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나는 가리라

빗 속을 뚫고 나는 가리라

 

눈물은 볼을 적시고

지독한 고독은 나의 마음에 물결쳐와도

비 오는 날, 나는 가리라.

 

하늘 같은 분노는 비의 방울로 씻어 버리고

바다 같은 설움은 한 움큼 숨소리로 닦아 버리고

비 오는 날, 나는 가리라.




욕망의 경치

 

 

나의 욕망은

밤에 켜진 불빛이 되었다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이

고독으로 나의 가슴에 와 닿고,

마치, 바다의 폭풍을 겪는 듯한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파도를 무너뜨릴 듯한

가슴깊이 새겨 있는 욕망은

나를 애처로운 세계로만 끌어들였다.

나의 머리는 거미줄이 엉켜있는 듯

혼란 속으로 빠져 들지만, 그럴수록 욕마은

불에 타는 듯이 더해 갔다.

 

나의 욕망은 그렇듯 그렇듯 채우지는 못하고

다만 더운 밤, 구경을 할 뿐이었다




압지

 

 

비를 가려도

자신의 마음을 억제할 길은 없다

 

해를 가려도

쑤셔 오는 이마는 자제할 수가 없다.

 

압지로

번지려는 마음을 눌러 보지만

1초의 공간 속에 한 키의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쓸모 없는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5 세계

 

 

바람이 나의 볼을 스쳤다.

동시에, 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 올랐다.

또 하나의 폭우는

나의 머리카락 사이로 세차게 스며든다.

 

돌멩이가 나의 머리를 스친다

머리카락 사이로 또도독 떨어지는 빗방울에

빨간 물감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세계로 나의 몸은 비틀거린다.

 

비틀거림은 저 아래 구석의 세계에서

혓바닥에까지, 머리 꼭대기까지 뻗쳐온다.

손으로 얼굴을 맛졌더니, 붉은 손이 되어버리고

나는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떠 보니, 여기는 천국.

 



나의 작은 순간

 

 

나의 순간순간을

영혼의 푸른 빛으로

말끔히 닦아 버리고

그리운 산을 뒤로 하고 떠나고 싶다.

 

비에 젖은

헝클어진 머릿결을

단 한순간만아리도, 깨끗이 정정하고

또박하게 거울을 마주하고 싶다

 

순간순간을

바람보다 진한, 저 서편 너머의

그을림으로

다시금 기억하고 싶다.

 

미숙하기만 한

나의 작은 가슴에 손을 얹어도

순간의 자그마한 기억들은

어디론가 사라지는가보다

 

 


사구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보고도

울지 않는 이는 감정이 없는 도깨비

푸르게 헤어지는 땅을 보고도

서럽지 않는 이 걱정이 없는 벚꽃들

 

부푼 마음을 억지로 눌러 참고

이진 바람을 가르며 달려 가는

땅 위에 짓눌려진 흩모래




낙 엽 아 래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한 사나이가 쓰러져 있읍니다

얼굴은 피로해서 그런지,

무척 야위어져 있읍니다.

 

사나이를 안고 벼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읍니다

그리고 다시, 사나이가 쓰러져 있던 나무 아래

나 또한 쓰러져 가고 있읍니다.




사 구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보고도

울지 않는 이는 감정이 없는 도깨비

푸르게 헤어지는 땅을 보고도

서럽지 않는 이 걱정이 없는 벚꽃들

 

부푼, 마음을 억지로 눌러참고,




서재의 꿈

 

 

천장엔 어둠침침한 전등이

벽무늬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온다.

꽃이 만발한 벽지를 바라보며

서재는 꿈을 꾼다.

 

어느 책이 말을 한다.

오늘 그가 올까?”

재떨이가 대답을 한다

나를 목욕시킨 걸 보니, 오지 않을 거야

그러자, 펜이 반박을 한다.

아니야, 이렇게 원고지가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오늘 밤에 올 걸.“

원고지들이 동의를 하며, 난리를 친다.

벽지가 이들을 말린다.

책꽂이가 말한다

우리 이렇게 싸울 것이 아니라, 실컷 놀기나 하자.”

서재 안의 이들은 손에 손 잡고 합창을 한다.

 

서재는 꿈을 깬다.

어스름히 사람의 그림자가

불줄기 아래로 보인다

허연 연기가 아롱아롱

천정을 그을린다

그는 왼손으로 담배를 피워물고

오른손으로 펜의 대를 쥐고 있다.

빌어먹을 오늘도 끝났어, 끝났다구.”

사람은 스위치를 내리고,

그의 그림자는 사라져간다.

그리고 서재는

오래고 깊은, 아늑한 잠으로 빠져든다.




기둥 위의 프로펠러

 

 

기둥 위에 프로펠러가 돈다.

세상을 살 듯 프로펠러가 돈다.

 

그 아래, 두 꼬마남매가

프로펠러를 따라서 돈다.

누나, 저게 프로펠러야? 그런데, 왜 돌아가지?”

, 그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야.”

꼬마남매는 무척이나 다정한가보다.

 

기둥 위의 프로펠러는

꼬마담배의 꿈을 키워주듯

씽씽돌다가

바람과 함께 멈춘다.

 

누나, 저게 왜 멈췄지?”

저건 바람이 멈췄기 때문이야

두 남매의 대화는,

너무나도 다정하다.

 

바람은 밤중의 무등을 타고

또다시 불고

바람을 따라 또다시 프로펠러가 돈다.

 

기둥 위의 프로펠러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살 듯

그렇게 돈다.

 

 




소녀의 희망

 

 

나는 소녀를 보았다.

긴 머리에,

짧은 치마.

일렁이는 얼굴

나는 소녀를 보았다.

 

나는 소녀의 눈을 보았다.

초롱한 눈.

사랑스런 빛.

그러나 마주치면.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려 버리는

 

나는 소녀의 눈을 보았다.

 

나는 소녀를 상상해 보았따.

언젠가 서로를 알게 되면,

비둘기가 새겨 있는

하얀 종이 쪽지를 넘겨 주는

나는 소녀를 상상해 보았다.

 

나는 소녀를 보았다.

긴 머리에

짧은 치마,

일렁이는 얼굴,

나는 소녀를 보았다.



먼 지

 

 

거리엔 수북하게 먼지가 쌓인다.

이 먼지는 어디에서부터 흘러오는 걸까

나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는다.

 

먼지는 자동차들의 머리를 적시고,

거리에 바람처럼, 휩싸여간다.

 

누가 먼지를 더럽다고 했는가

오랫날을 겪고 겪어서

오늘날의 먼지인 것을

 

또 다시 상념을 해보지만,

먼지는 먼지

바보같은 생각은 마자.

 

거리엔 수북하게 먼지가 쌓인다.

이 먼지는 어디에서부터 흘러오는 걸까

나는 가만히 가슴의 손을 버린다.

 



삐친 새

 

 

퍼더덕거리며 새가 날아갔다.

그는 토라졌다.

바보는 잘 삐친다지

 

하얀 새는

푸른 창공을 소리없이 날아다녔다

그는 토라진 새

 

그가 아닌

그녀가 된다 해도

새는 토라졌다. 아니, 삐쳤다.

 

단단히 <삐친 새>

어느 날인가,

푸르렀던 창공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그림자의 고독

 

 

거리 모서리, 모서리마다

짙은 어둠을 늘인다

나는 모서리에 걸터 앉아,

쪽빛 하늘을 멍청하게 쳐다본다

 

하늘에도 시커먼 그림자가

늘어진다.

빛줄기가 쏴아악쏟아진다

아마도, 슬픈 소식인가 보다

 

고독의 그림자는 어느덧,

거리에 늘인 그림자의 고독으로 바뀌어가고

나는 힘없이 일어나,

거리의 모서리를 밟는다.




아득한 사랑

 

 

꿈을 기억하세요, 오랫된 꿈 말이예요.”

여신은 바람처럼 나에게 속삭였다.

 

아득한 사랑으로

가슴 깊은 곳에 들어 있던 여신은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오래고 진실한 사랑은 기억에 오래 남는대요

또다시, 여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아 이것은 영혼의 소리겟지

그래, 아득한 삶의 일깨움일거야

 

나는 진실을 꿈꾸듯

아득한 사람의 추억을 생각한다.

 

 

 


마지막 바람

 

 

창가에 바람이 부딪히면,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되는 듯 하다.

또도독소리가 창가에 들리면,

누군가가 방문을 하나보다.

 

이런날, 누군가 찾아올거야.

 

바보같은 생각에 빠져본다.

하루가 10년이라 생각말고,

10년을 하루라 생각하자.

 

아마도, 그리움을 배웠나 보다.

 

현실에 부딪혀 본다.

허무함은 현실에만 존재한다는 걸

이제야 깨닫나 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리를 얻는다.

 

바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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