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평온한 내가 되기
사람들의 말에, 마음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하는 행동들 때문에, 나의 하루가 온전치 않은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의 영향으로, 나의 삶을 좌지우지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나의 순간적인 기분을 왔다 갔다 하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내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지는 않는다. 기분은 금방 회복되며, 내 마음은 평온해진다.
내 마음이 평온해진 것이 언제였던가. 내 마음이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지 않음은 언제부터였던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고,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니던 어느 순간부터였다. 언제나 불안에 시달리던 나의 하루가 이제는 만족과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엔 아직도 분노가 존재하며,나는 아직도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이란 작은 변화가 내 삶에 일어났기에 언젠가 나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당장은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끊임없이 명상하며, 끊임없이 성경을 읽고, 쉬임없이 기도하다 보면 언젠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그곳>에 나도 함께 있을 것이라 믿는다.
04. 모든 이들에게
매일 불평을 늘어놓는 어떤 사람이 있다. 때로 그의 말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그는 교회에 불만이 생겨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겠지만,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할 것이다. 그가 나를 불쾌하게 해서 내가 더 단련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결국은 그렇게 불만을 쏟아내던 그 사람도 언젠가는 다시 예수님 품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다. 아픔은 나를 더 성장시킨다.
예수님은 항상 감사해 하셨다.
오늘은 비록 힘들지만, 내일을 향한 꿈이 있기에, 오늘 행복했고, 감사했다. 꿈은 계속해서 꾸어야 하기에, 절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은 꿈을 이룬 다음의 일이다. 목표 자체에 목표를 둔다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목표로 향해 가는 과정, 그 과정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면 꿈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의 소중한 경험을 해준 그들에게 감사하며, 내일 만날, 그리고 앞으로 만날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05.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어떤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쓸 때가 있다. 절제를 해야 하는데, 라는 마음뿐, 실제로는 절제를 못해 도를 지나칠 때, 그럴 때 예수님을 생각한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애쓰지 않았다. 대신, 예수님 스스로의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서 사람들 스스로가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였다.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의 삶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잘못이든, 잘못하지 않든, 그것은 그의 삶이다. 마찬가지로, 내 삶도 간섭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의 간섭이 진정한 관심인 적은 별로 없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간섭은 그냥 간섭일 뿐이다. 대신,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그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이 반드시 관심인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시는 데에 에너지를 소비하셨다. 예수님을 바라는 자들에게만 관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사랑”을 주셨다. 그렇게 함으로서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이고, 위대한 탄생이었다.
역사에서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예수님과 닮은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참견이나 간섭이 아닌 인류애를 지닌 사랑을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다. 우선, 나부터 그렇게 되기 어렵다.
나의 에너지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예수님이다. 나를 여태까지 먹여 살리시고, 나를 여태까지 돌봐주신 예수님이 내 에너지의 원천이다.
"아버지(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한복음 18:11)
고난의 잔을 마신 예수님의 힘으로 나는 지금껏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고난의 잔을 내가 마시진 못했지만, 나의 고난에 예수님이 함께 했으며 또 앞으로 있을 고난의 잔에 예수님이 함께함으로 내가 평안해짐을 감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