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지음 / 자화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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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그냥

 

 

1.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마음에 드는 부분을 체크해 두었다가 복사를 해 버린다. 이전에는, 일일이 손글씨로 옮겨 담았는데, 분량이 많을 때는 그 작업이 만만치 않아 손쉽게 복사를 하고 제본기로 와이어철을 해놓는다. 이런 작업이 이전에는 귀찮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즐겁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름 나의 책장들이 도서관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뭐라도 되고 있는 중이었다. 나의 독서와 리뷰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뭐라도 되겠지. 그렇지, 나는 지금 뭐라도 되고 있는 중이다.

 

 

2.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는 에세이다. 그저,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해 놓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에세이다. 그 에세이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기쁨이 나를 또 행복하게 한다.

 

세상은 늘 모자란 것투성이인 것 같다.어릴 적 최고의 디저트, 요구르트는 늘 딱 한 모금이 아쉬웠고, 수능 점수는 원하던 대학의 커트라인보다 조금 모자랐다. 연인에게 기대한 사랑 역시도 맘 놓고 누리기엔 부족했으며, 꿀 같은 여행 일정도 늘 원 없이 즐기기엔 모자랐다.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면, 치아가 상하지 않을 만큼의 충분함이었고, 실력은 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안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점수였다. 세상 모든 것이 '기브 앤드 테이크'가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사랑이었고, 여행의 권태에 빠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시간이었다.

결국에 되돌아보니, 조금 모자라서 좋았다.

- p.051

 

모자란 것투성이인 세상에, 나의 욕심을 늘어놓는다. 아쉬운 점, 조금 더 했으면 좋았을 것, 조금 더 가졌으면 좋았을 것들. 그런데, 그 아쉬운 만큼이 있어서 좋았다는 것. 돌아보면, 그렇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더 보고 싶은데,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쩌면 딱 그만큼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고, 영화도 역시 뭔가 아쉬움이 드는 만큼의 재미가 있는 딱 그만큼이 좋은 것이다.

 

 

3.

 

'그냥'이 가장 기피하는 것은 집요한 캐물음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분야는, 누군가의 '변덕'에 대해서다.

그 남자를 그리도 원망하더니, 왜 다시 만나게 됐는지. 그 의견을 핏대 세워 반대하더니,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는지. 그 사람을 그토록 싫어하더니, 왜 부쩍 가까워지게 됐는지.

그가 먼저 나서서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그건 자신조차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거나, 그 이유라는 것이 대단히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럴 만했겠지.'하며 그 변덕을 안아주기로 하자.

- 240

 

그냥에 대한 에피소드는 앞 페이지에 더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생략해 본다. 왜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냥'이라고 답하는 수밖에. 그냥이란 미묘한 말.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닦달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말. 그냥. 어떤 책이 왜 좋을까, 물을 때 그냥, 이라고 대답하면 뭐라고 말할까. 정말, 책이 그냥 좋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그 책이 좋았던 거 아닐까. 정말,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있는 걸까. 아낌없이 내 모든 걸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같은 책.

 

 

 

 

4.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소한 것들에 내재된 에너지를 믿는 편이다. 거창하고 수려한 문장보다는 수한 몇 음절이 선사하는 뜻밖의 영감에 환호하는 편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마주한 단어들, 그 단어를 디딤돌 삼아 펼쳐본 잡다한 생각들에 대한 끼적임이다. 그러니, 가급적 늘어진 자세로 대수롭지 않게 읽어주기를. 정제된 책상머리보다는 뜨끈한 방바닥이, 유기농 샐러드보다는 바스락거리는 봉지 과자가 이 책과 합을 맞추기를. 그런 느슨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고유한 빛깔을 드러낼 수 있길 고대해본다.

지금 이 시간, 그대의 11.

그래 아무것도 아닐 리 없다, 뭐라도 되고 있을 것이다.

- p.299

 

작가의 이 말처럼 나는 느슨하게, 여유롭게 뒹굴거리면서 이 책을 읽었다. 아쉽게도 과자 봉지는 없었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에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11. 그저, 스쳐가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이 쌓이고 쌓여서, 나는 뭐라도 되어가고 있다. 자그마한 일상 속에서, 자그마한 단어들의 묘미를 발견하는 것처럼 나의 조그만 일상도 책 속의 여유를 찾으며,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그 끝엔, 더 큰 기쁨이 있겠지. 더 많은 에피소드를 담을 수 없어 아쉽지만, 나의 와이어철 속에 담긴 책장 속 작은 기쁨이 더 많은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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