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안녕, 야구

 

전창수 소설

 

 

1.

 

볼 카운트 투 쓰리, 9회말입니다. 점수는 4:3. 4번 타자 김붕구는 과연, 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요? 주자는 3!”

김붕구는 타석에서 스윙을 점검하며 투수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번에는 어떤 공이냐, 네가 어떤 공을 치든, 내가 쳐주마! 하며, 결의를 다짐했다. 나를 피해가진 않겠지? 하는 생각 한편에는 나를 피해 가지 말라는 무언의 주문이 들어 있었다. 투수 역시 김붕구를 노려보았다. 승부를 피해 갈 기세는 아니었다. 비로소 투수가 기나긴 사인을 마치고 와인드업을 했다. 김붕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타자를 바라보던 김붕구의 아들 김특구는 지금 열 세 살이었다.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지금은 포스트시즌 마지막 경기. 이 경기를 이기면 한국시리즈 우승이 된다. 만약, 여기서 지면 한국시리즈 우승은 물거품이 된다. 점수는 4:3. 만약, 아빠가 홈런을 친다면? 그러지 않고, 동점타라도 쳐준다면! 아빠는 분명 한국시리즈 MVP가 될 것이다. 이미 정규시즌 MVP는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인 특구의 아빠는 이제 한국시리즈 MVP도 노리는 중이다. 김특구는 간절히 바랐다. 아빠가 한 방 날려주기를. 김특구는 투수가 와인드업 하는 장면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아빠의 눈빛이 날카로워 보였다.

 

슬희가 자리잡은 곳은 외야석이었다.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게 결정지어지는 순간, 누군가는 환호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 모든 승패가 김붕구이 손에 달려 있다. 슬희는 저 멀리서 김붕구가 스윙을 휘둘러 보는 것을 보았다. 감이 좋다. 분명 김붕구는 해낼 것이다. 투 쓰리까지 잘 골라낸 것을 보면, 분명 이번에도 해낼 것이라 믿었다. 슬희는 옆에 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응원소리가 목이 터져라 흘러나왔고, 비로소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는 것이 보였다. 세상이 온통 침묵했다.

 

투수는 김붕구를 바라보았다. 투수가 바라보는 건 김붕구였지만, 투수는 김붕구를 피해가야 할지, 아니면 승부를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난감했다. 감독으로부터는 별다른 지시가 떨어지지 않았다. 승부를 하든 안 하든 투수의 자율에 맡긴다고 했다. 자신 있으면 승부해 보라는 얘기였다. 좀처럼 유인구에 당하지 않는 김붕구와의 한판 승부는 쉽지 않았다. 투 쓰리까지 몰린 상황에서 승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붕구는 한국 최고의 타자였기 때문에 더욱 더 힘든 승부가 예상되었다. 김붕구는 포수에게서 싸인을 받아 비로소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이것으로 결정하자!

 

포수는 투수를 바라보며 싸인을 내었다. 직구 싸인을 해야 할지 변화구 싸인을 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볼을 던지라는 싸인을 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감독은 포수와 투수가 알아서 승부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포수는 기나긴 싸인을 투수와 주고받은 끝에 결국 승부구를 결정지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번 한번 공에 모든 운명이 걸려 있다. 포수는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야수들이 숨죽이고 투수의 와인드업을 바라보고 있고, 모두 투수의 공 하나에 집중하였다. 공 하나로 과연 운명이 갈릴까.

 

감독은 투수와 포수에게 별다른 싸인을 내지 않았다. 사실, 뭔가 작전을 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싸인을 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김붕구가 분명 한국 최고의 타자이지만, 그 다음 타자는 타점이 1위인 김새길이다. 더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다. 김붕구와의 승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투수가 자신 있다면 승부를 할 것이고, 피해가야 할 컨디션이라면 승부를 피해 갈 것이다. 감독은 아무 싸인도 내지 않았다. 감독은 투수와 포수에게 모든 걸 맡겼다. 드디어, 투수의 와인드업이 시작되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낮경기라 그런지 모두들 나른한 듯한 모습들이었다. 때로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하품을 내뱉는 관중들도 보였다. 관중들이 어딘가로 갈 때마다 구름은 더욱 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먹는 치킨도 별미였다. 중계를 하고 해설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더 긴장한 표정으로 김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와인드업을 하는 투수의 몸짓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김붕구가 투수를 또렷이 노려보았다.

 

 

2.

 

엄마, 저 사람 좀 봐!”

, ?”

저기에서 야구를 보고 있어

어디에서?”

저기 꼭대기에서

, 어디?”

전광판 위에

, 저 사람, 위험한데?”

저긴 어떻게 올라갔지?”

안 되겠다, 신고해야겠다.”

엄마, 저기 저 위에 올라가면 뭐가 좋아?”

?”

저기 위까지 올라갔다는 건, 그만큼 저기서 야구를 보는 게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니야?”

, 글쎼

엄마, 근데, 뭘 신고해?”

, 아니야

 

삼촌, 저 사람 좀 봐?”

, 저 사람, 위험한데?”

저 사람은 왜 저기 있을까?”

?”

저기서 야구 보는 게 좋은 걸까? 왜 저렇게 위험한 곳에 올라갔을까?”

, 글쎄

 

기유야, 저 사람 좀 봐!”

, 저 사람, 위험한데?”

그러게, 저 사람 왜 저렇게 위험한 곳에 올라가 있지?”

저긴 또 어떻게 올라갔어?”

저기가 저렇게 좋은 걸까?”

그러게? 그렇게 좋나? 떨어지면 어쩌려구!”

그러게, 떨어지면 어쩌려구!”

 

아빠, 저기 좀 봐!”

, 저 사람, 위험한데?”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

뭐가?”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야구를 보려 하는 거지?”

, 그러게

가서 물어봐야지!”

, , 간다고?”

나도 저기 올라간다고! 왜 저러는지 궁금해

, 안 돼, 아들아. 그건 안 돼!”

 

하늘에 구름이 두 쪽이 나 버렸다. 한 쪽의 구름은 잘 흘러가고 있지만, 한쪽의 구름은 멈춰 있다. 투수의 와인드업에 쏠리던 시선들이 전광판 위에서 야구를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모두들 그 사람의 위태로움에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모두 위태로워 보였다.

 

 

3.

 

세상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투성이다. 때로는 어떤 순간에 마무리를 급하게 져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구름이 두 쪽 나는 것도 결국은 누군가를 져야만 하는 책임을 모른 채 급하게 거둬야 하는 삶들이 되기도 한다. 김붕구는 과연, 한국시리즈 MVP가 될 수 있었을까. 전광판 위에 위태롭게 야구를 바라보던 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승부를 결정짓지 못한 채, 급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승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인생의 고난에 대한 결과에는 승자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승자를 바라본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김붕구와 투수 중 누가 승자가 되었을까. 결론이 나지 않는 승부에 결론을 낸다는 건, 몹시도 아쉬운 일이다. 그 아쉬움의 끝에 묻어나는 희망. 누군가는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희망적이다.

 

하늘에 구름은 두쪽이 났더라도 맑기만 하다. 그 맑음의 어딘가에서 흘러가는 인생이 있다. 시간의 너머로 김붕구도 있고,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 때로는 원장님이 있고 사장님도 있다. 승부의 저 너머에선 오늘도 하늘이 있다. 그래서, 구름은 계속 흘러간다고 한다. 오늘은 낮경기. 모두들 나른한 오후. 선수들도 힘들 수 있는 경기. 그 경기에 모두들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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