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살고 싶다

 

- 전창수

 

 

모기나 벌레들이 눈에 보인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놈들을 짓눌러 죽여버린다. 그들이 내 보금자리를 침범했기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고, 그냥 놔두었다간 내가 먹는 밥이나 혹은 내 살 속을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름대로 나의 보호막을 침범한 그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생명은 살고 싶기 때문이다. 모기도 살고 싶고 파리도 살고 싶고 벌레도 살고 싶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닭이나 소, 돼지 같은 동물도 강제로 잡아서 죽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물고기도 역시 강제로 잡아서 먹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도 분명 고통을 느낄 것이고, 살고 싶을 것이고, 고통을 당할 걱정이 없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다가 저승으로 떠난 물고기나 동물들은 식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듯이, 그들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어서 사람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요즘도 동물을 죽이는 사람이 있기는 있겠지만, 나는 죽인 고기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고기를 먹고 싶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게 바다를 혹은 강물을 헤엄치다가 기꺼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내어주는 그래서 비린내가 나고 구릿내가 나는 고기가 아니라, 육질도 부드럽고 실제로는 정말로 신선한 물고기, 또 고기들을 먹고 싶다.

 

예수님은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것은 십자가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예수님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예수님도 죽음의 고통 앞에서 두려워하셨다. 할수만 있다면, 고난의 잔을 거두어달라고 기도도 하셨다. 하지만, 끝내 그 잔은 거둘 수 없었고,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셨고, 끝내는 부활하셔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증명하셨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의 고통 앞에서 두려움을 경험한다. 죽음의 고통만 없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살다 간다면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얼마나 행복할까.

 

식물도 사람이나 동물이 그들을 괴롭히려 한다면, 그 나름대로 심리적인 불안에 꽃이나 열매를 피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식량을 제공해주는 환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게 살다가 우리에게 먹으라고 남겨진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우리의 건강은 결국 자업자득이다. 우리가 우리가 먹을 것들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건강의 가장 좋은 비결이라 할 것이다. 행복하게 죽어서 우리에게 남겨진 음식. 그 음식이 진짜 건강식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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