 거리 노숙인이 일률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리 노숙인을, 그리고 그들의 삶과 문화를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필자의 시도를 통해, 그들에 대한 기존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환기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 글을 접하는 누군가가 거리 노숙인을 바라볼 때, 그저 ‘무능력하고 의지가 결여된 존재’나 관심과 동정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으로만 여기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한 번씩 숙고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준호 경희대 지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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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일주일에 한번씩 연재되는 중동고 철학교사 안광복씨의 글이다. 재미나게 보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글이기에 스크랩한다. 예전에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프로에서 뉴욕의 한 식당에 팔 한식 메뉴를 개발하고 직접 판매하는 코너가 나온적이 있다.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왜 우리들은 우리 고유의 음식인 '한식'을 해외 그것도 유럽, 미국, 일본에 알리려 할까? 아니 '알리려'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건 아닐까? 꼭 그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식'은 우리의 전통이기 이전에 우리의 '생존'이며 그냥 그 자체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지 인위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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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 10.11  한식의 세계화는 '어불성설'

4. 차폰, 잔폰, 짬뽕 - 우리는 왜 배추김치를 포기 못할까? 



고추는 유럽에서 별 인기가 없었다. 유럽인들은 고추를 ‘빨간 후추’(red pepper)라고 불렀다. 하지만 고추는 후추에 비해 너무 매웠다. 게다가 고운 가루로 만들기도 마뜩잖았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달달한 맛에 익숙한 그들에게 고추는 ‘머리가 벗겨지게 하는 맛’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마늘과 산초(山椒)는 이미 우리 음식에 널리 쓰이고 있었다. 산초는 비쌀뿐더러 손질하기도 만만찮다. 반면, 고추는 잔뜩 열리는데다가 기르기도 쉬웠다. 고추는 빠르게 산초를 대신해 갔다.

장인용이 쓴 <식전>(食傳)에 따르면, 고추가 인기를 끈 데는 김장김치도 큰 몫을 했다. 김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다. 그런데 소금을 많이 치면 김치 맛이 써진다. 그래서 조상들은 김치에 젓갈을 넣었다. 하지만 젓갈의 비린내는 어떻게 할까? 고추는 이 물음에 답이 되었다. 맵고도 달콤한 고추는 젓갈의 비릿함을 채소와 잘 어우러지게 했다.

요새 김치는 일본에서도 인기다. 한번 굳어진 입맛은 언어와도 같다. 그만큼 바뀌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떻게 해서 김치는 일본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인류학자 주영하 교수는 그 이유를 ‘매운맛’에서 찾는다. 일본인들이라고 매운맛을 피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와사비는 김치의 고추와 똑같은 역할을 한다. 와사비 덕택에 생선 비린내가 가시지 않던가. 일본 우동집에는 고춧가루같이 생긴 ‘시치미가라시’(七味唐辛子) 통이 놓여있다. 고추, 후추, 산초, 겨자, 채종, 마(麻) 열매, 진피, 7가지 재료로 만든 조미료다. 시치미가라시의 맛은 고춧가루만큼이나 맵고 강하다.

일본에서 ‘김치 붐’은 매운맛 인기와 함께 왔다. 김치는 매운 음식의 하나로 일본에 소개되었다. 반대로, 매워진 일본 음식은 우리 음식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김치의 캅사이신은 매우면서도 달고 시원한 맛을 낸다. 반면, ‘불닭’ 같은 음식의 매운맛은 고통스러울 만큼 얼얼하다. 일본에서 요리를 배운 이들은 미국에서 건너온 핫소스를 음식에 넣는 법을 익혔다. 우리 길거리 음식에는 이제 핫소스가 고추장만큼이나 익숙해졌다. 국제화된 입맛은 고추보다 매운 칠리 고추에도 거침없어졌다. 이처럼 음식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바뀌어 간다.

입맛이 바뀌는 데는 식재료 사정도 큰 구실을 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식생활개선운동’을 벌였다. 쌀이 부족한 상황, 사람들이 외국에서 들여오는 밀가루를 좋아해야 식량걱정이 줄어들 테다. 정부는 국수나 빵 같은 밀가루 음식 요리법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서민 음식은 싸고 흔한 식재료를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밀가루 음식에 익숙해진 까닭은 여기에도 있다.

그럼에도 음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입는 옷과 사는 집은 서양식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리의 밥상에는 여전히 밥과 김치가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음식은 자존심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렇지 않다면 김치보다 기무치가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플 이유도 없을 테다.

사실, 문화를 대표하는 음식도 실은 역사가 길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본의 스시는 불과 100여 년 전에 생겨났다. 스시는 에도(도쿄)에서 즉석에서 만들어 팔던 ‘패스트푸드’였다. 중국 옌지(연길)에는 ‘개고기거리’가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의 대표음식으로 개고기 탕과 찰떡, 김치와 냉면을 꼽는단다. 그러나 옌지에서 개고기거리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북적이기 시작했다. 개고기가 여행상품인 ‘소수민족음식’으로 알려진 탓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양냉면, 개성보쌈, 전주비빔밥 등은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평양, 개성, 전주 등 알려진 음식이 있는 곳은 1910년대에 이미 도시의 모습을 갖춘 곳들이다. 조선시대부터 관청이 들어서서 상가가 일찍부터 발달하기도 했다. 식당이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이다. 이처럼, 집에서 먹던 음식보다는 식당의 먹거리가 고향의 대표음식으로 뿌리를 내린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음식이 문화상품으로 바뀌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입맛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한국 음식이 세계적인 상품이 되려면 당연히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중국의 ‘차폰’은 일본으로 건너가 ‘잔폰’이 되었다. 우리에게 와서는 고추기름이 들어간 ‘짬뽕’으로 바뀌었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바뀐 기무치도 김치와는 다른 맛을 낸다. 그렇다면 한식의 세계화를 외쳐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우리가 전해준 음식도 그곳의 ‘고유한’ 먹거리로 바뀌어 버릴 테다.

우리에게 쌀은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동물사료로 쓰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반면,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형편없이 낮다. 사람들이 밥 대신 밀가루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된 탓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밥상은 우리에게서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식의 세계화는 과연 무엇을 뜻할까? 세계인의 입맛에 맞춘 한식은 도리어 우리 식탁의 국적(國籍)을 없애 버리지 않을까?

배추 값이 삼겹살보다 비싼 요즘이다. 그럼에도 배추김치를 포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일부분이다. 정말 소중한 것은 어려울 때 더 절실해진다. ‘돈이 되는 아이템’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고민하기에 앞서, 음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다잡는 일부터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

배추파동은?

2010년, 많은 비 등 이상기온으로 작황이 나빠지자 채소 가격이 크게 올랐다. 배추와 상추 가격이 삼겹살보다 비싸지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중간상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는 청와대의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배추를 둘러싼 소동이 계속되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http://news.nate.com/view/20101011n0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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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논란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인간의 탓이라는 사람과 역사적으로 일어났었던 자연스런 일이다고 보는 부류로 나누어진다. 그런 입장을 대변하는 책들도 현재 서점에 많이 깔려있다.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모두 전제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기후가 인간에게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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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9.15  “기후예측 불확실…온난화는 현재 최선의 결론” 

‘이상기후’라는 말이 이젠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들린다. 올해만 해도 ‘추운 봄’에 이어 ‘가을장마’가 화제다. 들쭉날쭉한 기상 현상을 겪다 보니 일반인 사이에선 일관된 경향을 얘기하는 ‘지구온난화’라는 말도 의심을 받곤 한다. 게다가 지난해 말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코펜하겐 총회를 앞두고 터진 이른바 ‘기후게이트’ 파문으로 기후과학의 신뢰도 흔들렸다. 지구 기후 모델을 연구하는 강인식 서울대 교수(기후역학)를 만나 심층인터뷰를 하기로 한 것은 최근 회의론의 공격 대상이 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연구에 관해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지난 7월에 잠시 귀국한 강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세 차례 만나고, 이달 7일 그의 연구실과 협력연구를 하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대기연구소에서 네번째 만나 얘기를 나눴다.
기후과학의 많은 부분은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데 쓰인다. 강 교수는 “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 더 정확한 관측값, 더 세밀한 방정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벽한 모델이 개발된다 해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구온난화의 결론은 현재 과학이 내놓은 최선, 최고의 결과이며 의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강인식 교수는 누구

엘니뇨·몬순 등 기후의 예측과 지구온난화의 메커니즘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지구 기후 모델(SNUGCM)을 개발했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예측 자료들을 아펙기후센터(APCC), 국제기후예측연구소(뉴욕) 등에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일본·중국·오스트레일리아 등 21개국이 참여한 아펙기후센터(부산)의 설립을 주도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연구팀과 함께 고해상도의 차세대 지구 기후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아펙기후센터 과학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세계기상기구(WMO) 몬순·기후예측 전문가위원. 
 
강인식 교수에게 듣는 기후역학·지구온난화

“저 구름과 숲도 방정식으로”

강이 흐르고 풀과 나무들이 자라며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다. 자연 풍광이 화가에겐 멋진 그림의 모티프가 되겠지만 기후역학자한테는 복잡한 방정식들로 풀어야 할 숙제다. 강 교수나 다른 기후연구자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이다. 연구자들은 고전역학의 기본 방정식(지배 방정식)을 출발점으로 삼고, 거기에 대입할 꼬마 방정식(매개변수)들을 개발한다. 구름이 생기고 비가 내릴 때 열과 에너지는 어떻게 뭉치고 흩어지며, 이산화탄소나 메탄 기체들은 대기 순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무수한 방정식들은 컴퓨터 모델의 논리회로 안에서 작동해 ‘기후예측’이라는 결과값을 토해낸다. 예측은 기후역학자의 작품이다.

- 기후역학이란 말이 낯서네요. 과거 관측값의 통계 분석이 기후과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기후과학의 역학이나 물리학의 역학이나 기본은 마찬가지입니다. 쓰는 방정식이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우리가 쓰는 방정식계는 뉴턴역학에 기초한 유체역학이니까요. 운동량보존, 질량보존, 에너지보존법칙이 다 통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기후역학은 자전을 포함해 지구 현상을 묘사하는 방정식계를 쓴다는 점이고, 또 기후에 영향을 끼치는 지표면의 생태계, 생태계와 대기의 상호작용, 태양열의 복사, 구름의 생성 등을 다룬다는 점이죠. 오랜 관측에서 얻은 경험식도 쓰이죠.”

열흐름 막히는 온실효과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탓
질소·산소는 상관없어요

- 여기에서 지구는 ‘닫힌 계’로 다뤄지는 거고요?

“그렇죠. 태양에서 지구로 에너지가 들어오고, 그 에너지는 지구 안에서 대기와 바다 등의 순환을 일으키고, 나중엔 지구가 뿜어내는 복사열로 빠져나가죠.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가 평형을 이룰 때 지구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죠.”

- 지구온난화는 지구에서 빠져나가야 할 에너지가 제대로 나가지 못해 생기는 거네요?

“지구 온도는 주로 대기와 해양에 의해 조절됩니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 적도엔 상당히 많이 들어오는데 그렇다고 온도가 계속 오르진 않아요. 에너지가 극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갖가지 순환이 일어나죠. 그러면서 지구 자체의 열은 지구 밖으로 나가는데, 온실효과가 생기면 빠져나가야 할 에너지의 흐름이 막히는 거죠. 온실의 비닐에 해당하는 게 수증기(구름)와 이산화탄소입니다. 지구 밖으로 나가는 긴 파장의 복사열을 흡수해요. 대기엔 질소·산소 같은 기체가 99%를 차지하지만 온도 조절엔 역할을 하지 않아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는 적은 양이지만 지구 온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하죠.” 
  
 
» 앞선 5년간(2001~2005) 1월의 평균기온에 견줘, 2006년 1월 기온은 아프리카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러시아 지역 등에서 떨어졌으나 미국 동부에선 올랐다.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는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자료 미국항공우주국 위성 관측   
 
나비효과를 집어삼키는 평균예측

날씨예보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이래 오래됐지만 1~2주일 뒤 날씨를 예측하는 데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나비효과’라는 카오스이론으로 설명된다. 미국 기상학자 로렌츠 교수가 제시한 나비효과 이론은 컴퓨터에서 초기조건 값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도 계산이 진행될수록 불확실성은 증폭돼 어느 정도 뒤엔 큰 차이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도 기후연구자는 어떻게 100년 뒤 기후를 예측하려고 할까?

- 기상학과 기후역학의 기초이론엔 ‘나비효과’가 있죠. 불확실성은 어떻게 다뤄집니까?

“나비효과는 초기조건이 아주 약간 달라도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거죠. 컴퓨터의 반올림 계산이 차이를 증폭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 과학은 불확실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갖춰왔습니다. 그래서 ‘이 모델은 얼마의 예측성을 지닌다’ 이렇게 말하죠. 약간씩 다른 초기조건을 주고서 모델을 돌립니다. 당연히 다른 결과들이 나오죠. 이런 차이들이 불확실성의 크기입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예측이 있는 거죠.”

완벽한 기후예측 못해도
‘평균’ 이용하면 가능해져
‘나비효과’ 잠재울 수 있죠

- 얼마큼 증가하느냐는 불확실하지만 증가 자체는 확실하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우리가 보려는 신호와 불확실성의 크기가 얼마인지 비교해 분석합니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할 때’와 ‘증가하지 않을 때’ 두 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시뮬레이션 하면, 1980년대 이후에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도 증가’ 신호가 불확실성보다 더 크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뚜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델들마다 ‘얼마나’ 그런지는 다르지만 ‘온도 증가’의 신호만은 같습니다.”

- ‘불확실하다’면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모순 같아 보입니다만.

“비유를 하면, 담배 연기의 입자 하나하나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퍼지는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머물렀던 방과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머물렀던 방은 연기 입자의 평균 밀도로 구별할 수 있죠. 평균 안에선 개별 사건의 불확실성은 사라집니다.” 
  
 
» 1979년 9월과 2007년 9월 북극 바다얼음의 면적과 농도 비교. 여름 극소기에 북극 바다얼음은 10년마다 평균 9~10%씩 줄어들었다. 자료 미국항공우주국 위성 관측 
 
기후게이트와 과학의 신뢰

지난해 말 IPCC 코펜하겐 총회가 열리기 직전에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기후연구소에 있던 1천건 넘는 전자우편과 문서 파일이 해킹되면서 지구촌은 이른바 ‘기후게이트’ 파문으로 떠들썩했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과장됐음이 드러났다’는 회의론의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이어 히말라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 2035년이나 그 이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IPCC 보고서가 어느 잡지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드러나 ‘과학의 신뢰’ 논란은 커졌다.

- 기후 연구자로서 기후게이트를 어떻게 보십니까?

“회의론에 관해 먼저 말씀드리면, 우리 과학은 불확실성을 측정하고 평가할 줄 압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불확실성을 다루죠. 그런데 흔히 ‘불확실성이 있으니까 기후과학 전체가 다 불확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물론 과학엔 불확실성이 있고 시뮬레이션 모델이 완벽하진 않아요. 그러나 과학이 최선을 다하는 중에 생겨나는 불확실성과 일반적 의미의 불확실성은 다릅니다. IPCC 보고서의 결론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현재 과학의 최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후게이트’ 회의론자들
대부분 단편적 주장 그쳐
불확실성만 강조 아쉬워

- 과학에 대한 신뢰는 과학자에 대한 신뢰에서 생기죠. 연구자의 윤리가 쟁점이 되면 과학 자체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죠.

“그래서 과학자들이 조심해야죠. 데이터 오용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 기후과학계 안의 문제제기는 없었나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린전(Lindzen) 교수라고, 저명한 기후역학자가 있어요. 이분은 불확실성을 강조해요. 지금의 지구온난화 주장이 과도한 시뮬레이션의 결과일 수 있고 구름을 다루는 방법론에서 이런저런 과학적 문제가 있다는 거였죠. 예측 값보다 실제 값이 더 적을 수 있다고 말하고요. 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최근 연구들에서 린전 교수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아요. 과학적 주장은 정당하게 검증해야죠.”

- 회의론 주장 중에서 일리 있는 건 없습니까?

“회의론은 대부분 단편적인 주장들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지구 기후 시스템에는 내적 변동의 긴 주기로 바뀌는, 20~50년 주기의 변동이 있어요. 바다 순환이 대부분 그것을 제어하죠. 1980~2000년 기온이 가파르게 오른 데엔 이런 내부 변동과 지구온난화가 중첩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추정하는 사람도 많죠.”

완벽한 예측모델의 꿈과 한계

과학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재의 과학은 인류 지식이 지금 수준에서 빚은 최선과 최고의 결과이길 기대할 뿐이다. 당연히 IPCC의 기후 시뮬레이션 모델도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강 교수는 현재 널리 쓰이는 기후 모델들은 해상도도 낮고 세밀한 방정식을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기후역학계에선 ‘차세대 기후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현재 모델엔 어떤 한계가 있는지요?

“무엇보다 지구 기후 현상들에 나타나는 과정들을 더 잘 표현해야겠지요. 에어로솔 같은 미세 먼지가 대기순환에 끼치는 효과나 구름 안에서 이뤄지는 여러 화학적 메커니즘이 잘 표현돼야 하겠고요. 또 컴퓨터의 성능 문제가 있어요. 지금 과학이 제안하는 모델은 슈퍼컴퓨터가 다 감당할 수 없어요. 그걸 재현하려면 1천배 더 빠른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현재 IPCC가 다루는 기후 모델도 대체로 200, 300㎞ 거리 공간을 단위로 삼아 계산합니다. 앞으로 10㎞나 몇㎞ 수준까지 줄여 해상도를 높여야 합니다.”

- 지구촌의 공동연구 방안도 있잖을까요?

“과학계에선 국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구온난화가 중요한 문제인데도 국제 공동연구 기관이 없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유엔과 모든 나라들이 투자해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대량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4398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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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도시빈민들의 귀농현상에 관련한 글이 있어 스크랩한다. 혹자들은 귀농하면 느긋하게 노년을 즐기려, 자연을 벗삼아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을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도시에서의 도피처로 삼는 이들이 더 많은 듯 하다. 지리적인 직주분리 현상과도 관련된 내용이기도 하다. 지리학자의 글이지만 단순히 지리적이기보다는 학제적인 성격이 강한것 같다. 좀 내용이 길지만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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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0.8월(23호)  귀농한 도시 빈민들, 더 끔찍한 가난에 갇히다  

가티앵 엘리, 알랑 포플라르, 폴 바니에 - 지리학자 

몽펠리에에서 자동차로 45분쯤 떨어진 곳에 강주라는 도시가 있다. 에로 강 지류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구 4천 명의 시골 도시다. 몽펠리에 북쪽에 위치한 ‘꿈을 실현해낸 이 도시’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유로메드신과 아그로폴리스 기술단지 사이로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몽펠리에가 끝난다. 이때부터 포도밭과 랑그도크의 구릉지대를 지나는 직선도로가 펼쳐진다. 이윽고 세벤 초입에 이르면 직선도로는 구불구불한 시골길로 변한다. 강주는 일자리와 편의시설을 갖춘 몽펠리에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의외로 꾸준히 이주민이 늘고 있다. 1992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이들의 수는 어림잡아 1천 명에 달한다.

빚더미 해결 못해 시골행 선택

몽펠리에 시 외곽에 살다가 조기 퇴직한 베르나르와 크리스틴 부부(1)는 2008년 강주를 찾았다. 남자는 도시청소 용역회사 ‘니콜랭’에서 일했고, 여자는 지역 중학교에서 미화원으로 일했다. 퇴직 시기가 되자 이 부부의 소득은 급격히 줄었다. 이들은 퇴직 전에 받은 신용대출을 상환해야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빚더미에 앉아 늘어나는 가계지출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지방세 인상이 쐐기를 박았다. 이들은 결국 몽펠리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음은 모두 우연에 의해 일이 진행됐다. 우연히 시골에 저렴한 집 한 채를 구했다. 지방세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고, 몽펠리에에서 5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고 부부는 말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우연이란 필연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그저 이들이 필연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 부부나 혹은 이들과 비슷한 인생 역정의 예를 살펴보면, 농촌 인구가 20년 전부터 다시 증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도시민 이주 현상은 기존에 도시 외곽에만 제한돼 있던 데서 벗어나 이제는 이름 모를 시골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시골 도시의 4분의 3에서 인구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농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해석한다. 마침내 수십 년 소외의 역사에서 벗어나 ‘농민의 몰락’과 ‘향토의 종말’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2) 하지만 사회·지리학적 차원에서 동태 분석을 해보면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동안 귀촌은 중산층이나 상위층, 혹은 가족과 시골에 단독주택을 마련해 좀더 안락한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젊은 회사 중역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민층도 도시를 떠나 귀촌한다. 이에 따라 농촌의 사회학적 양상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농촌 인구의 60%는 일용직 노동자나 임금노동자가 차지한다.(3)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던 산업혁명 시기에는 소농민이나 장인이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요즘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특히 가장 빈곤한 가정(4))가 부동산 가격 인상을 견디다 못해 도시 밖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도시화의 부산물로 치부한 1970년대 도시 정책으로 인해, 이런 변화의 본질은 뒤로 묻혀버렸다. 그러나 오늘날 94개 도 중 90개 도에서 도시보다 시골의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농촌 세계의 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시골 빈곤 문제의 중심에는 신흥 빈곤층의 등장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느는 인구, ‘농촌의 부활’?

“이곳은 콜로라도의 축소판이다. 저 아래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정말이지 지상낙원이나 다름없다. 여름이면 저마다 이곳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고 실비가 설명했다. 그녀는 10년 전 직장을 잃고 파리를 떠나 처음 강주에 왔다. 다른 단기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여름휴가철 강주의 매력에 빠졌다. 사방을 둘러싼 산들이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에로강변에서는 기분 좋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시청 광장도 끝내준다. 광장에 즐비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오늘날 도시는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운 전원의 삶을 예찬하며 도시민을 유혹한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더라도 집세가 저렴하기 때문에, 전원생활은 전혀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퇴직 시기가 되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혹은 직장에서 쫓겨난 다음 강주에 새로이 보금자리를 튼다.

1970년대에 이르러, 환경이 새로운 정치 화두로 떠오르고 일부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우며 천편일률적인 도시생활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전원의 삶이 지닌 긍정적 가치를 새로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도시의 삶에 대한 비판이 자본주의와 만나 전원의 삶은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에 편입된다. 하지만 이런 ‘문화접변’(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해 새로운 문화 형식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역자) 현상은 부동산 개발업자나 심지어 ‘향토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지역의원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지역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5) 지역의 상업적 이용 현상(특히 지중해 연안 지역의 마케팅)이나 대도시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등장한 농촌 문화 붐(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된 친환경 제품 시장)이 신흥 빈곤층의 환상을 만들어냈고, 이 환상을 통해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사회·지리학적 유배 현상을 승화시켰다.

빈곤, 도시보다 시골이 심각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금세 저마다 불행한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고 실비는 말한다. 가을이 되면 세벤 지역 특유의 소나기와 폭우가 마시프 상트랄(프랑스 중남부 산지-역자)의 산줄기를 거세게 두드린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온대기후에 속해 있지만, 세벤은 의외로 겨울이 길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매년 9월이면 복지 상담자가 줄을 잇는다. 이들은 여름의 강주만 보고 1년 내내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캠핑촌으로 이주했다가, 가을의 악천후나 매서운 겨울에 실망한다”고 말했다.

강주에 차갑고 짙은 안개가 끼는 계절이 찾아오면 아파트로 이사온 새 입주민은 다시 한번 당황한다. 프랑스의 다른 농촌 지역처럼 강주의 집들은 모두 1949년 이전에 지어졌다. 구멍 뚫린 지붕, 방음이 되지 않는 창문, 옛날에 설치된 구식 전기 설비 등 집들이 대체로 노후하다. 세벤의 낡은 아파트는 열악하다.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있지만 집이 거의 폐가 수준”이라는 게 실비의 설명이다. 겨울이면 벽이나 높은 천장에서 스며나오는 습기 때문에 집이 거의 냉동고나 다름없다. 도무지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등유 탱크가 비거나, 전기세를 낼 형편이 안 되면 석유난로를 중심으로 생활 동선이 재편된다.

새 입주민들은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츰 소득이 주는 것을 경험한다. 쥐꼬리만 한 퇴직금이 월급을 대신하게 되고, 실업수당도 차츰 줄어든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월 460유로의 ‘능동적 연대소득’(6)(RSA·실업수당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재취업하는 실업자에게 그 차액만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역자)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된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헤어나기 힘든 늪이다. 저렴한 집세에 끌려 이주했다가는 일자리가 많은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재취업이 어려워진다. 도시는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에 의해 경제활동이 다각화·집중화되고 있지만, 농촌의 일자리는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을뿐더러, 다양성도 떨어지고 희귀하기까지 하다.

그림 같은 풍광, 여름에만 좋았다

안느는 병에 걸려 직장을 그만둔 뒤, 딸을 데리고 몽펠리에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비싼 집세 때문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처음에는 몽펠리에에서 15km, 그 다음은 20km…, 그러다 강주를 발견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일단 일자리가 널려 있는 큰 지방도시에서 멀어지자 실업과 잡업,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일자리도 없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그녀가 털어놓았다. 안느는 현재 한 공립 초등학교에 시간제 비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월급 810유로에 빚까지 진 그녀는 툭하면 빈민무료식당(Resto du Coeur)이나 푸드뱅크(식품을 기탁받아 이를 소외 계층에 지원하는 식품 지원 복지 서비스-역자)를 전전하기 일쑤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큰 도시 근처로 이사해 다시 일자리를 얻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폐가 다름없는 주택, 말라버린 돈줄

강주에서는 경제활동인구의 15%가 실업자이고(강주가 속한 에로도가 13.7%, 프랑스 전체는 10%),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이 시간제로 일한다.(7) 처음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합성섬유가 등장하더니 그다음에는 아시아 국가의 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예전에 황금기를 구가하던 지역 섬유산업은 퇴락의 길을 걸었다. 한창 때 강주의 방적회사들은 세벤 지방의 양잠장에서 나오는 명주실로 전세계로 수출될 고급 스타킹을 생산했다. 하지만 요즘 이곳 일자리의 80%는 섬유산업이 아닌, 여름철 관광 숙박산업이다.

점점 대도시를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반대로 일자리는 주요 도시에 집중되고 있다. 사람과 일자리의 분포 지역이 서로 다르다 보니, 매일 거주지에서 직장까지 원거리로 출퇴근할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 농촌 지역은 빈곤의 무게를 더욱 가중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30km나 떨어진 곳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오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기름값을 추가로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차는 낡아서 덜컥 고장이라도 나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대중교통 시설이 열악한 이 지역 주민에게 도의회 버스는 자가용을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시간은 금이요, 최대한 활동 거리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최대 미덕이라는 기치 아래, 지배층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공간을 구조화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은 사회·지리적 차원에서 항상 임금노동자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구축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성을 요구하는 것은 빈곤과 소외를 더욱 부추기는 촉진제와 같다.(8) 지리학자 장피에르 오르페이유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이동성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는 빈부 격차를 판가름하는 요소다. 나아가 빈과 부의 대물림까지 결정한다.”(9)

일자리는 대도시에만 몰려 있는 법

계급 추락의 마지막 단계는 귀촌이다. 사실 농촌으로 이주하면 적은 돈으로도 더 잘 살아야 맞다. 하지만 새로운 생활공간에서 비롯되는 자원을 이용해, 생계(어떤 이들은 ‘항전’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전략을 찾아내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시장을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텃밭을 가꾸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이 한 푼도 없는 이들에게 농촌은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사회적 자본, 즉 경제력과 권력이 세대 간에 대물림되는 것을 의미-역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줄 기적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만성 실업자가 되어 ‘능동적 연대소득’으로 연명하며 빈곤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이 지역 사회복지 담당자 알랭 샤펠은 “빈곤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력을 더욱 보강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주에 배속된 복지사는 모두 3명이다. 10년 전만 해도 1명이면 족했다. 자크 리고 강주시장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강주의 푸드뱅크가 지원하는 사람이 족히 300명이나 된다. 하지만 빈곤층이 늘면서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점점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당국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리고 시장은 “5년 전, 빈곤 가정에 세를 줄 요량으로 낡은 주택을 매입하는 투자자가 대거 등장했다”고 말한다. 대도시 빈민가에서처럼 이곳에도 세입자를 등쳐먹는 악덕 임대인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낡은 주택을 전혀 손보지 않은 채 저렴한 주택 수요에만 의지해, 형언할 수 없이 열악한 집을 빌려주고 세를 받아먹는다. 저렴한 집세는 이곳으로 극빈층을 유혹하고 집중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차츰 빈민시장이 형성됐다.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집을 임대하며 돈을 버는 투자자가 다가 아니었다. 항상 최적의 입지 지역을 찾아다니는 하드디스카운트 스토어도 짭짤한 사업거리를 찾아나섰다. 할인전문점 ‘리들’은 낡은 옛 협동 양조장(Cave Cooperative·와인 생산자들이 연합해 만든 회사 및 조합-역자) 건물에 새 매장을 오픈했다. 다른 두 슈퍼마켓 할인점 ‘알디’와 ‘리더 프라이스’도 현재 점포 부지를 물색 중이다.

시골로 확대되는 구호단체 활동

빈곤층이 한곳에 집중되는 현상은 이곳에 많은 구호단체가 몰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1만 명이 사는 작은 시골 도시에 푸드뱅크에서 ‘대중구호’, ‘가톨릭 구호’, ‘구세군’, ‘마음의 식당’(빈민 무료 식당-역자)까지 극빈층을 도우러 오는 단체가 줄을 잇는다. ‘대중구호’ 지역 담당자 나탈리 톨렐은 연간 350명, 겨울철에는 550명 이상을 상대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임금자, 퇴직자, 노숙자, 가족이 해체된 젊은이 등 대상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도시를 떠났지만, 농촌에서 도로 가난과 재회한 이들이다. 도시 탈출 현상이 심화되자 ‘대중구호’는 주변의 작은 시골 도시까지 구호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여러 작은 시골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지만, 베다리외시에도 새로 지역 사무소를 개설하기로 결정했다.

도시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흔히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시골에서의 삶이 일종의 사회적 목회(Social Ministry·교회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목회 활동-역자)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농촌 지역은 사회적 차원에서 불균형한 양상을 보인다. 일단 도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중산층이나 상위층이 주를 이루는 몇몇 도시는 비싼 토지를 무기로 내세우며 서민층이 자기네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막고 있다.(10)

각각의 작은 시골 도시 차원에서도 똑같은 사회계급 분리 논리가 작용한다. 강주에서도 도시의 전형인 공간 분리, 즉 폐쇄형 주택 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돈 가진 자에게 자기들끼리의 안전한 삶을 제안한다.

이로 인해 이제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구별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농촌 이주민은 여전히 도시와 시골은 엄연히 다르다고 느낀다. 단지 그 차이가 역전됐을 뿐이다. 이제 이들에게 잃어버린 낙원은 전원생활의 진정성이 아닌 도시의 불빛이다. 가령 이들은 “도시생활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는데, 모두가 알고 지내며 자유롭게 담소를 즐기곤 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제 도시는 정겨운 마을이 되고, 반대로 시골 마을은 ‘게토’로 그려진다. ‘게토’는 시골 마을 사회복지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다. 이들은 예전에 일하던 도시 외곽 빈민가와 지금 일하고 있는 시골 마을이 별반 차이 없다고 여긴다.

도시는 그들의 귀환을 거부한다

귀촌한 도시민 중엔 도시의 상업화된 오락 공간과 인위적으로 연출된 활기의 공간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겐 대형 할인점 ‘오샹’이 있었다. 몽펠리에에서의 생활은 아주 좋았다”고 말한다. 앙티곤 지구와 대형 상업센터 ‘폴리곤’, 그리고 복합센터·프랜차이즈 레스토랑·대형할인점 등이 즐비한 오디세움 신흥지구까지 연극무대 연출에 가까운 도시 개발이 비정상적인 환상을 낳았다.

몽펠리에는 다른 도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프랑스에서 몽펠리에만큼 시 단위로 대대적인 개발 정책이 진행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직 시장이자 현재 몽펠리에 도시공동체 회장으로 있는 조르주 프레시는 도시 유토피아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고대 격언을 포스트모던적으로 짜깁기한 말로 ‘지중해 거점 도시’라는 신화를 현실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랑그도크 지역의 이 도시는 시장 자유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신자유주의적 시행정의 모태가 되었다.(11) 몽펠리에의 실험적인 정책은 이후 다른 지역 의원들에게도 전범이 되었다. 이제 의원의 가치는 얼마만큼 시의 상업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첨단기술 기업을 유치하느냐에 결정된다.

에로 지역으로 이주하는 인구는 매달 1천 명에 달한다. 가히 기록적인 이주율이다. 빈곤층은 도시 중산층을 위해 대형 세탁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몽펠리에에서 내몰려 먼 시골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현대판 아테네’와 다름없는 몽펠리에에서는 소수의 자유 시민에게만 사회적 장소를 소유하고 누릴 권리가 주어진다. 도시는 최초의 단계이자, 유형을 예비하는 이행기다.

글•가티앵 엘리 Gatien Elie, 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폴 바니에 Paul Vannier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이 이름은 가명이다.
(2) 각각 지리학자 베르나르 케제르, 사회학자 앙리 망드라, 역사학자 으젠 베베르가 저술한 책 이름이다.
(3) 크리스토프 귈리, 크리스토프 누아이에, <프랑스 신사회 격차 지형도>, 오트르망출판사, 파리, p.38, 2006.
(4) 프랑스에서 빈곤선(Poverty Line)은 1인의 경우 757~908유로로 다양하다. 이 정의에 따르면, 420만~800만 명이 빈곤계층에 속한다.
(5) 브누아 메로냉, <지역 마케팅>, 뷔베르, 파리, 2009.
(6) 자녀가 없는 개인이 받는 금액이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690.14유로를 받는다.
(7) 2009년 말. www.insee.fr 참조.
(8) 뱅상 두메롱, ‘이동의 자유 위해 주거권을 약탈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4월.
(9) <교통, 빈곤, 소외: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이동성을 갖추라>, 로브출판사, 라 투르데그, 2004.
(10) 이 도의 ‘작은 스위스’로 불리는 이웃한 카즈비엘 시의 경우, 개량 토지 가격이 ㎡당 70유로다. 토지이용계획상에 각 필지를 1천㎡ 이상으로 잡아, 저소득층의 접근을 막고 있다.
(11) ‘빛바랜 개혁, 불타는 디트로이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4월.
(12) 앙리 르페브르는 저서 <도시권>(에코노미카 앙드로포스·파리·2009)에서 현대 도시를 고대 아테네 도시와 비교했는데, 이 미학적 모델을 조르주 프레시가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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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6.28 ‘궁즉통’ 기술로 쇳물 생산원가 줄인다 

» 포스코 광양제철소 원료 야적장에서 바람이 불어도 철광석, 석탄 등 원료가 날아가지 않도록 코팅제를 뿌리고 있다. 포스코 제공 

“모래 같은 가루 철광석을 기껏 덩어리(소결)로 만들었는데, 25m 높이의 저장설비로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30~40%가량은 잘게 부서져버리는 겁니다. 큰 골칫거리였죠.”(김재왕 소결공장장)

포스코 광양제철소 소결공장 직원들은 머리를 맞댄 끝에 해결책을 찾았다. 저장설비 사이를 막고 있는 16개 격판에 ‘구멍을 뚫자’는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소결이 떨어지면서 구멍을 통해 옆칸으로 흘러내리게 함으로써 떨어질 때 충격을 최소화한 것이다. 용광로에 들어가는 철광석은 덩어리 형태로 수입한 괴광이 20%, 가루 형태인 분광을 덩어리로 만든 소결 제품이 80%다. 괴광이 t당 5만~6만원 비싸기 때문에, 소결 비중을 늘릴수록 원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이 아이디어로 포스코는 연간 63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광양제철소 생산공정 곳곳엔 이런 원가절감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최근 철광석과 석탄 값은 ‘금값’ 못지않게 무섭게 치솟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주요 나라의 원료 공급사들은 지난해보다 90~100% 가격인상을 요구한다. 급등하는 원료값 탓에 지난 40년동안 연간으로 맺던 계약을 분기 단위로 바꿔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포스코는 ‘궁즉통’(궁하면 통한다)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원가절감 기술 개발에 나섰다. 3분기 제품 가격 인상폭이 애초 예상했던 10%보다 낮은 평균 6%로 결정된 것도 이 덕분이다.

유연탄과 철광석을 쌓아두는 야적장에서부터 ‘원료 아끼기 전쟁’은 시작된다. 가루 형태의 철광석이 20㎧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도록 표면에 코팅제를 뿌려두는 것이다. 유연탄 가루를 덩어리로 만드는 코크스 공장에선 값싼 탄으로 보다 많은 양의 코크스를 생산해내기 위해 배합 비율 조절에 머리를 싸맨다. 

  

‘제철소의 심장’이라 불리는 4고로에선 뜨거운 쇳물이 1분당 5~6t씩 쏟아져 나온다. 용광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원리는 시루에서 떡을 찌는 것과 비슷하다. 석탄과 철광석을 층층이 용광로에 쌓은 뒤, 밑에서 42개 바람구멍을 통해 1200도의 열풍을 불어넣는다. 용광로 꼭대기에서 원료를 얼마나 잘 뿌리느냐, 바람이 얼마나 골고루 위로 올라가느냐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달라진다. 중앙운전실 모니터를 통해선 온도, 산소량, 바람의 압력 등을 점검한다. 최지영 4고로 공장장은 “값싼 원료로 고품질의 쇳물을 많이 뽑아내려면 고로 안쪽 불순물 비율을 낮추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4고로는 연간 500만t 이상의 쇳물을 생산해, 단일 고로로선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순물을 제거한 쇳물을 코일 형태로 변형시키는 압연공장에선 코크스 공장에서 나오는 가스를 연료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한다. 냉연공장과 도금공장에선 생뚱맞은 ‘방충망’이 눈에 띈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에 쓰이는 철판은 ‘매끄러운 표면’이 생명인데, 여름철엔 벌레가 달라 붙는 사고가 자주 발생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다. 이 역시 직원들 아이디어다.

이런 다양한 노력을 통해 포스코는 올해 1조1500억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지난해 포스코 영업이익 3조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원가절감의 결실이다. 회사는 한달에 한차례씩 ‘궁즉통’ 기술을 심사해 포상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아이디어 생산을 풀무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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