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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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주로 아이와 여성이다. 물리적인 폭력 및 정신적인 폭력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여성이 가진 연약함을 이용해 폭력을 가한다. 폭력을 가하고 부모라는 보호자의 명목으로 무마하려 든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보호받고 싶다.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지만,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감추고 숨어드는 존재다.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다. 소설에서 남자는 폭력적인 존재에 가깝다. 17년 전, 열 살 무렵 유괴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지희는 아직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괴범이자 살인범이 잡히지도 않았고 자기가 본 인물이 맞는지 기억조차 흐트러졌고 유괴를 당한 아이의 부모에게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유괴당했다가 죽은 아이, 미성의 엄마 은정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자기 딸과 함께 유괴되었다가 살아온 지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지희가 미성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유일한 목격자인 지희가 유괴범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작용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희의 고통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유괴범을 기억해내려고 스케치를 하고 또 했던 고통을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저 자기의 고통과 슬픔이 커서 타인의 고통 따위 관심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희의 기억 속 유괴범은 미성의 아빠 이도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족사진을 들고 주소를 알고 있으니 말하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듣고 기억이 번형되었을 수도 있었다. 지희는 자기 가족을 해칠까 봐 늘 두리번거렸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다. 유괴되었다가 살아온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런 시점에 유괴범이 나타나고 지희는 그가 진짜 유괴범이 맞는지 기억을 더듬고 유괴범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난다.


 

지희와 함께 사는 규연 또한 부모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였다. 반복된 폭력으로 가출하기를 여러 번, 그날 미성이 유괴되던 날 지희와 미성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일하던 매장에서 한 아이가 서성거리는 걸 보았고, 자신과 비슷한 아이라고 여겨 시현을 집으로 데려왔다. 시현의 말만 믿고 집으로 데려와도 되는가, 자칫 유괴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염려를 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헤맬 아이를 보호하는 것도 필요했다고 보는데 여기에서는 시현의 사정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 같았다. 거리를 헤매다 다른 아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 차마 내칠 수 없어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싶었던 거 같다.


 


 

 

유괴되었던 기억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데도 지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직접 사람을 만나고 자기의 기억 속 유괴범의 뒤를 쫓았다. 대부분 유괴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데 반해 지희는 맞섰다. 다소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도전하는 여성,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을 그렸다.

 


아이는 부모의 대용품이 아니며 함부로 다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며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거 같다. 유괴된 기억이 고통처럼 따라다니겠지만, 지희는 전처럼 뒤로 숨지 않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대처를 할 것이다. 스스로 갇힌 장소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여성과 아이는 여전히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그 답을 조금쯤 얻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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