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논란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인간의 탓이라는 사람과 역사적으로 일어났었던 자연스런 일이다고 보는 부류로 나누어진다. 그런 입장을 대변하는 책들도 현재 서점에 많이 깔려있다.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모두 전제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기후가 인간에게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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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9.15 “기후예측 불확실…온난화는 현재 최선의 결론”
‘이상기후’라는 말이 이젠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들린다. 올해만 해도 ‘추운 봄’에 이어 ‘가을장마’가 화제다. 들쭉날쭉한 기상 현상을 겪다 보니 일반인 사이에선 일관된 경향을 얘기하는 ‘지구온난화’라는 말도 의심을 받곤 한다. 게다가 지난해 말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코펜하겐 총회를 앞두고 터진 이른바 ‘기후게이트’ 파문으로 기후과학의 신뢰도 흔들렸다. 지구 기후 모델을 연구하는 강인식 서울대 교수(기후역학)를 만나 심층인터뷰를 하기로 한 것은 최근 회의론의 공격 대상이 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연구에 관해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지난 7월에 잠시 귀국한 강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세 차례 만나고, 이달 7일 그의 연구실과 협력연구를 하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대기연구소에서 네번째 만나 얘기를 나눴다.
기후과학의 많은 부분은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데 쓰인다. 강 교수는 “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 더 정확한 관측값, 더 세밀한 방정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벽한 모델이 개발된다 해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구온난화의 결론은 현재 과학이 내놓은 최선, 최고의 결과이며 의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강인식 교수는 누구
엘니뇨·몬순 등 기후의 예측과 지구온난화의 메커니즘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지구 기후 모델(SNUGCM)을 개발했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예측 자료들을 아펙기후센터(APCC), 국제기후예측연구소(뉴욕) 등에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일본·중국·오스트레일리아 등 21개국이 참여한 아펙기후센터(부산)의 설립을 주도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연구팀과 함께 고해상도의 차세대 지구 기후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아펙기후센터 과학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세계기상기구(WMO) 몬순·기후예측 전문가위원.
강인식 교수에게 듣는 기후역학·지구온난화
“저 구름과 숲도 방정식으로”
강이 흐르고 풀과 나무들이 자라며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다. 자연 풍광이 화가에겐 멋진 그림의 모티프가 되겠지만 기후역학자한테는 복잡한 방정식들로 풀어야 할 숙제다. 강 교수나 다른 기후연구자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이다. 연구자들은 고전역학의 기본 방정식(지배 방정식)을 출발점으로 삼고, 거기에 대입할 꼬마 방정식(매개변수)들을 개발한다. 구름이 생기고 비가 내릴 때 열과 에너지는 어떻게 뭉치고 흩어지며, 이산화탄소나 메탄 기체들은 대기 순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무수한 방정식들은 컴퓨터 모델의 논리회로 안에서 작동해 ‘기후예측’이라는 결과값을 토해낸다. 예측은 기후역학자의 작품이다.
- 기후역학이란 말이 낯서네요. 과거 관측값의 통계 분석이 기후과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기후과학의 역학이나 물리학의 역학이나 기본은 마찬가지입니다. 쓰는 방정식이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우리가 쓰는 방정식계는 뉴턴역학에 기초한 유체역학이니까요. 운동량보존, 질량보존, 에너지보존법칙이 다 통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기후역학은 자전을 포함해 지구 현상을 묘사하는 방정식계를 쓴다는 점이고, 또 기후에 영향을 끼치는 지표면의 생태계, 생태계와 대기의 상호작용, 태양열의 복사, 구름의 생성 등을 다룬다는 점이죠. 오랜 관측에서 얻은 경험식도 쓰이죠.”
열흐름 막히는 온실효과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탓
질소·산소는 상관없어요
- 여기에서 지구는 ‘닫힌 계’로 다뤄지는 거고요?
“그렇죠. 태양에서 지구로 에너지가 들어오고, 그 에너지는 지구 안에서 대기와 바다 등의 순환을 일으키고, 나중엔 지구가 뿜어내는 복사열로 빠져나가죠.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가 평형을 이룰 때 지구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죠.”
- 지구온난화는 지구에서 빠져나가야 할 에너지가 제대로 나가지 못해 생기는 거네요?
“지구 온도는 주로 대기와 해양에 의해 조절됩니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 적도엔 상당히 많이 들어오는데 그렇다고 온도가 계속 오르진 않아요. 에너지가 극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갖가지 순환이 일어나죠. 그러면서 지구 자체의 열은 지구 밖으로 나가는데, 온실효과가 생기면 빠져나가야 할 에너지의 흐름이 막히는 거죠. 온실의 비닐에 해당하는 게 수증기(구름)와 이산화탄소입니다. 지구 밖으로 나가는 긴 파장의 복사열을 흡수해요. 대기엔 질소·산소 같은 기체가 99%를 차지하지만 온도 조절엔 역할을 하지 않아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는 적은 양이지만 지구 온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하죠.”
» 앞선 5년간(2001~2005) 1월의 평균기온에 견줘, 2006년 1월 기온은 아프리카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러시아 지역 등에서 떨어졌으나 미국 동부에선 올랐다.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는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자료 미국항공우주국 위성 관측
나비효과를 집어삼키는 평균예측
날씨예보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이래 오래됐지만 1~2주일 뒤 날씨를 예측하는 데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나비효과’라는 카오스이론으로 설명된다. 미국 기상학자 로렌츠 교수가 제시한 나비효과 이론은 컴퓨터에서 초기조건 값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도 계산이 진행될수록 불확실성은 증폭돼 어느 정도 뒤엔 큰 차이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도 기후연구자는 어떻게 100년 뒤 기후를 예측하려고 할까?
- 기상학과 기후역학의 기초이론엔 ‘나비효과’가 있죠. 불확실성은 어떻게 다뤄집니까?
“나비효과는 초기조건이 아주 약간 달라도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거죠. 컴퓨터의 반올림 계산이 차이를 증폭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 과학은 불확실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갖춰왔습니다. 그래서 ‘이 모델은 얼마의 예측성을 지닌다’ 이렇게 말하죠. 약간씩 다른 초기조건을 주고서 모델을 돌립니다. 당연히 다른 결과들이 나오죠. 이런 차이들이 불확실성의 크기입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예측이 있는 거죠.”
완벽한 기후예측 못해도
‘평균’ 이용하면 가능해져
‘나비효과’ 잠재울 수 있죠
- 얼마큼 증가하느냐는 불확실하지만 증가 자체는 확실하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우리가 보려는 신호와 불확실성의 크기가 얼마인지 비교해 분석합니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할 때’와 ‘증가하지 않을 때’ 두 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시뮬레이션 하면, 1980년대 이후에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도 증가’ 신호가 불확실성보다 더 크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뚜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델들마다 ‘얼마나’ 그런지는 다르지만 ‘온도 증가’의 신호만은 같습니다.”
- ‘불확실하다’면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모순 같아 보입니다만.
“비유를 하면, 담배 연기의 입자 하나하나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퍼지는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머물렀던 방과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머물렀던 방은 연기 입자의 평균 밀도로 구별할 수 있죠. 평균 안에선 개별 사건의 불확실성은 사라집니다.”
» 1979년 9월과 2007년 9월 북극 바다얼음의 면적과 농도 비교. 여름 극소기에 북극 바다얼음은 10년마다 평균 9~10%씩 줄어들었다. 자료 미국항공우주국 위성 관측
기후게이트와 과학의 신뢰
지난해 말 IPCC 코펜하겐 총회가 열리기 직전에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기후연구소에 있던 1천건 넘는 전자우편과 문서 파일이 해킹되면서 지구촌은 이른바 ‘기후게이트’ 파문으로 떠들썩했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과장됐음이 드러났다’는 회의론의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이어 히말라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 2035년이나 그 이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IPCC 보고서가 어느 잡지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드러나 ‘과학의 신뢰’ 논란은 커졌다.
- 기후 연구자로서 기후게이트를 어떻게 보십니까?
“회의론에 관해 먼저 말씀드리면, 우리 과학은 불확실성을 측정하고 평가할 줄 압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불확실성을 다루죠. 그런데 흔히 ‘불확실성이 있으니까 기후과학 전체가 다 불확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물론 과학엔 불확실성이 있고 시뮬레이션 모델이 완벽하진 않아요. 그러나 과학이 최선을 다하는 중에 생겨나는 불확실성과 일반적 의미의 불확실성은 다릅니다. IPCC 보고서의 결론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현재 과학의 최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후게이트’ 회의론자들
대부분 단편적 주장 그쳐
불확실성만 강조 아쉬워
- 과학에 대한 신뢰는 과학자에 대한 신뢰에서 생기죠. 연구자의 윤리가 쟁점이 되면 과학 자체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죠.
“그래서 과학자들이 조심해야죠. 데이터 오용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 기후과학계 안의 문제제기는 없었나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린전(Lindzen) 교수라고, 저명한 기후역학자가 있어요. 이분은 불확실성을 강조해요. 지금의 지구온난화 주장이 과도한 시뮬레이션의 결과일 수 있고 구름을 다루는 방법론에서 이런저런 과학적 문제가 있다는 거였죠. 예측 값보다 실제 값이 더 적을 수 있다고 말하고요. 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최근 연구들에서 린전 교수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아요. 과학적 주장은 정당하게 검증해야죠.”
- 회의론 주장 중에서 일리 있는 건 없습니까?
“회의론은 대부분 단편적인 주장들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지구 기후 시스템에는 내적 변동의 긴 주기로 바뀌는, 20~50년 주기의 변동이 있어요. 바다 순환이 대부분 그것을 제어하죠. 1980~2000년 기온이 가파르게 오른 데엔 이런 내부 변동과 지구온난화가 중첩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추정하는 사람도 많죠.”
완벽한 예측모델의 꿈과 한계
과학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재의 과학은 인류 지식이 지금 수준에서 빚은 최선과 최고의 결과이길 기대할 뿐이다. 당연히 IPCC의 기후 시뮬레이션 모델도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강 교수는 현재 널리 쓰이는 기후 모델들은 해상도도 낮고 세밀한 방정식을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기후역학계에선 ‘차세대 기후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현재 모델엔 어떤 한계가 있는지요?
“무엇보다 지구 기후 현상들에 나타나는 과정들을 더 잘 표현해야겠지요. 에어로솔 같은 미세 먼지가 대기순환에 끼치는 효과나 구름 안에서 이뤄지는 여러 화학적 메커니즘이 잘 표현돼야 하겠고요. 또 컴퓨터의 성능 문제가 있어요. 지금 과학이 제안하는 모델은 슈퍼컴퓨터가 다 감당할 수 없어요. 그걸 재현하려면 1천배 더 빠른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현재 IPCC가 다루는 기후 모델도 대체로 200, 300㎞ 거리 공간을 단위로 삼아 계산합니다. 앞으로 10㎞나 몇㎞ 수준까지 줄여 해상도를 높여야 합니다.”
- 지구촌의 공동연구 방안도 있잖을까요?
“과학계에선 국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구온난화가 중요한 문제인데도 국제 공동연구 기관이 없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유엔과 모든 나라들이 투자해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대량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4398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