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믿으셨으며, 그 믿음을 보고 마귀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 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높은 뜻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 믿음이 있었기에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그 믿음 뒤에 더 큰 축복을 미리 가져다두고 미리 가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믿음이 있었기에 사탄에게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탄이 욥의 믿음을 보고 뭘 깨달았을까요? 저렇게까지 강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탄마귀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사탄마귀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것은, 사탄이고 마귀입니다. 우리가 환난에 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겪어온 세월에서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는 이 고난을 이겨내야 앞으로의 더 큰 고난을 견뎌낼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이 환난에 빠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십니다. 우리가 환난에 빠지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사탄마귀가 우리를 시험해 볼 때, 우리 스스로 자만에 빠져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때,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희망이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쉽게 포기했을 때 등등등 우리가 고난에 빠지는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그 모든 고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저는 아직도 고난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많은 고난이 저의 앞길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고난의 끝길에는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셨듯 앞으로도 저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이 글을 써 나갑니다. 또한 앞으로 더더욱 성경깊이읽기를 더 많이 함으로서 그리고 또한 꼬박꼬박 주일예배를 참석함으로서 가능하면 새벽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리면서 이 고난을 이겨내려 합니다. 욥의 고난의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큰 축복이 있었던 것처럼 이 고난의 끝에는 더 큰 축복이 있을 것임을 믿고 나아가려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저의 소망은 이렇게 커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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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지평선

그 지평선은

그냥 마냥 저냥

보기 그렇다

그래서

그냥 마냥 저냥

좋다



2

기적이

온다

기적이

기적을 

불러올 때까지

평범함이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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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 -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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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 비교하지 않는, 불쌍하게 보지 않는


1.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편의점이 있다. 그다지 목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아주 안 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 편의점이 생기기 전에는 일부러 길을 건너 거기까지 가서 무언가를 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편의점이 생기고 난 후,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가까운 편의점을 놔두고 일부러라도 그곳까지 가서 무언가를 사 먹는다. 무엇보다 넓은 공간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곳이 동네의 다른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좁은 통로에 서서 먹어야만 하는 자리만 있었다면, 나는 일부러 발품을 팔거나, 길을 건너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애를 쓰면, 아주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다양하게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에 나는 그곳을 자주 애용하게 된다. 할인카드가 적용된다는 점도 좋고.

 

 

2.

 

아이들이 미래에 인공지능 개발자가 되기를 꿈꾼다면 이는 '장래희망'이지만, 3백 억을 모아 강남에 아파트 12채를 사겠다고 하면 '(장래) 욕망'으로 분류될 것이다. 평생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고 4인 가족을 이뤄 손주까지 본 뒤 조용히 삶을 마감하겠다는 꿈은, (현대사회에서 무척이나 이루기 어려움에도) 보통은 희망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그 꿈은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평생 인구를 재생산하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존재는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 p.11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점에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희망을 이야기하다가도 그 희망에 어떤 이의 슬픔이나 아픔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희망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 욕망을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겠지만, 저마다의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욕망은 희망이 된다. 내가 말한 저 위의 편의점은 갈 때마다 항상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나처럼 일부러 발품을 팔아야 하는 지역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길 하나만 건너는 수고만 하면 되는 곳이다. 요즘은 길 하나 건너는 곳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박과 쪽박이 갈리기도 하는 걸 보면, 그 편의점의 마케팅은 분명 성공지점에 있는 듯하다.

욕망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람의 마음을 알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기적 쾌락을 위한 욕망만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그 욕망으로 인해 쪽박을 차야 하는 불운을 겪을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정당해져야 하고, 우리의 욕구는 정당하게 해소되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대체된 희망의 웃음이 우리 사회에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3.

 

희망 대신 욕망은 장애가 있는 변호사가 이미 10년 전에 쓴 글이다. 미안하다. 나도 리뷰를 쓰다 보니, "장애가 있는" 이라는 말을 써 버렸다. 이 말을 안 하고 "장애가 있는”"장애가 없는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썼다.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장애에 대한 극복기"장애를 극복한 사람에 대한 처절한 에세이도 아니다. 그냥, "나 장애 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라고. "나를 동정하지 말라고!” 정도의 그냥 보통사람이 쓴 글이다. 그렇다. 장애를 동정해야 할 대상이나, 장애를 극복해야 할 어떤 치열한 싸움의 존재로 보지 않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차별이나 차이 같은 건 사라질 것이다. 그대가 장애인을 당신보다 낮은 존재로 보고 그들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낄 때, 당신은 그 순간, 당신이야말로 동정 받아야할 불쌍한 존재가 된다.

 

 

 

", 오늘 선생님한테 혼나서 정말 짜증났는데 나는 저 아이처럼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중얼거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바닥을 지나가던 바로 그 장애인이었다.

- p.33

 

슈퍼 장애인이 되어야 할 내가 모욕감을 느껴 좌절한다면 자격 미달이 아니겠는가. 나는 모욕에 익숙해져야 했다. 장애인은 모욕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정신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걸 모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네 장애를 생각해볼 때 그건 모욕이 아니다'라는 의미인지, 그건 누구에게도 모욕적이지 않다는 뜻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만약 전자라면 장애인이 모욕을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대야 할 것이다.

- pp.124~125

 

 

3.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장애인을 교육할 수 있는 특수학교를 짓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씁쓸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이유를 보니, 내가 장애인이었다면 상처받았을 내용들이다.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그저, 장애인에 대한 편견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긴 힘들다.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분명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나의 짧은 공감능력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누군가의 배려로 간신히 극복할 수 있는 개인의 슬픈 비극이 아니다. 장애인은 병원이나 수용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 상태 자체가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도 세계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장애를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 치료사나 사회복지사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장애가 단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 등이 전 세계 장애인 운동과 사회과학 연구들이 성취한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 p.158

 

저자가 장애인으로 겪는 삶의 애환점과 그가 펼치는 주장들에 백배공감하면서 장애인들을 돌보아야 하는, 그래서 비장애인이 우월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만 인식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4.

 

만약 세상에 장애인 수용시설 같은 것이 없었다면 열등감에 시달리는 우리 20대들은 어디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충고는 커다란 결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열등감은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존재들에 의존해서, 그 열등감을 상쇄해 보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태도는 자신을 그 자체로 충만하게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존재에 의지해 열등감을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타인에 의해 열등감을 경험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위안을 얻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바로 비정상적인 인간을 '구경'하는 것이다.

- p.210

 

오래 전의 일이다. 이런 사진과 글이 있었다. 아주 가난하고 먹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난민을 보면서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거 아니냐는 취지의 글이었다. 나는 그 글에 이런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우리가 행복한 거라면, 결국은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보면 불행해지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그렇게 가난하고 못 먹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비교에 의한 행복은 결국은 불행해질 뿐이라고.

 

이런 취지의 답글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문장을 전개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비교에 의한 행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만약, 장애인을 보면서, 나는 저렇지 않으니 그래도 행복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 당신은 장애인에게 상처를 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난 당신에게 이런 저주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이제 곧 불행해지겠군요."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절절히 경험하고 있듯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휠체어 리프트의 음악 소리,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 휘황찬란한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행되는 주민자치센터의 쌀 전달식 등은 누누간의 자존감에 상처를 낸다. 장애인을 앞에 놓고 구원 이후에는 완전한 육체로 살 수 있을 거라 설교하는 종교인이나 방송에 나와 "내가 너를 걷게 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과학자의 말 역시 내 존재의 가치를 미래의 구원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어 나를 침울한 열등감에 빠뜨린다.

이 모든 것은 선량하고 숭고한 외피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실 "너의 안쓰러움을 내 능력으로 감싸 안고 싶다라는 자기 우월성의 쾌락에서 촉발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선량한 의도에서 출발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요즘 너무 살기 힘들다라는 친구의 고백에 "꽃동네에 가서 장애인들들 보고 오면 힘이 날 것이다라고 충고해주는 사람들은 명백히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이지만,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을 만나 자기 존재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큰 유혹이다.

 

- pp.212~213

 

 

5.

 

나는 어쩌다 보니, 우연히 장애인과 관련된 기관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이 리뷰를 쓸 당시에는 장애인직업재활센터에서 근무했다) 지체 장애인도 간혹 있고,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장애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는 그 친구들의 순수한 마음이 좋지만, 이조차도 그냥 어쩌다보니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만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적어도 장애인 중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가끔, 장애인들이 자기를 괴롭힐 거라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다.

 

나는 '장애인 치고는' 멋있는, 이라는 말을 거부한다. 나는 장애인 치고는 멋있기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멋지고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뜨겁기 위해 무대 위에 섰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장애인 치고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혹은 '장애인 치고는'멋진 말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멋질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는 어떤 메시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 pp.305~306

 

 

장애인으로서의 처절한 외침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외침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다짐했던 순간을 반성한다. 나는 장애인을 위해 살려고 결심했지만, 그것은 나의 우월감이 빚어낸 착오였다. 오히려 장애인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런 친구들과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나의 도리가 아니다. 그저, 그 친구들과 같이 숨 쉬고 함께 즐기며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상의하고 나아가는 것이 나의 길이 아닐까. 나를 위로해주던 장애인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생각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희망 대신 욕망은 그렇게 무너져 가려던 희망을 욕망이란 구체적인 현실성으로 다가갔다. 나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결코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회. 함께 꿈꾸며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마음을 다한 바람을 가져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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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바람 3부 예수님 바람




예수님 바람 제 1 화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

 

 

1. 모든 사람이 구원받길 원하시는 예수님

 

아주 오래 전에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이란 분이 저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시고는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자신의 모습이 형편없다고 자신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 들지 마시구요! 그냥, 믿으시면 구원은 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하실 예정이시니제 글에 귀 좀 빌려주시면 땡큐!

 

사실, 고백하자면요,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제 모습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리고 제가 내세울 게 하나도 없어서, 그래서 저같은 사람을 예수님이 사랑해 주실까 하는 걱정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은요, 저를 사랑하시는데 아무 조건이 없다고 계속해서 제게 말씀하고 계셨었고, 지금도 제게 나를 사랑하는데 아무런 조건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모습 그 자체로 사랑하신다고요.

 

그 사랑의 증거가 무엇이냐고요?

 

그 증거를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말할 수가 없지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있어요. 저의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예수님께 뭔가 아뢰면, 예수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계획이 다 있다, 라고요. 어떤 순간에라도 믿고 따르면, 분명 너를 들어쓰시리라, 하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저의 이 글을 보고 그래, 예수님을 믿자, 라고 결심하셨다면, 그것이 저를 들어쓰신다는 증거가 될 거 같은데요이 글을 보시고, 에잇, 하고 도망치려 하시는 분, 여길 봐 주세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Please~~~

 

 

 

2. 복음과 사랑과 믿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적을 혹시 아시나요? 목적이라고 하니, 예수님이 왠지 세속적 욕망을 쫓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앞의 의미를 잘 새겨보시면, 그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저의 좁은 소견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첫 번째로 복음. 복음은 예수님 믿기를 전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이유가 뭐냐구요?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요.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 행복한 것이 가장 좋은데, 살아서 고통스럽다면, 죽어서는 조금 편한 삶을 살고 싶지 않겠어요? 죽은 후의 삶이 편하고 행복하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거예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은 이후의 삶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죽어가는 과정은 조금 두려울 수도 있어요. 그건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죽어가는 과정도 편안하게 해 달라고 자꾸 예수님께 기도하고 아뢰면 죽어가는 과정도 편안해지는 어느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러다가 죽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딨겠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목적은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되죠.

 

두 번째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원하세요.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에서는 설교와 찬양을 통해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죠. 사실은요, 고백하자면요, 저는 이런 사랑 잘 전하지 못해요. 왜냐구요? 제가요, 경제적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뭔가 확실하게 정해진 뭔가가 없거든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사랑을 전하고 싶은 게 있어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죠. 예수님은 저를 무척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니까요. 저요? 저는 예수님 같은 사랑은 못하죠. 제가 예수님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죠.

 

세 번째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산뜻해져요. 마음이 산뜻해져서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막 들어요. 예수님의 뜻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뭔가를요. 그리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하죠.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의 이 섬기는 마음이 느껴진다면, 예수님처럼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죠. 그런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님처럼 겸손해지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노력은 해 봐야 되지 않을까요? 저도 많이 노력하려고 애써 보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남았어요.

 

우리의 행복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을 걸요!

 

 

조금은 긴 거 같은데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런 것. 결국은, 모든 사람이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아신다면, 우리의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죠! 전에는 예수님께서 저를 시험하시는 게 아닐까 해서 원망도 많이 해보고, 투정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요. 결국에는 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저 자신도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니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시니까요. 그럼, 예수님 바람 1화는 이걸로 마칠께요! 다음 시간까지, 좋은 시간 보내세요!





예수님 바람 제 2 화 


나는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하나요?

 

 

1.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리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섬김을 이미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지켜 주시니까요.

 

많은 목사님들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그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하게 이 말이 틀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기도하기 전에는 관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에 빠질 걸 아십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 우리가 빠지는 고난은 스스로의 선택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빠질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고난에 빠진 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뭘까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섬긴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뭘까요?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 많은 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신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 감동을 받게 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섬기게 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 저 신통한다이어리란 사람은 사람을 진짜 섬기려 하는 걸까? 그렇다면,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사람을 섬기려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진심을 느꼈다면, 누군가가 즐겁고 행복한 게 보이면 내 마음도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더더군다나 그 사람이 아주 조금 전까지는 전혀 행복하지 않고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이런 사람이었다가, 이제 너무 행복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할 때, 저는 그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저 때문이라면, 저도 더없이 행복한 마음이 됩니다.

 

 

2.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것. 일부러 섬기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의 고난은 예수님이 우리를 섬긴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오게 되는 것 아닐까요.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 고난은 꼭 해결되는 날이 올 거란 믿습니다. 저도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정해진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저를 섬기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기에 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렵니다. 그러다 보면, 저에게도 확실하게 보장된 미래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가 오면 예수님의 섬김을 증거 할 날이 되겠지요. 그러나 혹시라도 만에 하나, 그날이 오지 않더라도 저는 예수님의 섬김을 충분히 받았으므로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의 섬김을 지금 이 순간 전합니다.

 

이 글을 보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긴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었다면,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린다면, 그래서 이 글을 보시는 당신이 행복해지신다면, 저는 당신과 함께 행복한 지금을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큰 행복이니,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신은 제게 너무 큰 행복을 주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 행복한 기억으로 저의 오늘을 살아가게 도와주시는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한 당신, 그럼 지금부터, 예수님의 섬김을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 바람 최종회]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오늘은 예수님 바람 최종회입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 세상에 태어나 불공평하게 살아감을 경험합니다. 남녀의 차별로 인한 불공평, 형제간의 불공평, 직원들간의 불공평. 또 사람과 사람 사이간의 불공평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몹시도 힘들어 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보다 더 대접을 받는 거 같을 때, 저는 그때 몹시도 그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대접을 받는 사람도 대접을 하는 사람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답은 하나입니다. 제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직장을 구할 만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저도 충분히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분들을 통해서 저를 일으켜 세우시고 계십니다. 예수님만의 방법으로 예수님만의 도우심으로요. 저는 그래서 예수님께 순종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으신데 어떻게 순종을 해야 하냐고요? 순종한다는 것이 대답이 없으실 수도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을 정독으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해서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부탁이냐고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으니,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보지 않으련? 내가 너의 어떤 고민이든지, 어떤 문제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울 터이니, 그래서 내게 기도를 하면, 어떤 어려운 문제든 길을 만들어놓고 기다릴 터이니, 나와 함께 이 길을 걷지 않으련?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우리에게 함께하자고 부탁을 하십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바람을 마치며, 제 인생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 인생의 변화는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예수님이 늘 동행하시길. 예수님이 마음으로 그분의 섬김을 받으며, 예수님께 순종하며,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하시길. 예수님 바람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고마운 마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그날이 오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예수님 바람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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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바람 2부 


절실히 구하는 마음



[절실히 구하는 마음 - (1)]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리라 - 마태복음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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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처녀는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처녀란 말은 성관계를 하지 않고 아들을 낳는다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성관계가 죄일까요? 글쎄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아담에게서 나온 자손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자식이라 죄가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자식이 아니므로 죄가 없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이자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렇게 태어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를 억울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면서도 예수님을 못 박은 사람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 죄를 씻기 위하여 동물을 재물로 삼아 속죄를 하곤 했죠.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못 박히신 다음부터는 이러한 재물을 바치던 시대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씻어지는 거지요.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가셨고 또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음속의 작은 죄부터 시작해서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반복적인 죄.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죄를 짓고 나서 후회하곤 하지만, 후회보다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 죄를 짓지 말게 하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죄를 회개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누군가를 옥죄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진정한 믿음의 삶이 아닐까요.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저 역시 끊임없이 올라오는 이 일상적 욕망과 분노를 해결할 방법이 별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회개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노력하는 자세라도 가상히 여겨주시길 바라면서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그 말씀은 이제 다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한번 이루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예수님은 딱 한번 태어나셨고 그걸로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부활하셔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때로는 기뻐하시면서.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욕하거나 내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못을 많이 했어도 예수님은 늘 "넌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시고, 내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상히 여겨 주십니다. 제게 늘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요.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희망을 가질 거란 생각으로 글을 올립니다. 여러분, 희망 찬 새해 맞이하십시오.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보세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절실히 구하는 마음 - (2)]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오늘 있다가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태복음 6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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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다 망했거나, 앞날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교회를 나와 먼저 기도를 하라고 하는 이유가 이 구절에 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지만,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먹여주시고 입혀주십니다. 나 역시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당장 눈앞이 캄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중에 가진 돈은 거의 없고, 일자리도 없을 때. 아무리 버텨도 두 달이나 살 수 있을까. 그때 저는, 그렇다면, 이젠 죽음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겠군.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손길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때는 교회를 제대로 다닌 적은 아니었지만, 막연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실컷 원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구원해 주셨고, 교회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또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나의 앞길이 그리 탄탄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는 꼬박꼬박 나가지만, 다른 여타 활동을 열심히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신앙생활도 이게 맞는 건지 갈등이 큽니다. 저는 지금까지 "지식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책도 보고, 성경도 읽고, 설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회에서도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렇게 성경과 교회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하면 마음껏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교제하라라는 말씀에는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성격 탓이기도 한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성경에 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교제를 하는 데는 서툴지만, 하나님께 의지하고 예수님을 믿다 보면, 다른 의미로 제게 어떤 마음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교회 나오면 담배 피면 안 되잖아? 라고 말하는 분들에게는 담배를 피더라도 교회를 나와 예수님을 믿으면서 담배는 차차 끊어 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끊으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는 게 술입니다.

 

나는 그래서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선, 중요한 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먹고 살 걱정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저도 어떻게 해야 먹고 살아가야 하나 걱정은 합니다. 하지만, 저의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나의 인생을 책임져 달라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불안하다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이라면, 우선 기도하기를.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보시기를. 주님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것이 제가 본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절실히 구하는 마음-(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마태복음 77~8

 

예수님을 믿지 않던 시절에는 이 구절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구절을 몹시도 사모합니다. 하나님은 구하면 반드시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기도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요즘도 구할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많이 구했는데도 자꾸만 달라고만 하고 있으니, 참 양심도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게 늘 부족하지 않게 주셨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당장 이루어주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이루어주셨습니다. 물론,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이 틀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다른 방식으로라도 내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어떤 식으로든 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혼자 살기를 소원했었을 때도, 하나님은 어떻게든 내가 혼자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글을 쓰고 싶다고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작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니다.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합니다. 먼저 구하면 주시리라 하셨으니 그 주실 것을 믿고 나는 하나님을 전하는 데에 힘씁니다. 비록, 나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 말로 직접 하는 전도는 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전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퍼줄 사랑은 있는데, 받아주는 사람이 받아먹지 못해 고민이실 뿐입니다저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이 받아먹었고.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절실히 구하는 마음-(4)] 정말 많이 받고 있는 중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태복음 44

 

대전극동방송에 남긴 사연(20205)을 공유해봅니다

 

홍해를 건널 때 진흙탕이면 못 건넜을 거라는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그 말씀에 더욱더 열심히 기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해봅니다  (신다가 유튜브 채팅장에 남겼던 글)

 

목사님 설교 내용 : 모세가 거느린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일게 하여 모세의 백성들에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단순히 풍랑만 일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풍랑을 통해 길도 마른 길이 되게 하여 건널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 길이 진흙탕이었다면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순간에 우리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해주시려고 기도하게 하시고 때로는 그렇게 어려운 길을 걷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 이상하게 나의 미래가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에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실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이 방송에서 당첨된 뒤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선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면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가기로 합니다. 실직자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두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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