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작은 책방을 여는 꿈, 혹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큰 탁자가 있는 북카페를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관망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 책방들이 생기고 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해본다. 책방을 열었을 때 감수해야 할 것들을. 아무래도 책을 팔아야 수익이 생길 텐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다. 근처 독립 출판을 하던 작은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팻말을 본 적이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책방이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간직해야 할 꿈이다.

 


서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들이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책들의 부엌과도 비슷한 소설인데, 황보름의 작품은 더 정감 있고 다정하다. 최근의 소설 흐름을 보면 타인보다는 나를 위하는 내용이 강조되는 거 같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한 법. 일부러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한 공간이 있으면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까.


 

 

 



후미진 골목길, 책이 팔리지 않을 장소, 서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곳에 새로 들어선 휴남동 서점. 서점 주인은 하루 종일 우느라 손님맞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서점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했다. 서점 주인 영주 스스로 슬픔에 겨워 지냈고,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낯선 공간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더니 달라졌다. 이제 서점 주인으로서 제대로 돌 볼 마음이 생겼다. 바리스타 민준을 채용하면서 휴남동 서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영주의 방식이 좋았다. 어떤 책을 추천해줄까 고민하기보다는, 서점 주인이 읽은 책의 느낌을 메모지에 붙여 놓는 부분이었다. 책을 고르는 사람은 책을 읽은 사람의 느낌에 공감하여 책을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다른 책을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휴남동 서점에 오는 사람들의 장점은 말이 없다는 거다. 물론 질문하는 대상에게 어떠한 말을 해줄까에 대한 부담이 작용하기도 했다. 서점을 찾는 손님에게 귀찮게 하지 않는 거. 한동안 면벽 수행하듯 명상을 하다가 나중에는 뜨개질했던 정서를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정서는 휴남동 서점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고, 명상하며 뜬 수세미를 서점에 기증할 수 있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점 운영 시 책은 사지 않고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다면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을 자제하고 기다림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은 민철 엄마인 희주와 민철에게도 찾아왔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민철에게 일주일에 한 번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씩 읽을 것, 그도 여의치 않자 서점에서 정서의 뜨개질을 바라보다 오도록 했다. 고등학생 소년이 서점에 앉아 하릴없이 뜨개질 장면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질문하기 시작한다. 삶의 본질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꺼내보았다. 희주는 민철이 민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남편을 기다려줄 것인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가질 것인가. 아들을 기다려주었던 엄마의 타박 아닌 잔소리를 듣고 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은 없었다. 몇 번의 좌절을 겪었다. 민준이 성철에게 말하는 단춧구멍에 관한 이야기는 이 소설이 가진 중요한 주제다. 열심히 단추를 만들며 살아왔지만 정작 단추를 꿸 구멍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컸다. 휴남동 서점에서 일하면서 민준은 단춧구멍이 없는 옷을 바꿔 입었다고 표현했다. 옷을 바꿔 입었더니 거기에 이미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에 맞게 단추를 만들었더니 잘 꿰졌다는 설명이었다. 일종의 변화였다. 서로를 기다려 줄줄 알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도 귀찮게 묻지 않았던 것. 적당한 무관심과 배려가 그를 변하게 했다. 세상이 원하는 삶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요. 작가의 목소리. 문장이 다소 서툴러도 좋은 목소리를 가진 작가의 글을 읽으면 힘이 느껴지잖아요. 좋은 문장이 중요한 건 이 목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장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거든요. (148페이지)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 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343페이지)


 

새로운 삶의 기로에 서 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부딪쳐 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밤잠을 설쳐가며 생각을 거듭했다. 어떤 선택이 나의 삶에 더 좋을까. 결론은 부딪쳐 보자는 거였다. 도전했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이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거고 나를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휴남동 서점의 다음 이야기가 계속될 거 같은 느낌이다. 서점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서점에 찾아와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을까. 엉터리 문장과 완벽한 문장에 관한 글쓰기 강의를 했던 승우 작가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책과 함께 따뜻하고 진심어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휴남동 서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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