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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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적 내가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느질하는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말이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고생을 사서 하며 평생 바느질을 한다는 이야기. 마치 굴레처럼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바느질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기억한다. 바느질이라는 게 하루종일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놀려야 하는 일. 어깨는 굳어가고 고개도 가누기 힘들고 손가락 또한 굳어갈지도 모르는 일.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나는 중학교때 배우는 가사 시간이 제일 재미없었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고생했고 뜨개질을 배울때도 겨우 목도리 하나만 떴을 뿐이었다. 지금에는 어떤가. 바느질한다는 게 고생은 되어보여도 고급 기술에 속한다. 바느질 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겠지만 공장에서 수백장씩 나오는 옷보다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가는 정성에 어디 비할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손바느질로 만든 옷을 구입해서 입을 수도 없을 정도로 수공비가 비싸고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라. 제목에서부터 여자의 인고의 세월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평생 바느질을 해오는 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까. 바느질을 하며 딸을 키우는 주인공의 삶은 얼마나 버거울까. 서쪽방에서 나오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한 여자의 삶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소설이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그간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어오며 작가를 어느 정도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작품에서 나는 김숨 작가의 변화를 읽었다. 한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작가가 무언가에서 탈피했다는 느낌. 글도 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여자의 삶은 숭고한 것 같다. 평생 바느질을 해오는 어머니 수덕을 바라보는 금택. 그리고 화순은 어머니에게서 버려질까 두려워 서로 경쟁하듯이 엄마의 사랑을 갈망한다. 어머니는 두 딸들이 그러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우물집에서 바느질하는 여자인 엄마는 원래 복래한복집 한 귀퉁이에서 누비 바느질을 했었다. 부령할매의 수의집에서 기거하고 있던 금택은 엄마와 함께 기거하게 됐고 이어 두살때 버려졌던 화순을 데리고 이곳 우물집으로 오게 되었다. 주로 금택의 시선으로 바느질하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된다. 한복집 골목에서 기거했던 이들에게 바느질하는 여자는 수두룩했다. 바느질을 잘했지만 옷을 짓지 못하는 여자. 평생 삯바느질을 하다 한복집을 낸 사람. 시절이 그랬을까.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모두 한두가지씩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누비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곁에서 오래 있어서인지 금택은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다. 어머니에게서 바늘을 받은 금택과 화순. 금택은 어머니의 바늘을 잃어버릴까봐 늘 옷 속에 품고 있다가 바늘에 찔려 피가 흘렀다. 그에 비해 화순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바늘을 아무데나 놔두고 금택에게 바늘이 어디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금택은 늘 불안했다. 어머니에게서 버려질까봐 불안했고,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었으면 했다. 

 

버스에서 내려 우물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금택의 시야에, 검은 무명실과 흰 무명실이 수십 가닥 풀어지고 엉키면서 허공으로 오르는 광경이 들어왔다. 풀어지고 엉키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무명실들이 한낱 연기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327페이지)

 

 

 

어머니처럼 되고자 하는 금택의 욕망은 스스로 자랐다. 죽순처럼 무섭게 올라오는 욕망을 그녀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온한 욕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딸들인 자신과 화순에게 누비 바늘을 건네던 날을 금택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단순히 누비 바늘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건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머니는 그러나 정작 딸들에게 누비 바느질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281페이지)

 

  결국 모든 딸들은 엄마의 운명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일까. 어머니가 금택과 화순에게 누비 바느질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딸들인 금택과 화순은 누비 바느질을 했다. 어머니와 누비 바느질에서 벗어나고자 대학의 의상학과를 갔던 화순도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과 자신과 경쟁하는 금택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엔 누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비 바느질을 배우고 싶었던 금택 또한 어머니의 곁을 지켰지만 어머니 모르게 자기 방에서만 누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화순에게 내주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게 금택 자신이고 싶어했다. 

 

  바느질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바느질을 업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던 듯 하다.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바느질이 자신의 삶을 옥죄고 바느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삶 또한 어머니의 삶을 물려 받았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운명, 이어 자신들의 운명의 굴레에 갇혀 바느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가 만들었던 누비 저고리, 누비 치마, 누비 마고자,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지었을 바느질.

 

 

  금택의 바늘에 대한 집착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었다. 어머니의 친딸이고 싶은. 그래서 어머니의 곁에서 평생 머물고 싶은. 그럼에도 어머니에게서 머물고 싶었던 것 만큼 어머니에게서 떠나고 싶었던 금택. 화순은 그런 금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바늘을 찾으려 풀숲을 손으로 헤치던 금택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바늘이 아니라 바늘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라는 것을, 엄지와 검지 사이 지네처럼 징그럽게 달라붙어 있는 흉터가 북두칠성같이 생각될 정도로 경탄드러운 어머니의 손이라는 것을. (449페이지)

 

  바느질하는 여자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질곡진 인생을 닮았다. 말없이 누비질만 했던 어머니 수덕의 모습에서 과거 여인들의 삶을 보았다.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을 말없이 지켜보는 금택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화순의 방황에서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보였다. 이렇게도 삶은 견디고 살아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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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ㅡ박명수식으로 ..덜덜덜 ~~두유 헤브어 썸띵 투 드링?!~달그락 ㅡㅎㅎㅎ (라디오 두시데이트버전)
음 ~스멜~~!

잘 마셨습니다...크....
김숨의 새 소설을 벌써 취하시다뉘...빠른 Breeze님!^^
속도에서 빵빵한 wifi ~(응?)광대역 을 느꼈다고나...

바느질은 느림의 미학 ㅡ아메리칸 퀼트 ㅡ가 문득 생각나서
그들은 웃도 울고 즐거워 보였는데 ㅡ어째서 우리나라에선
이 바느질은 질곡의 삶이 묻어나는 걸까 ㅡ행복보단 ㅡ묵묵한 인고의 세월만 ㅡ짚어지나 ㅡ하는 안타까움 ㅡ
뭐 ...그랬다는 ...

손재주가 아니 손 끝이 야물면 궂은 일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런 일을 두고 천성이 그냥 두고 못지나가니 ㅡ일을 사서 고생을 해 그런 속설이 생긴건 어른의 옛 지혜들이 참 틀린 말 없다는 게 기막힐 뿐 ㅡ이고...

이전의 김 숨 작품은 어떤 걸 읽으셨는지 모르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국수`를 보자면 그 흐름이 크게 바뀐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아직까지는 ......같은 선상에
있다고 ㅡ봐져요. 아니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죠.. 여자의 삶 속 그 안으로 진정한 자기를 찾는 방편이라면 김 숨은 이해와 포용의 선택을 택한 건지 모르겠어요. 전투적 의지 아닌 수용의 의미로......
김 숨 답다 랄까...나...
뭐 ,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

글을 읽어내시는 깊이 너무 좋습니다. 같은 작가를 좋아해서
길게 떠들었는데 실례가 아녔음 합니다.
사진도 좋아서 제가 좀 까불어 봤어요.^^
좋은 오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저도 곧 김숨의 바느질을 보겠습니다.
한 땀 한땀 이태리 장인 같은 ..?ㅋㅎ
애정을 놓고 가며 ㅡ

Breeze 2016-01-04 12:54   좋아요 1 | URL
이렇게 장문의 댓글을 단 그장소님께 경의를....^^
김숨 작가님을 좋아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좋았어요.
뭐랄까, 다른 작품들보다는 마음을 더 열었다고 할까요.
제가 읽은 김숨 작가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

[그장소] 2016-01-04 13:28   좋아요 0 | URL
얼른 읽어봐야겠네요~^^그정도 라니!^^
기대가 무럭무럭 자라는 중입니다!^^

[그장소] 2016-01-0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진 김숨 ㅡ저도 느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