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식사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박찬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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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간이 나왔을때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표지를 보았을때, 작가의 이력과,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는 몇 줄의 글때문에 그 책을 못내 읽고 싶어 가슴에 남는 책이다. 책을 구입하고 책을 편다. 책에 대한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발견하고는 기쁨에 겨워한다. 책을 읽어가며 점점 빠져든다.

 

 

내게는 생소한 작가였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소설가라는 메이어 샬레브의 소설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역사를 알수 있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생소한 나라의 작품을 읽으며 이스라엘에 조금 다가간 느낌이 든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나라, 여자도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것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생소한 나라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설렘이며, 즐거움이다.

 

 

 1940년 이스라엘의 한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자이데'로 할아버지란 뜻을 가졌다. 자이데의 어머니는 왼쪽 귀가 들리지 않고, 라비노비치의 외양간에서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자이데가 태어난 후 자신이 자이데의 아버지라 여기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라비노비치이고, 또 한 사람은 야콥 샤인펠드, 또 한 사람은 소장수인 글로버만이었다. 자이데의 어머니는 세 사람 모두의 사랑을 받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세 사람의 아버지가 있는 자이데, 세 사람의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자이데, 세 사람의 아버지로부터 각자의 외모의 한 부분씩을 물려받았고, 각자의 생각으로 교육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다.  

 

 

그런 그에게 식사 초대장이 온다.

아버지라 주장하는 세 사람 중 야콥 샤인펠드가 초대한 식사로, 그와 함께 29년동안 네 번의 식사를 함께하는 이야기이다. 식사를 하면서 야콥은 자이데에게 자신의 삶, 자이데의 어머니 유디트가 처음 들판을 걸어온 날부터 자신의 온 마음을 빼앗긴 이야기를 한다. 그 마을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 자기 아내였음에도 유디트에게 향하는 마음을 어쩔수가 없었다. 유디트가 받아주지 않아도 평생에 걸쳐 유디트를 사랑하는 일이 아름다웠을뿐만 아니라, 자이데를 자신의 아들이라 칭하며 손수 음식을 준비하고, 커다란 식탁에서 자이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야콥은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 장수 글로버만의 이야기와 자이데에게 라비노비츠라는 성을 물려주었던 라비노비치의 이야기도 말해 준다. 라비노비치와 쌍둥이 처럼 닮았던 아내의 이야기도 말해준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이야기하며 자이데는 점점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써 간다.

 

 

함께 밥을 먹는 이를 우리는 '식구'라고 한다.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밥을 함께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밥을 같이 먹게되는 사람과는 남남처럼 그렇게 지내질 못한다. 밥을 함께 먹는 가족. 밥을 함께 먹으면 없던 정도 생긴다고 말할 정도로 밥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따스함을 주는 것 같다. 우리 엄마아빠가 젊었던 시절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그 시절의 인사는 '식사하셨어요?' 이다. 밥 못먹는 이들이 많았고, 굶어죽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도 아프리카쪽에서는 하루에 한끼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어렵게 사는 이들이 많다. 어느 영화에서도 애증이 있는 사람에 '밥은 챙겨 먹었느냐?'고 물어보면 괜시리 울컥해지는 경우가 그런 이유 아닐까.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음식만 먹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마음을 나누게 되는 것이므로.  

 

 

 

유대인이 사는 시골마을은 우리나라의 시골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다.

1950년대의 이스라엘의 어느 마을,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개 인지도 다 알 정도로 조그만 마을에 라비노비츠의 유디트에게 마음을 쏟은 세 명의 남자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과연 자이데가 누구의 아들인지. 매주 오후 4시면 유디트가 좋아하는 술 한 병을 가져와 함께 마시며 오후 시간을 함께 했던 글로버만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를 시기하지 못했던 남자들. 그들은 그렇게 평생 순애보를 간직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원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유디트에게도, 자이데에게도 평생을 걸쳐 그렇게 사랑하고 보살필수 있을까 싶다.

 

 

야콥과 함께 네 번의 식사를 하며 자이데는 자신의 인생을 걸어나간다.

오로지 한 사람, 자이데만을 위해 준비한 식사에 초대받아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살아갈 삶의 방향을 생각했던 자이데는 그렇게 야콥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추억하며, 글로버만과 라비노비치의 삶을 추억한다. 엄마의 삶과 야콥이 보는 엄마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간다.

 

 

메이어 샬레브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이스라엘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렇듯 아름답고 따스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한 끼의 식사를 함께 했던 이들, 우리가 식구라고 부르는 가족과의 한 끼 식사가 얼마나 좋은 일인지, 생각해본다. 음식을 준비한 사람의 정성을 함께 하는 일이 마음을 데우는 일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도 감동적인 네 번의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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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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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지혜를 알려주는 신간이 나왔다.

그의 작품들은 여타의 작가의 글보다는 현자가 가르침을 주는 지혜가 빛나는 글들이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책 『연금술사』만큼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듯 현자의 지혜를 알려주는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나오면, 그의 책을 읽어본 이들은 그의 책에 열광을 하는 것 같다. 이번엔 그가 트위터에 남긴 짧은 글들을 책으로 엮어냈다. 또한 매일 아침 신문이 오면 첫번째로 펼쳐보았던 '386c'의 만화를 그렸던 황중환 작가의 그림과 함께 엮어낸 글들이라 새로운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짧은 글들 속에 황중환 작가의 그림들은 굉장한 빛을 발한다. 짧은 글들속에 숨은 지혜와 그러한 지혜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라 우리는 어느 때고 펼쳐서 한 페이지씩을 보아도 그 글이 주는 여운에 심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당신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14페이지)

 

전에 우리나라 작가중에 이외수 작가가 트위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또한 팔로워수가 백만을 넘어섰다고 했다. 나 또한 작가의 트위터를 팔로잉하고 그가 하는 짧은 말들에 귀 기울였었다. 이외수 작가의 트위터에서 남긴 말들이 위트있고 유머있었다면, 현 시대의 현자(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에 다음가는 사람)라고 불리우는 파울로 코엘료는 우리에게 지혜의 말들을 건넨다. 짧은 글 들 속에서 우리는 공감하는 몇줄의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이 입 밖으로 내 뱉은 말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뱉지 않고 삼켜버린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답니다.   (133페이지)

 

 

그가 '지저귐'이라는 뜻을 가진 트위터로 삶의 지혜가 담긴 말들을 하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짧은 글에 공감하고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상처를 마주 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87페이지)

 

 

 

당신이 기다려온 마법의 순간은

바로 오늘입니다.

황금마냥 움켜잡을지

아니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둘지는

당신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240페이지)

 

 

예전부터 좋아한 카투니스트 황중환의 그림이 있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 책이다.

때로는 긴 문장보다는 이처럼 짧은 글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감동으로 이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좋을 그런 소중한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라 긴 호흡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느때고 펼쳐 읽어도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글들이 많다. 우리는 그 글에 공감을 하고, 마음속에 새긴다. 예전부터 들어온 말들이었지만, 책 속에서 이렇게 만나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좋은 말들은 자꾸 새겨야 한다. 삶의 지혜가 담긴 말을 읽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예순일곱의 현자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삶의 지혜들이 담긴 책을, 우리는 황중환의 그림과 함께 마음속에 넣어, 두고두고 꺼내어 읽어볼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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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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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이웃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정감이 있다.

그냥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개인의 생각들이 들어 있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같다. 이렇게 잔잔하고도 소소한 일상을 적어놓은 글을 읽으니, 그를 과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말하기가 선뜻 나오지 않는 글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면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기때문에 아무런 부담없이 우리가 읽을수 있고, 미소지을수 있구나 싶다.

 

 

이번 책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일본 잡지 '앙앙'에 연재했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에 일 년 동안 연재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또한 '헤이본 펀치' 표지를 그리는 오하시 아유미의 삽화가 인상적이다. 아유미 씨는 뾰족한 금속 막대기에 긁어 내듯이 그림을 그리는 동판화 기법으로 삽화를 그렸는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글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선에 무라카미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했다.

 

 

무라카미의 51편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수 있다.

채식을 좋아해 샐러드를 커다란 양푼으로 한가득도 먹을수 있다는 샐러드 이야기를 하는 페이지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가 샐러드를 아구아구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웃기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성격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일하다 산책나오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복 차림으로 맥주집에도 다니며, 같은 작가들과는 교류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사람같았다. 또한 여자를 말하는 모습에서도 생활적인 냄새가 났다.

 

 

예를들면, 한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그가 여성에 대해 품어온 생각을 말하는 장면이다.

'여성은 화내고 싶은 이 있어서 화내는 게 아니라, 화내고 싶을 가 있어서 화낸다' 라고 했다. 작가도 말했지만, 남자들은 이러저러해서 화난다는 말을 하지만, 여자는 화나는 시기에 걸려 버리면 화를 낸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화나 죽겠는데, 남편이 이성적으로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하면 진짜 짜증난다는 것을 기억했다. 남자는 대부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데 반해, 여자들은 아무래도 감정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이런 점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난 무릎을 치며 혼자 웃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책 속에서 맥주 이야기를 하는 편에서는 나도 모르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여름이면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 나 같은 경우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 보다, 맥주 한잔 마시는 걸 더 즐겨한다. 어느 날에 마트를 가면 각각의 맥주캔을 사오고 싶어한다. 작가는 병맥주를 좋아하는데, 맥주중에서도 특히 '블루리본'이라는 맥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때 내가 좋아하는 병맥주는 '카프리'라는 맥주였다. 여섯개들이 맥주를 사와 냉장고에 넣어놓고, 배가 고플때, 책을 읽을때 한병씩 꺼내 병째 마시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최근에 살이 찌고 있어서 맥주를 멀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몹시도 '카프리' 맥주가 생각났다. 내일엔 오랜만에 카프리 맥주를 사다 놓고 마셔보리라 생각했다.

 

 

에세이 중에서 작가가 하는 말에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내용이 하나 있었다.

'친절심'에 대해 말하는 꼭지였는데, 작가는 글을 쓸 때도 독자에게 친절해야지 하며 없는 지혜를 짜 힘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때 친절심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독자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써야한다는 그 말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래서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인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너무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다 읽고나서도 이게 무슨 내용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 경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독자들에게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고,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작품을 다음에 다른 작품이 나왔을때도 기피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작가들이 독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작가와 독자가 서로 소통하는 장이 바로 책 아니던가. 이해하기 쉬운 책에 독자는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을 것이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들려주는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무라카미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춰 놓는다. 그가 말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진 힘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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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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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에 만화 같은 표지의 『쓰리』가 나왔을때, 표지만 보고서는 그저그런 만화책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천재 쓰리꾼(소매치기)을 다룬 내용이란걸 알게 되어, 책의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읽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번에 읽은 『왕국』은 『쓰리』의 자매편 이라고 했다. 작가는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 그 다음이 소매치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의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소매치기와 창녀에 관한 내용의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천재 소매치기 청년의 이야기인『쓰리』를 먼저 썼고, 아름다운 외모로 남자들을 홀려 그들의 약점을 팔아넘기는, 창녀라고 할 수 있는 유리카의 이야기를 썼다.

 

 

뒷 표지에 적혀진 글들을 읽고, 아무래도 창녀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저그런 통속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누군가의 지시로 호텔에서 남자를 만나 그를 잠들게 하고 그들의 약점일 수 있는 침대에 벌거벗고 있는 사진이라든가, 그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는 약점을 빼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타하리처럼 스파이라고 해야 더 옳겠다. 그래서 돈을 벌지만, 그녀의 삶은 허무하다.

 

 

그녀, 유리카가 길을 거닐때,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달을 보았다.

그녀의 밤을 비춰주는 달빛에 의지해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지만, 달은 어두운 밤 하늘, 그 자리에 있을 뿐 어느 것도 해주지 못한다.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바라보던 달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투명한 빛을 발하며,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움직이며 길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에게 일을 의뢰하는 야다와 기자키가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유리카는 아동시설에 자랐고, 아동시설에서 만난 에리 언니가 있었다. 에리가 죽고난 뒤 에리 언니의 아이 쇼타가 아파 심장이식수술을 해야하자 돈이 없는 유리카는 야다를 만나 이런 일들을 하게 되었다. 유리카가 괴물이라고 칭할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쇼타의 친부였던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의 가장 가엾고 비참한 모습을 사랑했던 인물이었다. 두 번째 괴물은 어린 시절에 지냈던 아동시설의 새로운 원장이라는 기자키였다. 기자키 역시 사람의 죽어가는 모습을 가여워하는게 즐거운 괴물이었다. 또한 남의 인생을 빼앗는 걸 아주 쉽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야다는 기자키가 가진 것들을 원했고, 기자키는 야다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약점들을 원했다. 그 가운데서 유리카는 살기 위해 야다와 기자키 두 사람에게 서로의 상대방이 가진 것들을 전해준다.

 

 

네가 가장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반드시 네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  ....... 인간이란 그런 것이야.  (221페이지)

 

자신의 인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유리카의 모습은 달의 다른 이면을 보는것 같았다. 자신의 모든 삶에 보였던 달이 이제는 다른 삶을 살라고 한다. 자신에게는 애착을 갖는 가족도 없고, 돌봐줄 이도 없다. 하지만 다른 삶을 꿈꾼다. 자신만의 왕국을 가지려고 한다. 그녀에게 다가올 새로운 시간들을 쌓아간다. 새로운 시간들을 쌓아갈 동안에도 그녀가 바라보는 밤 하늘엔 늘 그녀를 지켜보는 달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투명한 빛을 발하고, 때로는 붉은 빛을 발하며 자신이 비춰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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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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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일때 여동생네와 함께 주말을 맞아 순창에 있는 전봉준 장군 피체지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운동장처럼 넓다란 방에서 두 집 일곱 식구가 뒹굴거리며 음식을 해먹었었다. 밤 11시쯤 되었을까. 서울에서 갑자기 선거관계 사람이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고, 신랑은 우리 가족을 버리고 새벽에 사무실로 돌아가고, 느지막히 일어난 여동생네와 우리는 밖에서 음식을 해먹고 전봉준 장군의 피체지를 한 바퀴 돌고 기념사진도 남겼었다. 역사책에서만 볼수 있었던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녹두장군이 마지막으로 체포되었던 곳이라 의미가 깊어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었다. 우리가 묵었던 그 장소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이었다는 게 우리로서는 왠지 숙연한 느낌도 들게 했다. 방이 몇개 되지 않지만,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전봉준 장군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수련관처럼 숙소를 마련해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뜻 같았다. 

 

 

그후 몇개월이 흐른후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장군을 이곳에서부터 한양까지 압송해 가는 과정을 그린 한승원 작가의 소설이 연재된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전봉준은 왜 동학혁명을 일으켰는가, 조선 사람도 아닌 일본 군대가 전봉준 장군을 압송해 간 이유는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고, 살아야 할 것인가, 죽어야 할 것인가 번민하는 전봉준의 속내를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우리 동학군이 일어선 것은 나라 밖에서 들어온 세력을 몰아내자는 것이고,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로 이 나라를 넘보고 있는 일본을 징치하고, 둘째로 중앙정부의 요직에 앉아 벼슬을 팔아 배를 불리는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고, 셋째로 몽매하고 순박하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고액의 세금을 받는 부자들을 꾸짖고, 종들을 해방시키려는 것이오.  (67페이지)

 

 

 

 

 

녹두장군이 그토록 몰아내고 싶었던 일본군에게 끌려가고 있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전봉준 장군을 끌고가는 일본군 중에는 조선 출신이 있었다. 이토 겐지라는 자로 전봉준 장군을 생포하기 위해, 직접 동학 혁명을 하는 이들 속에 숨어서 그들을 살폈다. 또한 그는 조선을 집어 삼키려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로 한양까지 올라가는 길에 전봉준 장군의 곁에서 일본으로 가 훗날을 도모하라고 그를 회유하고 있었다. 그런 이토의 말을 듣는 전봉준은 한 편으로는 살고 싶었다. 살아서 자신의 아내를, 자식들을 바라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종로에서 조선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죽어, 그의 피를 조선인들 모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했다.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자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랬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기를 바랬던 전봉준이 그렇게 죽어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몇십년이 지난 뒤에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다 한울님이므로, 박해받거나 착취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우리의 그 꿈은 십 년 뒤에든지, 이십 년 뒤에든지, 오십 년 뒤에든지 백 년 뒤에든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58페이지)

 

전봉준 녹두장군 피체지(전북 순창군)

 

 

우리는 전봉준 장군이 뜻하였던 바를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현재 이렇게 누군가의 종으로, 누군가의 양반으로 있지 않다는 사실,  결국 전봉준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던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고뇌, 죽음에 대한 고뇌를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고뇌했던 전봉준의 고뇌를 볼 수 있었다. 2013년이 다시 갑오년이라고 한다. 이런 시점에 전봉준 장군이 부르짖었던 것을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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