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의 젊은 연주자들이 많은 것 같다. 장한나, 김선욱, 손열음, 신현수, 서울시향의 부지휘자인 성시현까지. 얼마 전 신문에 주미 강이란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얼핏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았는데, 기사를 통해서 좀 더 알게되었다. 콩쿠르 입상 성적도 대단하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대부분의 실력있는 젊은 음악가들의 집안 내력을 보면 부모나 형제들이 모두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가정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소리겠다.
그리고 이름에 클라라를 붙인게 피아노를 하라는 의미에서 클라라 하스킬의 이름을 어머니가 붙였다고 한다. ㅋㅋ 부모의 마음은 거진 거기서 거긴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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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 1. 7 자신을 더욱 자극하고 싶은 ‘화려한 손놀림’
»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
[2011 공연계 주목 이 스타] ②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
국내외 클래식계 유망주로 꼽혀
독주회·녹음작업 등 일정 빡빡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자가 꿈”
2009년 봄 서울국제콩쿠르 우승, 가을 하노버국제콩쿠르 2위, 그리고 2010년 봄 센다이국제콩쿠르 우승, 가을 인디애나폴리스국제콩쿠르 우승. 스물네살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가 지난 2년간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으로는 실로 눈부시다. 특히 인디애나폴리스콩쿠르는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에 가입된 미국 유일의 바이올린콩쿠르다. 4년에 한번씩 개최되며 네번의 무대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가려낼 정도로 까다로워 세계 3대 콩쿠르로 손꼽힌다.
“지난해 유명한 두 콩쿠르에서 우승해서 너무 기뻤지만 그 전후의 스케줄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좀더 연주회를 못했던 것이 늘 아쉬웠어요. 심지어 외젠 이자이 전곡 녹음이 연기된 일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올해부터 더 열심히 연주해야죠.” 올 한해 국내외 클래식 음악계에서 바쁜 활약이 기대되는 클라라 주미 강(본명 강주미·사진)씨는 지난해 활동에 대해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제가 토끼띠잖아요. 토끼띠들이 욕심 많고 잘난 것 같아요.” 173㎝의 큰 키에 아직도 앳된 얼굴, 여전히 10대 소녀로 보이는 젊은 연주자는 시원시원하고 막힘이 없었다. “20대는 가장 많이 변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제 지난 한해를 돌아보았을 때 여섯달 전의 모습과 지금은 굉장히 다르잖아요. 자고 나면 하루하루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자극을 더 많이 주고 싶어요. 지금 이 시기가 앞으로 5년, 10년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죠.”
클라라 주미 강은 한국 최초의 바이로이트 오페라 가수였던 베이스 강병운(필립 강)씨와 소프라노 한민희씨의 4남매 중 셋째로 독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언니는 피아노, 오빠는 첼로를 전공해서 세 남매가 한때 강트리오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부모의 권유로 2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3살 때 바이올린을 잡으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제게 피아노를 시키고 싶으셔서 피아니스트 클라라의 이름을 붙여주셨어요. 하지만 전 언니가 하는 바이올린이 탐이 났어요. 그 무렵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가 조그마한 바이올린을 선물해주셨고요.”
그리고 겨우 4살 때 만하임음대 예비학교에서 발레리 그라도프를, 5살 때 뤼베크음대에서 자하르 브론을 사사하고 7살에 줄리아드에 입학해 이츠하크 펄먼과 나이절 케네디, 사라 장(장영주) 등을 키워낸 도로시 딜레이를 만났다. 어린 시절 짧은 시간에 최고의 스승들을 만난 것은 지금도 가장 큰 행운으로 여긴다. 그 당시 도로시 딜레이는 “클라라는 특별한 연주자다. 그의 화려한 손놀림은 나를 놀라게 하고,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에 관객이 울고 웃는다. 9살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적어도 25살로 볼 거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8살에 처음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아 챔버 앙상블과 모차르트 협주곡 5번을 협연하면서 데뷔했다. 9살에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녹음한 베토벤 3중 협주곡을 텔데크 레이블에서 발매했다.
하지만 ‘제2의 사라 장’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이 꼬마 신동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1998년 봄, 12살 생일 직전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세계적인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강주미의 연주에 반해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손가락 부상으로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다. “운지를 하는 왼 손가락뼈가 부러져 4년간 재활치료를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그때 사고가 좋은 배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힘들어도 빨리 일어설 수 있는 것도 그 당시 경험 덕분이죠.” 그는 “그때 다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신동에서 음악가로 커가는 과정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아직 스물네살에 꿈꿀 것이 많은데 스무살 전에 이뤄냈으면 그 꿈이 커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오는 15일, 그는 정말 소중한 새 동반자와 함께 고양아람누리 신년음악회에 선다. 인디애나폴리스콩쿠르 우승으로 4년간 임대받은 168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관객들과 새해 처음으로 만나는 무대다. 그리고 5월에 독주회를 열고, 서울스프링페스티벌에 참여한다. 7월에는 대관령국제페스티벌, 9월에는 유니버설뮤직과 녹음작업 등 주요 스케줄이 벌써 다 정해졌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야니너 얀선처럼 바라만 봐도 빨려들어갈 것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