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는 코코아를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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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네책방, 동네카페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자주 보인다. 비슷한 설정이긴 하지만 찾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소설의 느낌이 달라진다. 어떤 소설은 마음의 위로를 주고 어떤 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 뭔가 거창한 주제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장소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아오야마 미치코는 도서실에 있어요라는 작품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도 이 작품의 영향이 크다. 일본 특유의 잔잔함으로 가득한 소설에서 일상에서 행복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된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열두 개의 색깔로 열두 명의 이야기가 도쿄와 호주 시드니에 걸쳐 전해진다. 마치, 마스터가 있는 카페, 시드니의 거리에 선 느낌이다. 목요일에 따뜻한 코코아를 주문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마스터로부터 집안일, 요리, 아이 키우는 일에는 젬병인 직장인 여성, 마블 카페 건너편에 있는 유치원의 교사 에나와 야스코, 이혼남과 평생 함께하고 싶은 리사, 결혼 50주년 기념 여행하는 노부부, 초록색을 그리러 호주로 온 유(You), 보타닉가든 옆에서 오렌지 색으로 칠해진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랄프 씨, 마녀가 되고 싶었던 신디, 번역가 아쓰코, 일본의 봄을 알리는 벚꽃과 시드니의 봄을 알리는 자카란다 꽃의 기억을 안고 있는 메리와 마코. 각자가 가진 이미지가 색깔로 나타나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우리의 삶도 그러지 않을까. 무조건 직진으로 향하기보다는 살짝 돌아가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사람이 인연이 되어 평생 함께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내가 그었던 잣대를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접어들기도 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발견이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겼더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시절 둘 다 젬병인 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점을 남겨두고 앞으로 달려가던 리사를 떠올리곤 어쩌면 친구를 잘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여긴 야스코처럼. 어느 날 우연히 진심을 알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1초 앞도 모르는 채 살고 있다. 자기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대항할 수 없는 것도 맞은편에서 찾아온다. 그럴 때 끝없이 부푸는 불안은 우리에게 무서운 시나리오를 쓰게 한다. 자기가 만든 스토리인데, 마치 누군가가 떠맡긴 미래처럼, 그리고 그것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우리는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확실히 있는 것은 호흡하는 나, 웃고 있는 마코, 피어 있는 벚꽃. (174~175페이지, 삼색기의 약속Purple/Sydney, 중에서)





 

마블 카페를 중심으로 하여 이어지는 연작 단편 소설이다. 연작소설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찾아와 그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못하는 게 있다고 해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물론 먼저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겉돌고 말 것이므로.


 

카페에 가면 핫코코아 한잔 마셔야 할 거 같다. 더운 날에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날에도 달콤하고 뜨거운 핫코코아 한잔 마시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 같다. 마블 카페와 비슷한 곳에서 아오야마 미치코의 소설을 좀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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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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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특징은 중요한 단서를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숨겨놓는다. 독자는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주어진 단서 하나 무시할 수가 없다. 소설의 시작과 끝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가장 찬란한 순간에 불행이 찾아오는 것인가. 평소보다 과하게 느끼는 충만함. 그 찬란함을 질투하는 것인가. 미즈노 이즈미의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던 이유가 그렇다. 행복이라는 감정도 너무 자만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미즈노 이즈미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즈음. 불행한 일이 터졌다. 딸 사라의 대학 입학과 아들 다이키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족과 파티를 하던 날. 연쇄살인범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이었다. 다이키가 연쇄살인범으로 오인되어 쫓기다가 사고가 나 목숨을 잃었다. 이즈미는 고통스럽다. 왜 다이키가 죽어야 했을까. 다이키의 죽음은 이즈미의 삶을 바꾸고 만다.


 

15년 후, 빌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고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은 사라졌다. 집 근처 CCTV에 발견되었으나 그의 아내도 알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만이 의심을 품고 사건에 집착한다. 아들이 왜 사라졌는지, 누군가에게 살해되지는 않았는지 가족은 알아야 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미쓰야와 가쿠토는 15년 전에 일어났던 중학생 사고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집착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형사의 의문에 따라 현재 일어난 살인사건이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살인사건을 조사함과 동시에 15년 전에 일어났던 사고의 관계자들을 만나며 두 사건이 연결되어있음을 시사한다.


 

가족이라도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한다. 아이들도 부모와 친구들에게 하는 행동이 다르듯 얼마쯤은 말하거나 하지 않는다. 가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이유다. 깊이 파헤치다 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이즈미가 괴로워했던 이유도 자기가 알고 있는 아들과 백 퍼센트 맞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이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살해되었다면 살인자만 미워하면 되지만 무엇 때문에 아들이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니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행방이 묘연했던 다쓰히코의 아내 모모코와 그녀의 어머니, 다이키의 관계가 묘하게 맞물려 소설을 이끌어간다. 전체적으로 조금 답답한 면도 없잖았다. 작가는 어머니의 집착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그 원인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한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진 어두움과 광기, 집착. 그로 인한 죽음의 결과가 어쩐지 허탈하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두번째 시리즈가 출간되었다고 한다. 순간 기억 능력이 있는 미쓰야와 신참 형사 가쿠토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접점이 조금은 다르지만 하나의 해결점을 찾을 파트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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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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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주로 아이와 여성이다. 물리적인 폭력 및 정신적인 폭력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여성이 가진 연약함을 이용해 폭력을 가한다. 폭력을 가하고 부모라는 보호자의 명목으로 무마하려 든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보호받고 싶다.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지만,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감추고 숨어드는 존재다.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다. 소설에서 남자는 폭력적인 존재에 가깝다. 17년 전, 열 살 무렵 유괴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지희는 아직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괴범이자 살인범이 잡히지도 않았고 자기가 본 인물이 맞는지 기억조차 흐트러졌고 유괴를 당한 아이의 부모에게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유괴당했다가 죽은 아이, 미성의 엄마 은정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자기 딸과 함께 유괴되었다가 살아온 지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지희가 미성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유일한 목격자인 지희가 유괴범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작용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희의 고통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유괴범을 기억해내려고 스케치를 하고 또 했던 고통을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저 자기의 고통과 슬픔이 커서 타인의 고통 따위 관심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희의 기억 속 유괴범은 미성의 아빠 이도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족사진을 들고 주소를 알고 있으니 말하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듣고 기억이 번형되었을 수도 있었다. 지희는 자기 가족을 해칠까 봐 늘 두리번거렸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다. 유괴되었다가 살아온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런 시점에 유괴범이 나타나고 지희는 그가 진짜 유괴범이 맞는지 기억을 더듬고 유괴범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난다.


 

지희와 함께 사는 규연 또한 부모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였다. 반복된 폭력으로 가출하기를 여러 번, 그날 미성이 유괴되던 날 지희와 미성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일하던 매장에서 한 아이가 서성거리는 걸 보았고, 자신과 비슷한 아이라고 여겨 시현을 집으로 데려왔다. 시현의 말만 믿고 집으로 데려와도 되는가, 자칫 유괴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염려를 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헤맬 아이를 보호하는 것도 필요했다고 보는데 여기에서는 시현의 사정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 같았다. 거리를 헤매다 다른 아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 차마 내칠 수 없어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싶었던 거 같다.


 


 

 

유괴되었던 기억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데도 지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직접 사람을 만나고 자기의 기억 속 유괴범의 뒤를 쫓았다. 대부분 유괴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데 반해 지희는 맞섰다. 다소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도전하는 여성,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을 그렸다.

 


아이는 부모의 대용품이 아니며 함부로 다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며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거 같다. 유괴된 기억이 고통처럼 따라다니겠지만, 지희는 전처럼 뒤로 숨지 않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대처를 할 것이다. 스스로 갇힌 장소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여성과 아이는 여전히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그 답을 조금쯤 얻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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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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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을 여는 꿈, 혹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큰 탁자가 있는 북카페를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관망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 책방들이 생기고 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해본다. 책방을 열었을 때 감수해야 할 것들을. 아무래도 책을 팔아야 수익이 생길 텐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다. 근처 독립 출판을 하던 작은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팻말을 본 적이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책방이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간직해야 할 꿈이다.

 


서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들이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책들의 부엌과도 비슷한 소설인데, 황보름의 작품은 더 정감 있고 다정하다. 최근의 소설 흐름을 보면 타인보다는 나를 위하는 내용이 강조되는 거 같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한 법. 일부러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한 공간이 있으면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까.


 

 

 



후미진 골목길, 책이 팔리지 않을 장소, 서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곳에 새로 들어선 휴남동 서점. 서점 주인은 하루 종일 우느라 손님맞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서점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했다. 서점 주인 영주 스스로 슬픔에 겨워 지냈고,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낯선 공간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더니 달라졌다. 이제 서점 주인으로서 제대로 돌 볼 마음이 생겼다. 바리스타 민준을 채용하면서 휴남동 서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영주의 방식이 좋았다. 어떤 책을 추천해줄까 고민하기보다는, 서점 주인이 읽은 책의 느낌을 메모지에 붙여 놓는 부분이었다. 책을 고르는 사람은 책을 읽은 사람의 느낌에 공감하여 책을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다른 책을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휴남동 서점에 오는 사람들의 장점은 말이 없다는 거다. 물론 질문하는 대상에게 어떠한 말을 해줄까에 대한 부담이 작용하기도 했다. 서점을 찾는 손님에게 귀찮게 하지 않는 거. 한동안 면벽 수행하듯 명상을 하다가 나중에는 뜨개질했던 정서를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정서는 휴남동 서점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고, 명상하며 뜬 수세미를 서점에 기증할 수 있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점 운영 시 책은 사지 않고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다면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을 자제하고 기다림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은 민철 엄마인 희주와 민철에게도 찾아왔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민철에게 일주일에 한 번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씩 읽을 것, 그도 여의치 않자 서점에서 정서의 뜨개질을 바라보다 오도록 했다. 고등학생 소년이 서점에 앉아 하릴없이 뜨개질 장면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질문하기 시작한다. 삶의 본질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꺼내보았다. 희주는 민철이 민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남편을 기다려줄 것인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가질 것인가. 아들을 기다려주었던 엄마의 타박 아닌 잔소리를 듣고 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은 없었다. 몇 번의 좌절을 겪었다. 민준이 성철에게 말하는 단춧구멍에 관한 이야기는 이 소설이 가진 중요한 주제다. 열심히 단추를 만들며 살아왔지만 정작 단추를 꿸 구멍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컸다. 휴남동 서점에서 일하면서 민준은 단춧구멍이 없는 옷을 바꿔 입었다고 표현했다. 옷을 바꿔 입었더니 거기에 이미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에 맞게 단추를 만들었더니 잘 꿰졌다는 설명이었다. 일종의 변화였다. 서로를 기다려 줄줄 알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도 귀찮게 묻지 않았던 것. 적당한 무관심과 배려가 그를 변하게 했다. 세상이 원하는 삶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요. 작가의 목소리. 문장이 다소 서툴러도 좋은 목소리를 가진 작가의 글을 읽으면 힘이 느껴지잖아요. 좋은 문장이 중요한 건 이 목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장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거든요. (148페이지)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 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343페이지)


 

새로운 삶의 기로에 서 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부딪쳐 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밤잠을 설쳐가며 생각을 거듭했다. 어떤 선택이 나의 삶에 더 좋을까. 결론은 부딪쳐 보자는 거였다. 도전했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이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거고 나를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휴남동 서점의 다음 이야기가 계속될 거 같은 느낌이다. 서점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서점에 찾아와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을까. 엉터리 문장과 완벽한 문장에 관한 글쓰기 강의를 했던 승우 작가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책과 함께 따뜻하고 진심어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휴남동 서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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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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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시인 김수영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0주년을 기념해 한겨레에서는 거대한 100, 김수영이라는 타이틀로 반년간 평론이 기획, 연재되었고, 26개의 키워드를 이용하여 썼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의 시인 김수영의 이름만 알았던 거 같다. 읽고 나서야 김수영이 가진 거대한 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사상과 뿌리, 삶 그리고 기억들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김수영을 각인시켰다.

 


이 책의 제목은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중에서 가져왔다. 시 전문을 읽고 그 부분을 옮기려 적다가 포기했다. 원초적인 욕설 때문에 주저되었다. 이 책에서 한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만약 거대한 뿌리가 국어책에 실렸더라면 주구장창 외워야 했던 시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차마 리뷰에 옮기기도 주저되는데 말이다.


 



 

 

김수영이 한국어보다는 일본어를 잘했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번역일을 했다는 것이 새로웠다. 연극을 하다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장남이 되어야 했고, 4.19 혁명을 거쳐온 60년대를 아프게 풍자했던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수영의 배우자인 김현경 선생이 생존해 계시고, 또렷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김수영의 삶을 알 수 있게 했다. 전쟁 때도 챙겼던 귀한 자료집 때문에 육필 초고를 수록할 수 있었다. 다른 시인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시인으로 기억되는데,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 시인 김수영을 알리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김수영의 시를 읽게 되면 양가의 감정이 생길 거 같다. 역사적 의식으로 가득 찬 시와 함께 생활인으로서의 시는 우리의 현재를 알게 하는 효과가 있다. 김수영은 특히 여성 비하의 시를 많이 썼던 거 같다. 아내를 여편네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다는 시 죄와 벌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물론 맹문재 시인은 여편네가 아내를 비하한 의미로만 한정하는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김수영이 추구한 자유정신이라고 할지라도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 죽음과 생성의 원리는 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시 역시 죽음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 김수영은 시의 감동은 새로움에서 올 수 있는데, 이 새로움은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죽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전 시의 내용과 형식이 죽음을 통해 새로워지고 자유로워질 때, 현대시의 모더니티도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현대시의 출발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병풍을 들고 이 시를 죽음을 노래한 시” (산문 연극하다가 시로 전향,1965)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237페이지)


 


 

 

역사와 실험적 정신으로 일갈했던 김수영 시인을 읽는 것도 실험적인 것에 가까웠다. 다만 김수영 시인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겠다는 것과 다양한 관점으로 김수영을 볼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그 성과는 성공했다고 본다. 김수영 시집이 아닌 김수영을 읽는 일이 값진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김수영 시인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열었다가 다시 덮었었다.

이제, 김수영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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