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나의 취향은 책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정치인들이 나와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더 좋고, 사랑하는 이야기라면 더욱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던데, 내 취향은 자기 계발서도 아니다. 어쩌다 한번씩 보면 좋지만, 아주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다. 자기계발서적에서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라는 말들이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오지 않는다. 누군가 그렇게 살라고 해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마음이 동화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누가 아무리 뭐라해도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는 소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즐겁다. 어떤 이들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소설을 잘 읽지 않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을 뭐라 할 수 없고, 그들도 나를 뭐라 할 수 없다.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개인의 취향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뭔가가 좋다고 해도 마음에 우러나지 않음은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뻥 하고 뚤리는 느낌의 소설을 만났다.
혼자서 킬킬거리기도 하며, '맞아맞아' 하며 맞장구를 치며 읽은 소설이다. 먼저 책 속의 주요 인물 하나는 평범하다느니, 메리트가 없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 받은 이다. 무엇 때문에 자기가 차였는지 이해를 못하는 그는 그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그녀가 회원으로 있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카페의 정모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카페로 향하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전 여자친구는 고양이 머리띠에 고양이 꼬리를 달고 다니는 묘한 여자였다. 또한 이쁘기도 했지만,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갖고 말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여자였다. 그 여자에게 카드로 긁어 사준 물건들 때문에 헤어진지 두 달이 지났어도 카드빚이 남아 있어 그는 그녀를 가리켜 '이쁘고 못돼 처먹은 너' 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책 속에서 '한'은, '취향이란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지표라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매혹되어 있는지는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 (325페이지) 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기 바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싫다는 표정을 나타내면 그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 이수진 작가는 '나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야하지 않겠냐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나와 취향이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책속의 인물들의 말을 빌어 이야기한다. 취향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그 취향을 빌미 삼아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이에게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게까지 만드는 것이 결국은 다른 이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지 않나 싶다.
책 속에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자와 카페 회원들이 나오는데, 다른 내 취향을 말해보자면, 난 사실 동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때부터 아토피 피부병이 있기도 해서 털이 날리면 더 가렵기 때문에 피하기도 했지만, 동물들이 무섭다. 강아지 같은 경우 털을 만지지도 못했다. 털 밑으로 만져지는 강아지의 체온과 뼈가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친구 중에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몇 있어, 모이기만 하면 그 애들은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 각자 이름이 있기 때문에 오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그들은 강아지란 동물에 매료되고,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취향 또한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든 이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336페이지)
강아지에 비해 고양이는 나에게 더 두려운 존재다.
노랗게 바라보는 그 눈빛도 무섭고, 어렸을때 여동생이 고양이를 미워했다는 이유로 이제 막 난 쥐 새끼 - 털도 나지 않는 - 를 여동생의 신발에 넣어 두었을때부터 난 고양이를 두려워했다. 지금도 가까이에서 보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다. 시골집에 가면 시아버님이 밥을 몇번 주었더니 길고양이들이 아예 집에 새끼도 낳고 터전을 만들어 살고 있다. 담벼락을 도도하게,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흠칫 몸을 떨 정도로 나는 지금도 약간 무섭다. 그에 반해 신랑은 어렸을때부터 고양이를 키웠고, 학교에 다녀오면 대문앞에서부터 기다리며 애교를 떨었고, 밤에 잘 때도 품안에 품고 잤을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이렇듯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각자의 취향이 있다.
우리는 내 취향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의 취향도 소중함을 알고, 이해해야 겠다. 제목에서부터 말하지 않는가.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